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되어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합니다.
2년쯤 전인가.
어느 날 갑자기 항문 밖으로 혹같은 덩어리가 삐져나왔다.
원래 항문쪽에 뭔가가 있는것 같은 느낌은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놈은
앉지도 못하게 불편한데다 이틀쯤 지나니 맑은 고름같은게 나오면서 저절로 사라졌다.
그리고 두세달쯤 후에 또 그런일이 반복된 것 같다. 원인을 잘 생각해보니 최근에 시작한 홈트레이닝에 스쿼트 동작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아서 스쿼트를 중단했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작년에 근무지를 옮기면서 하루8시간 이상을 앉아서 지내서 그런지 또 그녀석이 한번씩 출몰했다.
한 번 나오면 이틀정도는 앉기 힘든 고통과 좌욕을 반복해야 겨우 들여보낼 수 있었고 그 후로는 그녀석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늘 신경쓰며 지내야했다. 외출할 때는 늘 휴대용 비데를 갖고 다녔고 치질연고를 여러 개 사두고 사무실이고 가방이고 늘 닿기 쉬운 곳에 두고 느낌이 이상할 때마다 발라주었다.
마지막 그 녀석을 본 것이 작년 10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세달정도 지난 어제 또 그녀석이 나타난거다. 이번엔 이대로 방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침 일찍 항문외과를 방문했다. 두번째 순서로 들어간 진료실에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의사선생님이 계셨고 새우자세로 누운 내 항문에 뭔가를 집어넣고 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어나서 본 내 엉덩이는 말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안쪽을 혹같은게 여러 개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중 두어개는 색깔도 시퍼런게 무섭게도 생겼다. 의사선생님은 두말하지 앟고 '수술해야돼요. 수술 부작용은 협착증과 두통..."이라고 하셨는데 수술을 하지 않을수는 없는지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어보였다. 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편은 아니었던 의사선생님 말을 종합해보면 치핵이고, 괄약근은 건드리지 않을거고, 암치질... 뭐 이렇게 단어들만 늘어놓으셨던 것 같다.
사진을 본 이상 그런게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급하게 수술부작용까지 설명하시기에 나는 "오늘 당장 수술해야돼요?"라고 묻자 그건 밖에서 간호사하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셨다.
나오자마자 간호사가 달력을 들이대며 수술은 내일도 가능하다고 했다. 달력을 보니 10일쯤 지나면 설 연휴가 있는데다 업무 일정상 요즘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적기인 것 같아서 내일 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서자마자 간호사가 내 팔을 붙잡고 설명도 없이 주사를 놓으려고 해서 이게뭐냐고 했더니 항생제 알러지반응을 검사하는 거라고 했다. 너무 하지 않은가? 난 내가 수술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지 고작 5분밖에 안되었는데.. 그리고 정신없이 심전도 검사, 소변검사, 채혈 등을 당하고 정신없이 사무실에 운전해서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와서 병가를 내고 이것저것 정신없이 일처리를 한 후에 집에 와서 그제서야 인터넷에 올라있는 수술후기를 읽어봤는데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후의 고통이 너무 커서 수술을 비추한다거나 잘못되어 합병증으로 고생하거나 재발하는 후기들을 보니 당장 취소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이미 수술전 검사를 다 해놓고 직장에 8일간 병가까지 내고 왔는데 이제와서 무섭다고 수수을 미루는 것도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공포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까지 이게 맞는건가 하면서 병원으로 갔다. 수술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난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수술은 너무 간단했다.
수술대에 옆으로 웅크리고 눕자 의사선생님이 직접 척추마취를 하는데 바로 직전에 아주 재빠르게 기도같은걸 하신거 같았다. 척추마취가 잘 되게 해 주시고....
내 엉덩이 앞에서 기도를 하는 광경이 지금은 좀 웃기지만 그때 난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취는 주사를 맞자 다리 아래쪽으로 따뜻한 느낌이 쭉 내려가고 바로 된 거 같았고 뭔가 기구 같은거로 항문을 꾹꾹 누르는거 같고 아랫배가 자꾸 눌리는 느낌이 기분이 좀 안좋았다. 자궁근종이 큰 게 있기 때문에 배쪽을 건드리는게 싫은데 자꾸 엉덩이를 통해서 뭔가 자궁쪽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15분에서 20분정도 그렇게 엎드려서 있다보니 뭔가가 살짝 타는 냄새와 함께 끝났다고 했다. 그리고 누운채로 침대에 실려 병실에 옮겨져서 6시간동안 꼼짝말고 누워있기를 했다. 척추에 난 주사구멍 사이로 주사액이 흘러나오면 심한 두통이 생기기 때문에 절대움직이면 안되는데 이것도 참 고통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3시간쯤 지나니 마취가 풀리면서 항문쪽에 뜨거운 느낌이 들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남들이 쓴 후기를 보면 불로 지지는 느낌이라고 했지만 그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 좀 많이 뜨거운 느낌이긴 했다. 무통주사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참기 어려우면 진통제를 요청하라고 했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해서 그냥 있었는데 8시쯤 간호사가 잘 참으신다면서 좀 있으면 통증이 더 줄어들거라고 했다.
수술 전에 자세한 설명도 없었고 내가 물어보지도 않아서 몰랐는데 수술이 끝나고 나서 침대 머리맡에 붙여진 사진을 보니 치핵을 5개나 제거를 한거였다. 수술 직후 의사선생님 말로는 혼합치핵으로 5개를 제거했다고 했다. 이렇게 심각한 상태가 되도록 병원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니 좀더 일찍 병원을 왔으면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스쿼트로 그 녀석이 삐져나와버리기 전까지는 이런 문제가 잇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병원에 올 생각도 하지 않는게 당연했다.
9시쯤 넘어가니 통증도 줄어들었고 집에서 평소 복용하던 수면유도제를 먹고 자고 일어나니 아침 6시였다.
첫 날의 느낌은. 아~ 후기에서 봤던 최악의 후기보다는 참을만 하구나. 뭘 막 찌르거나 하는 통증은 아니구나. 이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