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어도 발 한 번 디디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던 곳

알아두면 언젠가 쓸모 있을 법한 잡학상식

by 이상한 나라의 폴

죄인이어도 발 한 번 디디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던 곳

소도 – 나라 법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신성한 곳

과거 삼한시대에 소도(蘇塗)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한가운데 하늘 높이 긴 솟대를 세웠기에 그리 부르게 되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나라 법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가령 죄인이라 해도 일단 그곳으로 도망하면 제 발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었던 곳이다.


성당, 또 다른 피난처

유럽의 중세시대 때 성당이 소도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낭만파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노트르담의 꼽추"에 보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 프로로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성당 안으로 이끌어서 그녀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성당은 이른바 어사일럼(Asylum, 피난처)이었다. 영국이 1697년 의회령으로 성당의 피난처 기능을 박탈하였고, 18세기말에 이르러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도 그 기능이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한국은 조금 다르다.


명동성당 - 독재시대의 소도

명동성당은 70~80년대 독재에 맞서는 이들을 받아 주었고, 양심수를 옹호하고, 노동운동가들에게 주장의 장소를 제공하였으며, 90년대 중반까지 힘없는 자들에게 곁을 내주며 진정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시대가 변하여 이제는 피난처보다는 미사와 신도를 위한 공간으로 변한 듯하지만, 90년대 대학을 다니며 최루탄과 백골단과 맞서던 시위를 기억하는 나에게 명동성당은 아직도 간절한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로 기억되는 성지중 하나이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따끔한 꾸지람을 해 주실 수 있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이끈 선한 영향력을 기억한다.


소도는 사라졌고, 성당의 피난처 역할도 희미해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 신성함과 위로가 선명하다. 절망의 순간 희망을 찾게 해 준 그런 공간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