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두 번의 궤적

by DrLeeHC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고 득점을 기록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적 움직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함께 존재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묻는, 살아있는 철학입니다. 특히 현대 축구의 최전선에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명문 클럽 아스날 (Arsenal FC)이 보여주는 방식은 단순한 전술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해석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태도의 근원적 전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9일,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Emirates Stadium)은 현대의 콜로세움이었습니다. 유럽 축구의 정점에서 맞붙는 두 거인, 아스널과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의 신화적 격돌이 예정된 무대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이라는 무게는 경기장 전체를 무거운 침묵과 들끓는 기대감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단지 두 팀의 승패를 가르는 시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철학, 즉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낡은 세계와 ‘집단의 유기적 연결’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충돌하는 장이었습니다. 전반전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서로의 수를 읽고 허점을 탐색하는 체스 마스터들의 대국처럼, 양 팀은 견고한 수비벽을 쌓고 득점 없이 0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거대한 폭풍 전야의 정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스널의 축구는 고전적인 ‘토탈 사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포지션의 고정된 역할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호흡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입니다. 공격수는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 공간을 메우고, 수비수는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 전진합니다. 그 결과 경기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조화롭게 이어지며, 한 명의 움직임이 전체의 리듬을 바꾸고, 그 리듬은 다시 다른 이의 결정을 이끕니다. 이러한 유기적 전술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정밀한 현실 감각과 전략적 계산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무한정 압박하지 않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공의 소유를 허락하며 수비 대형을 갖추고 숨을 고릅니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폭발을 위한 응축의 시간이며, 에너지가 회복되면 다시 전원이 하나의 물결처럼 밀고 올라가 상대를 잠식합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는 여전히 개별의 천재성에 기대는 전통적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킬리안 음바페 (Kylian Mbappé),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Vinícius Júnior)와 같은 스타가 공을 잡고, 그들의 번뜩이는 재능으로 경기를 바꿔주길 기대합니다. 이런 방식은 화려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합니다. 한 사람이 침묵하면, 팀 전체가 함께 길을 잃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축구는 잘 짜인 오케스트라라기보다, 한 명의 독주자를 위해 마련된 무대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두 팀의 운명이 갈렸습니다. 누구 하나를 막는다고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팀, 누구 하나를 넘는다고 전체를 넘은 것이 되지 않는 팀을 만났을 때,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던 레알 마드리드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후반전의 막이 오르고, 경기의 서사는 마침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그 철학적 함의를 드러냈습니다. 아스널의 끊임없는 유기적 압박이 만들어낸 균열의 순간, 후반 13분에 데클란 라이스 (Declan Rice)가 프리킥 기회를 맞았습니다. 공 앞에 선 그의 모습은 마치 제단 앞에서 의식을 준비하는 사제처럼 비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진정한 의식은 라이스 한 사람의 발끝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라운드에 서 있는 동료들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라이스가 킥을 하는 바로 그 찰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벽 앞에 서 있던 아스널의 선수들은 약속된 하나의 유기체처럼 교묘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들의 미세한 이동은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미세하게 흔들어 작은 틈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거미줄처럼 티보 쿠르투아 (Thibaut Courtois)의 시야 앞에 순간적인 장막을 쳤습니다.


바로 그 장막 너머로, 라이스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모든 이의 예상을 배반하는 궤적을 그렸습니다. 공은 처음에는 골대를 벗어나는 듯 바깥으로 향하다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듯 안쪽으로 휘어지며 동료들이 만들어 낸 바로 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 골은 라이스 개인의 작품이기에 앞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열어준 동료들의 헌신과 아스널이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함께 연주한 한 편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의 기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후반 25분, 거의 같은 위치에서 얻은 두 번째 프리킥의 순간, 첫 번째 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완벽한 재연이 이루어졌습니다. 라이스가 숨을 고르자, 동료들은 또다시 같은 의식을 반복했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정교해져,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을 순간적인 혼란에 빠뜨렸고, 쿠르투아의 눈을 다시 한번 가렸습니다. 그 완벽하게 조율된 혼돈 속에서, 라이스의 발을 떠난 공은 이전보다 더욱 완벽하고 요원한 호를 그렸습니다. 수비벽을 넘어선 공은 중력을 거스르는 듯 잠시 속도를 늦추는가 싶더니, 골문 앞에서 다시 살아나듯 가속하며 뱀처럼 휘어져 들어갔습니다.


이 두 번의 프리킥은 챔피언스리그 역사에 기록될 위업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바였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의지와 집중이 어떻게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하는지에 대한 증명이자, 동시에 그 위업이 결코 고립된 개인의 힘만으로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는 서사시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간을 만들고 시야를 가려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라이스의 궤적은 비로소 마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함께'라는 구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전한 증명이었습니다.


이 날의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 (Thibaut Courtois)의 고군분투는 영웅적이면서도 비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아스널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홀로 막아서는 방파제처럼 수차례 경이로운 선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축구는 한 명의 손끝으로 끝까지 막아낼 수 없는 경기입니다. 그의 영웅성은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고, 결국 아스널의 파도 같은 압박 아래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패배는 몇몇 선수의 실수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구조의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아스널의 선수들은 단지 공을 찬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축구를 넘어 삶과 존재를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나의 움직임은 타인의 움직임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을, 지금 아스널이 그라운드 위에서 살아있는 철학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짝이지 않을 수 있으나, 아주 오래도록 깊은 울림을 남길 것입니다.



https://youtu.be/z8CNqUYASPE?si=SRaD-gTqpN8l_R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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