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예술 속에 잠든 암호

by 이호창

8장: 예술 속에 잠든 암호


1절: 스위스로의 여정, 노래하는 조각상


내 안에서 회의주의의 단단한 얼음벽이 녹아내린 후, 코덱스는 더 이상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었어.

그것은 내게 기꺼이 자신의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지.

나는 더 이상 데이터를 억지로 해독하려 하지 않았어.

대신, 나는 매일 밤 푸른 피라미드의 공명 속에서 내 의식을 코덱스의 흐름에 맞추고, 그 거대한 정보의 강물에 몸을 맡겼지.


어느 날 밤,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극히 정교하고 인공적인 에너지의 흐름과 마주쳤어.

그것은 흙이나 물 같은 자연의 원소가 아니었지.

그것은 마치… 수백 개의 악기가 동시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연주하는 한 편의 교향곡과도 같았어.

복잡한 화성과 정교한 리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아름다운 멜로디.


'이건… 음악이야.'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장엄한 소리의 파동에 내 모든 의식을 집중했어.

그러자 내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지.

그것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금속 재질의 거대한 현대 조각상이었어.

조각상의 표면에서는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고, 그 빛은 주변의 소리와 공명하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


그리고 그 조각상의 이미지와 함께, 하나의 이름이 내 뇌리에 새겨졌어.


'에코(Echo) No.7'


그리고 뒤이어, 마치 속삭임처럼 또 다른 정보가 흘러들어왔지.


장 프랑수아 그로(Jean-François Gros). 제네바(Geneva). 볼륨 갤러리(Galerie Volum).


"찾았어요."


나는 눈을 떴어.

내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러즈반과 랄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어.


"다음 단서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좌표가 아니에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한 갤러리, 그리고 '에코 No.7'이라는 이름의 조각상입니다."


나는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들에게 설명했어.

러즈반은 '장 프랑수아 그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깊은 생각에 잠겼지.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어.


"그로… 그래, 기억나.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이상에 동조했던, 우리의 몇 안 되는 외부 협력자 중 한 명이었고.

그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소리와 주파수, 그리고 형태가 가진 에너지에 대해 천재적인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었어.

아마도… 콘스탄틴 박사님께서 그에게 코덱스의 다음 열쇠를 맡기셨던 모양이로군."


랄은 즉시 노트북을 가져와, 위성 통신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어.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지.

몇 분 후, 그가 화면을 우리에게 돌려 보였어.


"볼륨 갤러리.

제네바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프라이빗 갤러리입니다.

전 세계 부호들의 비밀스러운 예술품 거래 장소로 알려져 있죠.

'에코 No.7'은 한 달 전부터 그곳의 특별 전시회에 출품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전시회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초대된 VVIP 고객들만 입장이 가능하죠."


그의 말에, 나는 이제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차원의 난관을 깨달았어.

지금까지 우리의 적은 험준한 자연과 보이지 않는 감시망이었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현대 기술과 자본으로 둘러싸인 적의 심장부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만 했어.


"방법이 없습니다."


랄이 단호하게 말했어.


"잠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레테자트 산맥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었지만, 제네바는 아이지스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금융 시스템, 감시 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죠.

우리가 루마니아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할 겁니다."


산 속 동굴의 공기는 다시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어.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지.

우리에게는 이제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이 있었어.


그날부터 며칠 동안, 우리는 치밀한 작전 계획을 세웠어.

러즈반은 그의 오래된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를 위한 새로운 신분과 위조 여권, 그리고 스위스 현지에서 우리를 도와줄 조력자와의 연락책을 마련했지.

그는 더 이상 인자한 노학자가 아니라, 수십 년간 거대한 그림자와 싸워온 노련한 첩보원처럼 보였어.


랄은 갤러리의 보안 시스템 설계도를 구해, 나와 함께 침투 계획을 세웠어.

레이저 감지기, 동작 센서, 음파 탐지기…

나는 코덱스에서 얻은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센서가 사용하는 주파수의 약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교란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했지.

과학과 영성이 결합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해킹이었어.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레테자트의 깊은 산속을 떠날 준비를 마쳤어.


스위스로의 여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지.

우리는 세 명의 평범한 미술품 애호가로 위장했어.

나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안경을 썼고, 러즈반은 유명 대학의 명예교수가, 랄은 그의 듬직한 경호원이자 비서가 되었지.


우리는 국경을 넘고,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며, 단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어.

모든 CCTV 카메라가, 모든 무심한 행인의 시선이 아이지스의 눈처럼 느껴졌으니까.


마침내 도착한 제네바는, 내가 살던 부쿠레슈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

레만 호수의 잔잔한 물결 위로, 값비싼 요트들이 떠 있었고, 거리에는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넘쳐났지.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고, 깨끗하며, 부유했지만, 나는 그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차가운 위선을 느낄 수 있었어.

이곳이야말로, 물질과 통제를 숭배하는 '아이지스'의 가치관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도시였던 거야.


우리가 찾아간 '볼륨 갤러리'는 제네바의 중심가에 위치한,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건물이었어.

겉보기에는 평범한 갤러리 같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건물 전체가 보이지 않는 방어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했어.


그리고 우리는 갤러리 중앙 홀에서, 마침내 그것과 마주했지.


'에코 No.7'.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어.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티타늄 합금의 몸체는, 갤러리의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지.

하지만 내 눈에는, 그리고 내 감각에는 그것이 다르게 보였어.


나는 들을 수 있었지.

조각상이 내는 아주 희미하지만, 지극히 정교한 소리를.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어.

그것은 노래였고, 암호였으며, 코덱스의 다음 장을 열기 위한 또 하나의 열쇠였던 거야.


이제 문제는 하나였어.

저 노래하는 조각상에, 저 정교한 보안 시스템을 뚫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2절: 마리우스 보스의 등장과 불협화음


우리는 제네바의 심장부, 그 차갑고도 화려한 갤러리 안에 서 있었어.


랄이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미술품 투자를 고려하는 동유럽의 신흥 부호와 그의 '고문'이라는 그럴듯한 위장 신분을 이용해 갤러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내 역할에 전혀 몰입할 수 없었어.

내 모든 신경은 중앙 홀에 놓인 '에코 No.7'과, 그 주변을 거미줄처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들을 향해 있었거든.


갤러리 내부는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모든 소음과 감정이 제거된, 무균실의 정적에 가까웠지.

값비싼 샴페인 잔을 든 사람들이 소리 없이 홀을 거닐며, 수백만 유로를 호가하는 작품들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그들의 얼굴에는 예술에 대한 순수한 감동보다는, 소유욕과 과시욕, 그리고 차가운 계산만이 서려 있었지.

이곳은 아이지스 컨소시엄의 세계, 그 자체였어.


"어때, 들리시나요?"


러즈반이 내 옆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


'들려요. 하지만 너무 많은 소음이 섞여 있어요.'


나는 눈을 감고 '에코 No.7'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어.

그것은 분명히 노래하고 있었지.

하지만 갤러리 안을 채운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생각, 보안 시스템이 내는 날카로운 전자음, 그리고 내 자신의 불안감까지 뒤섞여, 그 순수한 멜로디를 온전히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

마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끄러운 공사장 한가운데서 듣고 있는 것 같았지.


우리의 계획은 간단했어.

오늘 밤, 갤러리가 문을 닫은 후, 랄이 물리적인 보안을 뚫고 내부로 잠입하면, 내가 밖에서 코덱스의 원리를 응용해 만든 교란 프로그램으로 전자 감시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여기서 조각상이 내는 고유의 에너지 주파수와 갤러리 보안 시스템의 주파수 패턴을 정확히 읽어내야만 했어.


나는 조각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지.

나는 그 소리의 파동을 내 몸으로 느끼며, 그 복잡한 구조를 머릿속에 기록하기 시작했어.

데이터가 조금씩 쌓이고, 해독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어.


갤러리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어.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대화도, 잔이 부딪히는 소리도, 심지어 배경에 흐르던 미니멀한 음악까지도.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갤러리의 입구 한곳으로 쏠렸지.

그곳에는 절대적인 권위와 카리스마를 온몸에 두른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어.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숨을 멈췄지.

피라미드의 아카이브 속에서,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얼굴.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깊고 위험한 지혜로 변해 있었지만, 그 오만하고 야심만만한 눈빛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마리우스 보스. '아이지스 컨소시엄'의 수장.


"젠장…."


내 옆에 서 있던 랄이, 나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어.

러즈반의 얼굴은 핏기가 가신 채 하얗게 굳어 있었지.

우리 셋 중 누구도, 이 작전의 심장부에서 적의 수장과 직접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야.


보스는 주변의 경외 어린 시선들을 즐기기라도 하듯, 천천히 홀 안으로 들어섰어.

그의 뒤로는 그림자처럼 두 명의 수행원이 따르고 있었지.

그는 자신에게 아첨하러 다가오는 세계적인 거물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그의 진짜 시선은 오직 한 곳, '에코 No.7'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어.

그는 저 조각상이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보스가 조각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수록, 내 귀에 들리던 '에코'의 아름다운 노래에 끔찍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던 멜로디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끼어들었지.

아름다운 화음은 불협화음으로 변했고, 고요한 리듬은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뒤틀렸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자신의 천적을 마주하고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는 것 같았지.

나는 이 끔찍한 '불협화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속이 메스꺼웠지.

이것은 보스가 가진 파괴적이고 통제적인 에너지가, 조각상의 조화로운 에너지와 충돌하며 일으키는 비명이었던 거야.


마침내 보스가 조각상 바로 앞에 멈춰 섰어.

그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었지.

그는 차갑고 분석적인 눈으로, 마치 금고를 열 방법을 찾는 도둑처럼, 조각상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훑어보았어.


그는 코덱스의 열쇠를 원했지만, 그 열쇠를 여는 '노래'를 들을 수는 없는 자였어.

그래서 그는 열쇠를 부수어서라도, 그 안의 비밀을 강제로 꺼내려 하고 있었던 거지.


바로 그때, 보스의 시선이 조각상에서 떨어져, 홀 안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어.

그의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했지.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영원을 경험했지.

그의 눈은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어.

내 두려움, 내 분노, 그리고 내 주머니 속에 숨겨진 코덱스의 단편까지도.

그의 눈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명백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지.


'벌레 같은 놈들이. 감히 우리 것을 넘봐?'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 그 시선을 피할 수조차 없었어.

바로 그때, 랄이 내 앞을 스치듯 지나가며, 그의 거대한 몸으로 보스의 시선을 가로막았어.

러즈반은 내 팔을 살짝 잡아끌며, 출입구를 향해 눈짓했지.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갤러리를 빠져나왔어.

제네바의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자, 나는 그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우리의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최악의 변수를 만나버렸어.

적의 왕이 직접 전장에 나타난 거야.

이제 단순한 잠입 작전이 아니었어.

이것은 사자의 턱 밑에서 먹이를 훔쳐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 되어버린 거지.

조각상이 내질렀던 끔찍한 불협화음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위험한 미래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던 거야.


3절: 스승의 희생, 그리고 마지막 단서


갤러리를 빠져나와 제네바의 차가운 밤거리로 섞여들었지만, 내 등에는 마리우스 보스의 얼음 같은 시선이 여전히 날아와 박혀 있는 것 같았어.

러즈반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험악했지.


"계획을 변경합니다."


랄이 인파 속에서, 우리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그의 목소리에는 강철 같은 결단력이 서려 있었지.


"오늘 밤 잠입은 불가능합니다.

보스가 직접 나타났다는 건, 이곳 전체가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함정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지스의 눈들이 우리를 찾고 있을 겁니다."


"그럼… 코덱스는 어떻게 합니까?

저 조각상의 데이터를 얻지 못하면…."


내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묻자, 랄은 자신의 지팡이를 툭툭 쳤어.

평범한 노신사의 지팡이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최첨단 장비의 위장이라는 것을 직감했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정면돌파. 지금 당장, 저 아수라장 속에서 데이터를 빼내야 합니다."


그의 계획은 무모할 정도로 대담했어.

러즈반과 랄이 갤러리 안에서 소동을 일으켜 보안 요원들과 보스의 시선을 끄는 동안, 내가 그 틈을 타 지팡이 속에 숨겨진 휴대용 고주파수 스캐너로 조각상의 에너지 서명을 녹음한다는 것이었지.

성공 확률은 희박했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어.


우리는 다시 갤러리로 들어갔어.

이번에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지.

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애써 감추며, 다시 '에코 No.7' 근처로 다가갔어.


바로 그때, 러즈반이 움직였어.

그는 갤러리 반대편에서, 어느 유명 미술 평론가에게 다가가 일부러 시비를 걸기 시작했지.


"이 작품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논하자는 게 아니오!

이 작품이 현대 사회의 공허한 물질주의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부족하다는 말이지!"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기 시작했어.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랄이 샴페인을 나르던 웨이터와 '우연히' 부딪혔지.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유리잔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갤러리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어.

보안 요원들이 다급하게 그쪽으로 달려갔지.


'바로 지금이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랄이 건네준 지팡이 손잡이의 작은 버튼을 눌렀어.

지팡이 끝에서 보이지 않는 스캔 필드가 펼쳐져, 조각상이 내는 불협화음의 노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지.

내 감각 속으로, 보스의 존재 때문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에너지의 파동이 쏟아져 들어왔어.

나는 이를 악물고 그 혼돈 속에서 핵심적인 멜로디, 즉 데이터의 원본을 분리해내려 애썼어.


하지만 마리우스 보스는 그렇게 어수룩한 자가 아니었지.


그는 소란이 일어난 두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그의 뱀 같은 시선은 처음부터 오직 한 곳, 나와 조각상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

그는 이 모든 소동이 나를 위한 연극이라는 것을 간파한 거야.


보스가 턱짓으로 짧은 신호를 보내자, 그의 수행원 두 명이 군중을 헤치며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어.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지.


랄이 그들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어.

수행원 한 명이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내 목을 향해 손을 뻗었지.

내 눈앞이 하얘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것은, 러즈반이었어.

그는 조금 전까지 갤러리 반대편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곁으로 와 있었지.

그는 전사가 아니었어.

그의 손에는 무기도 없었지.

그는 그저, 늙고 지친 몸으로 나와 수행원 사이를 가로막고 섰을 뿐이야.


"비켜, 늙은이."


수행원이 경멸적으로 말하며, 품에서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꺼내 들었어.


"러즈반! 안 돼요!"


내가 비명을 질렀지만, 러즈반은 나를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어.

그것은 내가 안전가옥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평온한 미소였지.


"픽!"


귀를 찢는 소음 대신, "픽-" 하는 낮은 파열음이 울렸어.

러즈반의 가슴에 작고 붉은 점이 피어났지.

그의 몸이 힘없이 휘청이며, 내 쪽으로 쓰러졌어.

나는 쓰러지는 그의 몸을 끌어안았지.

그의 몸은 너무나도 가벼웠어.


"라두… 들어야 합니다…."


그가 내 귓가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어.

그의 입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지.


"코덱스를… 완성시켜야 해요…. 사르미제제투사로… 가야만 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의 부름에… 응답해야만…."


그의 눈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져갔어.

그를 지탱하던 '살아있는 불꽃'이, 마침내 꺼져버린 거야.


"러즈반!"


내 절규가 갤러리 안에 울려 퍼졌지만, 그 소리는 이미 시작된 더 큰 혼돈 속에 묻혀버렸지.

랄이 미친 듯이 달려와, 러즈반을 쏜 수행원을 때려눕히고 내 팔을 잡아끌었어.


"정신 차려요, 라두! 여기서 죽을 건가요!"


나는 텅 빈 눈으로, 숨이 끊어진 러즈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어.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코덱스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 거야.

랄은 거의 반쯤 끌다시피 나를 데리고 갤러리의 비상구로 향했어.

나는 스캐너를 미친 듯이 움켜쥐었지.

이제 이것은 단순한 데이터 저장 장치가 아니었어.

이것은 내 동지의 목숨과 맞바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유물이 되어버렸지.


우리는 제네바의 뒷골목으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도망쳤어.


내 뒤에서는 아이지스의 추격과, 동지의 희생, 그리고 '사르미제제투사'라는 마지막 단서가 나를 끊임없이 따라오고 있었지.



4절: 그림자들의 회의


화면 속에는 세계 각지에서 접속한 '아이지스 컨소시엄'의 최고 이사들이 홀로그램 형태로 앉아 있었다.

런던의 금융가, 실리콘 밸리의 기술 거물, 워싱턴의 전직 정보기관 수장, 그리고 홍콩의 미디어 재벌까지.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가상 회의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회의를 주재하는 마리우스 보스의 얼굴이 중앙 화면에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를 완벽하게 통제한, 서늘한 강철과도 같았다.


"제네바에서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었소, 롤프 국장.

우리는 '에코 No.7'을 눈앞에서 놓쳤고, 최정예 요원 둘을 잃었지.

무엇보다, '잘목시스'의 늙은 쥐새끼 하나를 처리하는 데 그쳤을 뿐, 진짜 목표인 콘스탄틴의 손자를 놓쳤소."


독일 지부장인 롤프의 홀로그램이 미세하게 떨렸다.


"죄송합니다, 의장님.

그들의 조력자 '랄'의 전투 능력은 저희 데이터를 훨씬 상회했습니다.

그리고 목표물 라두 마네아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 패턴에서는 저희가 예측할 수 없었던 변수가…."


"변명은 듣고 싶지 않소."


보스가 그의 말을 잘랐다.


"라두 마네아의 파일을 화면에 띄워."


회의실 중앙에 라두의 신상 정보가 3D 형태로 펼쳐졌다.


그의 학력, 논문, 연구 기록, 심지어는 대학 시절의 심리 상담 기록까지, 그의 인생 전체가 발가벗겨진 채 공중에 떠 있었다.


한 이사가 입을 열었다.


"지극히 평범한 학자입니다.

특이점이라면, 그의 조부인 콘스탄틴 마네아와의 유전적, 학문적 유사성 정도군요.

하지만 그가 어떻게 코덱스의 동적 암호 체계를 해독할 수 있었는지…."


보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가 해독한 게 아닐세.

코덱스가 그를 '선택'한 거지.

'잘목시스'의 늙은이들은 아직도 그런 신비주의적인 헛소리를 믿고 있어.

'각성'이니, '공명'이니 하는 것들 말이야."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상황이 바뀌었소.

라두 마네아는 더 이상 회수 대상이 아니야.

그는 이제 우리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즉시 '정화(Purge)' 대상으로 등급을 격상시키도록.

그의 모든 디지털 흔적을 추적하고, 그가 향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을 차단하게.

특히… 루마니아의 '사르미제제투사' 일대를."


보스의 명령에, 이사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라두 마네아의 목숨은, 위대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치워야 할 작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잘목시스가 꿈꾸는 혼돈의 새벽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의 마지막 불씨를 꺼버릴 것이오."


회의는 그렇게, 한 인간의 사형 선고와 함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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