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ia Concordia Crescit”

by 이호창

‘아스날’의 라틴어 모토- Victoria Concordia Crescit


“승리는 조화를 통해 자란다.”




“Victoria Concordia Crescit”는 단지 아스날의 상징 구호로 그치지 않는다. 이 짧은 라틴어 문장은 세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속에는 인간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가 압축되어 있다. 승리(victoria)는 누구나 원하지만, 그 승리를 어떤 방식으로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대답이 달랐다. 어떤 이는 경쟁과 파괴를 통해 승리를 말했고, 어떤 이는 힘과 지배를 통해 승리를 정의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전혀 다른 길을 말한다. “승리는 조화를 통해 자란다.” 이 말은 힘이 아니라 관계에서, 지배가 아니라 공존에서 승리의 씨앗이 싹튼다는 것을 말한다.

먼저 victoria라는 말은 라틴어 동사 vincere, 즉 ‘이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여성 명사로, 단순한 경쟁의 결과를 넘어서 ‘갈등 이후의 상태’를 상징한다. 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적을 무너뜨린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고, 공동체 안의 관계를 다시 세우며, 차이를 극복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상태의 성숙’이다. 이 승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영광이라기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균형과 평형의 상태를 뜻한다. 그것이 단지 전장에서의 ‘이김’이 아니라 삶 전체의 윤리적 승리를 가리키는 이유다.

두 번째 단어 Concordia는 매우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다. con은 함께를 뜻하고, cor는 ‘마음’을 뜻하는 라틴어다. 그러므로 concordia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이 함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조화는 억지로 맞춰진 통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유한 차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울림을 만드는 상태다. 플라톤이 말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상태’에 가까우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동체에서의 인간을 정의한 방식과도 닿아 있다. 이 조화는 단순히 외형적 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들의 고유한 리듬이 부딪히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어울리는 ‘관계의 형식’이다.
이 단어가 탈격(ablative)으로 쓰였다는 문법적 특징도 매우 중요하다. 라틴어에서 탈격은 ‘~을 통해’, ‘~에 의해서’ 라는 도구적 의미를 갖는다. 즉, 이 문장은 조화가 단지 곁에 있는 조건이 아니라, 승리를 가능하게 하는 ‘통로’라는 것을 말한다. 조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의 통로다. 이 통로 없이는 승리는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이 된다. 우리가 종종 보는 단기적 승리들, 땜질식 성공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는 조화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조화 없이 얻은 승리는 곧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무너지게 된다.

마지막 단어 crescit는 동사 crescere의 현재형이다. ‘자라다’, ‘성장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는 식물의 성장이나 인간의 발달에도 쓰이는 동사다. 즉, 승리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라는 것’이다. 성장의 이미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필요하고, 끈기와 반복이 필요하다. 조화 속에서 승리가 자란다는 말은 곧, 일시적인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성숙을 동반한 ‘유기적 성공’을 말한다. 그 승리는 전쟁의 승리처럼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내면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전체 문장을 직역하면 “승리는 조화를 통해 자란다”이다. 그러나 이 문장의 의미는 단순히 문자적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화 속에서 성장하는 승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아스날이 이 모토를 채택한 이유는 단순한 슬로건 이상의 철학을 팀에 새기기 위해서다. 아르센 벵거는 이를 전술과 철학으로 녹여냈고, 미켈 아르테타는 그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축구의 역동성 속에 새롭게 불어넣고 있다.

결국 이 문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너는 어떤 승리를 바라는가?” 조화 없는 빠른 승리를 원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내면의 균형 속에서, 타자와의 공존 속에서 자라나는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자라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승리는 단지 경기장의 점수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우리 사회의 진짜 ‘이김’으로 남는다. Victoria Concordia Crescit. 이 말은 모든 경쟁 사회 속에 던져진 조용한 경고이자 희망의 문장이다. 승리는, 반드시 조화를 통해 자란다.

아르테타의 아스날은 단순한 전술적 구조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그들은 ‘이기는 방법’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팀이며, 그 해답은 아스날의 라틴어 모토인 Victoria Concordia Crescit, 즉 “승리는 조화를 통해 자란다”는 문장에 정확히 담겨 있다. 이 모토는 단순히 경기 전 유니폼에 새겨진 구호가 아니라, 전술의 뼈대이자 팀의 존재 방식이며, 철학적 실천의 지향점이다.

아르테타의 팀은 무엇보다 “선(line)과 간격(spacing), 그리고 흐름(flow)”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는 단순히 훈련의 결과물이 아니라, 각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간과 타이밍을 열어주는 지능적 관계의 총합이다. 이 관계는 축구장 안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라커룸의 태도, 감독과 선수 간의 신뢰, 선수들 사이의 자율성과 책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이 모든 것이 ‘조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인다. 조화는 전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예를 들어, 골키퍼 다비드 라야는 단순한 수비수의 뒷자리가 아니다. 그는 경기의 리듬을 설계하고, 전체 구조를 안정시키는 전술적 지휘자다. 그의 킥은 단지 멀리 보내는 발차기가 아니라, 수비 라인을 열고, 상대 압박을 깨며, 팀 전체의 흐름을 조율하는 전략적 명령이다. 라야의 움직임에 따라 살리바와 가브리에우는 간격을 조정하고, 측면의 벤 화이트와 팀버, 키위오르, 진첸코, 토마스 파티, 칼리피오리, 스켈리 등은 그의 시야를 확장하며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패턴 플레이가 아니다. 공간, 거리, 리듬에 대한 공동 감각의 발현이며, 이것이 바로 concordia의 구현이다.

중원은 아르테타 축구의 심장이다. 라이스, 외데고르, 하베르츠, 메리노 등은 각기 다른 리듬과 역할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조화를 만들어낸다. 라이스는 상대의 전환을 차단하고, 공을 전진시키며 중원의 안정성을 부여한다. 외데고르는 오른쪽 측면과 중앙 사이에서 전술적 방향 전환의 축 역할을 수행하며, 동료들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하베르츠는 가장 흥미로운 변수다. 그는 때로는 미드필더처럼 연결을 돕고, 때로는 스트라이커처럼 박스 안에 침투하며, ‘고정되지 않은 존재’로서 공간을 흔들고 열어준다. 이 삼각형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관계의 형식이며, 살아 있는 조화의 장면들이다.


이러한 조화는 단순히 훈련을 통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를 인식하고 신뢰하며, 함께 움직이되 억누르지 않는 자유에서 나온다. 아르테타는 선수들에게 자율성을 주되, 그 자율이 전체 구조를 깨지 않도록 철저히 설계한다. 하베르츠는 때로 전방에서 보이지 않는 압박을 수행하며, 때로는 자신이 빛나지 않더라도 팀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감수한다. 이것은 고통 없는 조화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품는 조화이며, 그것이 바로 crescit, 성장의 시작이다.


윙어들 사이의 비대칭적 구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사카는 안으로 파고들며 연결을 시도하는 내향적 플레이메이커이고, 마르티넬리는 외곽을 돌파하며 수직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외향적 전진자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선수는 서로의 존재를 침범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 수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결정적 조화를 이룬다. 이 비대칭은 균형을 깨기 위한 무기이면서도, 팀의 흐름을 유지하는 은밀한 설계이기도 하다. 차이의 인정이 곧 조화의 시작이며, 이는 concordia의 철학적 본질을 설명해준다.


벤 화이트는 풀백의 위치에서 단순히 수비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원으로 수시로 침투하며 라이스와의 거리를 유지하거나 외데고르의 커버를 수행한다. 이 움직임은 전술적으로 계획된 것이지만, 실제 경기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선수 개개인의 높은 이해력과 관계적 직감이 필요하다. 즉, 전술은 종이에 그려지지만, 조화는 사람 사이에서 울린다.

결국 아르테타의 아스날은 단지 축구를 잘하는 팀이 아니라, 조화로운 존재 방식이 어떤 성장을 낳는지를 몸으로 증명하는 팀이다. 이들은 단지 이기기 위해 경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 순간 답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은 명확하다. “승리는, 조화를 통해 자란다.”

이 문장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상징이 아니다.
아르테타의 팀은 그것을 훈련하고 있고, 실현하고 있으며, 매 경기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기되, 조화 속에서 이기고 있다.
그 승리는 단지 점수판 위의 기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들이 만들어낸 윤리적 합주(合奏)”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조화가 어떻게 승리를 낳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Victoria Concordia Crescit.


아스날은 지금 그 문장을 ‘살아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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