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삶의 좌표

by 이호창

제20장: 삶의 좌표


질문에 대한 답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의 새로운 하루는 이제 재활실의 국소 진통제 냄새가 아니라, 동틀 녘 축구장의 젖은 풀냄새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구단의 가장 어린 선수들, 12세 이하 유소년팀을 돌보는 이름 없는 멘토였다.

내 왼쪽 무릎은 여전히, 비가 오려는 날이면 어김없이 욱신거렸다.

통증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가두는 감옥의 간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무모했던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오랜 친구와 같았다.


나는 매일 아침, 절뚝이는 다리로 그라운드를 걸으며, 나의 친구와 조용히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떠난 후, FC 얄타브는 많은 것이 변했다.

그들은 여전히 리그 중위권을 맴도는 강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영혼 없는 기계 군단이 아니었다.


엘리안이 새로운 주장이 되었고, 선수들은 그의 리더십 아래 스스로 생각하고 함께 책임지는 팀으로 거듭났다.

지안은 여전히 팀의 가장 날카로운 창이었지만, 그의 불꽃은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태우지 않았다.

그는 이제 동료를 위해 뛰는 법을, 자신의 불꽃으로 동료들의 길을 밝혀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서툰 항해자들이었지만, 자신들만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쥐었다.


아침 햇살이 그라운드 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의 작은 정원의 묘목들이, 웃고 떠들며 공을 쫓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의 무릎에서 작은 피가 배어 나왔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그는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자신을 넘어뜨린 친구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다시 웃으며 공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그 사소하고도 위대한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의 문이 열렸다.

일 년 전, 그 어둡고 차가운 터널 속.

패배감과 고통에 짓눌려, 부서진 갑옷 속에서 신음하던 나의 모습.

나는 그날, 내 영혼 전체를 뒤흔들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이것이… 전부인가?’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다.


나는 그 답이, 내가 잃어버린 영광 속에, 혹은 새로운 승리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침 햇살 속에서 웃으며 뛰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아이의 용기.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친구의 미소.

그라운드를 채우는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속, 고요한 평화.

내 무릎을 조용히 감싸는, 오랜 친구 같은 통증.

나는 마침내, 나의 길고 길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날 터널 속의 절망이 나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의 평화 역시 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절망과 희망, 패배와 승리, 상처와 치유, 고독과 연결.

그 모든 것이, 삶이라는 거대한 그라운드 위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었다.


삶의 좌표는, 승리라는 단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걸어온 모든 길, 우리가 흘린 모든 눈물과 땀방울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대한 지도였다.


‘이것이… 전부인가?’


그래.


이 모든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의 작은 우주를, 그 서툴지만 생명력 넘치는 합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생명력이 있었다.


나는 보았다.

아이들 각자에게서 피어오르는 제각기 다른 빛깔의 불꽃들을.


어떤 아이는 지안처럼 이기적이었고, 어떤 아이는 엘리안처럼 이타적이었다.

그 작은 우주 안에서, 어둠과 빛은 서로 싸우지 않고, 그저 함께 뒤섞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의 역할은 저 불꽃들을 억지로 끄거나, 하나의 색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역할은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불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서로의 빛을 존중하며 함께 타오를 수 있도록,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그때, 유소년팀의 작은 아이 하나가, 공을 몰고 와 내 앞에서 쭈뼛거리며 섰다.


“선생님.”


“왜 그러니?”


내가 묻자, 아이는 수줍게 말했다.


“잘 안돼요. 자꾸 넘어지고, 공을 빼앗겨요.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할 수 있어요?”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는, 아주 오래전 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재능에 대한 갈망, 패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인정받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

나는 보르그 감독이 결코 하지 않았을 대답을 해주기 위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무릎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 통증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축구를 잘하고 싶어?”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 작은 얼굴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럼 내가 질문 하나만 하지.

방금 공을 몰고 달리다가 넘어졌을 때, 화가 났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아쉬웠어요.”


“좋아. 그럼 그전에, 상대방을 제치고 드리블할 때는 어땠지? 기분이.”


“신났어요! 내가 제일 빠른 것 같았어요!”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미소 지었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거면 됐어.

그 감각을 기억해.

넘어지는 건 괜찮아.

공을 빼앗기는 것도 괜찮아.

축구는 원래 그런 거니까.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이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순간이 즐거워야 한다는 거야.

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 거지.

나머지는 전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어.

약속할게.”


아이는 내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는 그 모습을, 그라운드에 아침 햇살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나는 더 이상 승리를 설계하는 건축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작은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였다.

나는 내 상처투성이 무릎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낡은 축구화를.

그리고 나의 거친 손을.

나는 패배했다.

선수로서의 나는, 완벽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기고 지는 것 너머에 있는, 삶의 더 깊은 진실과 마주했다.

그것은 연결의 기쁨이었고, 성장의 감동이었으며,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용기였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바쳐 추구했던 그 어떤 승리보다도, 훨씬 더 눈부신 것이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새벽의 그라운드에서


나는 홀로, 동이 트기 전의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밤의 장막이 걷히고, 세상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깨어나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허파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공기 속에는, 젖은 풀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의 냄새였다.

나는 절뚝이며, 그라운드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나의 낡은 무릎은, 새벽의 한기 속에서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나는 그 통증을, 오랜 친구의 악수처럼, 반갑게 맞았다.

나는 더 이상, 나의 불완전함과 싸우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나와 화해했다.


나는 그라운드의 중앙에 섰다.

내가 평생을 바쳤던 이 네모난 공간.

한때는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전쟁터였고,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으며, 나를 추방했던 절망의 땅.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나의 작은 우주이자,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성소이며, 나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좌표의 원점이었다.


저 멀리, 동쪽 하늘이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밀어내고, 세상의 윤곽을 그려내는, 새벽의 첫 빛.


나는 일 년 전, 보조 구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맞이했던 그 새벽을 떠올렸다.

그것은 저항의 새벽이었고, 약속의 새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맞이하는 이 새벽은, 그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고요한 평화의 새벽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들려왔다.

바람이 잔디를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첫 기적 소리.


그리고 내 안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울리는, 나의 심장 소리.

나는 더 이상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저, 존재했다.

이 새벽의 그라운드 위에, 온전한 나 자신으로.


해가 떠올랐다.

따스한 햇살이, 나의 지친 어깨와, 흉터 가득한 무릎과, 모든 것을 겪어낸 나의 얼굴 위로, 공평하게 쏟아져 내렸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는, 마침내,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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