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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Feb 25. 2024

브루클린 미술관 3편

야외 스케치


 

존 싱어 사전트의 <야외 스케치> (1889) The Brooklyn Museum.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인상주의 화가인 르누아르(Pierre August Renoir : 1841~1919)가 떠올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화 운동으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한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파 화가들은 빛에 따른 무한한 색의 변화를 캔버스에 담기 위해서 야외 스케치를 즐겨했다.

 

지금 보시는 <야외 스케치 An Out-of-Doors Study> 역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의 아내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은 폴 세자르 엘루(Paul César Helleu,1859 –1927)라는 프랑스 화가로 이 그림을 그린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 인상주의의 주류화가인 모네, 드가 등과 시대를 공유한 화가들이다.


그럼 프랑스 인상파 작품이 이곳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걸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아니다. 사전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비록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지만 의뢰받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미국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덕분에 사전트는 흔히 미국 화가로 분류되며 그의 작품은 미국의 대형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 (1883–8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사전트는 미국에서 주로 럭셔리한 스타일의 초상화로 알려져있. 나 역시 이 화가를 초상화가로 먼저 알았으니 말이다. 화가의 이름은 모를지언정 그의 초상화는 뉴욕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 Madame X (Madame Pierre Gautreau)> (1883–84)는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야외 스케치> 역시 엘루와 그의 아내 엘리스를 그린 그림이니 초상화의 일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대칭적 구도를 비롯해서 초상이 그려지든 말든 하는 듯한 인물들의 무관심한 제스처와 자연스러운 포즈 등은 전통적인 초상화와 구분된다. 또한 붓 자국으로 이루어진 수풀의 색채감등은 당대 주류 미술양식이었던 인상파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찰스 코트니 커란의 <온 더 하이츠 On the Heights> (1909) The Brooklyn Museum.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으로부터 딱 100년이 되는 해인 1876년부터 1917년까지를 아메리칸 르네상스(American Renaissance)라고 한다. 이 시기는 말 그대로 미국의 건축과 예술이 본격적으로 도래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미국미술이라 하면 독립전후로 제작되었던 식민지 스타일의 초상화 정도에 불과했고 건축물도 본국의 스타일을 따라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18세기 중반 허드슨화파로 시작된 미국풍경화(American Landscape)가 미국미술이라고 명함을 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독립을 선언한 지 백 년이 지나면서부터 미국은 스스로를 고대 민주주의의 계보를 잇는 법치국가로 여기며 국가관을 견고히 다지고 있었다. 때마침 도래한 모더니즘과 건축기술의 혁신등의 성격이 맞물려 미국의 건축과 예술 전반에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우: 네덜란드 장르화의 예) Johannes Vermeer, 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 166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관에 전시 중인 찰스 코트니 커란(Charles Courtney Curran, 1861-1942)의 <온 더 하이츠 On the Heights> (1909)는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이 무렵 대세 화풍인 인상주의적 뉘앙스가 풍기면서도 묵상적인 느낌도 든다. 무표정하지만 평온한 얼굴을 한 세명의 여성들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조용한 뉴욕주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채 앉아있다. 기도하는 듯한 손모양까지 더해져 거룩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커란은 켄터키 출신의 미국화가로 다양한 일상 속의 여성들을 화폭에 담았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그림에 흐르는 고요한 느낌이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 속 여성들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했다. 고요하면서도 다부진 이 젊은 여성들의 표정을 통해 당시 미국의 분위기와 지향하는 바를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Judy Chicago (American, born 1939). The Dinner Party, 1974–79. Brooklyn Museum


마지막으로 소개할 브루클린 미술관의 미국작품은 쥬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디너파티 The Dinner Party> (1974-79)이다. 서양 역사와 예술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39명의 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상상의 디너파티를 연상하게 하는 설치물이다. 거대한 삼각형의 식탁에는 39벌의 식기 세트가 놓여있는데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접시 모양 때문에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 보아도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작품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과 남성 위주의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페미니즘 아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페미니즘 아트는 사실 좀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품의 전통적인 틀을 완벽히 깨부수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디너파티>를 감상할 때 페미니즘 아트라는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테이블에 놓인 39벌의 식기세트, 그리고 그 연회에 초대된 나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테이블을 쭉 한번 둘러보고 나왔다. 브루클린 미술관에 왔는데 <디너파티>를 안 보고 나오긴 섭섭하기 때문이다.


미국미술관 내 수장고 일부 전시물


브루클린 미술관은 기대하지 않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사실 미국미술관 내에 정말 창고가 있는데 관람객이 들어가 볼 수 있는 창고이다. 마치 수장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곳은 티파티 램프를 비롯해서 미처 전시 못한 주옥같은 미국미술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숨겨진 보물창고를 탐험하는 것 또한 이곳 브루클린 미술관 방문의 묘미가 되니 기회가 되신다면 잊지 마시고 가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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