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느라 아픈거다
코로나 팬데믹이 드리운 그늘 아래, 육십대로 접어드는 나이의 변화가 겹치며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정직하게 반응했다. 시간의 흐름은 늘 한결같았지만, 육십 대의 문턱을 넘어서니 그 속도가 가속되는 듯했다. 한 번의 코로나 진단 후 이전보다 잦아진 잔병치레와 급격히 떨어진 체력은 병원 문턱이 닿도록 나를 괴롭혔다. 단순한 감기라는 진단은 나를 6개월 이상 지치게 만들었고, 일상생활을 파괴할 정도로 잔인하게 나를 때려댔다. 비로소 어른들이 늘 하시던 말씀, '나이 먹느라 아픈 거다'라는 말이 머리가 아닌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와닿기 시작했다. 세월의 무게는 어쩌면 이토록 정확하고 냉정할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언니도 육십 넘어가면서 많이 아팠잖아.", "지금은 아픈데도 없고 인생 통틀어 지금이 제일 행복해." 칠순을 넘긴 둘째 언니는 내가 봐도 요즘 너무 행복해 보인다. 동창들과 해외로 국내로 주말이면 맛집에, 분위기 좋은 카페로 20대처럼 바쁘다.
나는 엄마로 아내로 살다 뒤돌아보니 60이 되어 있었다. 이제 아이 둘은 모두 제 몫을 잘 해내며 내 걱정을 원하지 않는다. 다시 신혼 때처럼 남편과 나 둘만 남았다. 갑자기 나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 나는 무얼 하며 시간을 채워 가야 할지, 나는 또 무얼 할 수 있을지? 20대처럼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갑자기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사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버린 것만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빈둥지증후군은 자녀가 성장하여 독립하거나 결혼 등으로 집을 떠난 후,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 허탈감, 외로움 등을 동반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얼마나 이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했던가? 그런데, 나는 그날이 오길 기대만 했지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다. 1년이 지나고 나는 운동도 하기 시작했고, 책도 읽기 시작했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합창단에도 들어갔고, 차려입고 각종 공연도 보러 다닌다. 텅 비어가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하니 거짓말처럼 몸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내 엄마도 내 언니도 이런 과정들이 있었겠지?
"응!, 아픈데 없어, 괜찮아!"
이 통증의 시간을 통과하며, 문득 구십을 넘어 백세 가까이 사시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안부를 물을 때마다 엄마는 늘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응! 아픈데 없어, 괜찮아!"
그때는 왜 엄마에게 아픈 곳이 없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이제야 내 몸의 통증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쉼 없이 일을 하셨다. 큰 농사는 아니었지만, 직접 기른 작물들을 시집간 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 주고 싶어 농사를 하셨다. "엄마, 이제 그만해. 올해는 아무것도 심지마. 알겠죠?" "알았어. 올핸 안 해. 정말!" 해마다 엄마는 다짐하지만, 또다시 고추며, 고구마를 심으셨다. 그렇게 엄마는 딸들에게 매년 거짓말을 했다. " 알았어! 안 해! 올해는 정말 안 해!"
그때는 몰랐다. 자다가 몸을 뒤척일 때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고, 앉았다 일어설 때는 "아이고아이고 허리야!"를 마치 자동 응답기처럼 읊조리셨다. 그 당시에는 왜 그 소리들을 예사로 넘겼을까? 그저 '엄마니까', 엄마의 일상'이라고 치부했던 걸까?
나이 듦이 가르쳐 준 진실
육십이 되고 몸이 아파 병원을 드나들고 나서야 알았다. '아픈 데 없다는' 엄마의 말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염려를 주고 싶지 않다는 당신의 '사랑의 선언'이었음을. 혹은, 그저 통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어온 세월의 관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엄마의 몸도 정직하게 세월을 겪어냈을 거다. 다만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걱정을 삼킨 채 '괜찮다'는 말로 세월을 견뎌내셨던 거였다.
나이 듦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엄마의 삶을 따라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몸의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엄마의 마음과 세월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는 성숙의 통로인 거다. 백세 가까이 사셨던 내 부모의 장수 유전자가 나에게 있다면 나는 분명 오래 장수하지 않을까?
내 엄마처럼 나의 나이 듦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겠다. '나는 아프지 않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나를 스스로 잘 돌보는 엄마로 나이 들어갈 것이다.
이 깨달음 앞에서, 나는 이제 함부로 누군가에게 '아픈 데 없어?'라고 묻지 못하겠다. 그저 내 몸의 통증에 정직하게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삶을 묵묵히 대면하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육십 대에 접어든 내가 가져야 할 새로운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