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거 먹으면 안 되니?”
이른 봄날 워커힐에 있는 ‘피자힐’이었다. 피자를 반쯤 먹었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파스타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도 먹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어투는 조심스러웠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동작과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래요.”
작은 사이즈라고는 하나 둘이서 피자 한 판을 먹고 또 파스타를 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이었지만 추가 주문을 하였다.
워커힐 가장 높은 곳에서 한강을 굽어보고 있어서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리도 만석이었다. 주말 점심이라서 가족단위나 작은 모임이 대부분이었다. 둘만 앉아 있는 상황이 조금 쓸쓸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풍경처럼 보였다. 우리 삼 남매는 주말마다 엄마를 찾았지만 집안 행사 아니면 함께 모이지 않았다. 한 팀씩 왔다 가야 엄마가 주말 내내 자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함께 왔다 함께 밀물같이 사라지면 더 적적해할 것 같다는 생각들이었다. 의논도 하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그렇게 실행했다. 덕분에 주말에 엄마와 외식을 하다 보면 늘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할 때는 좀 나았지만 혼자 갈 경우에는 참 많이 쓸쓸했다. 언젠가 큰 동생이 모시고 와서 피자를 사드렸다는데 그 뒤로는 이곳 피자를 자주 이야기했다. 오늘은 큰맘 먹고 피자를 사드리러 왔는데 남의 파스타가 맛나 보였나 보다.
크림 파스타가 나왔다.
“이렇게 스푼으로 받치고, 그 위에서 포크로 돌돌, 한 입 크기로 말아서 드셔요.”
내가 시범을 보였지만 엄마의 포크는 스푼 위에서 제대로 말아지지 않아서 국수 가락들이 자꾸 흩어졌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다가 억지로 밀어 넣으며 먹었다. 매사에 요령이 좋아 뭐든지 척척 해내던 엄마였다. 평생 그런 자신의 모습에 강한 긍지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렇게 간단한 동작이 안 되는 모습도 낯설었다. 제멋대로 달아나는 국수가락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틀니로 열심히 씹고 있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맛있게 잘 드시니 다행이었다. 80 중반의 나이에도 저런 서양 음식을 좋아하다니. 느끼한 크림파스타를 좋아하다니. 딸보다도 더 젊은 입맛이었다.
밖으로 나서니 황사로 뒤덮인 한강의 풍경이 노랗다. 엄마 생전에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필 오늘 황사라니. 식당 앞 넓은 테라스에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테이블과 스툴이 놓여 있었다. 일단 앉아서 한강을 내려다본다. 강 건너 미사리가 손바닥 안에 들어온다. 한 때 라이브 카페가 몰려 있어서 낭만을 구가하던 곳이다. 지금은 과거를 파묻고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만이 황사 속에 버티고 있다. 그 앞으로 강변도로에는 자동차들만 무심하게 달리고 있다.
엄마는 황사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경에 몰두하였다. 탁 트인데 나오니 너무 좋다며 아이같이 즐거워하였다. 한없이 내려다보던 시선에 어느새 서글픔이 묻어났다. 말년의 인간이 흐르는 물을 굽어보며 가질 수 있는 감상.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는지, 떠나간 아버지를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황사에 눈도 아프고 목도 깔깔해진다. 최악의 황사였다. 일어나지 않으려는 엄마를 간신히 일으켜 내려왔다.
짜증과 황당함이 몰려왔다. 왜 하필 황사람. 날씨만 좋았다면 몇 시간이고 앉아 있으라 할 것을. 왜 이전에 자주 모시고 오지 않았는지, 왜 이렇게 엄마가 짠한지. 왜 하필 둘만 왔는지. 다른 테이블처럼 식구들과 함께 올걸. 봄날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이 처량함은 무엇인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의 전개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이게 다 황사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