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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스위치 Dec 22. 2022

환승 연애

당신의 선택은?

그와 만난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간다. 햇수로 3년째.

연애초반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났는데, 요즘은 잘해야 일주일 볼까 말까이다. (지난여름엔 더위를 핑계로 두 달을 안 만났다.)

권태기인가.

만나다 보니 눈에 씌워졌던 콩깍지도 슬슬 벗겨진다. 그의 단점이 하나둘씩 보인다.

(살짝 고백하자면, 브런치라는 다른 놈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꽤 매력적인 녀석이다.)


그의 정체는 바로 '홈베이킹'이다.

그의 치명적인 단점을 꼽자면 몇 가지가 있다.



그는 돈덩어리이다. 

이것저것 필요한 걸 사달란다. 도구며, 각종 재료며, 금괴처럼 생긴 버터며...

하나둘씩 필요한 걸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금세 10만 원이 우습다.

그런데 이번 한 번이 아니란다. 다음엔 다른 도구들을 사달란다. 뭐가 그리 필요한 게 계속 생기는지.  

아.. 아무래도 난 그이에게 제대로 호구 잡힌 것 같다.


그는 설거지거리만 안겨준다.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한 설. 거. 지. 옥.

커다란 볼 몇 개 썼을 뿐인데, 싱크대는 이미 만원이다.

주방 조리대에는 온갖 가루들과 튀어나간 반죽들로 너저분하다.

심지어 미끌거리는 버터 묻은 도구들은 까탈스럽다. 손이 더 많이 간다.

흥, 칫, 뿡.

오늘도 나에게 설거지만 안겨주고 내뺐다.


그는 앉으라는 말을 안 한다.

그와 만나는 날은 밥을 좀 더 많이 먹고 나선다.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앉으라는 말을 안 하기에 틈틈이 눈치 봐가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매번 눈치 보게 하는 그가 얄밉다.


그는 배신자이다.

정성을 들였지만, 매번 좋은 결과물을 주는 건 아니다.

내가 마들렌 통통한 배꼽에 집착하는 걸 알면서도,  다 터져서 화산 폭발하듯 반죽이 질질 흐르고 있는 배꼽을 보여준다.

뭐, 이건 인정하긴 싫지만 나의 잘못도 있다. 쌍방과실쯤으로 정리해 두자.

그뿐만이 아니다. 저번에 만나 스콘을 구웠을 때 밑면이 타버렸다.

내 속도 함께 탄다.

이를 우짤꼬. 먹을 수도 없고 버리기엔 재료가 아깝다.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경험치를 쌓았으니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이쯤 하면 이제 그만 그이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더 경제적이고 생산적인지 모르겠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내게 접근해 오는 '브런치'라는 녀석이 있다.  분위기 있고 세련된 이름부터 맘에 든다.  

브런치라는 녀석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하트를 날려준다. "라이킷" 외치며.

게다가 나의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해 준다. 지금까지 돈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몇 번 지켜본 바로는 앞으로도 꺼내지 않을 것 같다.


아, 어쩌지. 고민이다. 환승 연애를 해야 하나.

양다리를 걸쳐야 할지, 갈아타야 할지.

브런치라는 녀석을 좀 더 만나보고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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