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분리불안으로 육아휴직을 다 사용하고 복직했을 때 업무가 전환배치되었다.
인사팀에서 인사 업무를 오래 해오다가 복직시기에 맞춰 사내 커뮤니케이션 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는 HR 산하에 소속되어 HR과 긴밀하게 일을 하지만 인사부서에서 메인이 아니기에 커리어를 생각하는 팀원들이 기피했던 직무이고 이 발령은 휴직을 했던 나에게 내려진 penalty로 보였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휴직이 정말 필요했고 그 시간이 유용하게 잘 사용되었기에 그 정도는 달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업무든 장단이 있고 배울 게 있으니까. 거기에 새로 생긴 ESG 업무까지 추가가 되었는데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ESG가 신설되어 담당 부서 없이 HR에서 인큐베이션을 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조직변화가 많은 시기라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만만치 않았고 ESG 역시 구축단계라 업무 로드가 상당히 무거웠다. 몇 달을 해보니 버거워서 상사에게 업무 조정을 요청했었다.
처음부터 혼자 다 떠안는 구조는 아니었다.
휴직기간 마지막 두어 달간 ESG업무를 맡아 온 선배가 자료 공유를 해주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다가 업무에 차질이 커져서 상사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두 업무를 온전히 다 맡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커뮤니케이션 자체도 1인분의 업무이고 회사에서 새로 시작하는 ESG 프로젝트 역시 제대로 하기 위해 스터디가 많이 필요한 직무였지만 마음고생보다는 몸이 고생하는 게 낫겠다 싶어 알겠다고 했다.
구글링으로 맨땅에 헤딩하고 그룹 내 ESG 담당자들을 찾아다니며 배우면서 일을 했고 하필 M&A로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바쁠 때라 해외와 새벽에 메신저로 미팅도 잦았다. 휴직했던 것에 대해 회사에 막연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내가 맡은 일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 싫었기에 아무도 몰라줘도 퇴근 후에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다시 키고 일했다.
재미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면서 비지니스를 더 넓게 볼 수 있었고 ESG를 하면서 비지니스를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오래 몸담은 조직이었지만 내가 알았던 것인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새로운 일을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어 나갔고 두 분야에서 실무를 리드하고 있었기에 내가 나의 own boss가 된 것처럼 일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그렇게 채무감과 재미가 뒤섞인 동력으로 가열차게 일한 결과 회사에서 목표했던 결과물인 첫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나왔고 바빴던 커뮤니케이션 아젠다도 무리 없이 돌아갔다.
인사평가 피드백 시기가 다가왔는데 상사가 말이 없다.
하지만 열심히 했고 좋은 성과를 내었으니 좋은 결과를 예상하며 평가시스템에 접속하여 나의 고과를 클릭했다. 여섯 개 중 두 개의 카테고리에서 평균 이하의 등급을 받았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시스템 평가대상자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내 이름이 맞는데... 승진이 이미 한 해 늦었는데 이 고과는 '넌 올해도 안된다'는 뜻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뭔가 시스템적인 오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임원집무실로 찾아갔다. 해당 등급을 받은 이유를 물었더니 당황한 눈초리로 팀원들과 함께 사장님실을 정리하지 않아서 팀웍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고 하였다. 두 달 전의 일이다. 금요일에 HR 팀장이 와서 회사가 이사를 하는데 사장님실의 짐을 주말에 옮기려 하니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사는 이사업체에서 해주고 정리는 미화여사님이 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물으니 그렇긴 하지만 사장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짐이 완벽하게 세팅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나는 주말에 가족모임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다. 나와 한 명을 제외하고 다 왔었다고 했던 그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마음의 소리가 그렇다 해도 정말 그렇게 말한다고? 헛웃음을 참았다. 한번씩 헷갈린다. 내가 눈이 높은건가? 내가 리더한테 이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는게 무리인가? 오늘도 이렇게 내 기대치를 갱신하는 상무님도 대단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할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좌충우돌하며 늦게까지 공들이며 일했던 지난 1년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상무님도 더 할말이 없으신듯 애꿎은 안경테만 만지작거리셨고 나역시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일을 결정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동안 수년간 쌓였던 응어리가 그 한순간 단단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계획에 없던 그러나 overdue인 말을 했다.
"상무님, 저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만하겠습니다."
(지겹다. 이제 헤어지자.)
13년 동안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이렇게까지 속이 상하기는 처음이었고 퇴사통보도 처음이었다.
반차를 내고 퇴근하는 길에 머리를 자르고 미용실 문을 나서니 민트색 전동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타본 적 없었지만 이 날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에라도 정신을 팔고 싶었으니까.
앱을 깔고 휴대폰과 연동하고 나는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달렸고 길치인지라 도로 표지판을 이정표 삼아 압구정로데오역에서 잠실까지 두 시간 동안 갔다 멈췄다 하며 엄마 집에 다다랐다. 킥보드와 내 휴대폰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방전되었다.
보통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맡겼던 아이를 찾으러 엄마 집으로 가는데 늘 내 기분을 귀신같이 눈치채는 엄마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잠실새내 사거리에 정차한 트럭에서 추로스를 한 봉지 샀다.
그다음날 그 임원은 나를 불러 퇴사하지 말고 잘해보자고 본인이 신경 쓰겠다고 했다. 평가 정정을 요구해볼까 생각했지만 그 마저도 귀찮았다. 그냥 대안 없이 퇴사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서 조금 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일은 여전히 많았는데 어느 날 새벽 2시가 넘어서 마지막 이메일에 send 버튼을 누르고 나니 몸의 진을 다 뽑아낸 느낌이 들었다. 노트북을 닫으며 하얗게 된 머릿속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지체하지 말고 이직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가족들이 잠든 고요한 시간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켜고 잡포스팅 사이트에서 예전부터 생각만 많았던 외국계 기업 채용정보를 브라우징 했다. 한 외국계 자동차회사 채용공고에 이력서를 보냈고 채용 포지션이 리포팅하게 될 HR 부사장 면접이 잡혔다.
2주쯤 지나서 면접일이 되었다. 몇 년 만에 하는 면접준비가 굉장히 어색했다. 연차를 내고 오전에 자기소개를 끄적였지만 적어놓은 글이 입에 착 붙지 않았다. 자기 PR에 쥐약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숨을 아무리 들이마셔도 숨을 쉰 것 같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너무 긴장했나... 면접을 위해 옷을 다 입은 상태였지만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을 뜨니 괜찮았다. 그리고 무더운 7월의 오후 지하철을 타고 청담역에서 내려 면접 장소인 까페로 향했다. 이 날 부사장님과의 면접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면접, 아니 만남이었다.
이맘때 별 생각없이 색연필로 쓱쓱 그린 그림인데 최근에 본 미술치료글에서 나무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그림이라 해서놀랐다. 앙상한 가지와 줄기에 옹이까지 힘들기는 힘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