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내 안의 외침,
"인생에서 숨어 있던 참자기가 나오는 특별한 시기가 있다. 위니컷은 중요한 세 시점을 강조했다. 첫 번째 시기는 사춘기로, 반항하고 어긋나기 시작한 청소년에게서 참자기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중년기다. (...) 지금까지 참자기를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중년기에 터져 나오는 참자기의 주장은 거칠고 사나울 수 있다. 그래서 융은 중년기가 되면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참자기를 만나는 마지막 기회는 바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이다. (...) 참자기로 살아온 노인은 자기 삶이 가치 있다고 인생을 통합하며 마무리할 수 있지만, 거짓자기로 살아온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참자기를 도외시한 노인은 자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해진다. 위니컷은 깊이 숨어 있던 참자기가 이젠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을 호소하면서 초조함, 편집증, 망각의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했다."
(쉽게 읽는 정신역동과 가족_김수연)
며칠 전 오빠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지만 나는 다시 걸어보지 않았다. 혹시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이내 신경 쓰는 것을 거두었다. 그랬다면 전화를 아마 수십 통은 했을 텐데, 딱 한 통만 와있었으니까. 엄마와 통화를 한 지가 꽤 되었다.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에서 엄마는 내게 왜 전화를 안 하냐고 나를 탓하면서 엄마는 그동안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비난 어린 목소리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안의 솔직한 반응은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너는 엄마가 안 보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또다시 잠시 침묵했다. 나는 엄마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고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엄마는 내게 엄마가 보고 싶지 않냐고 원망하듯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하지 않았다. 원래 결혼하고 남편이랑 싸우거나 살기 힘들 때 엄마 생각이 나는 거라고, 나는 그렇지 않아서 엄마 생각이 별로 안 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엄마도 그렇지 않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 말에 자신도 그랬었다고 수긍했다. 내가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그만큼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의미라고, 서운해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다시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엄마가 그렇게 묻는 이유가 전화를 안 하고 오지도 않는다는 채근에 더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아픈 엄마를 보는 것이 이제는 나도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작년에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늘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으면서 나는 큰 병에는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조금만 신경 쓰고 무리해도 몸 여기저기에 염증이 잘 생겼고 잘 낫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들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부모님을 비롯해 오빠는 내게 전화해 그들의 힘든 상황을 사사건건 전했다. 떨어져 살았지만 여전히 함께 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매일 부모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전해 듣고 해결해 주려고 애썼다.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음에도 그들의 고통과 불안을 들어주기라도 해야 내 죄책감이 줄어드는 것 마냥. 나는 계속 착한 딸이자 착한 동생이고 싶었고, 오랫동안 지속해 온 내 역할을 놓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의 정서받이로 살았고, 엄마를 위로해 주는 엄마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잃었다. 그렇게 나는 내 가족들이 감당 못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아주고 갈등을 중재하다가 한계에 달했다. 나는 내 부모의 부모도 아니고, 내 오빠의 누나도 아닌데. 내가 가족들의 고충을 들어주느라 내 마음의 절규는 들어주지 못했다. 나는 내 몸으로 부지런히 신호를 보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게 하고 숨이 답답한 증상으로.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픈 엄마가 늘 우선시 되던 가족으로부터 암은 내게 면죄부가 되어주었다.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내가 내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내 역할을 그만두든 말든 큰일이 일어나진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믿었던 만큼 가족 안에서 그리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니컷의 말처럼, 내 인생에서 숨어있던 참자기를 만나는 특별한 시기가 중년기에 터져 나오는 중으로 내게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수신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