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1편 <백색 궁전>
임무혁이 둘의 대화를 엿듣고 절망감에 두 눈을 꼭 감았다. 그의 예감이 적중했다. 아내가 그를 배신했다. 경찰에 없는 사실을 만들어 신고했다.
아내는 경찰과 내통하는 물뱀파 조직원이었다. 물뱀파 조직원답게 마약을 구해서 집에 숨겨 놓고 임무혁이 숨긴 마약이라고 뒤집어씌웠다.
커다란 절망감이 임무혁을 집어삼켰다.
아내와 상관은 서로 내통하는 사이였고 불륜 사이였다.
둘이 작당해서 임무혁을 함정에 빠트렸다. 깊은 구렁텅이 안으로 인정사정없이 집어넣었다.
“그럼 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아니, 내가 배웅해줄까?”
“괜찮아요. 큰길이고 여기는 가로등 불이 밝아서 괜찮아요. 조금만 더 가면 나형사님도 계시잖아요.”
“알았어. 그럼, 어서 들어가. 나형사가 집을 잘 지키고 있을 거야. 자기 전에 연락해.”
“네, 정기씨.”
차미진이 말을 마치고 골목에서 나왔다. 임무혁은 근처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차미진이 인도를 걷기 시작했다. 임무혁이 다시 골목 안을 살폈다. 손정기 반장이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나형사, 임무혁 그놈이 집에 올 수 있어. 철저히 감시하고 있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형사가 그런 부패 형사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래, 우리가 깜박 속았어. 그놈한테.”
“그렇군요.”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임무혁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동료 형사인 나대진 형사의 목소리였다.
“으으으~!”
임무혁이 끓어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상관이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 당장 달려가 그의 멱살을 꽉 붙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멱살을 잡고 싸울 수는 없었다.
그는 도망자였다.
임무혁이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꿀컥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아내의 뒤를 따라갔다.
집 근처에 가까이 가자, 인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어들었다. 저 앞에 주택 단지가 보였다. 그곳에 임무혁이 사는 집이 있었다.
“젠장!”
임무혁이 서두르기 시작했다. 주택 단지로 가까이 가면 형사들이 있을 게 뻔했다. 여기에서 아내를 붙잡아야 했다. 그가 외쳤다.
“미진아!”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집을 향하던 차미진이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미진아!”
다시 차미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차미진이 깜짝 놀란 듯 걸음을 딱 멈췄다.
그녀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녀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무척 성난 남자였다. 남편 임무혁이었다. 임무혁이 아내를 향해 성큼 걸어왔다.
“헉!”
차미진이 갑자기 나타난 남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임무혁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차미진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거 같았다.
그녀가 큰소리를 지르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렸지만, 나오는 소리는 개미 소리에 불과했다.
“여, 여보.”
“미진아!”
임무혁이 토할 거 같은 화를 삼켰다. 입안으로 커다란 칼을 삼키는 거 같았다. 아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미진아. 대체 왜 그런 거야?”
“네에? 뭐라고요?”
차미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임무혁이 말했다.
“내가 집에 마약을 숨겨놨다는 …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왜 경찰에 한 거야?
집에 마약을 숨긴 건 바로 당신이잖아!”
“그, 그건 ….”
임무혁이 계속 몰아붙였다.
“당신 정체가 대체 뭐야? 손정기 반장이랑 무슨 관계야? 골목에서 둘이 무슨 짓을 하는지 다 봤어.”
“…….”
차미진이 답을 하지 못했다.
“동생한테도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나인 척하며 마약을 밀반입하라고 시킨 거야? 주형사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주리를 압박한 거야?”
“그, 그게 아니라 ….”
차미진이 답을 하지 못했다.
임무혁이 강한 어조로 아내를 계속 압박했다.
“미진아,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당신 정체가 도대체 뭐야?
물뱀파 조직원 중 경찰에 정보를 흘리는 자가 있었어. 당신이 바로 정보를 흘린 정보원인 거지?
당신도 물뱀파 조직원인 거지? 그동안 나를 감쪽같이 속인 거지!”
“으으으~!”
차미진이 신음을 내뱉었다. 마치 정곡이 찔린 듯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차미진이 어쩔 줄 모르다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임무혁 뒤편에서 뭔가를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누구보다 청순한 얼굴에서 야비한 얼굴로 변모했다.
“당신!”
임무혁이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 아내의 모습은 그녀가 예전에 알던 청순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차미진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차디찼고 악에 받쳤다.
“임무혁, 이제 내 정체를 알았군. 그래 나도 너처럼 물뱀파 조직원이다.
보스가 만일을 대비해 네 옆에 나를 붙인 거야. 난 빨대를 감시하는 역할이었어.
네 놈이 좋아서 결혼한 게 아니야. 난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로 불리는 여자야. 너랑 어울리지 않아. 넌 겉은 경찰이지만. 실은 조폭 깡패였어.
내가 너 같은 조폭 깡패를 좋아했겠냐? 그것도 가장 더러운 일하는 빨대를? 꿈 깨라! 넌 허우대가 멀쩡해서 SNS 자랑용이었어.
반장님은 진짜 경찰이야. 그러니 내가 사랑할 만하지.”
“뭐, 뭐라고?”
한 남자의 가슴을 송두리째 찢어버리는 독한 말이었다.
차미진이 오랜 세월 감춰왔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임무혁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어금니도 몽땅 부서지는 거 같았다.
“그동안 … 나를 감시했다고?”
“응, 보스가 원래 의심이 많아. 당신을 신뢰했지만, 만약에 대비해 보험을 들었지. 그게 바로 나야.
당신이 그동안 빨대 역할을 잘해서 보스가 대만족했어. 그래서 내가 보고할 것도 없었어. 당신은 최고의 빨대였어. 그건 인정해.”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믿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 같았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힘들게 말했다. 아내의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진상을 알아야 했다.
“너는 물뱀파 조직원인데, 왜 경찰에 정보를 흘렸지? 실은 이중 스파이였던 거야?”
“하하하! 이중 스파이?”
“어서 말해!”
“난 이중 스파이 이상이야.”
“뭐라고?”
임무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미진이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물뱀파와 경찰 위에 있어. 백궁 조직원이지.”
“뭐? 백궁이라고?”
임무혁이 백궁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차미진이 말했다.
“네가 대폭발 사고를 일으켜 백궁 조직원 일곱을 죽이고 한 명을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었잖아.
그런대도 백궁이 뭔지 모르겠어? 이젠 네가 한 짓도 기억 못 해?”
임무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아직 백궁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백궁이 도대체 뭐야?”
차미진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백궁은 백색 궁전이야. 환락과 탐욕의 궁전이지. 하하하!”
“뭐, 뭐라고?”
“임무혁 네놈이 우리 조직의 원수라 들었다. 너는 대폭발 사고로 우리 조직을 붕괴시키려 했어. 하지만 실패했지.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해.
백궁이 얼마나 무서운 조직인지 곧 알게 될 거야. 백궁은 경찰과 조폭 위에 있어. 우리를 건드리면 곧 죽음이야.
나는 백궁 상층부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야. 보스 남궁철은 이제 내 아래야.”
“백궁! 백궁이라고!”
임무혁의 머릿속에 백궁, 백색 궁전이 머물기 시작했다.
“하하하!”
차미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가 임무혁에게 말했다.
“임무혁, 어떡하냐? 지금 너 큰일 났어. 조직원들이 오고 있어. 바로 네 뒤에 있어.”
“뭐?”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검은 옷을 남자 둘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둘 다 손에 연장을 들고 있었다. 야구 배트였다. 물뱀파 조직원들이었다.
“이런!”
임무혁이 서둘러 사방을 살폈다. 곧 사방에서 적들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차미진이 방긋 웃었다. 그녀가 품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2번을 누르자, 통화 신호음이 들렸다. 곧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 나대진 형사입니다.”
“나형사님. 지금 임무혁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위협하고 있어요. 주택 단지 입구 근처예요. 빨리 오세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헉!”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몸이 굳어버렸다. 몸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고 말았다.
뒤에는 조직원이 있었고 앞에는 경찰이 그를 노렸다.
차미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임무혁 너는 끝이라는 뜻과 같았다.
뒤에서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임무혁 등 뒤로 조직원이 계속 다가왔다. 연장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왔다.
임무혁이 두 주먹이 터질 듯이 꽉 쥐였다. 그가 아내 차미진에게 말했다.
“차미진, 다시 만나면 너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시던지 ….”
차미진이 코웃음 쳤다.
그때 뒤에서 고함이 들렸다.
“아야아!”
연장이 임무혁의 등과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임무혁의 두 눈이 깊은 밤 올빼미처럼 빛났다.
임무혁이 앞으로 번개처럼 굴렀다.
“에그머니나!”
차미진이 깜짝 놀랐다. 남편이 앞에서 몸을 구르자, 이를 피하려다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뒤로 넘어졌다.
“악!”
쿵!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차미진이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녀가 잠시 의식을 잃었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임무혁이 몸을 일으켰다. 조직원 둘이 야구 배트를 들고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야아!”
임무혁이 몸을 재빨리 돌렸다. 돌려차기로 왼쪽에 있는 조직원의 턱을 강타했다. 정확한 솜씨였다.
“악!”
조직원 하나가 쓰러지자, 임무혁이 날아올랐다. 오른 무릎으로 오른쪽에 있는 조직원의 명치를 가격했다. 손색없는 솜씨였다.
“윽!”
비명이 또 들렸다. 조직원 둘이 급소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재규어 임무혁이 다시 실력을 보여줬다.
“아이고. 아야.”
차미진이 겨우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붉은 피가 그녀의 하얀 얼굴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