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영 Oct 01. 2023

보람 찾는 교사

 선생님은 국어가 재미있어요? 한 학생이 질문하였다. 내 대답은 ‘지겹다’였다. 농담이었지만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내뱉고 보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학기 말이라 학생은 시험에 대한 걱정과 어려움에 그 질문을 한 것이었지만 국어를 가르쳐온 내가 보일 반응으로 옳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는 시험을 위한 것이고 성적이 잘 나오느냐 여부가 그 과목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난 학생에게 성적을 넘어 국어가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국어를 가르쳐온 시간이 20년이 넘었지만, 국어가 왜 좋은지 답변하지 못했다는 것은 국어 교사로 사는 지금의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교사로서 행복은 무엇일까? 교사는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며, 그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학생들의 눈빛에서 깨달음과 흥미를 발견하거나, 그들의 질문과 의견에 귀를 기울인 끝에 그들의 의문을 해소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소통의 어려움이 늘기 시작했다. 조금 느린듯해도 기다려주고 조금 더딘듯해도 믿어주고 하던 일에서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면서 핑계를 대 보지만 핑계는 어디까지나 핑계이다.                

답답한 마음에 교사로 살면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옆 선생님에게 질문했더니 그분의 답은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교사로서 학생 앞에 서는 첫 마음의 의미를 강조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IMF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등 떠밀려 교직에 입문하다 보니, 내게 그 첫 마음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만나는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주고, 약점을 보완하며 그들의 꿈과 목표를 응원하고,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격려해 왔다.                

그러면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시대의 흐름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탓인지 아이들과 나의 눈높이가 일치하지 않는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년간 수능의 한 등급을 더 올리기 위해,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달려온 그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국어 공부의 참 의미를 내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긴 인생, 끝없이 글을 읽어야 하는 아이들이 글을 읽는 이유, 나아가 그 즐거움을 모른 채 단지 시험문제 풀이와 정답 찾기에 내몰리고 킬러 문항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단만 찾는 법을 암기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아니 어느 순간에는 그런 쪽의 공부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준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고 어휘와 책 읽기 습관이 갖추어지지 않다 보니, 국어가 아닌 외계어 글을 읽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글보다 영상매체에 길들인 탓에 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도 넘쳐나고 있다.                

한편으로 조금만 눈 돌리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제 활자화된 지식의 소유 여부는 경쟁력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것 외에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 그렇지만 책 읽기 능력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다. 수많은 정보 중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연결해 가며 꼭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더욱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 글을 읽는 이유이고 그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국어교육이어야 할 것인데,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이를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인성, 나아가 삶의 잣대를 길러내는 일이기에 막중한 책임감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교사가 강단에 서는 이유는 단순히 수업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학생과의 소통과 교감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이 일을 하기에 학교의 여건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내가 보내온 시간들을 통해 이미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난 교육의 전문성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아니 오히려 빠른 세상의 변화에 뒤처져 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뿐이다. 집-학교의 반복을 통해 공고히 다져진 나의 일상의 무게가 오히려 딱딱한 마음의 벽만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삶이 지겹다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은 나에게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교사로서 보람 있는 삶을 꿈꾸기 위한다면 나 스스로 학생들의 삶을 의미 있게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음에 보람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달리하고 보니 내 삶에서 이 믿음의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매주 학급 아이들에게 한 편의 글이 담긴 소식지를 주고 있다, 어느 날은 읽던 책의 한 부분을 옮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같이 나누고 싶은 노랫말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말로 하기 힘든 잔소리도 담아낸다. 또 어떤 날은 칭찬하고 싶은 아이의 장점을 담아내기도 한다. 글이 주는 매력을 최대한 살려 보려 몸부림치고 있다.                

그 글을 읽는 몇 분의 시간이라도 글이 주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반의 아이들 모두를 변화시킬 수 없을지라도 나의 몸짓을 따라 마음의 문을 여는 한 아이를 기다리며, 나의 지루하지 않은 학교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 묻고 싶다. 아니 배우고 싶다. 선생님은 무엇으로 교사로서의 삶에 보람을 찾고 있나요? 

 


이전 07화 학교의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