거울을 보다가 눈가에 새로 생긴 주름을 발견했다. '아, 이게 뭐야. 언제 생긴 걸까?' 웃을 때마다 깊어지는 그 선을 따라 손끝을 천천히 움직였다. 묘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마치 오랜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시간이 내 얼굴 위에 그린 선들이구나. 눈가의 주름은 밤새 찡그리고 웃고 울던 시간의 흔적이다. 미간의 주름은 힘든 시기를 견디며 새겨진 자국이다. 미간의 저 주름. 밤마다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날들, 혼자 끙끙 앓던 시간이 만든 훈장이다. 누군가는 '이제 늙었네'라고 말하겠지. 나는 다르게 본다. 이건 시간이 내 얼굴에 그린 드로잉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나만의 예술 작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젊음'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다. 매끈한 피부, 탱탱한 얼굴, 주름 없는 이마가 아름다움의 전부인 것처럼 세뇌당했다. 주름 하나 생길 때마다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처럼 슬퍼했다. '아, 나 이제 끝났나 봐.'
생각해 보라. 우리는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보며 "와, 멋지다"라고 감탄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골목길을 걸으며 "여기 분위기 좋다"라고 인증 사진을 찍는다. 낡은 책의 구겨진 페이지에서 "이 책 진짜 많이 읽혔구나" 하며 애정을 느낀다. 빈티지 청바지에는 프리미엄을 붙인다. 그런데 왜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주름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지 않을까.
나는 여드름 박사였다. 스무 살 때도, 서른 살 때도, 심지어 마흔 살까지도 여드름과 싸웠던 사람이다. 온갖 피부과를 전전하고, 약을 먹고, 화장으로 가리고, 그래도 올라오는 여드름에 울었던 시간. 그 지독했던 날들을 견뎌낸 내공이 있으니, 이 정도 주름과 처진 살은 애교 수준이다. 평생 여드름 박사로 살아온 내 아픔을 누가 알까.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너, 보톡스 한번 맞아봐. 요즘 다들 해."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남편도 얼마 전 처진 살 올리는 시술에 진심인 어떤 부인 이야기를 하더니 슬쩍 말했다. "얼굴 좀 땡기지 그래?" 그 순간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늙어갈 거야."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그건 삶의 흐름을 존중하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꼭 안아주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굳이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미 다 본 사이인데, 굳이 얼굴 당겨 가며 예뻐 보일 필요 있나?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남편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니다. 결국, 이건 나를 위한 선택이다.
그런 거 한번 한다고 진짜 예뻐질 거 같지도 않다. 얼굴 살을 찢어 올린다는 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게다가 늦둥이 아들 월세와 학비, 장가보낼 돈 생각하면 그 돈이 아깝다.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지 않는가. 보톡스 맞고, 필러 넣고, 리프팅하고.
오십을 넘긴 어느 날, 화장대 앞에서 깨달았다. 아, 나 지금까지 뭐 한 거지? 주름 하나 지우려고 온갖 크림 바르고, 걱정하는 시간에 나는 정작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과거의 스무 살 얼굴을 붙잡으려 발버둥 칠수록, 지금 쉰 살의 아름다움을 통째로 놓치고 있었다.
그날, 거울 앞에서 결심했다. 주름과 전쟁하는 대신, 그들과 친구 되기로. 이건 나를 덜 아름답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더 깊이, 더 진짜로 아름답게 만드는 거라고 믿기로. 이제 나는 거울 앞에서 더 이상 한숨짓지 않는다. 대신 내 얼굴의 선들을 관찰한다. 나만의 드로잉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이 주름은 언제 생겼더라?"
아, 늦둥이 아들 유치원 입학식 날, 뒤돌아서는 작은 등을 보며 눈물 흘리다 생긴 거.
"저 주름은?"
가족이랑 놀이공원 갔을 때 롤러코스터 타고 비명 지르며 웃던 그날.
"또 이 주름은?"
여드름 때문에 피부과 다니며 거울 볼 때마다 찡그렸던 그 오랜 세월.
각각의 주름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완성했다. 이 얼굴은 인생이 직접 그린 초상화다. 포토샵 없는 진짜 내 모습. 완벽하지 않지만, 아니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하고 아름답다. 이게 진짜 나니까.
자기 수용의 첫걸음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거울을 보며 "어, 이것도 나네"라고 말하는 것. 처진 알굴을 보며 "아, 늙었다"가 아니라 "와, 나 진짜 많이 살았구나. 잘 살았어"라고 토닥이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당신의 얼굴에 새겨진 선들을 보라. 그건 실패의 표시가 아니다. 당신이 진짜로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느끼고, 사랑하고, 아파도 하고, 웃고, 경험했다는 증명서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주름 없는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주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얼굴이다. 그 얼굴엔 빛이 난다. 진짜 빛이.
당신의 주름도, 내 주름도, 우리 모두의 주름은 각자만의 드로잉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이다. 이 작품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내일도 또 새로운 선이 그려질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설레자. 내일 또 어떤 멋진 선이 그려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