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녹지 위에서 펼쳐지는 축구의 드라마는, 때때로 우리 삶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골대를 향해 공을 차며 꿈꾸던 순간, 또는 경기장에서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느껴지는 전율은 단순한 스포츠의 재미를 넘어,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선수들이 감독으로 변신할 때, 그들의 빛나는 과거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게도 그 기대를 저버리곤 합니다. 필드의 전설들이 지휘봉을 쥐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묻습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팀 전체에 전파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스포츠 분석을 넘어, 진정한 리더십과 스승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이를 위해, 먼저 위대한 선수들의 실패를 통해 그들의 한계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명문팀 아스날에서 보여준 눈부신 드리블과 골 감각으로 축구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한 예술에 가까웠고, 수많은 팬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배했습니다. 그의 몸이 곧 전술이었고, 그의 직관이 곧 해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여정은 그 빛을 잃었습니다.
2018년 AS 모나코에서 시작된 그의 지휘는 불과 103일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술적으로 그는 팀의 강점을 살리기보다 자신의 이상을 주입하려는 듯한 부정적인 접근을 취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를 과도하게 배치한 포메이션은 팀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공격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오히려 선수 개개인의 약점을 노출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발이 느린 수비수 카밀 글릭 (Kamil Glik)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못하는 백쓰리 시스템은 상대 공격수들에게 손쉬운 뒷공간 침투를 허용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전술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수들과의 관계는 더욱 심각한 균열을 보였습니다. 앙리는 훈련 중 미숙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에게 “내가 너보다 더 잘하겠다”와 같은 말을 서슴지 않았고, 젊은 수비수 베누아 바디아실레 (Benoît Badiashile)가 기자회견에서 의자를 정리하지 않고 떠나려 하자 공개적으로 그를 질책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최고의 존중과 프로 의식을 요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조급함과 실망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리더로서의 존중을 잃었습니다. 결국 선수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이사회와의 긴급회의 끝에 그는 불명예스럽게 해임되었습니다.
앙리의 실패는 자신의 천재적 직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축구는 의식적인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본능이었습니다. 그는 필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자신의 재능을 모든 선수가 노력하면 따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로 착각한 듯합니다. 이 치명적인 착각은 선수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로 이어졌고, 팀의 유기성을 파괴하는 독이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바로 위르겐 클린스만 (Jürgen Klinsmann)입니다. 독일 대표팀의 전설적인 공격수로서 월드컵 득점왕에 오르며 명성을 떨친 그는, 선수 시절 그라운드 위에서 모든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 댈러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펼쳐진 대한민국과의 조별 예선전은 그의 위대함을 각인시킨 무대였습니다. 당시 그는 두 골을 터뜨리며 독일의 3-2 승리를 이끌었는데, 그의 움직임은 한국 수비진에게는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동물적인 골 감각으로 한국의 골문을 유린하며 한 명의 위대한 선수가 어떻게 경기의 흐름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팬들에게는 뼈아픈 기억이지만, 그 순간 클린스만은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라운드의 영웅이었던 그의 코칭 경력은 반복적인 실패로 점철되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혁명’을 외치며 팀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으나, 전술적인 준비 부족과 선수단과의 불화로 인해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바르셀로나에게 0-4 참패를 당하며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습니다. 헤르타 베를린에서의 76일간의 재임은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오랜 기간 팀에 헌신해 온 골키퍼 코치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해고하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아들인 조나단 클린스만 (Jonathan Klinsmann)의 복귀를 조건으로 장기 계약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이는 실력주의가 아닌 연고주의, 즉 네포티즘 (nepotism)으로 비치며 클럽 수뇌부와의 갈등을 키웠습니다. 전술적으로도 그는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접근으로 팀의 창의성을 억압했습니다. 결국 그는 구단과의 상의 없이 개인 페이스북 포스트를 통해 일방적으로 사임을 발표하며 팀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클린스만의 실패는 그가 이후에 맡은 미국 대표팀과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도 정확히 반복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정신력’과 ‘투지’를 강조하며 혁명을 약속했지만, 정작 전술적 세밀함과 체계적인 선수 관리라는 감독의 본질적인 역할에서는 무능함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근본적인 문제는 1994년의 영웅이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팀 전체에 투영하려 한 데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나 강력한 정신력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낡은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11명의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시스템이며, 영웅 한 명의 힘이 아닌, 11명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완성됩니다. 클린스만은 이 단순한 진리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24년 아시안 컵 준결승에서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요르단에게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히죽히죽 웃으며, 아무런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도리어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스타플레이어가 한 방 해주겠지 하고 관망했던 태도는 우리 축구팬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사례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바로 시모네 인자기 (Simone Inzaghi)입니다. 선수 시절 인자기는 SS 라치오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발휘했지만, 그의 형인 필리포 인자기 (Filippo Inzaghi)의 그늘에 가려져 있거나, 기술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화려한 드리블이나 강력한 슈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읽고,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골을 만들어내는 위치 선정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어떻게 하면 팀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지를 평생에 걸쳐 고민한 선수였습니다.
2021년 인테르 밀란에 부임한 후, 그는 3-5-2 포메이션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선수들을 정해진 자리에 세워두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권을 유지하며 짧은 패스로 차분히 빌드업을 전개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되, 선수들의 유기적인 로테이션을 통해 유연성을 극대화합니다. 중앙 수비수가 미드필더 진영까지 올라와 빌드업에 관여하고, 윙백이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거나 미드필더가 최전방으로 침투하는 등의 움직임은 상대 팀이 예측할 수 없는 다채로운 공격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상대의 강한 압박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는 주저 없이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다이렉트 플레이로 전환하며 놀라운 적응력을 보입니다. 수비적으로는 견고한 미드 블록을 형성해 중앙 공간을 밀집시키고, 상대를 측면으로 유도한 뒤 강력한 압박으로 공을 탈취하는 ‘측면 트랩’을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러한 정교한 전술 시스템은 특정 스타 선수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기에 더욱 강력합니다. 인테르는 로멜루 루카쿠 (Romelu Lukaku)나 아슈라프 하키미 (Achraf Hakimi) 같은 핵심 선수들을 재정 문제로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선수인 하칸 찰하노을루 (Hakan Çalhanoğlu)를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즉 피벗 (pivot) 역할로 성공적으로 재배치하는 등,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시스템 안에서 극대화하며 오히려 더 강한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결과는 실로 인상적입니다. 세리에 A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그리고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는 개인의 재능이 아닌, 팀의 유기적 연계와 감독의 명확한 철학이 빚어낸 결실입니다. 인자기는 선수 시절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인식했기에,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그들을 빛나게 하는 데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 감독의 사례는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통찰을 불러일으킵니다.
앙리나 클린스만처럼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가 가르침에 실패하는 이유는 인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문성의 저주 (curse of expertise)’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특정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을 너무나 당연하고 무의식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없는 초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천재적인 선수들은 자신의 신들린 듯한 플레이를 논리적인 단계로 분해하여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냥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의 천재성은 일반인들이 따라할 수 없는 자신들 만의 축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플라톤 (Platon)이 『국가』에서 제시한 ‘동굴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평생 동굴 안에서 그림자만 보고 살던 사람들에게,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 즉 이데아의 빛을 본 사람이 돌아와 빛의 세계를 설명하려 해도 동굴 속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고 배척할 뿐입니다.
앙리와 클린스만은 동굴 밖의 빛을 본 자들이지만, 어둠 속 동료들에게 빛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반대로, 인자기처럼 평범함의 한계를 딛고 노력으로 동굴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한 자야말로, 동굴 속에 남겨진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스승의 본질은 완벽함의 과시가 아니라, 깊은 공감과 올바른 방향 제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탁월함, 즉 덕 (arete)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습관이 반복되어 형성되는 실천적 지혜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완벽함을 모방하도록 강요하는 자가 아니라, 각자의 수준과 특성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고 꾸준한 실천을 통해 그들 각자의 덕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스포츠 리더십 철학에서도 코칭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팀 전체의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효과적인 코치는 선수들의 약점을 비난하는 대신 시스템으로 보완해주고, 팀의 전체성을 개인의 영광보다 우선시합니다. 이는 학습자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변혁적 가르침 (transformational teaching)’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시모네 인자기의 성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선수들의 한계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단점을 전술적 위치와 유기적인 연계로 보완해주며,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운 플레이를 통해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단 축구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사, 부모, 그리고 조직의 리더로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하고 과시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여정에 공감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서 비롯됩니다. 완벽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모두의 우상이자 영웅이 될 수는 있으나, 위대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 온 자야말로, 타인의 성장을 이끌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축구 필드가 그러하듯, 우리의 삶 또한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두의 협력을 통해 비로소 아름답게 빛나는 것입니다. 이 깊은 깨달음이 우리 모두를 더 나은 스승이자 리더로 이끌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