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신성마법, 신과의 합일을 향한 의례

by DrLeeHC

제9장: 신성마법, 신과의 합일을 향한 의례


9-1. 자연마법을 넘어서: 테우르기아(Theurgia, 신성 작업)


헤르메스 주의가 제시하는 실천의 길, 그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마침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대담하고도 숭고한 기술, 즉 신성마법(Theurgy)과 마주하게 됩니다. 연금술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소우주를 변성시키는 길이고, 점성술이 대우주의 언어를 해독하고 그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라면, 신성마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든 법칙과 조화를 주관하는 신적인 존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The One)’와 합일(Henosis)을 이루려는 가장 능동적이고도 경건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마법’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수많은 오해와 편견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헤르메스 주의의 현자들이 실천했던 이 신성한 예술이,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 자연의 힘을 조종하려 했던 ‘자연마법(Magia Naturalis)’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 길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신성마법의 철학적 토대를 가장 깊이 있게 옹호하고 체계화했던 후기 신플라톤주의의 위대한 사제, 이암블리코스(Iamblichus)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신성마법이 왜 단순한 철학적 사색을 넘어서는, 구원에 이르는 필수적인 의례의 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사상 속에서 만났던 자연마법은, 우주가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그 안의 모든 것이 ‘공감(Sympathy)’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헤르메스 주의적 세계관에 바탕을 둡니다. 자연마법사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의 그물망을 이해하는 자입니다. 그는 어떤 식물과 광물이 어떤 행성의 힘, 즉 덕성(Virtus)을 품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그것들을 지혜롭게 조합하여 자신의 삶에 유익한 효과를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의 활기찬 기운을 얻기 위해 황금과 월계수를 사용하거나, 금성의 사랑스러운 기운을 얻기 위해 장미와 비둘기를 활용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자연마법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세계, 즉 지상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의사가 약초를 사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듯, 자연 속에 숨겨진 신의 선물들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기술입니다. 이 길은 충분히 고귀하지만, 그 시선은 본질적으로 지상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신성마법, 즉 ‘테우르기아(Theurgia)’는 그 이름이 ‘신(Theo)의 작업(Ergon)’을 의미하듯, 그 목표와 방향성이 전혀 다릅니다. 신성마법사의 시선은 지상의 풍요가 아닌, 하늘 너머의 신성 그 자체를 향해 있습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신적인 힘들 앞에 세워, 마침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마법이 더 나은 인간으로 살기 위한 기술이라면, 신성마법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신이 되기 위한 신성한 작업입니다. 따라서 이 길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질적 도구, 즉 상징, 주문, 의례적 행위들은 더 이상 그 자체로 효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조율하고 상승시켜, 신적인 힘이 강림할 수 있는 통로이자, 신과의 만남을 위한 약속된 언어로서 기능합니다. 자연마법이 아래에서 위로 힘을 끌어당기려는 시도라면, 신성마법은 위에서 아래로 신성이 내려오도록 스스로를 준비하는 경건한 초대의 의식입니다.


이 신성마법의 철학적 정당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하고 그 방법론을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기원후 3-4세기에 시리아에서 활동했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이암블리코스입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의 시조인 플로티노스(Plotinus)의 위대한 계승자였지만, 동시에 스승과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플로티노스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오직 내면적인 철학적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지성, 즉 누스(Nous)는 신적인 것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에, 어떤 외부적인 의례나 물질적인 매개 없이도, 순수한 지성의 상승을 통해 ‘하나’와의 합일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상(神像)에 절을 하거나,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등의 종교적 의례들은, 영혼을 물질세계에 더욱 속박시키는 어리석고 불필요한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암블리코스는 이러한 스승의 순수한 지성주의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인의 신비에 관하여, De Mysteriis Aegyptiorum』라는 자신의 주저에서, 플로티노스의 제자인 포르피리오스(Porphyry)가 제기했던 ‘신성마법은 과연 유용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심오한 신성마법 철학을 펼쳐 보입니다. 이암블리코스에게, 인간은 플로티노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순수한 지성적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를 지닌 이중적 존재이며, 운명의 법칙과 물질세계의 필연성 속에 깊이 빠져 있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지성과 노력만으로는, 우리를 짓누르는 운명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신성한 세계로 도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우리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 즉 신들의 자비로운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도움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신성마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암블리코스에 따르면, 신성마법의 의례가 효과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의례에 사용되는 상징(Symbola)과 주문(Synthemata)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태초에 신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우주 속에 심어놓은 ‘신성한 기호’들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신들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의례 속에서 특정한 상징을 사용하고,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이름들(barbarous names)’을 외울 때, 우리는 마치 정확한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처럼, 우주적 공감의 법칙에 따라 그 상징 및 이름과 연결된 신적인 힘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나 이해도에 좌우되는 심리적 과정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 구조에 새겨진 객관적인 법칙에 따른 신성한 화학 반응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성마법사는 자신의 이성적 이해를 자랑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비우고, 전승되어 온 의례의 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을 신성이 흐르는 순수한 통로로 내어 맡겨야만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성마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이상 ‘자기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비움’을 통한 ‘신성과의 합일’입니다. 의례의 과정 속에서, 신성마법사는 자신의 개별적인 자아와 의지를 점차 소멸시킵니다. 그리고 그 비워진 자리로, 초대된 신의 힘이 강림하여 그의 몸과 영혼을 직접 채우고 움직이는 ‘신들림(Enthusiasm)’의 상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신의 손과 발이 되어 지상에서 신의 의지를 행하는 살아있는 도구가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불완전한 인간이 신의 완전함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암블리코스는 역설했습니다.


이암블리코스는 신성마법을 단순한 주술이나 미신적인 의례의 차원에서, 구원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신성한 기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사제였습니다. 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더 높은 존재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연마법이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다스리려는 르네상스적 자신감의 표현이라면, 이암블리코스의 신성마법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신의 은총에 전적으로 의탁하려는 고대 후기의 경건함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철학적 사색의 고독한 길을 넘어, 구체적인 의례와 상징, 그리고 공동체의 전승을 통해 신을 만나고자 했던, 살아있는 종교적 실천의 길이었습니다. 이암블리코스가 체계화한 이 신성마법의 전통은, 이후 서양 비의 전통의 가장 깊은 곳을 흐르며, 황금새벽회와 같은 근대의 마법 결사들에 이르기까지, 신과의 합일을 꿈꾸었던 모든 이들에게 가장 강력하고도 궁극적인 실천의 길을 제시하게 됩니다.


9-2. 공감(Sympatheia)의 원리: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세계


신성마법(Theurgy)이라는 숭고한 예술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성전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단 하나의 거대한 초석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 초석의 이름은 바로 ‘공감’, 즉 심파테이아(Sympatheia)입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의 정신에게, 이 세계는 서로 분리된 채 우연히 상호작용하는 무수한 개별적 사물들의 집합처럼 보입니다. 여기 하나의 돌이 있고, 저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며, 하늘에는 무심한 별들이 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내적인 필연성도, 의미 있는 연결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헤르메스 주의의 현자이자 신성마법사의 눈에 비친 우주는 전혀 다른 풍경입니다. 그에게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이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가장 미천한 돌멩이에서부터 가장 고귀한 신들에 이르기까지, 결코 끊어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공감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교향악단과 같습니다. 이 교향악단 안에서, 하나의 현이 울리면 다른 모든 현들이 함께 공명하며, 하나의 음이 변하면 전체의 화음이 미묘하게 그 빛깔을 바꿉니다.


이 공감의 원리는 단순히 ‘유유상종’이나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끌어당긴다’는 막연한 비유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에 대한 깊은 존재론적 통찰에 바탕을 둡니다. 신플라톤주의의 유출(Emanation) 이론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초에 완벽한 통일체였던 ‘하나(The One)’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로부터 신적인 지성 ‘누스(Nous)’가, 누스로부터 ‘세계 영혼(Anima Mundi)’이, 그리고 세계 영혼으로부터 개별적인 영혼들과 물질세계 전체가 차례로 발현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동일한 신성한 근원에서 비롯되었기에, 그 가장 깊은 본질 속에 ‘하나’의 흔적, 즉 신성한 ‘서명(Signature)’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혈연으로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가족과도 같으며,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끌어당기는 내적인 친화력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원리가 작동하는 이유입니다. 수선화가 봄의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은, 그 꽃의 내면에 있는 태양의 서명이 하늘에 있는 진짜 태양의 빛을 알아보고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것은, 그 둘이 동일한 우주적 힘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신성마법사는 바로 이 우주적 공감의 그물망 전체를 꿰뚫어 보는 자입니다. 그는 어떤 행성이 어떤 광물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기하학적 형태가 어떤 신성한 원리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소리가 어떤 종류의 정령이나 신을 깨우는지를 아는 ‘우주 언어의 전문가’입니다. 그는 이 지식을 바탕으로, 더 이상 세계의 수동적인 관찰자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 거대한 교향악단의 연주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특정 현들을 뜯고 조율하기 시작합니다. 즉, 그는 적절한 상징과 주문, 그리고 물질을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신성한 힘을 이 세계 속으로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 신성한 초대의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요소, 즉 물질(Materia), 상징(Symbola), 그리고 주문(Mantra)의 지혜로운 사용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요소인 물질(Materia)은 신성한 힘이 이 지상에 현현하기 위해 머무는 ‘육체’ 혹은 ‘성소’가 됩니다. 신성마법사에게 물질은 결코 죽어 있거나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물질은 신성한 근원으로부터 왔기에, 저마다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으며, 특정 천체나 신의 에너지에 특별히 강하게 공명하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마법사는 자신의 의례를 준비하기에 앞서, 자신이 초대하고자 하는 신성한 힘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물질들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정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의 창조적이고 권위 있는 힘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면, 그는 태양에 상응하는 물질들, 즉 태양의 금속인 황금, 태양의 색인 황색이나 주황색의 보석, 태양의 향인 유향(Frankincense)이나 계피, 그리고 태양을 향해 피어나는 해바라기나 월계수 잎 등을 사용하여 제단을 꾸밀 것입니다. 이 제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태양신의 힘이 지상에 강림하여 머물 수 있도록, 공감의 원리에 따라 세심하게 구축된 하나의 작은 우주이자, 신성을 맞이하기 위한 임시 거처가 됩니다.


두 번째 요소인 상징(Symbola)은 신의 ‘서명’이자, 인간의 언어를 넘어 신성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시각적 언어입니다. 기하학적 도형(오각형, 육각형 등), 행성의 인장(Sigil), 신화적 이미지, 혹은 고대의 신성한 문자들은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낸 기호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와 신적인 힘들의 구조 자체가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를 향한 삼각형(△)은 불과 남성성의 원리를, 아래를 향한 삼각형(▽)은 물과 여성성의 원리를 그 자체로 담고 있으며, 이 둘이 결합된 육각형의 ‘솔로몬의 인장’은 모든 대극의 완벽한 합일이라는 우주적 진리를 그 형태 안에 품고 있습니다. 신성마법사는 이 상징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이 준비한 물질 위에 신성한 힘이 머물도록 ‘인장’을 찍습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재료 위에, 적절한 상징을 새기는 행위는, 마치 신의 나라에 보내는 공식적인 초대장을 작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상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수신기’가 되어, 그것과 공명하는 천상의 힘을 끌어당기고 집중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탈리스만 마법의 핵심 원리입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신비로운 요소는 주문(Mantra), 즉 신성한 ‘소리’의 사용입니다. 여기에는 신을 찬미하는 장엄한 찬가(Hymn)에서부터, 특정한 목적을 위해 힘을 집중시키는 주문(Incantation)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포함됩니다. 특히 이암블리코스가 강조했던 것과 같이, 신성마법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대의 ‘야만적인 이름들(Nomina Barbara)’이었습니다. 이집트어나 칼데아어, 혹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 이름들은, 이성적으로는 해석되지 않기에 오히려 더 큰 힘을 지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번역되고 오염되지 않은, 신들 자신들의 진정한 ‘진동 주파수’ 혹은 ‘소리의 서명’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마법사가 의례 속에서 완전한 집중과 경건한 의도를 담아 이 이름들을 정확한 음률로 진동시킬 때, 그 소리의 파동은 시공간을 넘어 그것과 상응하는 신성한 존재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두드려 깨우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정확한 주파수에 라디오를 맞출 때 방송이 들려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주문은 인간의 영혼을 원하는 신의 주파수에 맞추어 조율하는, 가장 강력한 공명의 도구인 것입니다.


신성마법의 의례는 이 세 가지 요소, 즉 물질과 상징과 소리의 정교한 교향곡입니다. 현자는 점성술을 통해 선택된 ‘마법적 시간’에, 신성한 힘의 본질과 공명하는 ‘물질’로 꾸며진 제단 앞에서, 그 힘의 ‘상징’이 새겨진 탈리스만을 들고, 그 힘의 진정한 ‘이름’을 부릅니다. 이 모든 요소가 완벽한 조화 속에서 하나로 합쳐질 때, 인간과 우주 사이의 장막은 걷히고, 신성한 힘이 지상으로 강림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공감의 원리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전제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결코 차갑고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부르며, 서로에게 응답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신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신성마법사는 바로 이 신전 안에서, 우주와 대화하는 법을 배운 경건한 사제이며, 그의 의례는 분리되었던 자기 자신을 다시 우주라는 거대한 몸의 일부로 되돌려놓으려는, 가장 숭고하고도 거룩한 합일의 몸짓인 것입니다.


9-3. 의례, 영혼을 조율하는 신성한 연극


신성마법(Theurgia)의 궁극적인 목표인 인간 영혼과 신성(神性)의 합일(Henosis)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막연하고 간절한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숭고하고도 위험한 만남은, 신성한 현현을 위해 인간 쪽에서 먼저 스스로를 준비하는 엄격한 조건과 정교한 절차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신성마법의 대가들은 이 과정을, 하나의 정교하고도 신성한 연극(Sacred Drama)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마법사 자신이며, 그가 경건하게 초청하는 관객은 바로 천상의 신들입니다. 그러나 이 연극의 진정한 목적은 관객인 신들을 즐겁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준비하고 연기하는 과정 그 자체를 통해 배우인 마법사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조율하는 데 있습니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마침내 그가 연기하고자 하는 신의 역할과 배우 자신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장엄한 자기 변형의 의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성마법의 모든 구체적인 의례 요소들은 단순히 신에게 무언가를 구하는 청원의 행위가 아니라, 마법사 자신의 영혼을 신성한 힘이 기꺼이 머물기에 합당한, 깨끗하고 견고한 ‘그릇(Vessel)’으로 빚어가는 연금술적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성한 연극의 막을 올리기 위해, 배우는 가장 먼저 무대와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해야만 합니다. 모든 신성마법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바로 ‘정화(Katharsis)’입니다. 신성은 오직 순수한 곳에만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 정화의 과정은 외적인 차원과 내적인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외적인 정화는 정해진 기간 동안의 금식, 특정 음식의 금기, 성적인 관계의 절제, 그리고 흐르는 물이나 신성한 약초를 태운 연기를 이용한 목욕 등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넘어, 영혼을 물질세계의 관성과 욕망에 묶어두는 모든 세속적인 집착을 씻어내고, 스스로를 신성한 작업에 온전히 바치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적인 정화입니다. 마법사는 자신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불순한 동기들을 남김없이 태워버려야 합니다. 교만, 탐욕, 분노, 질투, 그리고 두려움과 같은 격정들은 신성한 힘이 흘러 들어오는 통로를 막거나 왜곡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신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품은 채 행하는 의례는, 신성한 힘이 아닌 저급한 정령이나 자신의 무의식 속 망령을 불러낼 뿐이라고 현자들은 경고했습니다. 진정한 마법사는 자신의 에고를 비우고, 오직 진리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신을 향한 경외심만으로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연금술의 용기가 깨끗하지 않으면 철학자의 돌이 만들어질 수 없듯이, 영혼의 그릇이 정화되지 않으면 신성은 결코 그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무대와 배우가 완벽하게 정화되었을 때, 비로소 신을 초대하는 신성한 연극이 시작됩니다. 이 연극은 여러 구체적인 요소들로 구성되며, 각각의 요소는 영혼을 조율하고 신성과의 공명을 일으키는 고유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첫 번째 요소는 ‘기도(Prayer)’입니다. 신성마법의 기도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선물을 조르듯, 개인적인 소원을 비는 기복적인 청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개별적인 의지를 우주의 신성한 의지와 일치시키려는, 의식적인 ‘조율(Tuning)’의 행위입니다. 마법사는 오르페우스 찬가나 칼데아 신탁과 같이,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장엄한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이 기도문들은 초대하고자 하는 신의 위대함과 권능, 그리고 그 신이 우주 속에서 행하는 역할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찬미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찬미를 통해, 마법사는 자신의 미미한 자아를 잠시 잊고, 그 신의 광대하고 질서 있는 세계관 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확장시킵니다. 그것은 ‘나는 당신의 일부이며, 당신의 뜻이 나의 뜻과 같아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겸손한 서약이자, 신성과의 친족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신성한 부름입니다.


두 번째 요소는 ‘호흡(Breath)’의 통제입니다. 고대인들에게 호흡, 즉 프네우마(Pneuma)는 단순히 산소를 공급하는 생리적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에 편재하는 생명력 그 자체이자, 영(Spirit)을 운반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신성마법사는 깊고, 느리며, 규칙적인 호흡을 통해 자신의 감정적, 정신적 소란을 잠재우고, 의지를 한곳에 집중시키는 힘을 기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호흡을 통해 우주의 스피리투스(Spiritus)를 의식적으로 들이마시고, 그것을 자신의 미묘한 에너지체 안에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법을 배웁니다. 숨을 들이쉴 때 우주의 생명력이 자신에게로 들어오고, 숨을 내쉴 때 자신의 모든 불순물이 정화되어 나간다고 상상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몸을 우주와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교환하는 살아있는 통로로 만듭니다.


세 번째 요소는 ‘시각화(Visualization)’입니다. 이것은 창조적 상상력, 즉 판타시아(Phantasia)를 훈련하는 기술입니다. 마법사는 자신이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신의 형상이나, 그 신의 힘을 상징하는 인장(Sigil), 혹은 특정 기하학적 도형을 자신의 마음의 눈앞에 흔들림 없이, 마치 실제처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헛된 공상이 아니라, 아스트랄계(Astral Plane)에 실제로 하나의 에너지 형태를 구축하는 마법적 창조 행위입니다. 잘 집중된 시각화는 강력한 자석처럼 작용하여, 그것과 상응하는 우주적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구체적인 틀이 됩니다. 마법사가 자신의 내면 성소에 태양신의 빛나는 형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때, 태양신의 실제적인 힘이 그 형상 속에 깃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이자 가장 비밀스러운 요소는 ‘신성한 이름의 암송(Chanting of Divine Names)’입니다. 이암블리코스가 강조했듯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대의 ‘야만적인 이름들’은 신성마법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그 힘은 그 이름의 의미가 아니라, 그 이름이 지닌 고유한 ‘진동(Vibration)’에서 비롯됩니다. 이 이름들은 신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들의 본질적인 주파수를 담고 있는 ‘소리의 원형’이라고 믿어졌습니다. 마법사가 완전한 의도의 집중과 함께 이 이름들을 정확한 음률로 반복하여 암송할 때, 그의 몸과 영혼 전체가 그 이름의 주파수와 공명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이 되어, 하늘에 있는 신의 현을 함께 진동시키는 것입니다. 이 진동의 공명이 극에 달했을 때, 신은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부름은 더 이상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신 자신의 본질이 지상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이기 때문입니다.


신성마법의 의례는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된, 하나의 통합적인 영적 연금술입니다. 정화를 통해 영혼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기도를 통해 그 그릇의 방향을 신에게로 향하게 하며, 호흡과 시각화를 통해 그 그릇의 형태를 만들고, 마침내 신성한 이름의 진동으로 그 그릇을 울리게 할 때, 마법사는 마침내 신성한 힘을 담을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의 목표는 신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신이 기꺼이 내려와 머물고 싶어 할 만한 완벽한 성소를 자기 자신 안에 창조하는 것입니다. 마법사는 신을 향해 애원하는 거지가 아니라, 왕의 강림을 준비하는 성실한 사제입니다. 그의 의례가 성공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그의 개별적인 자아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비워진 자리를 강림한 신의 의식이 가득 채우는 ‘신들림(Enthousiasmos)’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 연극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던 신의 역할과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신성한 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드는, 가장 위대하고도 숭고한 신성 작업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9-4. 궁극의 목표, 헤노시스(Henosis): '하나'와의 합일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실천의 길, 즉 연금술의 실험실과 점성술의 천문대, 그리고 신성마법의 제단을 거쳐온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은, 그 자체로 완결된 목적지가 아닙니다. 물질을 황금으로 바꾸고, 별들의 언어를 해독하며, 천상의 신들과 소통하는 이 모든 신성한 기술들은, 헤르메스 주의의 가장 깊은 비의(祕儀) 안에서, 단 하나의, 더 높고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예비적 단계임이 드러납니다. 그 정점의 이름은 바로 ‘헤노시스(Henosis)’이며, 이는 모든 분리가 사라지고 개별적 영혼이 우주의 근원인 ‘하나(The One)’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언어와 이성을 넘어선 신비로운 합일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무언가를 ‘아는 것(Gnosis)’이 아니라, 아는 자와 알려지는 대상의 구분이 사라지고 존재 자체가 되는 궁극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신성마법의 모든 의례와 정화, 기도는 결국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한 기나긴 준비 과정이며, 그 여정의 끝은 마법사 자신의 개별적 자아마저도 신성이라는 거대한 불꽃 속에 기꺼이 제물로 바쳐, 마침내 그 안으로 완전히 녹아 들어가는 하나의 장엄하고도 숭고한 의식으로 귀결됩니다.


헤노시스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합일의 대상인 ‘하나(To Hen, 또 헨)’의 본질에 대해 침묵 속에서 사유해야만 합니다. 신플라톤주의의 위대한 시조 플로티노스(Plotinus)가 설파했듯이, ‘하나’는 우리가 상상하거나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선 절대적인 근원입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원인이지만, 그 자신은 어떠한 존재도 아닙니다. 그것은 선(善) 자체이지만, 우리가 아는 어떤 선한 것과도 같지 않으며, 미(美) 자체이지만, 우리가 보는 어떤 아름다운 것과도 다릅니다. 그것은 이름 붙일 수 없고, 정의할 수 없으며, 어떠한 속성도 지니지 않는 완전한 무(無)이자,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완전한 충만입니다. 그것은 모든 소리가 그로부터 나왔으나 그 자신은 영원히 침묵하는 근원적인 고요이며, 모든 빛이 그로부터 발현되었으나 그 자신은 볼 수 없는 눈부신 어둠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경배하는 위대한 신들과 천사들마저도, 이 ‘하나’의 무한한 권능이 스스로를 펼쳐 보이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첫 번째 유출물(Emana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와,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합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역설이야말로 모든 신비주의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우리의 영혼이 본질적으로 ‘하나’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불꽃, 즉 누스(Nous)는 바로 이 ‘하나’로부터 직접 흘러나온 파편이자, 그 근원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하나’를 향한 우리의 갈망은, 우리가 외부의 어떤 대상을 욕망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강물이 자신의 근원인 바다를 향해 흘러가려는 본능적인 회귀의 운동이며,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가 느끼는 지울 수 없는 향수(鄕愁)입니다. 우리는 ‘하나’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이 우리를 ‘하나’에게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신성마법의 여정 전체는 바로 이 귀환을 위한 치열한 준비 과정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정화와 기도, 호흡과 시각화, 그리고 신성한 이름의 암송과 같은 모든 의례적 요소들은, 우리의 영혼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감정적, 정신적 불순물들을 씻어내고, 우리를 운명에 속박시키는 일곱 행성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연금술의 언어로 말하자면, ‘솔베(Solve)’, 즉 용해의 과정입니다. 마법사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거짓된 자아, 즉 에고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집착과 욕망, 그리고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해체해 나갑니다.


그러나 헤노시스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이 모든 준비를 마친 마법사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즉 ‘자기 자신’이라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기꺼이 제단 위에 올려놓는 궁극적인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화된 영혼, 고도로 훈련된 의지, 그리고 우주의 비밀을 꿰뚫는 지혜마저도 포함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신에게 무언가를 구하지 않으며, 신과 소통하려는 의지마저도 내려놓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 마침내 한 방울의 물이 거대한 바다 속으로 자신의 경계를 완전히 포기하고 녹아 들어가듯, ‘하나’의 무한한 실재 속으로 자신의 개별적 존재를 남김없이 용해시킵니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작업’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벽한 ‘솔베’이며, 개별적 자아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무아(無我)의 경지입니다.


이 순간, 모든 이원성은 사라집니다. 아는 자와 알려지는 자,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모든 구분이 무너집니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모든 것이 됩니다. 나는 더 이상 빛을 보는 자가 아니라, 빛 그 자체가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가 아니라, 신의 침묵 그 자체가 됩니다. 이 경지는 인간의 언어로 묘사될 수 없으며, 오직 체험될 수 있을 뿐입니다. 플로티노스는 이 상태를 ‘홀로인 자가 홀로인 자에게로 날아가는 비상(the flight of the alone to the Alone)’이라고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고통과 결핍, 그리고 변화의 근원이었던 ‘분리감’이 완전히 치유되고, 영원하고 완전하며, 더할 나위 없는 평화와 충만함 속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최종적인 귀향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헤르메스 주의의 모든 실천들은 헤노시스라는 단 하나의 정점을 향한 정교한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금술은 이 마지막 희생 제물, 즉 마법사 자신의 영혼을 티 없이 순수한 황금과 같이 만드는 정화의 기술입니다. 점성술은 이 영혼이 상승해야 할 천상의 경로와, 각 단계를 통과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을 알려주는 천상의 지도입니다. 그리고 신성마법은 그 경로를 따라 영혼을 상승시키고, 각 천상의 관문을 지키는 신성한 존재들의 도움을 얻는 구체적인 등반 기술입니다. 이 모든 길은 결국, 마법사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 신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하나의 장엄하고도 거룩한 의식을 완성하기 위한, 평생에 걸친 준비 운동이었던 셈입니다.


헤노시스는 헤르메스 주의가 제시하는 실천의 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이자, 그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작은 우주가 마침내 자신을 낳았던 거대한 우주의 품으로 돌아가, 모든 분리의 눈물을 그치고 완전한 하나가 되는 지복(至福)의 순간입니다. 연금술의 불꽃 속에서 시작되었던 변형의 드라마는, 이 고요하고 눈부신 합일의 침묵 속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가장 위대한 마법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며, 가장 궁극적인 기적은 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신이었음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철학자의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 사라짐으로써 모든 것을 얻게 되는, 이 숭고하고도 역설적인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고독하지만 영광스러운 순례의 여정인 것입니다..


9-5. 테우르기아(Theurgia)의 구체적인 실천 예


신성마법의 구체적인 실천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한 명의 현자, 즉 철학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가장 경건하고도 장엄한 의례 중 하나를 함께 준비하고 거행해보고자 합니다. 그 의례의 목표는 세속적인 부나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심장이자 모든 생명과 의식의 근원인 태양(Sol), 즉 헬리오스(Helios)의 신성한 지성체와 교감하고, 그 빛나는 힘을 자신의 영혼 속으로 초대하여 내면의 어둠을 정화하고 신성한 지혜, 즉 그노시스(Gnosis)를 얻는 것입니다. 이 태양을 향한 신성 작업은, 헤르메스 주의의 모든 실천 원리, 즉 상응과 공감의 철학, 점성학적 시간의 선택, 그리고 영혼을 조율하는 구체적인 의례의 요소들이 어떻게 하나의 교향곡처럼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예가 될 것입니다.


제1막: 의도의 정립과 시간의 선택


모든 위대한 작업은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됩니다. 현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영적인 활력이 고갈되고, 창조적 영감이 메마르며, 토성적인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그는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이 모든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빛, 즉 태양의 신성한 힘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그의 목표는 태양신에게 무언가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우주(소우주)를 하늘의 위대한 태양(대우주)의 운행과 완벽하게 조화시켜, 그 빛을 담아낼 수 있는 살아있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의도가 확립되면, 현자는 가장 먼저 ‘마법적 시간’을 찾기 위해 밤하늘의 지도를 펼칩니다. 그는 택일 점성술(Electional Astrology)의 지혜를 사용하여, 태양의 힘이 지상에 가장 순수하고 강력하게 도달하는 순간, 즉 카이로스(Kairos)를 인내심 있게 기다립니다. 그가 찾는 시간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첫째, 태양 자신이 자신의 주인 별자리인 사자자리나, 자신의 힘이 가장 고양되는 양자리에 위치하여 그 위엄이 가장 높아야 합니다. 둘째, 그 시간은 마땅히 태양의 날인 일요일이어야 하며, 해가 뜬 후 첫 번째 시간, 즉 태양의 시간(Planetary Hour)이어야 합니다. 셋째, 하늘의 다른 행성들과의 관계 또한 중요합니다. 태양은 목성이나 금성과 같은 길성(吉星)들과 조화로운 각도를 맺어야 하며, 그 힘을 방해하는 토성이나 화성과 같은 흉성(凶星)들의 어두운 광선으로부터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상의 모든 사건을 관장하는 달 역시 길한 별자리에 위치하며, 태양의 힘을 순조롭게 지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완벽한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깊은 명상 과정이자, 인간의 의지를 우주의 의지에 맞추는 첫 번째 경건한 행위입니다.


제2막: 성소의 구축과 자기 정화


완벽한 시간이 선택되면, 현자는 이제 그 시간을 맞이할 완벽한 공간을 준비합니다. 그는 조용하고 외부의 방해로부터 격리된 방을 선택하여, 그곳을 임시적인 신전으로 만듭니다. 바닥에는 신성한 기하학의 원리에 따라 거대한 원을 그리고, 그 원의 동서남북에는 각각 네 가지 원소를 상징하는 촛불이나 상징물을 배치합니다. 이 원은 저급한 영들을 막는 방어막인 동시에, 의례 중에 불러일으킨 신성한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담아두는 연금술의 ‘헤르메스의 그릇(Vas Hermeticum)’과 같습니다.


원의 중앙에는 제단을 설치합니다. 제단 위는 태양의 색인 황금색이나 순백의 천으로 덮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공감(Sympatheia)의 원리에 따라, 태양의 힘을 끌어당기고 증폭시킬 수 있는 신성한 물질(Materia)들을 조심스럽게 배치합니다. 태양의 금속인 순금으로 만든 잔이나 부적, 태양의 빛을 닮은 보석인 토파즈나 황수정, 태양을 향해 피어나는 해바라기나 캐모마일과 같은 식물, 그리고 태양의 향인 유향(Frankincense)과 계피를 담은 향로가 그것입니다. 이 모든 사물들은 이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태양신의 힘이 머물게 될 성스러운 유물(Relic)이 됩니다.


공간의 준비가 끝나면, 현자는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에 들어갑니다. 의례가 있기 며칠 전부터 그는 육식을 피하고, 금욕을 지키며, 매일 아침 차가운 물로 목욕하여 육체의 욕망을 잠재웁니다. 이것은 몸이라는 그릇을 깨끗이 씻는 과정입니다. 동시에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세속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 즉 교만과 두려움, 의심을 씻어냅니다. 그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와 같이 되어, 오직 태양의 신성한 이미지만을 비출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이 엄격한 자기 정화 없이는, 그 어떤 화려한 의례도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제3막: 의례의 거행과 신성한 초청


마침내 선택된 날, 선택된 시간이 다가옵니다. 정화된 몸에 황금색이나 흰색의 깨끗한 의례복을 입은 현자는, 조용히 신전으로 걸어 들어가 원의 중앙에 섭니다. 그는 먼저 동쪽을 향해 서서,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가다듬습니다. 그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황금빛 태양의 에너지가 자신의 정수리를 통해 들어와 온몸을 채우는 것을 시각화하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어둠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간다고 상상합니다.


그의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우주와 하나가 되었을 때, 그는 마침내 입을 열어 신성한 초청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장엄하게,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태양신을 향한 찬가를 암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오, 꺼지지 않는 불꽃, 우주의 심장이시여! 만물을 보시는 하늘의 눈, 영원한 빛의 아버지이신 헬리오스여! 당신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세상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당신의 전차는 하늘의 길을 따라 질서와 생명을 실어 나르나이다. 당신은 정의의 왕이시며, 모든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오, 위대하신 이여, 당신의 종인 제가 이곳에 당신을 위해 마련한 성소에 부디 강림하시어, 저의 비천한 영혼을 당신의 신성한 빛으로 채워주소서. 저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고, 저의 나약함을 강건하게 하시며, 저로 하여금 당신의 진리를 이 땅 위에 구현하는 살아있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와 함께, 그는 제단 위의 유향에 불을 붙입니다. 향기로운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의 기도를 천상으로 실어 나릅니다. 그리고 그는 의례의 정점에서,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우주적 힘을 직접적으로 움직인다고 믿어지는 고대의 ‘야만적인 이름들(Nomina Barbara)’을 힘차게 진동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알 수 없는 소리의 파동은 인간의 이성을 우회하여, 태양신의 신성한 본질과 직접적으로 공명하는 주파수가 됩니다. 현자는 자신의 온 존재를, 이 소리의 진동과, 자신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태양의 상징(Symbola)에 완전히 몰입시킵니다.


제4막: 합일의 체험과 영혼의 변성


만약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한 의도와 집중, 그리고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현자는 마침내 신성과의 합일, 즉 헤노시스의 전조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형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압도적인 인식의 전환입니다. 그는 갑자기 방 전체가, 그리고 자기 자신 전체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의 심장은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으로 터질 듯하고, 그의 정신은 이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우주의 비밀에 대한 명료한 통찰, 즉 그노시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의 개별적인 자아, 즉 두려움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나’는 그 거대한 빛 속으로 녹아내려 잠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순수한 존재의 환희와 우주적 의식만이 남습니다. 그는 더 이상 태양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잠시 동안 ‘태양 그 자체’가 되는 ‘신들림(Enthousiasmos)’의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절정의 체험이 지나가면, 현자는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신성한 존재를 경건하게 돌려보내는 폐막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는 자신이 불러일으켰던 강력한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해산시키고, 원을 해체하며, 마침내 신성한 공간을 일상의 공간으로 되돌려놓습니다.


이 태양을 향한 신성 작업을 마친 현자는 이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는 세속적인 부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태양의 빛으로 재충전되었고,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우울의 그림자는 사라졌으며, 그는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용기와 창조적 영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내면에 신성이 깃들 수 있는 살아있는 성전이 존재함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테우르기아는 신을 조종하는 오만한 기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정화하고 조율하여 신의 완벽한 거울이 되고자 하는, 가장 숭고하고도 겸손한 자기 변형의 예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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