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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다

에곤실레의 자화상 탐구하기

by 가을

한 달에 한 번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흘렀다.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미술 작품 속에 녹아있는 작가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올해부터는 미술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감상하겠다는 다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비엔나 1900,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된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1918). 그의 작품들은 너무나도 파격적이어서 강렬한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특히 비엔나는 화려함 이면에 충격적인 현실을 안고 있었다. 매춘이 성행했고, 성병이 만연했다. 에곤 실레 역시 이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린 실레에게는 성(性)에 대한 집착과 왜곡된 인식이 깊이 각인되었다. 이후 그의 작품 속에는 육체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욕망이 짙게 배어들었고, 실레 특유의 거칠고도 적나라한 누드화로 표현되었다.


실레의 누드 형식 자화상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기보다, 뒤틀린 신체, 앙상한 몸, 비틀린 손가락, 과장된 표정을 담아냈다. 이러한 왜곡된 누드화들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Narcissus)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샘물에 비친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시들어 죽는다. 이러한 신화적 배경 때문에 실레 역시 나르시시스트로 평가받곤 한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자기애적 예술가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작품 세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 그의 자화상에는 강렬한 자기 응시와 왜곡된 표현이 나타나지만, 이는 단순한 자기애(narcissism)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외형을 미화하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불안, 욕망, 고통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화상을 활용했다. 그가 왜곡된 신체와 강렬한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은 불안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는 자아의 파편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 예술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레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며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전쟁과 사회적 격변이 있었고, 그의 작품 역시 이러한 시대적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나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글로써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자 한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리고 글을 쓰면서 고민하는 것들이 실레가 그림을 통해 탐구했던 것과 어떤 점에서 닮아 있을까? 실레가 그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겼듯이, 나도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나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썩어도 영원한 생명력을 남길 열매가 될 것이다." — 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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