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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Sep 06. 2024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읽은 책 보다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아요_

읽고 싶은 책이 많다. 그러나 내 취미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만드는 작업인 것 같다. 언젠가 같이 일하던 선생님과 책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선생님이 "우리 집에 그 책 있어요!"라고 반가워했다. 그래서 내가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니, "아직 못 읽어봤지만 우리 집에 있어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에 웃음이 터졌던 일이 떠오른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읽으려고 샀고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 나도 잘 아는 바다. 


내게는 읽으려고 집에 사둔 책의 목록과 도서관에 갈 때마다 빌려올 목록의 책들, 앞으로 읽고 싶어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의 목록이 있다. 그런 내가 다른 이들에게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속독이었다. 그렇다. 나는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다.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꼭꼭 씹어 읽는다. 우선 내 소유의 책인 경우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연필로 표시하고 더 마음에 드는 부분은 띠지도 붙인다. 읽다가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읽는 일도 다반사다. 다 읽고 나면 노트를 꺼내 내가 표시한 부분을 정갈하게 필사하고 느낀 점도 적는다. 그리고 여기서 더 좋으면 블로그에도 한번 더 기록한다. 기록을 하면서 내용을 다시 곱씹는다. 내 기억력이 나쁘다고 생각하므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나의 방책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책을 읽을 때에는 충분히 고요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또 책을 읽기 전에는 나름 정갈한 마음의 준비도 필요한데, 책을 읽는 도중에 흐름이 끊길 것 같은 산만한 마음과 상황이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다. 책 한 권 읽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따지니, 내가 권을 읽는 속도는 새로운 책들이 발간되속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많지만 그 목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할 틈이 없다. 소설책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가 1대 1로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에세이를 읽을 때면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으며, 지식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작가가 내게 1대 1로 강연을 해주는 것 같다. 사람과 대면해서 소통하는 대신 어쩌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책을 좋아한다는 말은 감히 할 수가 없는데, 그렇게 말하기엔 '이것도 안 읽어봤어?' 할 정도로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살아갈 남은 날들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결혼 전에는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형서점이 있어서 자주 가서 책을 읽곤 했다. 서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향기, 분위기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약속을 할 때에도 아예 서점에서 만나기도 했고, 가까운 지인에겐 책 선물을 하곤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신간보다는 오래된 중고전집을 구해 아이가 편하게 가지고 놀도록 하고 읽어주기도 했다. 사실은 아이보다도 내가 아이의 그림책을 더 아끼며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이나 개인상담을 할 때, 아이의 그림책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그림책은 학생들의 방어를 낮추고 자기 마음을 보다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 외에도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아이와 같이 읽고 싶은 청소년 도서들도 눈여겨봐 두었다. 또 신랑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내가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칠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보다 손쉽게 내 마음에 말을 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사적으로 잘 모른다 해도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 문득 나도 내 책장을 눈으로 한번 훑어본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는 엄마이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고,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많으며, 계속 배우고 앞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보인다. 내 책장을 보니 딱 나다. 이렇게 투명할 수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는 기록 따위 하지 않고도 그저 편안하게 책을 읽고 즐길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내용 좀 잊어버리면 어때, 앞으로 읽을 책이 이렇게나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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