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였던 나, 터닝포인트 캠프를 떠나다(2)

배롱나무와 고분군 능선이 반겨주던 2박 3일 고령답사여행

by Jasmine park




드디어 8월 25일 2박 3일간의 답사여행이 시작되었다. 책과 사진으로만 보던 고령을 만나러 간다. 차편은 KTX, SRT, 또는 자차로 각자 이동후, 고령에서 점심을 같이 하면서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남편이 직접 태워다 주겠다고 해서 편하게 쉬어가며 3시간 30분이 걸려 고령에 도착했다. 고령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길 양쪽에 피어있는 배롱나무가 예쁘다. 배롱나무는 따듯한 기온에 자라는 여름 꽃나무다. 한 번피면 한여름부터 가을까지 오랫동안 분홍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황홀하게 피어있는 배롱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고령으로 진입했다.

KakaoTalk_20251108_005720447.jpg 지산동 고분군과 배롱나무 (인턴캠프 단체톡방에서 가져왔어요)

긴 다리를 지나며 정면 왼쪽으로 고분군들이 보였다. 고분군은 마을을 품고 높은 곳에 햇살을 받으며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 고령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내려다보며 안전하게 품어줄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멀리서 보이는 고분군은 유독 주위보다 밝았고 신비로울 만큼 연두색을 띄우는 것이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보였다.


먼 길 운전해서 데려다준 남편이 고마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오랜만에 활기차 보이는 나를 위한 응원이었으리라. 8월 말의 고령은 너무나 더웠다.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가 가까우니 더 그럴까? 아니지, 올여름은 대한민국 전체가 더위에 힘들었다.


첫 일정은 식사 후 대가야 시네마였다.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단지'에 있는 작은 영화관이었다. 대가야 시네마의 박윤경 관장은 대학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충무로와 방송국에서 영화와 교양 다큐멘터리를 찍던 영화인이다. 가야대에서 영화이론을 강의하던 남편을 따라 고령에 온후 고령에 푹 빠져 들면서 고령에 문화오아시스라 불리는 시네마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위기를 겪고 대도시의 큰 극장들도 심각한 적자에 줄줄이 문을 닫는 요즘이다. 하물며 작은 고장의 극장 위기는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대가야시네마 박윤영 관장은 포기하지 않고 지역에 문화 오아시스 로서의 역할을 위해 다양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이곳 고령에 머문다면 매일 저녁 찾아올 것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같이 묻었다


전체입학식 때 오셨던 고령군부군수님은 패기 넘치는 소년처럼 고령을 자랑하셨었다. 꼭 와서 고령을 느껴 보시라고, 오늘도 우리를 맞이하시며 아침에 고분산책길에 찍은 사진을 우리 단톡방에 올려 주셨다. 매일아침 고분산책을 하신다고 하셨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우리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고분길 산책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미리 돗자리를 준비하고 고분길 정상에 앉아서 명상의 시간도 갖게 된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대가야시네마를 뒤로하고 근처 대가야 왕릉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간 날은 월요일이라 휴관임에도 우리를 위해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특별히 와주셨다. 지산동 왕릉 전시관 내부에는 44호 고분의 모습과 대가야인의 생활모습을 재연해 놓았다. 특히 지산동 44호분의 모습은 차마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지배층의 권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44호 고분은 우리나라 고대 순장(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신하나 중을 함께 묻는 장례 풍습)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준 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이다. 가운데 으뜸덧널(한 무덤 안의 여러 덧널 가운데 중심이 되는 인물의 주검을 넣은 덧널)을 중심으로 무려 37명 이상의 순장자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감싸 안고 있는 젊은 남자의 시신 얘기를 들었을 땐 슬픔보다는 약간 분노가 머리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죽는 순간에 얼마나 두려웠을까? 평생 모신 주인을 죽어서도 모시고자 자발적 죽음을 택한 모습은 아닌 게 분명했다. 뒷두개골에 도끼 등에 맞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사진으로만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고분군의 실체를 아니 조금은 생각이 달리 보인다.


내일 고분 산책길에는 그렇게 가신 오랜 영령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야겠다. 고분의 규모가 클수록 전망이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하며 큰 고분 주위에는 작은 고분이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다. 44.45.73.75호 분등 대형 고분은 여러 명의 순장자를 함께 묻어 지배층의 무덤임을 짐작하고 있다. 고령에서는 매년 백일장이 열리는데 올해 대상은 초등학생의 고분군에 대한 제목은 "같이 묻었다" 였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지산동 고분군은 202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산동 고분군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주검을 위에서 수직으로 넣도록, 옆으로 트인 창이나 입구 없이 돌로 네 벽을 짠 무덤)으로 되어 있어 도굴꾼들이 쉽게 도굴이 가능했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도굴로 인해 껴묻거리(부장품) 대부분이 유실된 상태라고 한다. 일본이 후퇴하면서 또한 많은 우리의 유물들을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니 화가 치미는 일이다. 왜 무덤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었을까?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인데,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답사첫날, 개실마을예마을에 나뉘어 숙소가 배정되었다. 개실마을은 전통적인 한옥 마을이자 농촌 체험 휴양 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장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유교적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길과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극 세트장 같았다. 마을 뒤편으로는 푸르게 뻗어있는 대나무숲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었다. 한 폭의 동양화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낮은 돌담에는 참깨를 기대어 말리고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더위 때문일까? 마을은 섬처럼 조용했다.



개실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20촌 내외의 집성촌으로 대부분 친척 관계이다. 그래서인지 집 안 마당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낮은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60여 가구에 주민수는 80명 남짓이다. 김종직 선생의 18대 손이자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의 김민규 위원장의 개실마을 소개 브리핑이 있었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이곳에 내려와 개실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70 후반이 되면서 마을에서 집안 어르신인 마을 주민들을 부모님 모시듯 정성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다양한 체험마을로 연간 방문객이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늘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방문객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주민 대부분이 고령화되면서 마을 체험을 이끌어 줄 일손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경기도 용인지역신문에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용인 시골마을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어 지역소멸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이 비단 고령만의 문제가 아닌 거다. 김민규 위원장의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이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사시는 가구가 많아졌고 혼자 남겨진 할머니 대부분 은행계좌조차 없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밖에서 일을 하다가도 남편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기간 지속된 가부장적 역할 분담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이런 문화조차도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더디더라도 바뀌어야 할 관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실마을 안내를 해주던 김민규 위원장은 힘든 종갓집 아들의 삶을 살고 있었고 변화와 유지의 틈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이 지쳐 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절실히 도움의 손길을 원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일손의 부재이다.



고령 예마을은 폐교를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휴양마을로 조성되어 있다. 여름철 이곳 주 수입원이라는 180m짜리 자연수가 흐르는 유수풀은 예마을의 히트다. 아직은 더웠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평일 이어선지 물은 없는 상태였다. 시즌이 되면 가족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겨울 시즌에는 딸기농사가 주 수입원이다. 딸기 따기 체험 또한 인기 있는 상품이다. 딸기 따기 체험은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정말 좋은 아이디어이다. 농촌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돕고 도시민들에게는 재미를 주는 체험과 힐링을 제공하는 상생의 모델이었다. 올겨울은 딸기도 맛볼 겸 다시 예마을을 찾아봐야겠다.


예마을에서 주민들이 정성으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개실마을로 향했다. 우리를 위해 고택에서 가야금 연주가 준비 되어 있다고 했다. 고택의 사랑방에 둘러앉아 가야금 연주를 듣다니 꿈만 같았다. 연주자의 매혹적인 한복 자태와 현을 따라 움직이는 손끝의 떨림이 가슴을 타고 찌릿하게 파고든다. 처음 경험하는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가야금 선율이 이렇게 아름 다웠던가. 아마 고택과 이곳 분위기와 연주자의 고운 한복 자태의 3박자가 어우러져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 것 같다. 연주가 끝난 후 고택을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이 개실마을을 삼켜 버린 듯했다. 한낮의 고요함은 비교도 안될 만큼 군데군데 가로등 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마치 허공을 걷는 것 같았다. 혼자라면 무서워서 머리가 쭈뼛쭈뼛 섰을 만큼 어두웠다. 누군가 "하늘 봐요!" 소리쳤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숨을 죽였다. 약간 흐린 날이었는데도 하늘엔 별들이 총총이 떠 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보름이면 둥실 떠있는 달을 본 적 있지만 별은 아마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번엔 예마을에 묵지만 다음엔 개실마을에 묵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오래도록 보아야겠다.


안개 덮인 아침 고분산책길


답사둘째 날은 이른 아침 기대하던 고분군 산책으로 시작되었다. 고분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기상했다. 짙은 안개가 아직 깊게 주변을 덮고 있었다. 드문 드문 키가 큰 소나무가 고분길을 안내하고 있다. 풀벌레 소리와 우리 앞을 낮게 날던 낯선 검은 잠자리조차 왠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어제 왕릉전시관에서 본 고분 속 순장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말해 보았다. "편안히 잠드세요."


나중에 다른 동기들이 남긴 고분 정상에서의 명상하는 사진을 보았다. 고령에서 정원을 가꾸시는 정원선생님이 무거운 싱잉볼을 들고 고분으로 와주셨다. 아직 고분을 덮고 있는 덜겉힌 안갯속에 나란히 눈을 감고 앉아 명상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었다. 나와 몇몇 동기들은 고분길을 잘못 들어 내려오는 바람에 명상시간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많이 아쉬웠다. 다음번 고분 산책길에는 돗자리를 들고 올라 꼭 명상하는 시간도 가져 봐야겠다. 고령에 와야 할 핑곗거리가 자꾸만 늘고 있다.




가야금 연주체험


마지막날 떠나기 전 일정으로 고령문화원에서 우리를 위해 가야금 연주체험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 시간 만에 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다고? 가야금을 가까이 보면서 가야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대가야 가실왕이 중국 악기인 쟁을 본떠 우륵에게 우리의 악기를 만들게 지시하여 가야금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가야금은 12현 가야금이지만 창작국악이나 서양 음악의 협연이나 현대 음악 연주에 폭넓게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25현 가야금도 있다. 두 악기의 소리를 비교해 보았을 때 잘은 모르지만 12현 가야금 소리가 깊고 부드러우면서 은은한 음색으로 더 좋았다. 본격적으로 바닥에 앉아 자세를 잡고 선생님의 눈높이 설명으로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른손 검지. 중지로 뜯고, 엄지로 밀고, 같은 음을 반복할 때 첫 음은 검지로 뜯고 두 번째는 엄지로 튕긴다. 신기하게도 몇 번의 연습으로 음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잠깐의 연습에 손끝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각자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천천히 합주를 했다. 모두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될 만큼 즐긴 시간이었다. 지난 5월에는 김동환 가야금 명장과 함께 가야금을 직접 만들어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신청자가 몰려 성황리에 마쳤다고 한다. 매년 상설 운영 된다 하니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참가해 보고 싶다. 이런 강좌가 많이 확대되어 가야금의 고향 고령이 궁금 해지고, 해서 고령을 찾게 되는 흐름이 되길 바라본다.


"과분한 환대! 감사합니다."


2박 3일의 고령 답사는 한마디로 과분한 환대였다. 개실마을, 예마을, 대가야 왕릉전시관, 대가야 시네마, 고령문화원, 진심으로 우리를 맞아 주시고, 식사 한 끼마다 정성을 엿볼 수 있어 더욱 감사했다. 2주 후 다시 3박 4일 일정 프로젝트 팀별로 다시 고령을 찾게 된다. 따듯한 고령을 마음에 담으며 다시 고령을 찾을 그날까지 고령을 위한 나를 준비해야겠다.

sticker sticker


작가의 이전글밤과 도토리가 반겨주는 우리동네 숲길 맨발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