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였던 나, 터닝포인트 캠프를 떠나다(1)

by Jasmine park

인생 전환점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5도 2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에서 보내기)', '일주일 살기', '한 달 살기', 같은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낯선 곳에서의 삶, 잠시나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늘 마음속으로는 갈망하고 원하는 일이었지만, 정작 모든 걸 뒤로하고 훌쩍 떠나는 데는 정말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2~3년 전부터였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햇볕을 쬐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낯선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마시고, 해 질 녘 지친 몸을 뉘고 곤한 잠을 자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살아보기 숙소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깔고는 매일 밤 전국 곳곳을 유랑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방황하는 커서처럼 실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앱을 통한검색은 그저 막연한 갈망의 지표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 베이비부머 인턴(人+Turn) 캠프라는 뜻밖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를 통해 1차 심사 후 화상면접을 거쳐 선발되었다. 우연히 캠프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않은 자리에서 숨도 멈춘 재 긴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간 것이 생생하다. 이어진 화상 면접에서는 면접관이 혹시 캠프 기간 중 다른 사람들과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겠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2025년 5월 당시베이비부머 인턴캠프 모집공고

"나는 싸울 일이 없어요. 좀 더 젊었을 때는 모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둥글게 변해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예뻐 보여요."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쟁률은 약 3대 1이었다. 면접에서 중요하게 본 것은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말한 한마디에 합격 버튼을 눌러 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예뻐 보인다'던 그 말처럼, 이 캠프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에 비로소 목적지를 입력하게 해 준 느낌이었다. 혼자였다면 여전히 온라인 앱 속의 막연한 지도 위를 맴돌았을 것이다.


나를 꺼내준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경기도가 마련한 신중년(베이비부머) 대상 갭이어(Gap year) 프로그램이다. '갭이어'는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확산된 개념이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 혹은 엄마로 아내로 열심히 살다가 이제까지의 역할들을 고스란히 접어두고 '나'를 찾고 싶은 사람들이다. 나는 가정주부로 살았지만,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에 서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에서 서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아 나선 것이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된 캠프는 경북 고령, 전북 남원, 경기 파주, 강원 인제의 5개 권역으로 나뉘어 약 6주간 사전 교육을 받았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하고, 다시 나를 찾는 과정들이었다. '나의 인생 지도 그리기', 내가 버릴 것', '내가 가지고 갈 것' 등의 과제는 나에게 평생의 일기를 꺼내 읽는 느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나 자신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깨닫게 했다. 처음 만나 각각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내 또래 베이비부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극도 되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한주 한 주 갈수록 처음에 어색했던 표정들은 흡사 오랜 학교단짝 친구처럼 삼삼오오 어울려 웃고 떠들고 있었다.


지난 8월 25일부터 2박 3일간 지역 사전 답사가 진행되었다. 약 120명의 참가자들은 마을과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주민과 교류하며 사전 답사를 마쳤다. 나는 경북 고령에 지원했다. 난생처음 들어보고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후에 공부해 보니, 경상북도 고령군은 대가야의 도읍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유서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방과 농촌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고령화가 가속화 중인 상황이다. 농촌소멸 위기가 정부와 지자체의 당면한 숙제라는 현실을 책이나 뉴스로 접하고 했지만, 직접 가서 보니 확 와닿았다.


지난해 <고령에서 살아보기>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신중년(퇴직 등 주 업무에서 벗어나 노후를 준비하는 중년 세대를 일컫는 말) 11명이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며 쓴 글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은 남원, 강릉, 인제에 이어 네 번째로 출판된 '지역살이'시리즈였다. 사전에 한 권씩 배포된 <고령에서 살아보기>라는 책을 틈틈이 읽으며 고령을 알아갔다. 이 책을 만든 패스파인더는 '신중년과 지역을 잇는다'는 미션으로 2019년 예비관광벤처로 시작한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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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교육 때 김 대표의 강연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나로서는 베이비부머 인턴캠프를 통해 또 다른 인연이 생긴 것이다. 김만희 패스파인더 대표는 10년 전쯤 '마이메 비네코트'의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지역살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역 살아보기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 지역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살아보기를 말하기 어렵죠. '왜 고령에 가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그곳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김만희 대표와 진행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우리에게 무언가 갈 길을 보여 주고 싶어 했고, 기꺼이 그들이 먼저 느낀 것들을 나눠주고 싶어 했다. 처음 도착한 고령에서, 지산동 고분군은 약 7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고분들로 열을 지어 있었다. 동틀 녘과 해가 지는 모습은 사진에서만 보기에도 황홀경이었다. 저곳을 아침저녁마다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고령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나를 더 유혹한 것은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책'들이었다.

.'사람책'이란 '사람을 책처럼 빌려서 읽는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리 킨다고 한다. '한 사람의 삶은 책과 같다'는 관점과 연결되어,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앞서 패스파이더가 출간한 책도, 그러한 인터뷰를 모아 놓은 하나의 책이라고 하 수 있다. 책 안에 사람이 담겨 있고, 또 사람이 책을 만든 것이다.



처음 가본 곳, 글로 연결되다


사전답사전 고령에서 살아보기에 등장했던 이향시인이 수원 수업장에 찾아왔다. 새벽기차를 타고 고령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공손히 맞잡은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깊이 눌러쓴 모자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고령을 더욱 궁금하게 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 시인은 지금은 고령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나는 6주간의 사전 교육과 2박 3일의 고령답사를 마치고, 글쓰기팀 프로텍트를 진행 중이다. 이향시인처럼, 이미 다녀온 고령을 글을 통해 다시 만나고,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오는 28일에는 경기도청에서 열리는 졸업식을 앞두고 있어서 더 설레는 마음이다. 이번 베이비부머 인턴캠프를 통해 경험하고 느낀 변화의 과정을 앞으로 차근차근 기록해 볼 생각이다.

포럼과 인턴캠프 졸업식 신청은 오는 24일이 마감이라 한다. 앙코르 위크에서는 졸업식뿐 아니라 중장년 일자리 혁신 콘퍼런스, 중장년 인생토크 강연 등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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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갭이어 확산 포럼&인턴캠프 졸업식 신청링크 :

https://forms.gle/ZcNn7EYmYpwc5uvD6

�앙코르위크 전체 소개 링크

https://job.gg.go.kr/encore/html/encore_wee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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