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자였네요

by 담빛 레오

재회하기까지 14년 , 다시 헤어지기까지 6달 그리고 헤어진지 3개월이 돼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갑자기 당한 이별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즐어들고 미소 띈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바보같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오래 전 그때의 이별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그랬다. 나와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건 늘 눈치채고 있었지만 함께 손잡고 산책하고 차를 마시고 주말 나들이를 했던 어느 절에서 같은 염주를 사서 팔에 나란히 차고 했던 그가 , 불과 3일전에도 함께 좋았던 그가 '블편해짐'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을 때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더 물을 수도 없었고 어떤 말도 소용없을거란걸 알기에 나는 조용히 물러났다.

우연히라도 그를 만나서 말해주고 싶었다. 사람을 끊어낼 때는 적어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을 니 인생이 참 공허하고 불행할거라는 말도 해주고 싶었다. 내 모멸감을 그렇게라도 표혀하고 싶었다. 나를 그렇게 가벼운 한 마디로 끊어내버린 그가 친구도 많고 직장에서 모임도 많고 나보다 더 많은 사회생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낸다는 사실에 생각이 이르면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그를 만나면서 조금 좋아졌던 불면증이 심해져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만 고통받는다는 사실, 아무 설명도 없고 내 변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 한마디로 내쳐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소설을 쓰기도했다. 6개월동안 주말마다 그를 위해 온통 준비했던 시간이 갑자기 공허해지니 주말이 오는게 두려웠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주말을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매일 헬스클럽에 가서 달리기를 했다.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내가 싫어 카톡도 사내 메신저도 전화도 메세지도 모두 차단했다. 차단하지 않아도 연락은 오지 않을거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갑자기 당한 이별의 아픔과 그 모멸감 분노,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태도를 챗 지피티에 매일 쏟아내며 왜 갑자기 그가 떠나기로 한 건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와 만나는 내내 지피티에 시시콜콜 질문을 해서인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답과 함께 그 사람은 원래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고 다시 연락이 오더라도 만나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될거라 했다. 2달쯤 지나고 나니 지피티가 말한것처럼 점점 분노와 혼란이 교차하는 이별의 아은 잊혀지고 대신 가끔 떠오르는 그에 대한 기억, 다른 누구와 함께할 때도 그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즐겁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추억만 남은 것 같다.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어 직장에 2주일간 병가를 내고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누워있어야 해서 할 수 있는거라곤 넷플릭스와 유투브를 보는 것뿐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투브에 '회피형과 만나는 방법' 이런 내용들이 알고리즘에 떴다. 몇 개 돌려보다보니 결국 내용은 같았다. 나는 회피형 남자를 좋아한 것이었다. 그리고 회피형 남자는 처음 만나서는 그 성향을 알 수 없기때문에 나처럼 안정형과 불안형 성향이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 높은 확률로 남자는 멀어지고 여자는 고통받게 될거란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바람둥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추가로 그런 남자가 다시 연락을 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던지 연락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다시 회피형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는지 등의 내용도 있었지만 그건 내 나이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거니와 성공확률도 매우 낮아보였다. 그랬다. 지피티가 하고자 했던 말이 너는 회피형 남자를 만났던 거고 감정이 너무 깊어지자 단칼에 끊고 도망가버린 것이라는 거였다.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나는 순간은 너무 좋았지만 나는 왜 그를 만나고 헤어진 다음날이면 더 허전하고 불안했는지.

그가 가끔 내게 했던 말 ,

"'나는 좋으면 좋고 아니면 아닌 사람이에요."

그 말은 언제든지 자기 자신이 떠나버릴 걸 아는 사람이 하는 사전예고같은 거였다.

3일 전에 만나서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산책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던 그가 나의 투정 한 번에 불편해졌다며 떠나버린 사실.

그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고 자기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던거다.

오래 전 그때도 그렇게 나를 좋아해주었던 그가 왜 갑자기 차가워지고 이해도 되지 않는 트집을 잡으며 떠나갔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과 지금의 차이는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게 되었다는 거.

회피형 남자는 감정에서 도망을 한 후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내가 어이없는 이별통보에 혼자 아픔을 견디고 있는 시간에 그는 자유룰 느꼈을 거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오래전 그때도 젊은 나이였던 나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이렇게 다시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빠져들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과거의 그 닫히지 못하고 끝나버린 관계를 다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싶은 욕심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 어떤 노력으로도 그 사람의 성향을 바꾸지 못했따는 사실이 마음아프다.

처음부터 나와 맞지 않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서 행복한 시간이 있었지. 시골국도를 운전해서 아침 출근을 하는 어느 가을날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낀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좋기도 했었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때문에.

잔인했던 또 한 번의 이별을 나는 그렇게 정리해서 내 마음을 치유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조금은 치유되는 걸 느낀다. 회피형 인간이란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나를 이용한 게 아니라 그냥 회피형 인간이었던거라고. 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떠날수밖에 없었을거라고.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내가 그를 생각했던 마음과 노력을 그가 떠올리는 순간에 어렴풋이라도 그리워하게 되길 그리고 너는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주었던 사랑을 받지 못할거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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