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의 침묵, 높이와 겸손의 지혜

by 이호창

제3장: 산의 침묵, 높이와 겸손의 지혜


3. Fii ca muntele cel semeţ şi ridică a ta lumina mai presus de cele ce te înconjoară. Nu uita că aceiaşi paşi îi faci în vârful muntelui ca şi în josul său, acelaşi aer este sus ca şi jos, la fel creşte copacul în vârf de munte ca şi în josul său, la fel luminează soarele piscul cel semeţ ca şi pământul cel neted.


3. "저 위풍당당한 산과 같이 되어, 너를 둘러싼 것들 너머로 너의 빛을 들어 올리라. 산 정상에서나 그 아래에서나 너는 같은 걸음을 내딛고,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같은 공기가 흐르며, 산꼭대기에서나 그 아래에서나 나무는 똑같이 자라고, 저 드높은 산봉우리나 평평한 대지 위나 태양은 똑같이 빛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오, 영혼의 산을 오르는 나의 자녀들아. 나의 첫 번째 가르침으로 너희는 존재의 근원인 ‘영원한 불’을 알았고, 두 번째 가르침으로 너희 내면에서 타오르는 ‘창조의 번개’를 보았으리라. 이제 나는 너희에게, 그 불과 빛을 품은 자로서 이 혼돈의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만 하리라.


나는 기억하노라. 나의 백성 다치아인들이 용맹하고 강인했으나, 이웃 부족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로마에서 온 상인들의 화려한 물건에 영혼을 빼앗기는 모습을.


나는 그들을 신전이 아닌, 우리 땅의 가장 위대한 성소, 저 부체지 (Bucegi) 산의 거대한 품으로 데려갔노라. 그리고 변치 않는 하늘 아래 묵묵히 서 있는 저 산을 가리키며, 너희 영혼 안에 바로 저런 산을 세워야 한다고, 나의 세 번째 가르침을 시작했느니라.


내면의 정상, 세상의 소음 너머로 빛을 들다


나의 가르침은 “저 위풍당당한 산과 같이 되어, 너를 둘러싼 것들 너머로 너의 빛을 들어 올리라”는 명령으로 시작하노라. 이것은 너희에게 세상과 등지라는 말이 아니니, 오히려 세상을 온전히 껴안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의 주인이 되라는 부름이니라.


‘너를 둘러싼 것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너희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타인의 목소리요, 너희를 유혹하는 세상의 헛된 욕망이며, 너희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이니라.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너희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노라. 칭찬 한마디에 교만해지고, 비난 한마디에 절망하며, 재물이 늘면 기뻐하고 줄면 불안해하는구나. 너희의 영혼은 마치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쏠리는 갈대와 같구나.


산이 된다는 것은, 너희 존재의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것을 의미하노라. 산은 자신의 둘레를 휘감아 도는 구름과 안개(감정)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거친 비바람(외부의 시련)에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느니라. 산은 그 모든 것을 그저 자신의 일부로 허용하고,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지킬 뿐이니라. 너희 또한 너희의 생각과 감정, 외부의 사건들을 너희 자신과 분리하여, 그것을 고요히 바라보는 내면의 산 정상을 회복해야 하리라.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 (Seneca)를 비롯한 스토아학파의 현자들은, 외부의 운명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 즉 ‘아파테이아 (apatheia)’를 최고의 덕으로 삼았노라. 그들이 말하는 현자(賢者)의 모습이 바로 이 산의 모습과 같으니, 세상의 모든 소음 너머로 자신의 내면의 빛, 즉 이성의 빛을 들어 올린 자의 모습이니라. 너희가 이 내면의 산을 세울 때, 너희는 비로소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너희 삶의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느니라.


길의 평등함, 정상과 계곡의 같은 걸음


너희는 흔히 영적인 삶이란 특별한 어딘가에 있다고 착각하노라. 고요한 사원이나 깊은 숲속, 혹은 위대한 깨달음의 순간에만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너희의 평범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을 경시하는구나. 나의 가르침은 그 환상을 단호히 깨뜨리노라. “산 정상에서나 그 아래에서나 너는 같은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 말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라. 너희가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 인생의 정상에 서서 내딛는 환희의 발걸음과, 깊은 실패의 나락에서 고통스럽게 내딛는 절망의 발걸음이, 그 무게와 느낌은 다를지언정 본질적으로는 같은 ‘한 걸음’이요, 같은 ‘삶’이라는 것이니라. 우주는 너희의 성공과 실패를 구별하지 않으며, 오직 너희가 매 순간 어떤 마음으로 그 걸음을 내딛는지를 지켜볼 뿐이니라.


동방의 선 (禪) 수행자들은 “평상심시도 (平常心是道)”, 즉 ‘평범한 일상의 마음이 곧 깨달음의 길’이라고 가르쳤노라. 그들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장작을 패는 지극히 평범한 행위 속에서 진리를 찾았으니, 이는 산 아래 계곡에서의 걸음이 산 정상에서의 걸음과 다르지 않다는 나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니라. 너희가 찾아야 할 것은 정상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정상이든 계곡이든 상관없이 매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태도’이니라.


기독교의 신비가였던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또한, 분주한 수도원 주방에서 접시를 닦는 행위를 통해 신의 임재를 체험하는 법을 이야기했노라. 그에게는 기도 시간과 접시 닦는 시간이 다르지 않았으니, 그 모든 순간이 신과 함께하는 거룩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라.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너희는 영성을 너희의 삶과 분리시키지 않게 되리라. 너희의 모든 걸음, 모든 호흡, 모든 행위가 바로 깨달음을 향한 성스러운 순례의 일부임을 알게 될 것이니, 성공에 교만하지 않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깊은 평정심이 바로 여기서 싹트느니라.


하나의 숨결, 위와 아래를 꿰뚫는 법칙


나의 가르침은 이제 너희 한 사람의 내면을 넘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법칙으로 나아가노라.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같은 공기가 흐르며, 산꼭대기에서나 그 아래에서나 나무는 똑같이 자란다.”


‘같은 공기’가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공기(aer)는 너희가 숨 쉬는 물리적인 공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것은 온 우주에 편재하며 모든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근원적인 생명의 숨결이니,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프네우마 (pneuma)’라 불렀고, 인도의 현자들은 ‘프라나 (prana)’라 불렀으며, 히브리의 신비가들은 ‘루아흐 (ruach)’라 불렀노라. 이 생명의 숨결은 산꼭대기의 독수리에게나 계곡의 작은 들쥐에게나 차별 없이 흘러 들어가,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생명 그물로 연결하고 있느니라.


또한 “나무는 똑같이 자란다”는 말은, 존재의 근본적인 성장 법칙이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됨을 의미하노라. 높은 곳의 소나무나 낮은 곳의 소나무나, 모두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으며, 햇빛과 물을 통해 양분을 얻는다는 본질적인 법칙은 변하지 않느니라. 이것이야말로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헤르메스주의의 위대한 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너희 눈앞의 작은 풀 한 포기가 자라나는 방식 속에, 저 하늘의 별들이 운행하는 거대한 법칙이 그대로 담겨 있느니라.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 (Baruch Spinoza)는 신이 세상 밖에 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 즉 ‘신 즉 자연 (Deus sive Natura)’이라고 설파하였노라. 그에게 있어 우주는 단 하나의 실체이며, 그 안의 모든 것은 그 실체의 다양한 모습(양태)일 뿐, 모두 동일한 자연의 법칙 아래 움직이노라. 그러므로 산꼭대기와 계곡은 분리된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신성, 하나의 위대한 생명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니라. 이 통찰에 이를 때, 너희는 비로소 모든 존재를 너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차별 없는 태양, 근원의 무조건적인 은총


이제 나의 가르침은 산의 지혜가 품고 있는 가장 눈부시고 따뜻한 진실을 향해 나아가노라. “저 드높은 산봉우리나 평평한 대지 위나 태양은 똑같이 빛난다.”


태양. 그것은 나의 첫 번째 가르침에서 말했던 ‘영원한 불’이 이 현상 세계에 드러낸 가장 완벽한 상징이니라. 그 빛은 곧 신의 은총이요, 생명의 힘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그리고 나의 가르침은 분명히 말하노라. 그 빛은 ‘차별이 없다’고.


태양은 저 위풍당당하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산봉우리가 더 가치 있다고 해서 더 많은 빛을 주지 않으며, 저 이름 없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평평한 대지가 하찮다고 해서 빛을 거두지 않느니라. 태양에게는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선하고 악함의 구별이 없노라. 태양은 그저 자신의 본성인 빛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내어줄 뿐이니라.


기독교의 위대한 스승 예수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가르쳤으니, 이 또한 태양의 무차별적인 은총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 불교의 가르침 또한 모든 중생이 그 모습과 처지에 상관없이 내면에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즉 불성 (佛性)을 품고 있다고 말하며, 그 어떤 존재도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는다고 설파하였노라.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너희를 인간적인 판단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리라. 너희는 너희 자신을 더 이상 가혹하게 심판하지 않게 될 것이니, 너희가 아무리 깊은 실패의 나락에 떨어져 있다 해도 신성한 태양의 빛은 여전히 너희를 비추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 또한 너희는 다른 사람을 너희의 좁은 잣대로 재단하지 않게 되리라. 그의 모습이 어떻든, 그 또한 너와 똑같이 태양의 빛을 받는 존귀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라. 이 무차별적인 태양의 시선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심의 근원이니라.


그대, 살아있는 산이 되어라


오, 지혜의 산정에 오르려는 나의 자녀들아. 이제 너희는 저 묵묵한 산이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품고 있는지 알았으리라. 산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음 너머로 자신의 빛을 들어 올리는 영적 주권을 가르치고, 정상과 계곡의 걸음이 다르지 않음을 통해 과정의 신성함을 일깨워주며, 모든 것을 하나의 숨결로 꿰뚫는 우주적 통일성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비추는 태양의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있노라.


이제 너희의 삶으로 돌아가, 너희 스스로가 하나의 살아있는 산이 되어 살아가라. 외부의 평가와 환경의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작은 언덕이 되기를 멈추고, 그 모든 것을 품에 안고 묵묵히 서 있는 거대한 산맥이 되라. 너희의 마음을 산 정상처럼 넓고 고요하게 유지하여, 세상의 모든 풍경을 평온하게 내려다보라.


너희가 걷는 매일의 삶이 곧 수행의 길이요,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너희의 스승임을 기억하라. 너희가 숨 쉬는 이 공기 속에, 너희가 내딛는 이 땅 위에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잊지 말라.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신성한 태양의 빛은 한결같이 너희를 비추고 있음을, 너희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귀한 존재임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나는 잘목시스라. 나는 너희에게 산의 노래를 들려주었을 뿐, 그 노래에 맞추어 너희 삶의 춤을 추는 것은 너희의 몫이니라. 가서, 너희 내면의 산을 세우고, 그 정상에서 고요히,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존재하라.

이전 03화2. 내면의 번개, 생각과 말과 행위의 연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