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거울에 내 엄마가 산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엄마의 위로

by Jasmin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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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무심코 화장대에 앉았다. 부스스한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얼굴에 훔찟 놀란다. 거기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나의 엄마이다. 아니 60을 넘겨 내 엄마의 나이가 되어 있는 내가 있다. 나에겐 언니 넷이 있고, 내 밑에 여동생이 있다. 딸만 여섯을 둔 딸부잣집 다섯째 딸이다. 엄마는 동네에서는 예쁘고 키 큰 아줌마로 통했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얼굴이 조막만 하고 머리통이 작아 쪽진 머리를 한 엄마는 어린 기억에도 참 예뻤다. 결혼식이든 중요한 날 엄마가 화장대에 앉아 입술에 립스틱만 발라도 엄마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예쁘게 나이 들어가셨다. 부엌에서 일하시면서도 엄마는 항상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만두나 송편을 빚어도 정성으로 예쁘게 만드셨고, 나박김치에 넣는 당근은 항상 꽃모양으로 오려 넣으셨다. 옛날 창호지문에는 항상 코스모스꽃잎과 낙엽을 넣어서 삶을 수놓으셨다. 아파서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도 엄마는 마치 다섯 살 여자 아이가 된 듯 주름진 얼굴이 고우셨다. 딸들은 엄마를 보면 항상 "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예뻐? 너무 예쁘다. " 하며 엄마의 흰머리 가득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려주며 마치 어린 아기에게 하듯 엄마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섯 딸은 젊을 때는 각각 개성 있게 달랐다. 그중 큰언니가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큰언니는 나와 거의 스무 살의 나이 차이가 있으니 엄마와 가장 근사치로 나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거의 육십 대, 칠십 대, 팔십 대에 접어든 딸들의 모습은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내느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사진 속의 자매들은 무언가 한 군데씩은 엄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얼굴은 작은데 유독 이중턱에 피부가 얇아 주름도 많고 볼살이 처졌다. 힘든 일을 겪어내며 갑자기 심하게 얼굴이 나이를 먹어 버렸다.


오십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오십 이전에는 선천적인 용모나 젊음의 영향이 크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이 살아온 방식, 마음가짐, 인격, 습관 등이 얼굴에 누적되어 나타난다. 반복된 웃음, 너그러움, 감사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밝고 온화한 인상을 만들고, 짜증, 탐욕, 아집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어둡고 고집스러운 흔적을 남긴다. 내 삶의 궤적이 얼굴에 반영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은 단순히 외모를 넘어 그 사람이 어떤 내면을 가꾸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기록이자 "인생의 이력서"와 같다. 따라서 그 얼굴이 풍기는 기운과 이미지, 품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애나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산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셀카를 찍고 저장하고 공유한다. 나는 한동안 사진을 멀리했다. 웃을 일이 없고 웃어도 활짝 웃을 수 없었던 몇 년간은 거울 앞에 서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웃음을 잃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터널을 지나와 다시 거울 앞에 섰다. 터널을 지나느라 지치고 검게 그을린 얼굴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된 생기가 얼굴에 볼살을 채우고 어색하지만 웃음을 짓게 했다. 마음이 웃으니 저절로 입가도 따라 웃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망가뜨리지 말리라 다짐한다. 이제는 좀 더 나에게 집중하며 아껴 주리라 마음먹는다. 내 엄마의 고운 얼굴로 나이 들어 가리라 오늘도 거울 앞에서 미소 지어 본다.


"엄마 안녕! 나 아직도 이쁘지? 엄마처럼 이쁘게 나이 들어 만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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