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희망을 찾아 꿈길을 가듯 나서기도 하고,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헐레벌떡 뛰어가기도 하고, 가야 하니까 그냥 가기도 하던 출근길을 이제는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추억하는 날이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길이다. 통통 튀던 발걸음은 어느새 진중한 발걸음으로, 반짝이는 뾰족구두는 중간 굽의 튼튼한 로퍼로, 급기야는 걷기에 편안한 운동화로 바뀌어 갔다. 물론 도보로 하던 것이 자가운전으로 바뀐 것은 당연지사였다.
가좌시장 근방의 청춘들
가좌시장 근방에 모여 살던 꿈 많던 처녀 총각들은 각각의 자취방에서 나와 출근길에 삼삼오오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얼굴에 만연한 웃음과 재잘거리는 소리는 희망을 노래하는 듯했다. 서로에게 관심과 호기심도 많았고, '젊음' 그 자체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나만 몰랐던 많은 이야기가 시간이 흐른 후 소식통 동료에게서 들려왔다. 글솜씨 좋은 사람이라면 소설 몇 권을 써도 될 만큼 무성하고 다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치 없기는 마찬가지다. 동료들은 어찌 그리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살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부럽기 그지없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날의 도시락 반찬 생각만 하고 있었나 보다. 하긴 누군가 내게 보내는 눈빛이 있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바보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는 그저 출근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많은 동료와 수다 떨며 걸어가는 것이 그때까지 인생 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흙탕 길과 갈색 로퍼
아파트가 우후죽순 빼곡하게 들어서던 시절, 산곡동의 진흙탕은 뽐내던 하이힐을 순식간에 주저앉혔다. 결국 굽이 높은 갈색 로퍼로 신발을 바꾸고, 그렇게 노처녀 시절로 접어들었다. 지금이야 쌩쌩한 청년 시기이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나이로 27세만 되어도 노처녀 반열로 취급되던 시대였다.
아파트 건축 자재들이 널려 있고 흙을 파내어 작은 언덕이 있던 길은 가장 최단 거리 출근길이어서 애용했다. 어느 사이 진흙 길은 새로 포장되어 신축 아파트 입주민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잘 닦인 도로 위로 출근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며, 장롱 운전면허증을 사용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나의 첫 애마, 흰둥이
나의 첫 애마 ‘흰둥이’를 구했다. 흰둥이는 1995년 나온 신모델 흰색 아반였다. 깜깜한 밤에 뒤차에 ‘안녕!’하며 빨간 불빛을 쏘던 그 모델, 지금까지 장수하는 아반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이다.
“첫 차치고 너무 좋지 않아?”
우둔한 나는 기구가 좋아야 함을 너무 잘 알기에 아주 많은 돈을 썼고, 그 후 22년 동안 나의 출근길을 보좌하게 한 다음 보내주었다. 완전히 뽕을 뽑았다. 보내는 날, 아쉬움에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아파트 촌 산곡동 출근길은 지옥이었다. 어떤 때는 그 자리에 30분 이상 그대로 서 있을 때도 있었으니…. 내 차만 끌면 만사형통인 줄 알고 거액을 들여 차를 구했건만…. 하긴 뭐, 버스전용차로가 생기기 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그다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던 시대였다.
출근길 중간중간 급할 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까지 알아두었으니, 출근길이 얼마나 고행길이었던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인고속도로와의 사투
막히는 출근길은 계속되었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삼산동에서 동인천까지 출근하게 되었다. 10년 운전 경력에도 여전히 운전에 미숙한 나는 경인고속도로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교통도 이용해 보았다. 갈산역까지 버스를 타고, 인천 1호선에 탑승하여 부평역에서 환승 후 동인천역 하차. 동인천역에서 또 만원 버스 탑승하여 출근했다. 이제 나 혼자의 출근길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출근 시간대의 경인고속도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수라장이었다. 거대한 덤프트럭들 사이에 끼어 다닌 것은 덤이다.
「Brown Bear, Brown Bear」
아들을 뒷좌석의 유아 시트에 태우고 그 기나긴 경인고속도로 출근길을 가는 중에는 아주 열심히 카세트테이프를 반복하여 틀어주었다.
「Brown Bear, Brown Bear」
2년 동안 노력의 결과인지 아들은 영어 발음이 아주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나 먼저 출근 준비를 한 후 어린 아들을 준비시켜 떠나는 1시간여의 출근길은 엄마의 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아들을 동인천에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그 근처 직장으로 출근했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에게 효자 소리 듣던 아들은 서툰 엄마의 출근길을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이었다.
흰둥이에서 보라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출근길은 부평IC 방향으로 경인고속도로를 탔다. 경인고속도로를 양방향으로 타고 다닌 출근길은 하도 클러치를 밟으며 다녀서 지금도 오른쪽 발목이 시원찮다. 시큰거리는 오른쪽 발목이 훈장처럼 남은 나의 흰둥이와의 출근길이었다.
그러다 흰둥이의 후예 ‘보라’를 만났다. 보라는 SM6이다. 흰둥이와 달리 보라는 팔자가 좋은가 보다. 주차장에서 쉬고 있는 날이 더 많으니 말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컴컴한 밤중 경인고속도로 위에서 ‘이러다 흰둥이와 함께 저세상 가는 거 아닌가?’ 싶어 흰둥이를 보내 주고, 보라를 맞이했다.
마지막 출근길
집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긴 후부터 보라는 푹 쉬고 있다. 나의 두 다리가 출근길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발목이 튼튼하지도 않고 신체도 첫 출근길처럼 쌩쌩하지 않으니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걸었다. 왁자지껄 인사하며 같이 걷던 동료들도 없이 혼자 걸었다. 건강을 위한 도시락을 가지고 하늘을 친구 삼아 걸어갔다.
잘 가꾸어진 오솔길 사이로 개나리, 벚꽃, 채송화, 봉숭아 등이 계절 따라 눈 맞춤을 했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장관을 이루고, 겨울엔 눈꽃이 피었다. 그 아름다움을 보며 나는 출근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모든 출근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희로애락이 담긴 그 길을 걸으며, 나는 패기 넘치는 청춘에서 여인으로, 여인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이제는 삶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출근길은 끝났지만, 삶의 길은 여전히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