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씨앗의 비밀, 의지와 인내의 연금술

by 이호창

제22장: 씨앗의 비밀, 의지와 인내의 연금술



22. Ia bine seama la taina seminţei. Asemeni ei este gândul tău, şi cum sămânţa nu se poate fără coajă aşa este şi gândul cel rodnic al omului. Coaja gândului rodnic este voinţa, iar fără voinţa, gândul se usucă şi nu foloseşte la nimic. Dar puterea este în răbdarea seminţei, iar voinţa şi răbdarea fac mlădiţa firavă să răzbată pământul tare.


22. "씨앗의 비밀에 깊이 주목하라. 너의 생각은 그와 같으니, 씨앗이 껍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 사람의 열매 맺는 생각 또한 그러하니라. 열매 맺는 생각의 껍질은 의지이니, 의지가 없다면 생각은 메마르고 아무 쓸모가 없느니라. 그러나 진정한 힘은 씨앗의 인내 속에 있으니, 의지와 인내가 연약한 싹으로 하여금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게 하느니라."







오, 너희 내면의 밭에 위대한 나무를 심고자 하는 나의 자녀들아. 지난 시간 우리는 고통이라는 쓴 열매 속에서 지혜의 씨앗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고, 때로는 영혼의 샘물가에 앉아 마음의 흙탕물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지혜를 나누었노라. 이제 너희의 마음이 다시 맑아지고 비옥해졌으니, 우리는 그 밭에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창조의 비밀로 나아가야만 하리라.


나는 기억하노라. 우리 다치아 땅에 봄이 왔을 때, 아이들이 들판에 나가 온갖 씨앗을 흙 속에 던져 넣으며 즐거워하던 그 모습을. 그러나 나는 보았노라. 어떤 아이는 씨앗을 너무 얕게 심어 새들이 쪼아 먹게 하고, 어떤 아이는 물 주는 것을 금세 잊어버렸으며, 또 어떤 아이는 싹이 빨리 돋지 않는다며 조급해하며 땅을 파헤치고 있었음을. 그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좋은 생각이 있었으나, 그 생각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은 안타까웠노라. 나는 그 아이들을 불러 모아, 내 손바닥 위에 작고 단단한 도토리 한 알을 올려놓고, 이 보잘것없는 씨앗 안에 어떻게 거대한 참나무의 약속이 담겨 있는지,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힘의 비밀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나의 스물두 번째 가르침을 시작했느니라.


생각의 껍질, 의지라는 이름의 갑옷


나의 가르침은 너희가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씨앗의 비밀 (taina seminţei)’을 풀어헤치는 것으로 시작하노라. “너의 생각은 그와 같으니, 씨앗이 껍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 사람의 열매 맺는 생각 또한 그러하니라.”


너희의 마음속에는 날마다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노라. 그것들은 대부분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흩날리는 씨앗과 같으니, 왜냐하면 그것들에게는 ‘껍질’이 없기 때문이라. 씨앗에게 껍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껍질은 연약한 생명의 핵이 외부의 비바람과 건조함, 그리고 수많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첫 번째 갑옷이요, 생명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나로 모아주는 그릇이며, 싹을 틔울 최적의 때가 올 때까지 내부의 잠재력을 고요히 지켜주는 성채이니라.


그렇다면 너희의 ‘열매 맺는 생각 (gândul cel rodnic)’에게 이 껍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가르침은 분명히 말하노라. “열매 맺는 생각의 껍질은 의지 (voinţa)이니, 의지가 없다면 생각은 메마르고 아무 쓸모가 없느니라.”


여기서 ‘의지’란, 나의 열두 번째 가르침에서 말했던 ‘열정 (râvnă)’과는 미묘하게 다르니라. 열정이 맹목적으로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면, 의지는 그 불꽃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 꺼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화로와 같으니라. 너희의 마음속에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고 싶다’는 선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보자. 이 생각은 그 자체로는 껍질 없는 씨앗과 같아서, 이내 ‘피곤하다’, ‘다른 형제도 있는데’, ‘내일 하지’라는 수많은 다른 생각(포식자)들에 의해 금세 쪼아 먹히고 사라져 버리고 말리라.


그러나 여기에 ‘의지’라는 껍질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너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으로 돌볼 것이다”라고 결단하게 되리라. 이 의지의 껍질은 너희의 선한 생각을 외부의 방해와 내부의 나태함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생각이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도록 도와주며, 마침내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까지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주느니라.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의 본질을 거대한 ‘의지’라고 보았으나, 그는 그것을 맹목적이고 고통스러운 충동으로 묘사했지.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인간의 의지는 그 맹목적인 충동을 넘어설 수 있는 신성한 힘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선하고 맑은 ‘생각’(씨앗)과, 그것을 향한 단호한 ‘의지’(껍질)를 결합시킴으로써, 맹목적인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너희의 삶을 의식적으로 창조해나가는 주인이 될 수 있느니라.


이 ‘의지’의 가장 순수하고도 강력한 형태를,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신의 뜻을 따랐던 현자들은 ‘니야 (Niyyah)’라고 불렀노라. ‘니야’는 너희의 언어로 ‘의도’라 번역될 수 있으나, 그것은 단순한 계획이나 소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니라. 이슬람의 전통에서, 모든 행위의 가치는 그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오직 그 행위를 하는 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니야’에 의해서만 판단되느니라.


생각해보라. 어떤 부유한 자가 가난한 이에게 많은 돈을 나누어준다고 하자. 겉으로 보기에는 이 얼마나 선한 행위인가! 그러나 만약 그의 ‘니야’가,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고 싶은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의 눈으로 볼 때 그의 행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오히려 위선이라는 쓴 열매를 맺을 공허한 행위일 뿐이니라. 반대로, 지극히 가난한 자가 자신의 유일한 빵 한 조각을,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굶주린 형제에 대한 연민이라는 순수한 ‘니야’로 떼어준다면, 그의 행위는 저 부자의 금화보다 훨씬 더 위대한 가치를 지니게 되리라.


이제 너희는 알겠는가? ‘니야’야말로 너희의 생각이라는 씨앗을 감싸는 가장 신성하고도 단단한 껍질이니라. 너희의 의지가 단지 ‘나의 성공’이나 ‘나의 만족’이라는 이기적인 욕망에 머무를 때, 그 껍질은 얇고 부서지기 쉬워, 세상의 작은 비바람에도 쉽게 깨져버리고 말리라. 그러나 너희의 의지가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해’,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라는, 너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된 순수한 ‘니야’로 승화될 때, 그 껍질은 그 어떤 시련에도 뚫리지 않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갑옷이 되느니라. 이 순수한 의도야말로, 너희의 개인적인 생각을 우주적인 힘과 연결시키는 신성한 통로이며, 그 생각이 헛된 망상으로 흩어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 맺도록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니, 이 또한 생각과 의지가 결합된 상태의 가장 높은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라.


또한 동방의 위대한 스승,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도 우리는 이 ‘의지’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노라. 붓다는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 즉 팔정도 (八正道, 팔정도)를 제시하였는데, 그 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의 순서를 깊이 주목해야 하리라. 첫 번째 길은 ‘올바른 견해 (正見, 정견, Sammā-diṭṭhi)’요, 두 번째 길은 바로 ‘올바른 결의 (正思惟, 정사유, Sammā-saṅkappa)’니라.


‘올바른 견해(정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본질, 즉 모든 것은 변하고(無常),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無我), 삶에는 고통이 있다는 등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아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씨앗’, 즉 모든 성장의 출발점이 되는 올바른 생각이라.


그러나 이 ‘올바른 견해’는, 그것이 아무리 위대하고 진실하다 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노라. 그것은 너희의 머릿속에 머무르는 차가운 지식의 조각일 뿐, 너희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없기 때문이라.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 길인 ‘올바른 결의(정사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느니라.


‘올바른 결의(정사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올바른 견해’라는 씨앗을 너희의 삶 속에서 싹 틔우겠다는 단호하고도 흔들림 없는 ‘의지’이니라. 그것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 결심으로 나타나나니, 첫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겠다는 ‘출리(出離)의 결의’요, 둘째는 모든 존재를 향한 악의와 미움을 버리겠다는 ‘자애(慈愛)의 결의’이며, 셋째는 어떤 존재도 해치지 않겠다는 ‘비해(非害)의 결의’이니라.


이제 너희는 그 순서의 깊은 의미를 알겠는가? ‘올바른 견해’라는 씨앗이 생겼다면, 너희는 즉시 그것을 ‘올바른 결의’라는 껍질로 단단히 감싸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니라. 올바른 의지(껍질)로 보호되지 않은 올바른 생각(씨앗)은, 이내 세상의 수많은 유혹과 낡은 습관이라는 포식자들에게 쪼아 먹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 이처럼, 깨달음의 여정 또한, 명료한 ‘생각’과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려는 굳건한 ‘의지’의 결합을 통해서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음을, 저 위대한 스승 또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라.


인내의 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


그러나 생각에 의지라는 껍질을 입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라. 이제 너희는 씨앗의 비밀 중에서도 가장 깊고, 가장 배우기 어려운 지혜를 마주해야만 하리라. “그러나 진정한 힘은 씨앗의 인내 (răbdarea seminţei) 속에 있으니.”


껍질을 갖춘 씨앗이 흙 속에 묻히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즉각적인 행동이나 화려한 성장이 아니니라. 그것은 깊은 침묵 속에서의 ‘기다림’, 즉 ‘인내’이니라. 씨앗은 흙 속의 어둠과 추위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안으로 갈무리하며, 때로는 수개월, 수년 동안이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히 때를 기다리느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인내의 시간 동안 씨앗의 내부에서는 가장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니, 그것은 주변의 물과 양분을 조용히 빨아들여, 마침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올 폭발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니라.


너희의 과업 또한 이와 같으니라. 너희가 하나의 위대한 목표를 향한 생각(씨앗)을 품고, 그것을 굳은 의지(껍질)로 감쌌다면, 그 다음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한 행동이 아니라, 그 생각이 너희 내면에서 충분히 무르익고 힘을 축적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이니라. 너희는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기술을 연마하며, 마음을 닦는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준비를 꾸준히 해나가야 하노라. 이 인내의 시간이 없다면, 너희의 의지는 성급한 만용이 되어 설익은 결과를 낳고 쉽게 좌절하게 되리라. 진정한 힘은 폭발하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폭발을 가능하게 하는 긴 침묵의 축적 과정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하리라.


동양의 현자들은 이 인내의 힘을 ‘대기만성 (大器晩成)’, 즉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로 표현했노라. 위대한 과업일수록 더 오랜 숙성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던 것이라.


기독교의 경전인 『갈라디아서』에서도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장 9절)고 권면하였으니, 여기서 ‘때가 이르매’라는 말이 바로 씨앗이 열매 맺을 고유한 시간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연약함의 기적, 의지와 인내의 합주


이제 나의 가르침은 이 두 가지 위대한 힘, 즉 ‘의지’와 ‘인내’가 만났을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절정을 향해 나아가노라. “의지와 인내가 연약한 싹 (mlădiţa firavă)으로 하여금 단단한 땅 (pământul tare)을 뚫고 나오게 하느니라.”


보라, 너희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경이로운 광경을. 부드럽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새싹 하나가, 때로는 돌멩이까지 섞인 저 굳고 단단한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고 있도다. 이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장군이나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도, 자신의 칼이나 권세로는 감히 이토록 부드럽게 대지를 뚫는 위업을 이룰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 연약함 속에 숨겨진 힘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흔들림 없는 ‘의지’와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빚어내는 완벽한 조화, 즉 거룩한 ‘합주(合奏)’에 있느니라.


‘의지’는 연약한 싹에게 ‘나는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흔들림 없는 방향성을 부여하노라. 그것은 싹이 땅속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끄는 내면의 나침반과 같으니라.


‘인내’는 그 싹에게 단단한 흙덩이나 돌멩이를 만났을 때, 그것과 정면으로 싸워 부러지는 대신, 부드럽게 비켜나가거나, 혹은 비가 와서 땅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주노라.


이 둘의 관계를 깊이 이해해야 하리라. 의지만 있고 인내가 없다면, 그것은 성급한 만용이 되어, 단단한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혀 꺾여버리는 어리석은 싹과 같을 것이니라. 반대로 인내만 있고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안주하는 나태가 되어, 땅속의 안락함에 만족하며 영원히 빛을 향해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썩어가는 씨앗과 같을 것이니라.


진정한 창조와 돌파는, 이처럼 단단한 ‘의지’와 부드러운 ‘인내’라는, 겉보기에는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힘이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해지느니라. 이는 마치 아버지의 엄격함(의지)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인내)이 함께할 때 온전한 자녀가 길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너희 시대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의지와 인내가 조화를 이룬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리라.


그대, 너 자신이라는 씨앗의 비밀을 신뢰하라


오, 너희 내면의 밭에 위대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제 너희는 너희의 선한 생각 하나가 어떻게 현실이라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지, 그 위대한 창조의 비밀을 모두 알았으리라.


너희의 삶으로 돌아가, 너희 자신을 하나의 소중한 씨앗으로 여기라. 그리고 너희의 삶을 그 씨앗을 키워내는 신성한 과정으로 대하라.


먼저, 너희가 어떤 열매를 맺고 싶은지를 명료히 하여, 너희의 생각이라는 ‘씨앗’을 선택하라.

다음으로, 그 생각이 헛된 망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나는 반드시 이 길을 가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껍질로 그것을 감싸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로, 그 씨앗이 너희 내면에서 충분히 힘을 축적할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신뢰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물을 꾸준히 주라.


너희의 길이 때로는 단단한 땅처럼 막막하고 어둡게 느껴질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 너희 안에는, 그리고 너희의 진실한 의지와 꾸준한 인내 속에는, 그 어떤 단단한 현실의 벽도 뚫고 나올 수 있는 연약하지만 위대한 힘이 이미 깃들어 있음을 신뢰하라.


나는 잘목시스라. 나는 너희에게 씨앗 속에 담긴 비밀을 풀어 설명해주었을 뿐, 너희 자신이라는 씨앗을 싹 틔우고 거대한 나무로 키워내는 것은 온전히 너희의 몫이니라. 가서, 너희의 의지를 단단히 하고, 너희의 인내를 깊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침내 너희의 연약함이 너희의 가장 위대한 힘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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