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처음 들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가족을 위해 내가 처음 구워냈던 고등어구이의 기억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고등어였다. 우리 엄마는 그것을 “얼간 고등어”라 불렀다. 안동 간고등어나 자반고등어라는 이름은 직장을 잡고 인천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도청 소재지에서 살던 어린 시절, 싱싱한 생물 고등어는 구경조차 어려웠다. 내륙 도시의 생선 가게에는 종류도 많지 않았고, 대형마트나 백화점도 없었다. 그래서 장은 늘 고향의 북부시장에서 봐야 했다. 엄마는 내가 국민학생 때부터 늘 생선 고르는 법을 알려주셨다. 훗날 시집가서 쓸모 있으라는 당부였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입덧 중에 간고등어가 무척 많이 먹고 싶었지만, 내가 태어났던 산골 마을에서는 생선 장수라도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발령받아 바다가 가까운 이 도시로 온 첫날, 엄마와 함께 새로운 직장 근처 시장을 둘러보았다. 팔딱이는 생선들이 좌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가르쳐준 ‘싱싱한 생선 고르는 법’은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고향에서 나 필요한 것이었다. 바다와 가까운 이곳에 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 유년 시절의 밥상은 풀밭 같았다. 기본은 언제나 김치 두세 가지였다.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동치미가 계절 따라 바뀌어 올라왔다. 국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혹은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린 말간 미역국이 번갈아 등장했다. 겨울이면 돼지 뒷다리를 넣어 김장김치를 푹 찐 ‘찐 김치’가 자주 올랐다. 그마저 없으면 들기름에 김치를 쪄서 대신했다. 밥은 흰쌀이 아닌 정부미 혼식이었지만, 먹성이 좋던 나는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특별한 반찬을 찾지 않는 건, 아마 그 시절의 식성이 그대로 남아서일 것이다.
그런 식탁에 아주 가끔 특별식으로 등장한 것이 간고등어였다. 어느 날, 냉장고에서 간고등어를 발견하고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부엌에 섰다. 사용하지 않던 가스레인지 그릴을 꺼내 고등어를 통째로 벌려 올렸다. 통마늘과 붉은 고추, 푸른 고추를 얹어 풍미를 더했다. 간고등어 자체로도 맛이 충분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남동생은 그 맛을 잊지 못했는지, 신혼 시절 아내에게 같은 방식으로 구워달라 주문했다고 한다.
지난 6월, 엄마의 첫 제사를 지내고 사남매가 둘러앉았을 때였다. 동생이 문득 그 고등어구이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가 구워준 그 고등어, 진짜 맛있었어. 기억나?”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안 계신 자리에서 엄마의 밥상을, 그리고 내가 처음 구워낸 고등어를 떠올리며.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과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것임을.
지금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라 고등어구이가 특별할 것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손쉽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가 바로 고등어구이다. 게다가 건강에도 좋다니 일거양득이다. 아쉬운 건 국산보다 노르웨이산을 주로 사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도 볼일을 보고 오는 길에 아파트 상가 마트에서 간고등어 두 마리를 샀다. 이번 주 토요일, 아들이 오면 구워줄 생각이다. 예쁘게, 맛깔스럽게.
어머니와 고등어.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이제는 알게 된 것들을 생각한다. 고등어 한 마리를 굽는 일이, 단순히 생선을 익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노래를 끄고 나서도 한참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