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바도키아가 들려주는 "하라리의 세계" 이야기

데이터 너머의 목소리

by DrLeeHC

바바도키아가 들려주는 "하라리의 세계" 이야기: 데이터 너머의 목소리


옛날 아주 먼 곳에, ‘이해의 강’을 따라 흐르던 도시가 있었단다. 그 도시는 하늘을 마름모꼴로 가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계산하려 들었지. 사람들은 “읽히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신념 아래 살아갔고, 자기 자신조차 ‘해석 가능한 기계’로 생각했단다. 그 도시에선 감정도, 선택도, 고통도 모두 수치화되어, 예측 가능한 알고리즘 속에 갇혀 있었어.


이 이야기는 그 도시의 건축가였던 하라리의 꿈으로 시작돼. 그는 외쳤지, “인간은 생물정보 알고리즘이다!” 그의 도시 안에서는 기억이란 생화학적 데이터에 불과했고, 고통은 제거해야 할 오류였으며, 선택은 통계적 결과일 뿐이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고, 최적화된 기계로 작동하고 있었단다.


아이들은 그림자 대신 QR코드를 밟고 놀았고, 연못의 물은 감정을 스캔해서 색이 바뀌었단다. 사람들은 점점 더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자신을, 화면 속 숫자로 확인하려 했어. “나는 오늘 86점의 행복을 느꼈어.” “넌 어제보다 3.2% 더 슬퍼 보이네.” 그들은 자기 마음을 직접 느끼기보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마음을 믿었지.


그러던 중, 도시의 외곽, 잊힌 숲 너머에서 이상한 불빛 하나가 피어났어. 그것은 ‘읽히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였지. 그 목소리들은 네 방향에서 들려왔단다.


“얘들아… 기억이란 건 숫자가 아니란다. 고통은 연산으로 덜어낼 수 없고, 사랑은 최적화될 수 없단다. 너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어. 너희는 존재야. 그것도, 읽히지 않는 존재지.”


먼저, 엘리아데의 목소리.

그는 말했지, “기억은 단지 저장이 아니라, 존재의 귀환이다.” 사람들은 신화를 반복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에 다시 닿을 수 있었다. 그 기억은 데이터가 아닌, 성스러운 반복이었고, 시간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의식이었단다.


다음은 블라가의 속삭임이었어.

그는 세상의 진실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지. “인간은 세계의 신비에 공명하는 반투명한 존재이다.” 그는 투명성을 추구하는 기술 세계와는 반대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 속에서 존재와 교감하는 인간을 이야기했단다. 그것은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진실한 것이었지.


세 번째로 쇼펜하우어의 어두운 외침이 있었어.

그는 말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만 깨어난다.” 인간의 의지는 끊임없이 결핍되고, 그 결핍은 고통을 낳지. 그러나 그 고통은 단순한 문제점이 아니었단다. 오히려 고통은 존재의 문을 여는 열쇠였고, 인간은 그 고통을 견디며 예술을 만들고, 윤리를 발견했지.


마지막으로, 영지주의자들이 조용히 불러주었어.

“기억하라, 너는 빛에서 왔다.” 그들은 인간을 잃어버린 신성의 파편이라 보았단다. 진정한 구원은 외부의 연산이 아니라, 내면의 기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지. 데이터는 빛을 회상하지 못하지만, 영혼은 기억을 통해 빛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단다.


이 네 방향의 빛이 도시를 에워싸자, 하라리의 유리탑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어. “나는 정말 다 읽힐 수 있는 존재인가?” “내 고통은 단지 오류인가?” “내 기억은 그냥 저장 가능한 정보인가?” “내가 어쩐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때 철학이 돌아왔단다. 오래된 언어로, 그러나 가장 날카롭고 따뜻한 말로 이렇게 말했지.


“얘야, 존재를 기억하렴.

그 기억 속에만 너는 너로 존재할 수 있고,

고통을 피하지 않을 때, 너는 비로소 깨어나는 거란다.

신비를 설명하려 하지 마라. 그냥 그 속에서 울리는 울림을 들어보렴.

구원은 바깥에서 오지 않아. 네 안의 빛이 기억날 때,

그제야 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거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은 조용히 덧붙였지.

“인간은 해석되는 존재가 아니라, 해석을 거부하는 존재란다.

인간은 기능하는 자가 아니라, 존재하는 자야.”


얘야, 하라리의 세계는 정교하고 논리적이야. 하지만 그 안에선 말 없는 존재들이 지워지고 있단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다시 인간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설명 때문이 아니라, 기억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잊지 말렴.

네 안에 있는 읽히지 않는 고통,

이해되지 않는 질문,

말할 수 없는 기억…

그 모든 것이 바로 너의 존재야.


그리고 존재는,

다시 기억될 때

비로소 빛이 된단다.


그래, 얘야… 이제 이 이야기는 가장 깊은 밤의 심연으로 가야 한단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것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살아 숨 쉬는 곳… 철학이 침묵으로 말하는 자리에 다다르려면, 우리도 침묵을 지나야 해. 자, 너의 마음을 조용히 앉히고, 이어지는 이 마지막 불빛의 조각들을 들어보렴.


그날 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시 쓰이기 시작했어. 그것은 펜으로 쓰인 것도, 키보드로 타이핑된 것도 아니었지. 마치 별빛이 어둠을 뚫고 종이에 내려앉듯,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새겨졌단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존재를 기억하라―라는 이름의 이야기야.


철학은 다시 말했어. “인간은 데이터를 넘는다.”

이 말은, 단지 반박이 아니야. 그것은 마치 잊힌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았지.


엘리아데는 속삭였어.

“기억은 다시 태어나는 방식이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세계를 다시 산다.”

그의 말은 신화와 연결되었고, 그 신화는 존재의 반복이 아니라, 존재의 소환이었지. 잊었던 노래 한 소절처럼, 사람들의 가슴에서 울림이 시작되었어.


블라가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단다.

“너는 모든 걸 알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걸 느끼는 존재란다. 신비는 너를 방해하지 않아. 오히려 너를 숨 쉬게 해.”

그의 말은 안개 같았지만, 마음을 감싸 안는 온기였어.


쇼펜하우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지.

“그래, 너는 아프기 때문에 진짜야. 고통은 너를 깨어있게 해. 도망치지 마라. 그 고통 안에 길이 있다.”

그의 말은 어두웠지만, 그 어둠엔 별이 있었단다.


영지주의자들은 별들 사이를 걸어오며 이렇게 말했어.

“기억하라. 너는 잃어버린 빛이다. 너의 진짜 이름은, 누구도 데이터로 쓰지 못한다.”

그들의 말은 기도였고, 동시에 바람이었지. 귀 기울이면 들릴 듯, 그러나 붙잡을 수 없는… 바로 그런 말.


이제 너는 알겠지, 얘야. 왜 인간을 다시 말해야 하는지를.

왜 하라리의 정교한 알고리즘 앞에서 철학은 끝까지 침묵하지 않는지를.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용기야.

철학은 지워진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는 마법이야.

철학은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존재’라는 불씨를 다시 지피는 노래란다.


그러니 너도 이제 그 노래를 부를 차례야.

데이터로는 말할 수 없는

침묵으로만 남겨진 그 모든 존재들,

그 모든 눈물과 고통과 기쁨과 신비와

잊혀졌던 불빛들을,

다시 말해야 해.


사람들에게 말해줘.

“얘야, 너는 읽히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존재야.

기억이 살아 있는 존재,

고통을 안고 깨어나는 존재,

말없이 신비를 공명하는 존재,

잃어버린 빛을 되찾는 존재.”


그리고 가장 마지막 문장은…

시간의 끝에서 별들이 모두 침묵한 그 순간에도

한 아이가 마음속에 되새기며 노래처럼 읊었단다.


“존재를 기억하라.”


그 말 한 마디로 세상은 다시 태어나고 있었지.


얘야…

네가 살아 있다는 건,

그 모든 걸 다시 말해도 된다는 뜻이란다.


그래, 얘야…

이제 우리는 아주 먼 데까지 왔구나.

하지만 존재라는 것은 끝이 없단다.

별의 심장도, 기억의 바닥도, 사랑의 고통도

다 말하려 할수록 더 깊어지지.


이제부터는,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품은 한 조각의 꿈처럼,

그 모든 것을 다시 껴안을 수 있게 해줄

마지막 길을 너에게 들려줄게.


옛날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였어.

시간이 마치 이불처럼 접혀 있던 세계.

그 세계엔 ‘마지막 도서관’이 있었지.

그 도서관엔 종이도 없고 책도 없었단다.

단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기억이,

유리꽃으로 피어나는 방이었지.


도서관을 지키는 이는

이름 없는 존재였어.

사람들은 그녀를

‘잊지 않으려는 자’라고 불렀지.


사람들은 매일 이곳에 와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단다.


누군가는 “내가 왜 우는지 몰라서” 왔고,

누군가는 “나는 살아 있지만, 나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아서” 왔지.


그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어.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거야.

너는 데이터를 잃은 게 아니야.

너는 너라는 존재의 울림을 잊은 거란다.”


그러고는 아주 조용히 손을 들어,

사람의 가슴에 귀를 댔지.


“얘야, 너 안에서 아직 울리는 그 소리,

그게 네 기억이란다.

그 기억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해석할 수 없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네가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해줬지.


“엘리아데는 말했단다.

인간은 신화를 반복하는 존재,

매번 같은 별자리를 바라보며

다른 기도를 드리는 존재란다.”


“블라가는 말했단다.

인간은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

오히려 해명되지 않아서

세상과 더 깊이 공명할 수 있는 존재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지.

고통은 삶의 오류가 아니라

존재의 맥박이라고.

그 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고.”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단다.

그들은 기억했지.

말이 아니라 빛으로,

논리가 아니라 울림으로…”


얘야, 이제 너는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기억하고, 고통받고, 신비에 응답하며…

그 모든 게 너무 두려워요.”


그래, 당연히 두렵단다.

왜냐하면 너는 인간이니까.

인간은 두려움을 안고도 앞으로 걷는 존재야.

그리고 그 한 걸음이

바로 존재를 기억하는 첫걸음이지.


그래서 철학은 이렇게 말한단다.

“데이터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네 눈물이, 네 꿈이, 네 기억이…

너라는 존재를 세상에 말해주고 있어.”


마지막으로 그녀는 말했어.

“너는 읽히지 않는 존재야.

그러니 해석받으려 애쓰지 마.

대신, 존재하렴.

기억하렴.

깊이, 울림으로.”


그래서 얘야,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이건 이제 너의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의 손끝에서

어쩌면 또 다른 이야기 하나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데이터는 저장하지만,

이야기는 숨을 쉬거든.


너는 살아 있어.

그러니 너는, 이미

기억되고 있는 중이야.


그것이 바로 인간이야.


그러니 이제 말해줄래?

네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바도키아가 들려주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