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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의 리타(Ṛta)와 헬라의 로고스(Logos)

by DrLeeHC

베다의 리타(Ṛta)와 헬라의 로고스(Logos)

인류의 정신사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무쌍하고 때로는 혼돈스러워 보이는 이 세계의 배후에는 과연 어떤 질서가 존재하는가? 밤하늘의 별들이 어김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계절이 순환하며, 씨앗이 싹을 틔워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는 그 장엄한 규칙성 속에서, 고대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원리의 존재를 직감했다. 그들은 이 보이지 않는 질서에 순응할 때 삶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지며, 그것을 거스를 때 혼란과 고통이 찾아온다는 심오한 통찰에 이르렀다.


이 근원적인 질서를 가리키기 위해, 히말라야의 설산 아래 아리아인들은 ‘리타(Ṛta)’라는 신성한 노래를 불렀고, 에게해의 푸른빛 아래 헬라스인들은 ‘로고스(Logos)’라는 이성적인 언어를 탐구했다.


리타와 로고스는 각기 다른 문화적 토양 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어난 두 개의 꽃이다.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태양, 즉 우주를 관통하는 근원적 진리를 향한 갈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리타가 우주와 사회를 지탱하는 신성한 법칙의 장엄함을 드러낸다면, 로고스는 그 거대한 법칙이 모든 개별 존재 속에서 어떻게 이성적 원리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개의 고대어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우주적인 조화와 연결되어 온전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 이 글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개의 위대한 정신적 대륙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려낸 우주적 질서의 지도를 나란히 펼쳐놓고, 그 길들이 어떻게 만나고 또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탐색해보려는 시도이다.


리타(Ṛta): 우주적·도덕적 조화의 성스러운 노래


고대 인도의 가장 오래된 성전인 『리그베다』의 세계 속에서, 리타는 모든 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성스럽고도 강력한 원리이다. 그것은 단순히 고정된 법칙이나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이 각자의 본성에 맞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흐름’ 그 자체를 가리킨다. 베다인들에게 자연은 분석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강력한 의지들의 표현이자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였다. 이 변화무쌍한 신들의 활동 너머에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역할 수 없는 질서, 즉 우주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의 리타를 발견한 것은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도약이었다. 리타의 질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첫째, 리타는 우주의 물리적 질서로 나타난다. 태양이 매일 아침 어김없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강물이 언제나 바다를 향해 흐르며, 계절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리를 교체하는 것은 모두 리타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그베다』의 찬가들은 “리타의 멍에에 묶인 말처럼” 움직이는 태양을 노래하고, “리타의 길을 따라 흐르는 강물”을 찬양한다. 신들조차 이 질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며, 그들의 위대함은 리타를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를 가장 완벽하게 수호하고 실행하는 데 있었다. 신들은 스스로를 ‘리타의 수호자(ṛtasya gopa)’ 혹은 ‘리타 안에서 태어난 자(ṛtajāta)’로 불렀다. 리타는 신들의 권능조차 정당성을 부여하는 더 높은 차원의 원리였던 셈이다.


둘째, 리타는 제사 의례의 질서를 통해 인간 세계와 연결된다. 고대 베다인들에게 야즈나(Yajña)라 불리는 제사 의례는 단순히 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물리적 질서인 리타를 지상의 인간 세계에 그대로 재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우주의 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성한 기술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발음으로 만트라를 읊고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마치 태양과 달이 정해진 궤도를 운행하는 것처럼 신성하고 필연적인 것이었다. 제사가 올바르게 수행되면 우주의 질서 자체가 강화되고 비가 내리며 세상이 풍요로워진다는 믿음 속에는, 인간의 행위가 우주 전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심오한 세계관이 담겨 있다.


셋째, 리타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질서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이것이야말로 리타 개념이 지닌 가장 위대한 철학적 도약이다. 우주와 제단을 관통하는 이 거대한 질서의 원리는, 인간의 마음과 행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규범으로 인식되었다. 리타는 자연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따라야 할 진실(Satya), 정의(Dharma), 올바름(Yathātha) 그 자체였다. 반대로, 이 질서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는 ‘안리타(Anṛta)’라고 불렸으며, 거짓, 무질서, 불의, 죄악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안리타를 행한 자는 사회적 비난뿐만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응보를 피할 수 없다고 믿었다. 특히 하늘의 신 바루나(Varuṇa)는 ‘리타의 수호자’로서, 인간 세상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며 이 우주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모든 거짓과 불의를 심판하는 준엄한 신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리타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우주 전체의 조화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교향곡의 일부가 된다. 리타는 인간이 임의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발견하고 따라야만 하는 선재적(先在的)인 우주적 진리였다.


로고스(Logos): 이성적 원리로서의 우주 법칙


수천 년의 세월과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그리스의 땅에서 철학자들은 이 우주적 질서의 또 다른 측면을 ‘로고스’라는 개념을 통해 탐구했다. 리타가 주로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맥락에서 드러난 ‘신성한 질서’라면, 로고스는 신화적 사고(Mythos)에서 벗어나 세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철학적 탐구(Logos)의 과정에서 발견된 ‘합리적 원리’이다. 로고스는 ‘말’, ‘이성’, ‘법칙’, ‘원리’ 등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와 이후 스토아학파(Stoicism)에 의해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로 그 의미가 심화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는 말로 유명하다. 그는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fire)과도 같다고 보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은 존재의 영원한 생성과 소멸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의 위대함은 단순히 변화만을 말한 데 있지 않다. 그는 이 모든 변화와 투쟁의 배후에는, 그것을 관장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하나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법칙, 즉 로고스가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낮과 밤,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와 같은 대립적인 것들의 투쟁과 조화야말로 로고스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로고스는 모든 것에 내재하며 만물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공통의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듯 잠들어 있어 이 보편적인 로고스를 깨닫지 못한다고 그는 탄식했다.


이러한 로고스의 개념은 스토아학파에 이르러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인 우주론의 핵심으로 발전한다. 스토아학파에게 우주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이성적인 유기체이다. 그리고 이 우주를 안에서부터 관통하며 질서를 부여하고 모든 사건을 필연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바로 로고스이다. 그들은 이 로고스를 ‘우주 이성’, ‘자연’, ‘신’, 그리고 ‘운명’과 동일시했다. 로고스는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신성한 불꽃(pneuma)이자, 모든 것을 합리적인 인과관계로 엮는 창조적 원리이다. 스토아 철학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인간의 이성(logos)이 이 거대한 우주적 로고스의 ‘파편’이라는 점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성의 불꽃이야말로, 우리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신성한 연결고리이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에게 행복하고 덕 있는 삶이란, ‘자연에 따라 사는 것(living according to nature)’이며, 이것은 곧 ‘로고스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우주의 필연적인 질서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운명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는 유일한 것, 즉 자신의 판단과 의지를 덕스럽게 다스려야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정심, 즉 ‘아파테이아(apatheia)’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처럼 로고스는 우주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인간이 따라야 할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리타와 로고스: 차이 속의 동일성


리타와 로고스는 각기 다른 문화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이 가리키는 궁극의 지평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명한다.


첫째, 두 개념 모두 우주적 질서의 보편성을 선언한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현상 세계 너머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된 원리가 존재함을 꿰뚫어 보았다. 이는 세계를 변덕스러운 신들의 각축장으로 보거나 무의미한 혼돈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선, 인류 정신의 위대한 진보였다.


둘째, 그 질서는 인간의 작은 지혜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가진다. 리타는 인간이 창조할 수 없으며 오직 발견하고 따라야만 하는 신성한 법칙이었고, 로고스 또한 개별 인간의 주관적 생각을 넘어서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였다. 두 개념 모두 우리에게 자아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더 큰 전체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것을 요구한다.


셋째, 인간의 삶이 이 우주적 질서와의 조화를 통해 완성된다는 공통된 비전을 제시한다. 리타를 따르는 삶이 진실하고 올바른 삶이듯, 로고스를 따르는 삶 또한 이성적이고 덕 있는 삶이다. 질서를 거스르는 삶, 즉 안리타의 삶과 비이성적인 정념(pathos)에 휩쓸리는 삶은 모두 고통과 불행을 낳는다고 두 전통은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그러나 이 깊은 유사성의 이면에는, 두 문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 질서를 파악하는 방법론에 있다. 리타는 본질적으로 ‘계시된(revealed)’ 진리이다. 그것은 고대의 현자(ṛṣi)들이 깊은 영적 직관을 통해 감지했으며, 신성한 찬가와 제사 의례라는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보존되고 실현되었다. 그 언어는 시적이고 신화적이다.


반면에 로고스는 ‘사유된(reasoned)’ 진리이다. 그것은 철학자들의 합리적 탐구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개념적 사유와 이성적 논증을 통해 이해된다. 그 언어는 분석적이고 철학적이다.


또한, 그 질서의 성격에도 차이가 있다. 리타는 보다 객관적이고 법칙적인 ‘질서’의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 새겨진 불변의 헌법과도 같아서, 신들조차 그 아래에 있다. 리타의 세계는 바루나와 같은 신들에 의해 감독되고 유지되는,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색채를 띤다.


반면에 로고스, 특히 스토아학파의 로고스는 우주 전체에 내재하는 ‘이성’ 혹은 ‘정신’의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순히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만물을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섭리하는 살아있는 지성이다. 리타가 우주의 ‘구조’에 가깝다면, 로고스는 우주의 ‘마음’에 가깝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과의 연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리타와의 조화는 주로 올바른 ‘행위(karma)’, 즉 제사 의례의 정확한 수행과 사회적 의무(dharma)의 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에 로고스와의 조화는 올바른 ‘사유(thinking)’, 즉 이성적 성찰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것에 동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나가 행위의 올바름(orthopraxy)을 강조한다면, 다른 하나는 사유의 올바름(orthodoxy)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영원의 철학, 그 두 개의 메아리


결국 리타와 로고스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주적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두 개의 다른 길을 보여준다. 리타는 우리에게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저 거대한 우주의 질서와 사회의 의무 속에서 우리의 올바른 위치를 찾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고 말한다. 로고스는 우리에게 시선을 안으로 돌려,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성의 불꽃을 발견하고 그것이 우주적 이성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하나의 정상에서 만날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성(덕)을 온전히 실현하는 삶은 저절로 우주의 질서(리타)와 조화를 이룰 것이며, 우주의 질서(로고스)를 진심으로 따르는 삶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가장 진실한 본성을 꽃피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외부의 기준을 강요하며 우리를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소외시키고, 동시에 우주와의 연결 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인도의 현자와 그리스의 철학자가 수천 년 전에 밝혀놓은 이 두 개의 등불은, 우리에게 진정한 질서는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진실과 우주의 거대한 진실이 만나는 그 경계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리타와 로고스는 인류의 정신이 지리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 얼마나 깊은 차원에서 동일한 진리를 향해 나아가왔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증거이다. 그것은 현대라는 혼돈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삶의 닻을 내릴 가장 깊고도 단단한 바닥이 바로 우리 자신과 우주의 내면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영원의 철학이 보내는 두 개의 위대한 메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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