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평등이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꿈과 좌절

by 이호창

제8장: 평등이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꿈과 좌절


8.1. 역사 발전의 필연성: 과학적 법칙을 내세운 거대한 예언


우리는 모두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내일의 날씨가 궁금해 일기예보를 보고, 노후의 안정을 위해 경제 전망을 살피며,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운명을 점쳐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내일의 날씨가 아니라 인류 역사가 나아갈 최종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것이 신비로운 예언이나 점괘가 아니라,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과 같은 명백한 ‘과학적 법칙’이라고 주장한다면 말입니다.


19세기 중반,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는 바로 이 거대하고도 매혹적인 주장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단순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발전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역사과학’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표는, 이전의 모든 유토피아 사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권위와 설득력을 마르크스주의에 부여했습니다.


그들이 『공산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과 같은 저작을 통해 제시한 핵심 이론은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진짜 동력은 위대한 영웅의 의지나 숭고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질’, 즉 한 시대의 생산 방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계급 간의 투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역사는 원시 공산제에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를 거쳐 그들이 살던 시대인 자본주의로 필연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의 기관차는 결코 자본주의라는 역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예언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처럼 확신에 차서 역사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사상 깊은 곳에 세상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강력한 엔진, 즉 ‘변증법 (Dialectic)’이라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그가 깊이 존경했던 독일의 철학자 헤겔 (G.W.F. Hegel)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헤겔의 변증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모순’을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의 ‘정(正, Thesis)’이 있으면, 그 내부에는 반드시 그것을 부정하는 ‘반(反, Antithesis)’이 싹트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양쪽의 장점을 모두 포함하는 더 높은 차원의 ‘합(合, Synthesis)’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씨앗(정)이 흙 속에서 썩어 자신을 부정하는(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꽃(합)으로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 강력한 변증법적 엔진을 빌려왔지만, 그 적용 대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헤겔이 ‘정신’과 ‘이념’의 발전에 주목했다면, 마르크스는 오직 ‘물질’과 ‘계급’의 투쟁에만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입니다. 이 새로운 안경을 쓰고 자본주의를 들여다보자, 마르크스는 그 안에 내장된 치명적인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정(Thesis):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 지배계급인 부르주아가 있습니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윤을 추구하며 시대를 지배합니다.


반(Antithesis): 그런데 자본주의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키워야만 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당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운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즉,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팔 사람을 스스로 고용하는 셈입니다.


합(Synthesis): 이윤을 향한 부르주아의 끝없는 탐욕이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극에 달하게 할 때, 이 둘 사이의 모순은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그 모든 모순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 즉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탄생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과학적’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순과 투쟁이 곧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의 가장 깊은 뿌리는, 놀랍게도 헤겔을 넘어 17세기 독일의 구두 수선공이자 위대한 신비사상가였던 야콥 뵈메 (Jakob Böhme)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뵈메는 신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모든 존재가 ‘긍정과 부정’, 즉 ‘예(Yes)’와 ‘아니오(No)’ 사이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통찰했습니다. 어둠이 없으면 빛을 알 수 없듯, 신조차도 자신 안의 ‘분노의 불꽃 (어둠, 부정)’을 통해 비로소 ‘사랑의 빛 (밝음, 긍정)’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뵈메의 신비주의적 변증법은 헤겔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헤겔을 통해 다시 마르크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마르크스가 ‘과학’이라고 불렀던 냉정한 계급투쟁의 논리 밑바닥에는, 이처럼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운 모순의 투쟁을 통해서만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의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관이 용암처럼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예언이 단순한 경제 분석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대한 구원의 서사가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주장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종교적 예언과도 같은 서사였습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레몽 아롱 (Raymond Aron)이 『지식인의 아편』에서 지적했듯, 공산주의는 신 없는 종교, 즉 ‘세속 종교’로서 기능했습니다. 이 새로운 종교에는 예언자(마르크스와 엥겔스), 신성한 경전(『자본론』), 선택받은 민족(프롤레타리아 계급), 그리고 약속된 땅(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이 ‘과학적 예언’이 당시 고통받던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나의 현재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역사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성장통이자, 내가 바로 그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증표였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에 동참하는 것은, 단순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 활동을 넘어, 역사의 필연적인 법칙을 실현하는 신성한 사명에 동참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나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이 절대적인 확신은, 신도들에게 그 어떤 희생과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덕적 명분을 주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자 가장 위험한 함정은, 바로 이 ‘역사 발전의 필연성’이라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미래가 과학의 이름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 정해진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역사의 진보에 저항하는 반동분자’일 뿐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토론의 상대가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이 됩니다.


이처럼 인류 해방을 약속했던 위대한 과학적 예언은,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최악의 독재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8.2. 프롤레타리아 독재: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과정의 비극


굶주리는 아이에게 줄 빵을 훔치는 아버지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도덕 법칙 앞에서 그의 행동은 분명 죄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그의 죄를 선뜻 단죄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나쁜 수단도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의 양심을 흔드는 오래된 딜레마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딜레마가 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한 국가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핵심 원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의 과도기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라는 매우 논쟁적인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독재’라는 단어는 끔찍한 폭력과 억압을 떠올리게 하지만, 마르크스가 처음 이 말을 사용했을 때의 의도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에게 이것은 갓 태어난 혁명의 아기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비상조치’와도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권력을 잃은 옛 지배계급(부르주아)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국내외의 모든 반동 세력을 규합하여, 이 연약한 혁명의 싹을 짓밟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혁명을 지키고, 계급 없는 평등 사회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일시적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적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분쇄’해야만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습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소수의 독재자를 위한 영원한 폭정이 아니라, 다수인 노동자 계급이 소수인 옛 지배계급을 제압하기 위한 ‘임시적인’ 민주적 독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인류 해방이라는 숭고한 꿈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질되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숭고한 목적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들이 공유해 온 섬뜩한 자기 변명이었습니다.


첫째, ‘임시적인’ 비상조치는 너무나 쉽게 ‘영원한’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혁명의 ‘적’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외부의 적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이제 의심의 눈초리는 내부를 향하게 됩니다. 혁명의 열정이 식었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노선에 미세한 비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어제의 동지들이 ‘인민의 적’이자 ‘반혁명 분자’라는 새로운 이름의 적으로 규정됩니다. 혁명을 지키기 위한 독재는, 그 독재 권력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영원한 공포 정치로 변질됩니다.


둘째, ‘수단’은 결국 ‘목적’을 오염시키고 파괴합니다. 인간을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궁극의 목적을 위해, 혁명가들은 비밀경찰을 만들고, 사상범을 위한 수용소를 지으며, 재판 없이 사람들을 처형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더러운 구시대를 청소하기 위해 잠시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폭력이라는 수단에 한번 익숙해진 권력은 결코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습니다. 폭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리고, 해방을 꿈꾸던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타도했던 옛 압제자들과 똑같은, 혹은 더욱 잔인한 괴물의 얼굴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과 볼셰비키는 바로 이 비극적인 과정을 현실 속에서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혁명을 위협하는 ‘백군’과 싸운다는 명분 아래, ‘체카 (Cheka)’라는 무시무시한 비밀경찰을 창설하고 ‘적색 테러 (Red Terror)’를 자행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민의 적’이라는 모호한 이름 아래 재판 없이 처형당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계급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고(産苦)’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숭고하고 아름다운 목적지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 폭력과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포장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의 모습마저 잊어버린 채, 수단 자체가 만들어낸 지옥 속을 헤매게 될 뿐입니다. 이상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천국을 향한 열정이 종종 지상에 지옥을 건설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이 끔찍한 아이러니에 있습니다.



8.3. 계획경제의 모순: 인간의 욕망과 창의성을 통제하려는 시도의 실패


자본주의 시장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상품은 너무 많이 만들어져 낭비되고, 어떤 상품은 부족해서 가격이 폭등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황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기업들은 오직 이윤만을 위해 비인간적인 경쟁을 벌입니다. 이 모든 비합리적인 혼돈과 낭비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 국가의 모든 생산 활동을 가장 똑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계획 아래 관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제시했던 매력적인 경제 모델, ‘계획경제 (Planned Economy)’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변덕스러운 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국가의 중앙 계획 기관이 마치 한 가정의 살림을 꾸리는 주부처럼,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할지를 이성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숭고했습니다. 낭비를 없애고, 실업을 없애며,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재화를 공평하게 분배하여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 이론적으로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을 극복한, 가장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시스템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이성의 꿈은, 현실 속에서 왜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 즉 ‘지식의 문제’와 ‘인간 본성의 문제’에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식의 문제’입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그의 저서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에서 경고했듯, 소수의 엘리트 계획가들이 사회 전체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지식과 필요를 모두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치명적 자만 (Fatal Conceit)’입니다. 시장 경제의 ‘가격’은 단순히 물건값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자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행동한 결과가 집약된, 하나의 거대한 ‘정보 신호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커피 가격이 오르면, 전 세계의 카페 주인들은 브라질에 서리가 내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도 커피를 아껴 쓰거나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신호를 즉각적으로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계획경제는 이 역동적인 정보 시스템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소수의 계획위원회라는 중앙 처리 장치에 구겨 넣으려 했습니다. 도시 전체의 점심 메뉴를 한 사람이 계획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수백만 명의 각기 다른 입맛,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 식당들의 재고 상황, 그리고 그날의 교통 체증까지, 이 모든 변수를 중앙에서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조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비극적인 희극이었습니다. 소련에서는 신발 공장이 수년간 왼쪽 신발만 수백만 켤레를 생산하거나, 수확철에 농기계 대신 콤바인을 수리할 부품이 도착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생산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만성적인 물자 부족과 상상 이하의 품질 저하로 이어져, 인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는, 이 지식의 문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 계획경제의 실패는 단순히 정보 처리 능력의 한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인 ‘욕망’과 ‘창의성’을 적으로 규정하는 치명적인 모순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계획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계획 당국이 ‘인민의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숭고한 목표 아래,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올해는 트랙터 100만 대를 생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합시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한정된 국가의 공장과 노동력, 그리고 원자재는 모두 트랙터를 만드는 데 투입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줄 다른 모든 것들의 생산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계획 당국의 눈에는 트랙터가 가장 중요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튼튼한 트랙터만큼이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예쁜 색깔의 옷을 원하고, 정해진 혁명가요 대신 사랑을 노래하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을 신봉하는 전체주의의 눈에, 이러한 개인적인 욕망들은 국가의 위대한 계획을 방해하고 공동체의 통일을 저해하는 ‘이기적’이고 ‘부르주아적인’ 불순물일 뿐입니다.


그 결과, 계획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는 겉으로는 질서가 잡혔을지 모르나, 개인의 다채로운 욕망이 거세된, 활기를 잃은 회색빛의 거대한 병영처럼 변해갔습니다. 냉전 시절 동구권 국가들의 젊은이들에게, 서구의 청바지와 록 음악이 그토록 강력한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되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옷과 음악이 아니라, 획일적인 계획이 억압했던 ‘개인의 욕망’과 ‘선택의 자유’ 그 자체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창의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계획경제 하에서는 개인의 독창성보다는 기존의 방식에 순응하고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더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고안해 낸 혁신적인 노동자는, 칭찬받기보다 전체 계획을 어지럽히는 ‘문제아’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또한 이러한 통제 시스템 아래에서는 쉽게 질식하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잘 포장된 도로만을 안전하다고 가르치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오솔길로 접어들려는 아이의 모험심을 꺾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계획경제의 꿈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 즉 자유로운 욕망과 창의성을 거세하려는 모순적인 시도였습니다. 인간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의 예측 가능한 부품으로 만들려 했던 이 시도는, 비효율적인 경제 시스템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혼이 질식하는 활기 없는 사회를 낳는 것으로 비극적인 막을 내렸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아무리 숭고한 유토피아를 약속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 끝은 결코 낙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8.4. 새로운 계급의 탄생: 관료와 당이 인민 위에 군림하는 역설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던졌던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약속은 바로 ‘계급 없는 사회’의 실현이었습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구분이 영원히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동지’로서 살아가는 세상.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이 완전한 평등의 비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기꺼이 혁명에 목숨을 바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한 평등을 약속했던 이 체제에서, 어떻게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절대적인 새로운 지배계급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이 끔찍한 역설을 가장 날카롭게 파헤친 인물은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자이자 반체제 사상가였던 밀로반 질라스 (Milovan Djilas)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계급, The New Class』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낡은 지배계급을 타도했지만, 그 자리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새로운 계급’을 올려놓았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새로운 계급’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들은 바로 공산당의 전문적인 혁명가들과 고급 관료들, 즉 ‘당 간부 (Apparatchik)’들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지배계급이란 공장이나 토지와 같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공산주의 혁명은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소유로 만듦으로써, 이 낡은 계급을 완전히 철폐했습니다.


하지만 질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치명적인 함정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것이 ‘국가 소유’가 되었을 때, 그 국유화된 재산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며,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분배할 권한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공산당이라는 단 하나의 조직과 그 간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공장을 ‘소유’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장을 운영하고, 생산 계획을 세우며, 그 공장에서 나오는 모든 부와 특권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관리권’을 독점했습니다. 이 관리권이야말로, 사적 소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새로운 형태의 ‘계급적 소유’였던 것입니다.


소련의 ‘노멘클라투라 (Nomenklatura)’는 이 새로운 계급의 특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평범한 인민들이 식료품 배급을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동안, 당 간부들은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특별 상점에서 서구에서 들여온 고급 물품들을 마음껏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넓고 쾌적한 특별 아파트에 살았고, 검은색 관용차를 타고 막힘없이 뚫린 전용 차선을 달렸으며,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특별 병원을 이용했습니다. 인민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검소함과 희생을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낡은 귀족 계급조차 부러워할 만한 온갖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 새로운 계급이 과거의 지배계급보다 훨씬 더 위험했던 이유는, 그들의 권력이 완벽하게 독점적이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귀족이나 자본가는 최소한 교회나 다른 경쟁자들의 견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계급은 국가의 행정권, 경제권, 군사권, 사법권, 심지어 언론과 사상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이는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경고를 가장 완벽하게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결국 ‘새로운 계급의 탄생’은 스탈린과 같은 특정 독재자의 타락 때문에 벌어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름 아래 단 하나의 당에게 집중시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내재된 필연적인 비극이었습니다. 계급을 철폐하겠다는 가장 숭고한 꿈이, 인류 역사상 가장 억압적이고 위선적인 계급 사회를 만들어내는 끔찍한 역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진정한 평등은 단순히 ‘소유’의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숭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비판받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탄생하는 순간, 그곳에는 반드시 새로운 주인이 낡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8.5. 사상의 통제와 자기비판: 영혼을 개조하려는 전체주의적 시도


전통적인 독재자는 당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당신이 겉으로 복종하고, 세금을 내며,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 당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야망은 훨씬 더 거대하고 섬뜩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각’과 ‘영혼’ 그 자체를 통제하고, 당이 원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뜯어고치려 합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목표는 ‘구시대적 인간’을 완전히 박멸하고, 이기심과 개인주의, 부르주아적 가치에 오염되지 않은 완벽한 공산주의적 인간, 즉 ‘새로운 인간(New Man)’을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인간은 오직 공동체와 당을 위해서만 사고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혁명 과업의 완수를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즉,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인간 영혼 개조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체주의 국가는 개인의 정신을 포위하는 정교하고도 무자비한 도구들을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정보의 완전한 독점’입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진리부’처럼, 공산주의 국가는 과거의 역사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지도자의 예언에 맞춰 신문 기사를 날조하며, 현실 자체를 당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재창조했습니다. 라디오, 신문, 책, 영화 등 모든 미디어는 당의 선전 도구가 되었고, 외부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이처럼 완벽하게 밀폐된 정보의 온실 속에서, 사람들은 당이 들려주는 이야기 외에 다른 어떤 이야기도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둘째, 그리고 가장 교묘한 장치는 바로 ‘자기비판 (Self-criticism)’이라는 이름의 의례였습니다. 정신과 의사 로버트 제이 리프턴 (Robert Jay Lifton)은 그의 저서 『사상 개조와 전체주의 심리학, Thought Reform and the Psychology of Totalism』에서, 마오쩌둥 시대 중국의 ‘사상 개조’ 과정을 겪은 사람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며 이 과정의 실체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세뇌’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자리에 당이 원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적 총체주의 (Ideological Totalism)’의 핵심 기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공개적인 고백과 상호 비판의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작은 공장의 작업반이나 대학의 학습 모임에서, 한 사람이 동료들 앞에 서도록 요구받습니다. 그는 어젯밤 아내와 다투면서 “차라리 혁명 전이 더 살기 편했다”고 불평했던 사소한 순간이나, 고된 노동 중에 잠시 개인적인 성공을 꿈꿨던 ‘부르주아적’ 생각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의 고백이 끝나면, 동료들은 그를 위로하는 대신,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향해 맹렬한 비판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동무의 생각은 아직도 낡은 시대의 개인주의적 독소에 오염되어 있소!”,

“그것은 인민 전체에 대한 배신 행위나 다름없소!”

이 과정에서 개인의 내면은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맹세하고, 자신을 비판해 준 동료들에게 ‘사상적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고 말하며 이 의례를 마칩니다.


이 끔찍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개인의 정신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나를 감시하는 것은 비밀경찰만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당의 잣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내면의 당원’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랑, 슬픔, 피곤함과 같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조차도, ‘혁명적 과업에 방해가 되는가?’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검열받게 됩니다. 반대 의견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이 아니라,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정신적 질병’이 됩니다.


결국 이 사상 개조의 최종 목표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부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내면의 폭력입니다. 이로써 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당에게 의탁하는, 생각 없는 부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권위들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교묘하게 주입하려 듭니다. 개인의 독창적인 영적 체험이나 비판적 질문은 불온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획일화되고 길들여집니다.


결국, 영혼을 개조하려는 이 거대한 시도는 완벽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것은 겉으로는 당의 구호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깊은 냉소와 불신을 품고 있는, 정신적으로 분열된 인간들을 양산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누가 자신의 사소한 말실수를 고발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친구와 이웃, 심지어 가족마저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주의의 가장 큰 야망이었던 이 영혼 개조 프로젝트의 실패는, 우리에게 역설적인 희망을 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 즉 ‘주권적 자아’의 내밀한 영역은, 그 어떤 강력한 외부의 힘으로도 결코 완전히 정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통제하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자유로운 개인의 정신이 본래 얼마나 강인하고 불굴의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일 것입니다.



8.6. 이상주의의 함정: 선한 의도가 어떻게 최악의 결과를 낳는가


자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며 완벽한 인생 계획표를 짜주는 부모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게 하고, 나쁜 친구를 사귈까 봐 모든 교우 관계에 개입하며, 오직 성공이 보장된 길로만 아이를 이끌려 합니다. 이 부모의 마음속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이를 위한 ‘선한 의도’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아이는 부모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개인적인 차원의 비극은, 사회 전체의 운명을 바꾸려는 거대한 이상주의 (Idealism)가 현실과 만났을 때,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하는 끔찍한 역사적 비극으로 확대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오래된 격언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폭력과 억압의 상당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가장 숭고하고 순수한 이상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역사는 바로 이 ‘이상주의의 함정’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출발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선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착취 속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풍요롭게 사는 정의로운 세상을 진심으로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이 숭고한 꿈이 현실을 지배하는 악몽으로 변질되는 과정에는, 이상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몇 가지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습니다.


첫째, 이상주의는 복잡한 현실을 ‘완벽한 청사진’ 속에 구겨 넣으려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완벽한 해답, 즉 유토피아의 설계도를 가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인간들은 그들의 완벽한 설계도에 딱 들어맞지 않는, 너무나도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이때, 진정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현실의 인간에 맞춰 자신들의 청사진을 수정하는 대신, 자신들의 완벽한 청사진에 맞춰 불완전한 현실의 인간들을 ‘개조’하려는 오만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둘째, ‘추상적인 인류’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압도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듯, 추상적인 ‘인류’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의 구체적인 ‘인간’은 경멸하는 비극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공산주의 이상주의자들은 미래에 도래할 ‘프롤레리아 계급 전체’의 해방이라는 눈부신 비전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상적인 사랑의 이름으로, 바로 지금 눈앞에서 고통받는 수백만 명의 구체적인 인간들을 ‘혁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며 기꺼이 제물로 바쳤습니다. 미래의 인류를 구원한다는 대의명분은, 현재의 인간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장 편리한 도덕적 알리바이가 되었습니다.


셋째, ‘절대 선’을 추구하는 열망은 필연적으로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최종적인 해방이라는 ‘절대 선’이라면, 이것을 반대하는 자들은 단순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절대 악’이자, 반드시 제거해야 할 역사의 오점입니다. ‘절대 선’을 표방하는 어떤 이념의 이름 아래,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배척하는 모습들은 인류 역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결국, 순수했던 이상과 선한 의도로 탄생한 혁명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맙니다. 때로는 숭고한 가치를 내세우는 사회 변혁을 외치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조차도,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특정 해석이나 경직된 틀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목격합니다.


공산주의의 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겸손함’의 가치일 것입니다. 세상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오만함이야말로, 지상에 지옥을 건설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역사의 경고 말입니다.


진정한 진보는 어쩌면 완벽한 청사진을 따라 세상을 한 번에 뒤엎으려는 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을 인정하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한 사람의 고통이라도 덜어주려는 작고 구체적인 연민의 실천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8.7. 스탈린주의: 인간을 개조하려는 강철의 의지와 대숙청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 혁명은 성공했지만, 갓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은 거친 폭풍우 속에 놓인 미숙아와도 같았습니다. 내전의 상처는 깊었고, 경제는 파탄 났으며, 주변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붉은 이단아를 소멸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혼돈과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강철의 인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 인물, 이오시프 스탈린 (Joseph Stalin)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그는 레닌의 유산을 이어받아, 사회주의라는 위대한 이상을 강철과도 같은 의지로 현실 속에 구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첫 번째 과업은 바로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눈에, 수 세기 동안 종교와 낡은 관습에 젖어 살아온 러시아의 농민들은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에 너무나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이 구시대적인 인간들을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인간, 즉 당에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목표를 우선하며, 이성적으로 계획된 사회의 유능한 부품으로 살아가는 ‘소비에트 인간 (Homo Sovieticus)’으로 재창조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20세기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개인의 모든 삶을 국가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던져 넣어 개인의 개성과 자유 의지를 완전히 말살하려 했던 시도의 가장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이 거대한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강제적 산업화’입니다. 스탈린은 ‘5개년 계획’을 통해 농업 국가였던 소련을 단기간에 서구와 맞설 수 있는 중공업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인민들의 모든 것을 통제했습니다. 식량은 징발되었고,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렸으며, 모든 자원은 오직 철강과 무기, 그리고 댐을 건설하는 데에만 투입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 (홀로도모르)이 발생하는 등, 인민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국가는 단기간에 거대한 공업력을 갖춘 괴물로 성장했습니다.


스탈린의 강철 의지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수천 년간 러시아의 대지를 지켜온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는 ‘농업 집단화’라는 구호 아래, 독립적인 부농 계급(쿨라크)을 ‘인민의 적’이자 자본주의의 마지막 잔재로 규정했습니다. 국가의 프로파간다는 그들을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탐욕스러운 기생충으로 묘사했고, 당은 이 ‘계급의 적’을 절멸시킨다는 명분 아래 그들의 모든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여 강제로 집단 농장에 편입시켰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수백만 명의 농민들은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 ‘굴라크(Gulag)’로 보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시 멈춰 이해해야 할 ‘굴라크’는, 단순히 범죄자를 가두는 교도소가 아니었습니다. 본래 ‘수용소 관리 총국’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약칭이었던 이 단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베리아를 비롯한 소련의 오지에 건설된 거대한 강제 노동 수용소 시스템 전체를 상징하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 정책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지에 개인의 삶을 복속시키기를 거부하는 모든 전통적인 공동체와 자율적인 삶의 방식을 국가 폭력으로 완전히 파괴해 버린, 거대한 사회 공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강철의 의지는 외부의 ‘계급의 적’을 제거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외부를 향한 폭력은 내부를 향한 더 큰 광기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농업 집단화는 끔찍한 실패로 돌아가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같은 참사를 낳았지만, 이데올로기의 눈에 ‘위대한 계획’은 결코 틀릴 수 없습니다. 만약 계획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계획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 계획을 방해하고 파괴했기 때문이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편집광적인 논리 속에서, ‘대숙청 (The Great Purge)’이라는 훨씬 더 끔찍하고 광기 어린 칼날이 내부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적’은 도처에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공장의 생산량이 목표에 미달하면 그 책임자는 ‘파괴 공작원’이 되었고, 당의 노선에 미세한 이견이라도 보이면 ‘트로츠키주의자’나 ‘외국의 스파이’가 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과 군대, 그리고 사회 곳곳에 ‘반혁명 분자’가 숨어 있다는 의심의 씨앗을 퍼뜨렸습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그의 대작 『수용소 군도, The Gulag Archipelago』에서 고발했듯, 1930년대의 소련은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제의 혁명 동지가 하룻밤 사이에 ‘인민의 적’이 되어 사라져 갔고, 이웃과 가족마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공포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절대 선’을 표방하는 이념의 이름 아래,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배척하는 모습은 인류 역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결국, 외부의 적을 모두 제거한 혁명은, 자기 자신을 다음 희생양으로 삼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광기 속에서, 어제의 혁명 동지이자 레닌과 함께 싸웠던 수많은 늙은 볼셰비키들이 비밀경찰(NKVD)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스크바의 공개 재판정에서, 히틀러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거나 스탈린을 암살하려 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죄목을 스스로 ‘자백’해야만 했습니다. 이 끔찍한 연극은, 고문과 협박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권력이 어떻게 진실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숙청의 칼날은 엘리트 계층을 넘어 평범한 인민들에게까지 향했고, 수백만 명이 이웃의 밀고나 사소한 말실수 하나 때문에 총살당하거나 굴라크의 혹한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결국 스탈린주의는 평등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절대 선’의 이름 아래, 그 길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모든 ‘다른 생각’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배척했던 인류 역사의 가장 슬픈 자화상입니다. 인간을 개조하여 지상에 낙원을 만들겠다는 강철의 의지는, 결국 수천만 명의 피를 제물로 삼아 지도자 한 사람의 절대 권력을 쌓아 올린 거대한 지옥도를 그려냈을 뿐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원한 교훈을 남깁니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오만한 약속이야말로, 가장 비인간적인 야만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위험한 주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8.8. 마오이즘: 영구혁명과 문화대혁명의 광기


모든 혁명은 하나의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어제의 혁명가는 오늘의 권력자가 된다는 딜레마입니다. 불타는 열정으로 낡은 체제를 무너뜨렸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너뜨렸던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체제를 지켜야 하는 ‘기득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의 열정은 식고, 관료주의의 먼지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 (Mao Zedong)은 바로 이 딜레마를 병적으로 두려워했던, 역사상 가장 독특한 혁명가였습니다. 그에게 혁명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상어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쳐야 하듯, 사회주의 국가가 그 순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영원히 계속되어야만 하는 ‘영구혁명 (Permanent Revolution)’이었습니다. 마오이즘의 비극은, 바로 이 혁명의 불꽃을 영원히 타오르게 하려는 시도가 중국 대륙 전체를 거대한 혼돈과 광기의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 광기의 서막은 1950년대 말의 ‘대약진 운동’이었습니다. 마오는 중국이 소련의 모델을 넘어 단숨에 공산주의 사회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비과학적인 열정만으로 농업과 공업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농민들을 거대한 ‘인민공사’에 강제로 편입시키고, 마을마다 토법고로(土法高爐)라는 원시적인 용광로를 만들어 철강을 생산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농업 시스템은 붕괴했고,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이 끔찍한 실패로 마오쩌둥의 권력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궁지에 몰린 그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되찾고, 당 내부의 잠재적인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꺼내 든 마지막 카드가 바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대혁명 (Cultural Revolution, 1966-1976)’이었습니다. ‘영구혁명’의 이름 아래, 마오는 기존의 공산당 조직마저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순수한 추종자인 전국의 어린 학생들을 ‘홍위병 (Red Guards)’으로 동원하여,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섬뜩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공격의 대상은 바로 ‘네 가지 낡은 것(四舊)’, 즉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이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수천 년 역사를 지탱해 온 모든 전통과 문화적 규범에 대한 전면적인 전쟁 선포였습니다. 홍위병들은 마오의 ‘작은 붉은 책 (마오 주석 어록)’을 성경처럼 손에 들고, 중국 전역을 휩쓸며 광기 어린 파괴를 자행했습니다.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 심지어 당 간부들까지 ‘반혁명 분자’와 ‘부르주아의 주구’로 몰려 대중 앞에서 모욕적인 자아비판을 강요당하고, 구타당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학생이 스승을 때려죽이는 비극이 일상처럼 벌어졌습니다.


공자의 사당을 포함한 수많은 고대의 사찰과 유적, 예술품들이 ‘봉건주의의 잔재’라는 이름 아래 불태워지고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았고, 도시는 극심한 혼란과 무정부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분석했듯, 전체주의의 목표는 현실을 바꾸는 것을 넘어, 일관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여 대중이 그 안에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은 바로 이 목표를 가장 극단적으로 추구한 사례였습니다. 그 10년 동안 중국 대륙에서는 오직 마오쩌둥이라는 단 하나의 신과, 그의 사상이라는 단 하나의 교리만이 존재했습니다. ‘절대 선’을 표방하는 이념의 이름 아래,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것은 ‘악’으로 규정되고 무자비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혁명이 관료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마오의 영구혁명은, 중국 사회 전체를 10년간의 야만과 혼돈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목숨과, 수천 년의 문화유산을 앗아갔으며, 한 세대 전체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마오이즘의 비극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가장 이상주의적인 열망이, 어떻게 가장 반문명적이고 파괴적인 광기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꽃은 정화의 빛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파멸의 화염일 뿐입니다.


8.9. 주체사상: 고립된 왕국을 지탱하는 수령 신화


20세기 중반, 소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진영의 양대 맹주로서 각축을 벌일 때,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기이하고도 극단적인 형태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국가 통제와 마오이즘의 개인숭배를 흡수하고, 거기에 한민족의 전통적인 왕조 사상까지 기이하게 결합시킨 그것의 이름은 바로 ‘주체사상(Juche Idea)’입니다.


주체사상의 핵심 구호는 언뜻 듣기에 매우 매력적이고 진보적으로 들립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 구호는 인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철학의 선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마술은 언제나 언어의 이면에 숨어 있습니다.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인간’은, 독립적인 이성을 가진 개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인민대중’이라는 이름의 집단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논리적 비약이 일어납니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인민대중은 역사의 주인이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육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육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이끌어주는 ‘뇌수(腦髓)’, 즉 ‘수령(Suryeong, Supreme Leader)’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민대중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뇌수인 수령의 영도에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주체성을 찬양하는 가장 아름다운 말은, 한 개인에 대한 가장 완벽한 예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하고 맙니다.


이 수령의 지위는 단순히 뛰어난 정치 지도자를 넘어, 민족 전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신적인 존재로 격상됩니다. 김일성은 항일 투쟁 시기에 축지법을 쓰고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다는 식의 신화로 포장되었고, ‘민족의 태양’이자 ‘어버이 수령’으로 불리며 신격화되었습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모든 삶을 국가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던져 넣어 개인의 개성과 자유 의지를 완전히 말살하려 시도했습니다. 주체사상은 이 용광로의 중심에 바로 ‘수령’을 놓은 것입니다.


이 수령 신화가 만들어낸 가장 기이한 현상은 바로 공산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입니다. 본래 계급과 세습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던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은 완전히 폐기되었습니다. 대신, 수령의 지위는 ‘백두혈통’이라는 신성한 핏줄을 통해 아들과 손자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공화국을 사실상 전근대적인 신정(神政) 왕조 국가로 되돌려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이한 체제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완전한 고립입니다. 수령 신화의 절대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의 ‘불순한’ 정보가 유입되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해야만 합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 전체주의 체제는 현실 자체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현실의 예측 불가능성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완벽한 허구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은둔의 왕국’이 되었고, 주민들은 외부 세계의 실상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직 당이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 속에서만 살아가도록 강제됩니다.


둘째, 만성적인 경제 파탄입니다. 주체사상은 ‘자력갱생’을 강조하지만, 국제 사회와의 교류가 끊어진 고립 경제는 필연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체제 유지를 위해 국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군(先軍)정치’는 한정된 국가의 자원을 대부분 군사 부문에 쏟아붓게 만들어, 인민의 삶을 돌볼 여력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1990년대의 대기근(고난의 행군)과 같은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셋째, 인권의 완전한 말살입니다. 수령의 유일사상 체계에서 ‘다른 생각’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체제에 대한 아주 작은 비판이라도 ‘반혁명’이자 ‘반역’으로 간주되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처형당합니다. ‘절대 선’을 표방하는 수령의 이름 아래,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배척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체사상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라는 유토피아적 이상이, 한 개인과 그 가문에 대한 봉건적인 숭배로 타락할 때 어떤 괴물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인간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역설적으로 한 명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완벽한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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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자주성: 주체사상의 신화와 한나 아렌트의 경고


‘주체(主體)’. 이 단어는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존엄한 존재로 서라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인간의 의식이 우주적 질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노래한 고대의 지혜, 예를 들어 『리그베다, Rigveda』가 속삭이던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믿음과도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한 고립과 예속을 만들어낸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 ‘주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심오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가장 숭고한 자주성의 약속이, 가장 완벽한 전체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었습니까? 이 끔찍한 역설의 비밀을 풀기 위해, 우리는 20세기 전체주의의 심연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의 눈을 빌려야만 합니다.


주체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자주성’이라는 개념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위대함은 고립된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다수의 개인이 모인 ‘공적 영역 (public sphere)’에서 비로소 발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독특한 존재이며, 이러한 ‘복수성(plurality)’을 가진 개인들이 서로의 다름을 드러내고 함께 상호작용하는 창조적 ‘행동(action)’을 통해 인간 세계의 의미는 풍요로워집니다. 즉, 아렌트에게 자주성이란 ‘함께함’ 속에서 꽃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립니다. 그것이 말하는 ‘자주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 아니라,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국가’의 자주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고립된 국가 안에서, 아렌트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개인들의 ‘복수성’은 완전히 제거됩니다. 모든 개인의 창조적 행동은 오직 ‘수령’이라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의지에 복종할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결국 주체사상이 약속하는 자주성은, 뇌수가 뽑힌 채 외부의 조종 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의 자주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혼 없는 자주성입니다.


이 영혼 없는 자주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체사상은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두 번째 마술, 즉 ‘상징의 신성화’를 사용합니다. 고대의 지혜, 예를 들어 헤르메스 전통 (Hermeticism)에서 상징은 인간의 유한한 의식과 우주의 무한한 진리를 연결하는 신성한 다리였습니다.


하지만 주체사상에서 상징은 연결이 아닌, 단절과 숭배를 위한 도구가 됩니다. 수령은 ‘민족의 태양’이 되고, 그의 가문은 ‘백두혈통’이라는 신성한 상징으로 포장됩니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이는 공적 영역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합니다. 다양한 관점과 비판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공적 영역은, 이제 단 하나의 상징을 숭배하고 그 외의 모든 대안적 상징을 이단으로 배척하는 거대한 종교 의식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특정 정치적 이미지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합리적인 비판조차 억제되는 현상과 그 본질을 같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왜곡된 자주성과 신성화된 상징을 영속시키기 위해, 주체사상은 인간의 ‘기억’마저 통제하려 듭니다. 『조하르, Zohar』와 같은 신비주의 전통에서 기억은 신성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였고, 아렌트에게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재료였습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에서, 전체주의가 자신들의 허구적인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과거의 역사를 지우고, 선택적인 기억만을 대중에게 주입하는지를 폭로했습니다.


주체사상은 바로 이 ‘기억의 선택’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역사는 오직 수령 중심의 혁명 서사로 재구성되며, 그 위대한 서사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다른 기억들은 철저히 삭제되거나 왜곡됩니다. 이는 기억을 통한 해방이 아니라, 기억을 통한 통제이며, 주민들을 영원한 역사적 미아 상태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주체사상의 끔찍한 모순은 우리 시대 전체에 묻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주성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외부의 권위가 주는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성으로 질문하고, 타인과 대화하며, 그 과정의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려는 용기 있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결국 주체사상이 우리 앞에 놓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책임’을 감수하는 어려운 자유의 길입니다. 이 길은 정해진 답이 없기에 때로는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며,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해답을 만들어나가는 존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정신적 마비 상태에 이르는 안락한 예속의 길입니다. 이 길은 모든 질문에 대한 명쾌한 정답(주체사상)과 그 정답을 보증하는 절대적 권위(수령)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의심하고 고뇌할 필요가 없는 생각의 멈춤 상태, 즉 ‘정신적 무덤’과도 같은 거짓된 평온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주어진 정답만을 따르는 수동적인 객체로 남게 됩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모순이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고뇌하더라도 ‘질문하는 주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모든 답이 정해진 정신적 무덤 속에서 생각 없는 평온을 누리는 ‘믿는 노예’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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