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저 아이면 된다,
이미 오래전에 나는 엄마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좋아진다는 말은 정신이 맑아짐을 의미한다. 엄마가 약물중독으로 인한 환각 증상으로 크게 고생했으니 깨닫고 몸이 힘들어도 약물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과 믿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부모님이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욕하면서도, 한 몸처럼 여기며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인정하기로 했다. 두 분은 그렇게라도 어쩌면 서로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로 상대방에게 과하게 의존하며,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을 과하게 보살피면서 과하게 기능하는 상태로 그렇게라도 일단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아버지는 엄마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엄마는 여전히 자신이 상황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려 하고 그것을 요구할 것이다. 엄마는 환자이므로 가장 약한 존재이면서도 가장 강자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다투는 것, 돈 걱정을 하는 것, 병원을 다니는 것, 자다가도 일어나 약을 챙기는 것이 엄마의 일상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자신을 집어삼킬 만큼 불안을 키우면서 그 불안을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킨다. 엄마의 삶 다운 삶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파킨슨 병을 진단받은 그날부터. 엄마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안과 파킨슨 병이 만나 파국으로 치닫은 셈이다.
최근 엄마는 아버지가 자꾸 자신을 욕하고 때린다고 했다. 별로 반응하지 않으니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며 오빠는 내게 집에 홈캠이라도 달아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홈캠을 달아서 확인하면 어쩔 거냐고 되물었다. 엄마가 허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 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바람이 났다고 길길이 날뛰고 난동을 피운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망상을 너무나 멀쩡한 얼굴로 얘기했고, 아버지에게 계속 심한 욕을 퍼부었다. 엄마가 정신과 약을 비롯해 신경과 약까지 복용 중인 약의 개수가 이미 많은데, 허리 시술로 인한 진통제 복용으로 망상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 이후로 차츰차츰 약을 줄이면서 엄마는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약물에 대한 과의존은 다시 반복되었다. 시시때때로 무릎 수술한 부위가 아프다며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를 맞았고, 약물 과다복용이 되어 환각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엄마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에 시달리다가 결국 굿까지 했다. 엄마는 이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며, 혼자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힘이 좀 난다 싶으면 오빠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을 늘어놓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한 번은 엄마 집에 갔을 때, 낮밤이 바뀌어 엄마가 계속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온 적이 있다. 밤낮이 없는 신생아처럼 엄마가 잘 때 아버지도 같이 쉴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본인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내게 늘어놓았다. 나는 저러다 아버지까지 쓰러질까 봐 불안했다. 아버지에게 엄마가 해달라는 걸 다 들어주면 안 된다고 수없이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다간 아버지가 쓰러질 거라고. 엄마가 굿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내가 일단 병원부터 가보자고 말렸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내게 사정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고. 그렇게 굿까지 했지만 엄마의 환각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 가서 내가 말했던 내용과 같은 이야기를 의사에게도 들었다고 했다.
사는 것이 지옥 그 자체일 것만 같은 삶을 엄마는 끝도 없이 집착한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나는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며칠 전 가족과 저녁을 먹으면서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이 새삼 생경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지금 현재가 마치 꿈속의 장면인 것처럼. 늘 불안하고 긴장하며 살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퇴근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그때부터 불안하기 시작했고, 어김없이 그날 밤엔 술에 취한 아버지와 엄마의 시끄러운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나나 오빠는 그 싸움에 개입해서 말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말리지 않느냐고 엄마 죽는 꼴 보려고 그러냐고 원망을 들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친가와 외가 식구들 모두 다신 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나는 가족을 떠나왔고, 그렇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가끔 지난날을 떠올리면 분명 좋았던 적도 있었으나 그때 미처 다독여주지 못한 내 상처도 같이 떠올랐다. 친척들을 만나면 내 가족이 떠오르고 굳이 내가 몰라도 되었을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다시 내 상처가 휘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미화되어 정확하진 않아도 소소하게나마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많은데, 가족이나 친척들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내가 맞춰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기에, 이제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을 통해 내 부모님과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얼마 전 사촌들의 단톡방에서 사촌 동생의 결혼 소식을 들었으나 결혼식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상담시간에 내담자에게 나는 그럼에도 너의 부모님이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비록 내가 원했던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 그것만은 마음속에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나는 나에게도 해주고 싶다. 평생을 다투고 서로를 헐뜯느라 바쁘셨지만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셨고, 지금 역시 나를 사랑하기에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내가 아플 것을 염려하며 내가 잘 살기를 바라시는 거라고. 두 분은 그때도 지금도 나름 그들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짐을 대신 지거나 내가 맡아 해결하려고 한 것은 내 착각일 뿐, 나로 인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내게 아버지를 비난하고 흉을 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부부관계에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상관없는 두 분만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나는 내 상처를 발견하고 알아주고 애도하면서 앞으로 내게 남은 날들 동안 있는 힘껏 끌어안아주고 토닥여 줄 것이다. 부모의 부모 노릇을 하느라 너무 일찍 놓아버린 '나의 아이'를 다시 찾아보고 기억해 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해주고 싶다. 앞으로 내가 책임질 대상은 나 자신이다.
좋았던 날들보다 불행했던 날들을 더 잘 오래 기억하는 것이 새삼 속상하다. 남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받은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 역시. 그럴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좋았던 날들을 더 오래 자주 꺼내보고 기억하고 싶으니 그런 날들에 대한 기록을 열심히 해야겠다. 사소할지라도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은 생각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상처를 다시 꺼내 만나야 하므로 마냥 좋진 않지만,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들어서 위로가 된다. 나는 나를 치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