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아버지의 한마디 말

by 이호창

제 4장: 아버지의 한마디 말


낡은 책과의 만남


나의 개인적인 투쟁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자, 역설적으로 나는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전의 고독이 단절과 무력감에서 비롯된 차가운 것이었다면, 이제의 고독은 무거운 책임감과 막막함에서 비롯된 뜨거운 것이었다.

나는 길을 잃은 동료들의 얼굴을, 그들의 상처 입은 주권을 떠올렸지만, 그들을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상처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길 잃은 인도자였다.

육체의 재활은 기계적으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텅 빈 재활실의 공기 속에서 방황했다.

물리치료사는 나의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릎의 각도가 몇 도 더 펴지는 것이, 이 근원적인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팀 닥터 마틴이 내게 무심코 말했다.


“카일런, 몸만 너무 들여다보지 말게.

머리도 좀 식혀야지.

저쪽 휴게실에 선수들이 기증한 책들이 좀 있으니, 가서 바람이라도 쐬면서 들여다 보게.”


그의 말은 의학적인 조언이었지만, 내게는 하나의 계시처럼 들렸다.

나는 절뚝이며, 재활실 구석에 딸린 작은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은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잊혀진 공간이었다.

낡은 소파와 먼지 쌓인 테이블, 그리고 한쪽 벽면을 채운 낡은 책장.

책들은 대부분 빛바랜 소설책이거나, 전성기가 한참 지난 선수들의 자서전이었다.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천천히 훑었다.

<위대한 승리>, <나의 축구 인생>, <챔피언의 심장>… 지금의 내게는 너무나 멀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제목들이었다.


바로 그때, 가장 아래 칸, 다른 책들 뒤에 반쯤 가려져 있던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는 검은색 가죽이었고, 세월의 무게에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아무런 그림도, 저자의 이름도 없었다.

오직 금박으로 새겨졌지만 지금은 거의 지워져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잊혀진 지혜의 파편들>이라는 제목만이 그 책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몸을 숙여 그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책장을 넘기자 오래된 종이와 먼지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처음 몇 페이지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징과 비유로 가득했다.

‘아이온’, ‘플레로마’, ‘소피아’… 외계의 언어처럼 낯선 단어들에 현기증이 났다.

그저 누군가의 헛된 망상이 담긴 책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덮으려던 순간이었다.

나의 시선이 한 단락에 머물렀다.

그 부분은 다른 곳과 달리, 비유가 아닌 명료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 불완전하고 고통으로 가득 찬 물질 세계를 전능하고 선한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계는 빛의 충만함(Pleroma)에서 추락한 하위의 영적 존재가, 자신의 불완전한 지식으로 창조한 감옥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이 유일한 신이라 착각하며, 자신의 무지한 규칙들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강요한다.

고대의 영지(Gnosis)를 가진 자들은 이 오만한 창조주를 ‘데미우르고스(Demiurge)’라 불렀다.

그는 참된 신이 아니라, 영혼들을 물질의 감옥에 가두는 교도관일 뿐이다.”


나는 숨을 멈췄다.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데미우르고스.

자신의 불완전한 규칙을 절대적인 진리라 강요하는 오만한 창조주.

영혼들을 감옥에 가두는 교도관.

이 문장들은 2천 년 전의 낡은 정신 속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의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잔인한 보고서였다.

자신의 시스템을 맹신하고, 그 시스템으로 측정되지 않는 모든 가능성(직관, 감정, 조화)을 ‘오류’와 ‘노이즈’로 치부하며 제거하려는 저 남자.

선수들의 야생적인 영혼을 자신의 완벽한 설계도 안에 가두고,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때 냉혹한 심판을 내리는 저 존재.

보르그 감독은, 바로 이 그라운드의 데미우르고스였다.


이 깨달음은 환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작은 세계가,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비극의 일부였음을 깨달은 자의 서늘한 공명이었다.

나는 그저 흥미로운 지적 유희로 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이 신화가 아니라, 현실을 해부하는 가장 날카로운 메스임을 직감했다.

나는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나 데미우르고스의 감옥이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상위 세계의 빛, 신성한 불꽃의 파편이 잠들어 있다.

데미우르고스는 이 불꽃을 두려워하여, 육체적 고통과 세상의 규칙, 그리고 운명이라는 이름의 두려움으로 그 빛을 억누르려 한다.

구원은 이 감옥을 의미없이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신성한 불꽃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진짜 본질임을 깨닫는 것(Gnosis)에서 시작된다.”


신성한 불꽃.

나는 지안의 검붉은 불꽃을, 엘리안의 청백색 빛을 떠올렸다.

보르그가 그토록 끄려 했던 선수들의 영혼.

어쩌면 그것이, 데미우르고스가 두려워하는 그 빛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나는 먼지 쌓인 휴게실에 홀로 앉아, 낡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 재활실의 기계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래되고 위험한 지혜의 문턱에 서 있었다.

이 책은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더 근원적이고 위험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의 내면에도, 과연 그 불꽃이 남아있는가.



아버지의 신화


데미우르고스.

참된 신이 아닌, 스스로를 신이라 착각하는 오만한 창조주.

그 단어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재활 기구의 단조로운 소음 속에서, 물리치료사의 지시 속에서, 그리고 고통의 파도 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 개념은 너무나 거대하고 기이해서, 서른네 살의, 평생 공만 차온 나의 삶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단어처럼, 낯설면서도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잊고 있던 옛 친구의 이름을 다시 들었을 때처럼, 기억의 저편에서 무언가 희미한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나는 재활 훈련이 없는 오후, 다시 그 먼지 쌓인 휴게실을 찾았다.

그 낡은 책, <잊혀진 지혜의 파편들>을 다시 손에 들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냄새는, 비 오는 날 흙냄새와, 오래된 가죽 축구공 냄새와 함께,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유년의 냄새 중 하나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서재에서 읽던 낡은 역사책들의 냄새와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축구선수인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을 지역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며, 책과 이야기 속에서 조용한 기쁨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경기에서 이기거나 졌을 때, 전술이나 결과에 대해 묻는 법이 없었다.

대신 그는 늘, “오늘 너의 심장을 뛰게 한 순간이 있었니?”라고 묻곤 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승리보다 그런 추상적인 질문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책의 거친 질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는 순간, 마침내 기억의 자물쇠가 삐걱, 하고 열렸다.


아주 오래전, 내가 일곱 살이던 어느 겨울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그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종종, 세상의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는 자신만의 신화를 들려주곤 했다.

그날 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오만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주 먼 옛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가 살았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벽난로의 불빛처럼 따뜻하고 낮게 울렸다.


“그는 완벽한 도시를 만드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지.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을 깎아 건물을 세웠고, 모든 길을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만들었어.

그의 도시는 햇빛 아래서 눈부시게 빛나는, 질서와 조화의 결정체였단다.

하지만 건축가는 만족하지 못했어.”


나는 숨을 죽인 채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설계도 위에 나타나는 아주 작은 ‘오차’들을 견디지 못했단다.

길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로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 자신의 대리석 조각상 위에 둥지를 트는 새들, 그리고 완벽하게 설계된 광장에서 제멋대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도.

건축가에게 그것들은 생명의 증거가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세계를 더럽히는 ‘오류’이고 ‘불협화음’이었지.

그래서 그는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높은 담을 쌓아 들꽃과 새들을 막았고, 더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아이들의 놀이를 금지했어.

그의 도시는 점점 더 완벽해졌지.

소음도, 먼지도,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도 없는, 완벽한 침묵의 도시.

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웃는 법을 잊어버렸고, 아이들은 뛰는 법을 잃어버렸어.

그들은 건축가의 완벽한 설계도 안에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단다.

결국 그 도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죽은 돌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렸지.”


이야기를 마친 아버지는,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카일런. 기억하거라.

생명이 깃들 자리가 없는 완벽함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것이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 예측 불가능한 균열과 틈새에서 피어나는 법이지.”


나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오만한 건축가는 데미우르고스였고, 그의 완벽한 도시는 보르그의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들꽃과 새,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보르그가 그토록 제거하려 했던 선수들의 직관과 창의성, 그 살아있는 불꽃들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 모든 지혜를 내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승리라는 목표에 눈이 멀었던 어린 나는, 그 이야기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조용한 지혜 대신, 건축가의 완벽한 도시를 동경하며 살아왔다.


나는 낡은 책을 가슴에 품었다.

책에서 나던 오래된 종이 냄새는, 이제 아버지의 냄새가 되어 내 허파 깊숙이 스며들었다.


영지주의의 속삭임은, 더 이상 2천 년 전의 낯선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어, 그의 신화가 되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나의 등 뒤에는, 나의 이 고요한 반란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아군, 바로 아버지의 기억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내 안의 불꽃을 찾아야 할 이유와, 그것을 지켜야 할 용기를 얻었다.



새로운 언어의 발견


아버지의 기억은, 낡은 책이 내게 던진 거대하고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해답이었다.

그것은 고대의 낯선 지혜를 나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기억과 연결시켜 주었다.

나는 더 이상 2천 년 전 영지주의자들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벽난로 앞에서 나지막이 진실을 말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보르그의 시스템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

세상을, 그리고 이 작은 그라운드라는 감옥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였다.


나는 책을 덮고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에서는 여전히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전까지 내게 그 풍경은 절망 그 자체였다.

보르그의 통제 아래 질식해가는 동료들, 반복되는 실수의 연쇄, 그리고 희망 없는 미래.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축구 훈련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신화, 그리고 낡은 책의 비유가 현실 세계에 구현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보르그 감독은 더 이상 냉혹한 축구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그라운드라는 자신의 완벽한 도시를 순찰하는 ‘오만한 건축가’였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PC는 설계도였고,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휘슬 소리는 자신의 질서를 거스르는 ‘오류’를 향한 채찍질이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설계를 위협하는 모든 생명력, 모든 예측 불가능한 ‘균열’을 메우고 통제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

그들은 더 이상 단순히 기량이 부족하거나 실수를 연발하는 동료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서, 낡은 책이 말했던 ‘신성한 불꽃’의 흔적을, 건축가가 그토록 경멸했던 들꽃과 새들의 몸짓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안을 보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동료들과의 연계를 무시한 채, 수비수 두 명을 앞에 두고 무모한 드리블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라면 그의 이기심과 팀을 해치는 독단적인 플레이에 혀를 찼을 것이다.

보르그의 언어로, 그것은 ‘성공 확률 9.1%의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언어로, 그의 움직임은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의 저돌적인 드리블은, 건축가의 반듯한 길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갈라진 틈을 비집고 피어나려는, 야생의 들꽃과 같았다.

그의 영혼에 깃든 불꽃은 너무나 뜨겁고 격렬해서, 설계된 길 안에 갇혀있기를 거부하며 홀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의 플레이는 팀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건축가의 돌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굳어버리지 않은 생명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엘리안을 보았다.

그는 지안이 만들어낸 균열을 메우기 위해, 다른 동료의 실수를 덮기 위해, 그라운드 전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보르그의 언어로, 그의 움직임은 ‘비효율적인 이타심’이자 ‘전술적 위치를 벗어난 돌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의 언어로, 엘리안은 이 잿빛 도시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어떻게든 생명의 씨앗을 퍼뜨리려는 새와 같았다.

그의 패스 하나하나는, 굳어버린 동료들의 마음에 균열을 내고, 그곳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으려는 필사적인 시도였다.

그는 연결이 끊어진 세상에서,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실을 잣고 있는 빛의 파편이었다.


나는 겁에 질린 레오를 보았다.

그는 가장 안전한 백패스만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건축가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뛰는 법을 잊어버린 아이였다.

그의 영혼에 깃든 불꽃은, 두려움이라는 두꺼운 돌 아래에 갇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그는 건축가의 도시에서 가장 충실한 시민이었고, 그래서 가장 불행한 영혼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절뚝이는 다리, 지친 얼굴.

나는 건축가의 도시에서 가장 튼튼하고 믿음직한 돌기둥 중 하나였다.

나는 그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의 비명과 내 영혼의 속삭임을 외면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 부서진 무릎은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형벌인 동시에, 그 단단했던 돌기둥에 마침내 생긴 첫 번째 ‘균열’이었다.

이 고통스러운 균열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신화를, 낡은 책의 지혜를, 이 새로운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나를 전율하게 했다.

언어를 바꾸자, 세계의 의미가 바뀌었다.

절망의 풍경은, 이제 장엄한 투쟁의 무대가 되었다.

보르그가 ‘오류’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혼돈’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자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명확해졌다.

나는 더 이상 이 팀의 무력한 부상 선수가 아니었다.

나는 이 새로운 언어를 아는 유일한 해석가이자, 동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잠든 불꽃을 발견하도록 돕는 비밀스러운 안내자가 되어야 했다.


나의 싸움은 그라운드 위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싸움은, 저 건축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언어로, 선수들의 심장에 말을 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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