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스타트업 관찰기5

by 이상한 나라의 폴

초기 스타트업 미팅에서 전략 이야기를 꺼내면 대표들의 설명은 의외로 풍부하다. 하고 있는 일도 많고, 앞으로의 계획도 촘촘하다. 시장도 여러 개를 검토 중이고 제품의 방향성도 한 가지로 국한하지 않는다.


"B2B도 가능성이 있고, B2C 시장도 열려 있습니다.", "일단 국내를 잡고 상황이 되면 해외도 나갈 생각입니다.", "이 기능도 중요하고, 저 기능도 고객 반응이 꽤 좋습니다."


듣고 있으면 이 회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화가 길어질수록 한 가지 감정이 짙게 피어오른다. 바로 '집중'이 보이지 않는다는 위화감이다.


많은 초기 스타트업에서 전략은 치열한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버리기 아까운 '가능성의 목록'으로 존재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열정적으로 말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 결과 전략 문서는 점점 두꺼워지고 팀은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인다.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정작 왜 바쁜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전략이 단순한 나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조직에서는 늘 같은 하소연이 반복된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해서, 도무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이 없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안전해 보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을 유예한 대가는 분명해진다. 한정된 자원은 사방으로 분산되고, 팀의 에너지는 얇게 펴 발라진다.


무엇이 잘되고 있는지, 무엇을 더 밀어붙여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희석된다. 결국 모든 프로젝트가 '조금씩만' 진행되는 늪에 빠진다. 이 단계의 조직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열심히는 하는데 임팩트가 없는 것 같아요.", "바쁘기만 하고 뚜렷한 결과가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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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가 선택을 미루는 심리는 복합적이다. 나의 선택이 틀릴까 봐 두렵고, 혹시 모를 대박의 기회를 놓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에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압박감이 대표를 짓누른다.


그래서 대표는 습관적으로 "조금만 더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죠."라고 말하며 결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대부분의 경우, 어떤 데이터를 보고 어떤 조건일 때 결정하겠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데이터는 결코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을 내리고 실행한 이후에야 데이터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략의 본질은 더 많은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하지 않을 일'을 명확히 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과감히 포기할지 정해야 비로소 남은 것에 자원을 쏟아부을 수 있다.


그래야 실험의 결과도 선명해지고 조직의 학습 속도도 빨라진다. 이 과정에서 대표는 스스로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명확한 선택은 조직에 속도를 부여한다. 팀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왜 저 일을 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판단 기준은 단순해진다. 불필요한 회의는 줄어들고 실행의 밀도는 높아진다.


다음 전략 회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화이트보드에 추가하기 전에 이 질문부터 던져보자.


"이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게 되는가?"


성장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서 오지 않는다. 성장은 두려움을 이겨낸 명확한 선택, 그리고 과감한 포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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