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때때로 끝없는 물음표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무게를 더하고, 내일의 불확실성이 가슴을 조이는 그 순간, 우리는 존재의 본질을 직면합니다. 이처럼 삶의 무상함과 선택의 고독 속에서 헤매는 경험은,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제시한 인간 실존의 단계와 깊이 공명합니다. 그는 실존을 단순한 생존이 아닌, 내면의 여정으로 보았습니다. 이 여정은 미학적 단계에서 시작해 윤리적 단계를 거쳐 종교적 단계로 나아가며, 각 단계는 이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약을 요구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단계를 통해, 인간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선택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고 강조합니다.
미학적 단계는 삶의 표면을 스치며 사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순간적인 쾌락과 감각의 자극을 추구하며,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습니다. 텅 빈 주말을 견디지 못해 약속을 빼곡히 채우고, SNS의 타임라인을 끊임없이 내리며 순간의 자극과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 단계의 그림자를 봅니다. 최신 유행을 좇아 옷을 사고, 화제의 드라마를 밤새워 보며 공허를 잠시 잊지만, 그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더 큰 허무가 밀려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단계를 돈 후안 (Don Juan)의 삶으로 비유합니다. 그는 쾌락의 무한한 변주를 통해 영원함을 흉내 내지만, 결국 어떤 것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절망에 직면합니다. 이 단계의 삶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외부의 자극에 종속된 가장 부자유한 상태입니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양자택일, Either/Or』에서 이 단계를 생생히 묘사하며, 독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그 그림자를 발견하도록 이끕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어,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미학적 삶의 매력과 절망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학적 단계의 공허는 인간을 다음 단계로 밀어냅니다. 윤리적 단계는 책임과 규범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개인적인 쾌락을 넘어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선택을 중시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사회가 그어놓은 성공의 좌표를 따라 성실히 살아가는 삶은 분명 안정감을 줍니다. 결혼을 통해 한 사람에게 헌신을 약속하고, 부모로서 자신을 희생하며 자녀를 돌보는 일은 숭고한 책임의 표현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단계를 판사의 삶으로 상징하며,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사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이 단계의 삶은 미학적 단계의 혼란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지만, 동시에 개인의 고유성을 희생시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성실한 직원’, ‘좋은 부모’라는 사회적 역할 속에 진정한 ‘나’는 희미해지고, 보편적 규범이 나의 모든 선택을 대신하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절망과 마주합니다.
이제 종교적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는 미학과 윤리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앙의 도약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단계를 아브라함의 희생 이야기로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바치려 하지만, 이는 ‘자식을 사랑하라’는 보편적 윤리 규범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입니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광기이지만, 신앙의 눈으로는 절대자와의 단독자적 관계입니다. 안정적이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꿈에 삶을 던지는 예술가의 결단, 혹은 거대한 불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저항하는 개인의 외침은 윤리적 잣대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 절대자에 대한, 혹은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신뢰를 선택합니다. 이 단계는 고독하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실존입니다. 왜냐하면 선택이 외부의 기준이 아닌 오직 내면의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키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에서 이 도약의 본질을 탐구하며, 종교적 삶이 이성의 모순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 역시 한국어 번역본이 있어, 그 심오함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이 단계들은 단순한 분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미학적 쾌락의 유혹, 윤리적 책임의 무게, 그리고 종교적 도약의 불안을 모두 겪으며 성장한다는 깊은 통찰입니다. 각 단계는 이전의 절망을 통해 다음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으며, 진정한 실존은 이 고통스러운 도약의 반복 속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불안과 방황이 바로 이 거룩한 여정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 존재의 무거운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