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성한 삶의 매뉴얼, 『삼일신고, 三一神誥』

by 이호창

2. 신성한 삶의 매뉴얼, 『삼일신고, 三一神誥』



한민족 고유의 경전인 『삼일신고, 三一神誥』 366자를 현대적 지성과 감각으로 새롭게 풀어낸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 짧지만 강렬한 가르침은 우주의 근원인 하늘 (天), 그 주재자인 신 (神),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人)이 본래 하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제1장: 천훈 (天訓) - 하늘에 대한 가르침


帝曰 爾五加衆 (제왈 이오가중)

蒼蒼 非天 玄玄 非天 (창창 비천 현현 비천)

天 無形質 無端倪 (천 무형질 무단예)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무상하사방 허허공공)

無不在 無不容 (무불재 무불용)

하느님께서 다섯 부족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아 잘 들어라. 눈에 보이는 저 푸른 창공이 진짜 하늘이 아니며, 저 까마득한 어둠 속의 허공도 진짜 하늘이 아니다.


진짜 하늘은 정해진 모양도 없고 만져지는 바탕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위아래도 없고 동서남북 사방의 경계도 없이 그저 텅 비어 공허한 듯하지만, 이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그 어떤 것도 빠짐없이 다 품어 안고 있느니라.“


참된 하늘은 특정한 모양이나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위와 아래나 동서남북의 방향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모든 존재를 감싸 안고 침투해 있는 근원적인 장(Field)이 바로 하늘입니다.



제2장 신훈 (神訓): 창조의 주체에 대하여


神 在無上一位 (신 재무상일위)

有 大德 大慧 大力 (유 대덕 대혜 대력)

生天 主無數世界 (생천 주무수세계)

造 衆衆物 纖塵無漏 (조 중중물 섬진무루)

昭昭靈靈 不敢名量 (소소영영 불감명량)

聲氣願禱 絶親見 (성기원도 절친견)

自性求子 降在爾腦 (자성구자 강재이뇌)

“하느님은 이 우주 가장 높은 으뜸 자리에 계시며, 큰 덕과 큰 지혜, 그리고 위대한 힘을 지니셨다.


하늘을 만드시고 수많은 우주 세계를 주관하시며, 작은 티끌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 밝고 신령하심은 감히 말로 이름 짓거나 헤아릴 수가 없다.


소리 내어 빌고 원한다고 해서 눈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의 본성 안에서 하느님의 씨앗을 찾아라. 하느님은 이미 너의 뇌(의식) 속에 내려와 계시느니라.”


신 (神)은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가장 높은 자리에 존재합니다. 신은 큰 덕과 큰 지혜, 그리고 큰 힘을 지니고 있어, 하늘을 낳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여 다스립니다.


신은 만물을 창조하되 티끌 하나 빠뜨림 없이 완벽하게 설계했습니다. 그 작용은 너무나 밝고 미세하여, 인간의 언어로 감히 이름을 붙이거나 그 크기를 잴 수 없습니다.


오로지 소리와 기운으로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 해도, 육신의 눈으로는 신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본성에서 씨앗을 찾듯 진실하게 구하면, 신은 이미 너희의 뇌 (腦) 속에 내려와 임해 있습니다. 신은 외부의 우상이 아니라, 우리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용하는 신성 (神性)입니다.


제3장 천궁훈 (天宮訓): 도달해야 할 이상향


天 神國 有天宮 (천 신국 유천궁)

階萬善 門萬德 (계만선 문만덕)

一神攸居 (일신유거)

群靈諸哲 護侍 (군령제철 호시)

大吉祥 大光明處 (대길상 대광명처)

惟性通功完者 (유성통공완자)

朝 永得快樂 (조 영득쾌락)

“하늘나라는 하느님이 계시는 나라이며, 그곳에는 하늘 궁전이 있다. 그 궁전은 만 가지 착한 일로 계단을 쌓고, 만 가지 덕행으로 문을 만든 곳이다.


그곳은 오직 하느님이 머무시는 자리이며, 수많은 영혼과 밝은 지혜를 가진 성인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그곳은지극히 복되고 상서로우며, 크고 밝은 빛으로 가득 찬 곳이다.


오직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밝히고, 세상을 이롭게 한 공적을 완수한 사람만이 이곳에 나아가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늘은 신의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천궁 (天宮)이 있는데, 온갖 선함으로 계단을 쌓고 온갖 덕으로 문을 세운 곳입니다. 바로 그곳에 하느님이 머무십니다.


수많은 영혼과 철인들이 신을 모시고 있으며, 그곳은 지극히 상서롭고 밝은 빛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오직 본성을 통달하고 공적을 완수한 자만이 그곳에 나아가 영원한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죽어서 가는 저세상이 아니라, 선과 덕을 완성한 인간이 도달하는 지극한 의식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제4장 세계훈 (世界訓): 물질 우주의 원리


爾觀 森列星辰 數無盡 (이관 섬열성진 수무진)

大小明暗 苦樂不同 (대소명암 고락부동)

一神 造群世界 (일신 조군세계)

神 勅日世界使者 轄七百世界 (신 칙일세계사자 할칠백세계)

爾地 自大 一丸世界 (이지 자대 일환세계)

中火震盪 海幻陸遷 乃成見象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견상)

神 呵氣包底 煦日色熱 (신 가기포저 후일색열)

行翥化遊栽 物繁殖 (행저화유재 물번식)

“너희는 밤하늘에 빽빽하게 늘어선 저 별들을 보아라. 그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끝이 없다. 그 별들은 크기와 밝기가 제각각이며, 그 속에 깃든 생명들의 괴로움과 즐거움도 모두 다르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이 수많은 우주 세계 (누리)를 창조하시고, 태양 세계를 관장하는 사자 (관리자)에게 명하여 칠백 개의 세계를 거느리고 다스리게 하셨다.

너희가 사는 이 땅 (지구)이 스스로 엄청나게 큰 줄 알지만, 사실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둥근 공 모양의 작은 세상 하나일 뿐이다.


(태초에) 지구 속 불덩이 (마그마)가 요동치며 터져 나와,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육지가 바다로 변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대기 (공기)를 불어 넣어 지구를 감싸주시고, 햇빛과 열기로 따뜻하게 쪼여주시니, 걷는 짐승, 나는 새, 변태하는 곤충, 헤엄치는 물고기, 그리고 심겨진 식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명체들이 널리 번성하게 되었느니라.”

여러분, 밤하늘에 빽빽하게 늘어선 별들을 보십시오. 그 수는 다함이 없으며, 크기와 밝기, 그리고 그 별들이 겪는 고통과 즐거움이 모두 다릅니다.


신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신은 태양이라는 사자를 시켜 칠백 개의 세계를 거느리고 다스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 역시 그 거대한 세계들 중 하나의 탄환과 같은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태초에 불 기운이 진동하고 폭발하여, 바다가 변하고 육지가 움직이는 지질학적 변화를 거친 끝에 비로소 지금과 같은 형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제5장 진리훈 (眞理訓): 인간 완성을 위한 실천론


人物 同受三眞 (인물 동수삼진)

曰 性命精 (왈 성명정)

人全之 物偏之 (인전지 물편지)

眞性 無善惡 上哲通 (진성 무선악 상철통)

眞命 無淸濁 中哲知 (진명 무청탁 중철지)

眞精 無厚薄 下哲保 (진정 무후박 하철보)

返眞 一神 (반진 일신)

惟衆 迷地 三妄着根 曰 心氣身 (유중 미지 삼망착근 왈 심기신)

心 依性 有善惡 善福惡禍 (심 의성 유선악 선복악화)

氣 依命 有淸濁 淸壽濁妖 (기 의명 유청탁 청수탁요)

身 依精 有厚薄 厚貴薄賤 (신 의정 유후박 후귀박천)

眞妄 對作三途 曰 感息觸 (진망 대작삼도 왈 감식촉)

轉成 十八境 (전성 십팔경)

感 喜懼哀怒貪厭 (감 희구애노탐염)

息 芬蘭寒熱震濕 (식 분란한열진습)

觸 聲色臭味淫抵 (촉 성색취미음저)

衆 善惡淸濁厚薄 相雜 (중 선악청탁후박 상잡)

從境途 任走 (종경도 임주)

墮 生長消病歿 苦 (타 생장소병몰 고)

哲 止感 調息 禁觸 (철 지감 조식 금촉)

一意化行 返妄卽眞 (일의화행 반망즉진)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 (발대신기 성통공완 시)

“사람과 만물은 태어날 때 하느님으로부터 똑같이 세 가지 참된 보물(삼진)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성품 (性), 목숨 (命), 정기 (精)이다. 사람은 이 세 가지를 온전하게 다 받았지만, 만물 (동식물 등)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받았다.


참된 성품 (眞性)은 본래 착함도 악함도 없는 자리이니, 뛰어난 지혜를 가진 자 (上哲)는 이를 통달한다. 참된 목숨(眞命)은 본래 맑음도 탁함도 없는 자리이니, 중간 지혜를 가진 자 (中哲)는 이를 깨닫는다. 참된 정기 (眞精)는 본래 두텁고 얇음의 차별이 없는 자리이니, 보통의 지혜를 가진 자 (下哲)라도 이를 잘 보존한다. 이 참된 상태를 회복하여 돌아가면, 누구나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 (衆)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미혹에 빠져, 세 가지 망령된 것 (三妄)에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마음 (心), 기운 (氣), 몸 (身)이다.


마음 (心)은 본성에 바탕을 두지만 선과 악의 구분이 생겨,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입는다. 기운 (氣)은 목숨에 바탕을 두지만 맑고 탁함이 생겨, 맑으면 오래 살고 탁하면 일찍 죽는다. 몸 (身)은 정기에 바탕을 두지만 후하고 박함이 생겨, 후덕하면 귀하게 되고 경박하면 천하게 된다.


참된 본성 (眞)과 망령된 마음 (妄)이 서로 부딪쳐 세 가지 길 (三途)을 만드니, 그것은 느낌 (感), 숨 (호흡, 息), 부딪침 (감각, 觸)이다. 이 세 가지가 굴러 변하여 우리를 홀리는 열여덟 가지 경계를 만든다.


느낌 (感)에는 기쁨, 두려움, 슬픔, 성냄, 탐욕, 싫어함이 있고, 숨 (息)에는 향기로운 냄새, 고약한 냄새, 차가움, 뜨거움, 건조함, 축축함이 있으며, 부딪침 (觸)에는 소리, 색깔, 냄새, 맛, 음란함, 육체적 접촉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선하고 악함, 맑고 탁함, 후하고 박함을 뒤죽박죽 섞은 채 이 경계의 길을 따라 제멋대로 달리다가, 결국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깨달은 자 (哲)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멈추며 (止感), 호흡을 고르게 조절하고 (調息), 감각적 자극에 부딪히는 것을 금하여 (禁觸), 오직 한마음으로 실행하여 망령된 것을 돌이켜 참된 본성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공덕을 완수한다 (性通功完)'는 말의 참뜻이다.”


인간과 만물은 똑같이 세 가지 참됨 (三眞)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성품 (性)과 목숨 (命)과 정기 (精)입니다. 인간은 이를 온전하게 받았으나, 다른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습니다.


참된 성품 (眞性)은 본래 선하고 악함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상철 (上哲)은 이를 통달합니다. 참된 목숨 (眞命)은 맑고 흐림이 없습니다. 중철 (中哲)은 이를 깨닫습니다. 참된 정기 (眞精)는 두텁고 엷음이 없습니다. 하철 (下哲)은 이를 잘 보전합니다. 이 세 가지 참됨을 회복하여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신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은 땅에서 헤매다가 세 가지 망령됨 (三妄)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 (心)과 기운 (氣)과 몸 (身)입니다.


마음은 본래의 성품에 의지하나 선악의 분별을 일으키니,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입습니다. 기운은 본래의 목숨에 의지하나 맑고 탁함이 생기니, 맑으면 오래 살고 탁하면 일찍 죽습니다. 몸은 본래의 정기에 의지하나 후하고 박함이 있으니, 후하면 귀하게 되고 박하면 천하게 됩니다.


참됨 (眞)과 망령됨 (妄)이 서로 맞서 세 가지 길 (三途)을 만드니, 이를 느낌 (感), 숨쉬기 (息), 부딪힘 (觸)이라 합니다. 이들이 굴러서 열여덟 가지 경계를 이룹니다.

느낌에는 기쁨, 두려움, 슬픔, 성냄, 탐욕, 싫어함이 있습니다. 숨쉬기에는 향기, 썩은 냄새, 차가움, 더움, 마름, 축축함이 있습니다. 부딪힘에는 소리, 색깔, 냄새, 맛, 음탕함, 닿음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선과 악, 맑음과 탁함, 후함과 박함을 서로 뒤섞어버립니다. 그들은 경계를 따라 멋대로 달리다가 타락하여,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수레바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 (哲)는 감정을 그치고 (止感), 호흡을 고르며 (調息), 자극에 부딪히는 것을 금합니다 (禁觸). 오직 한 뜻으로 변화하여 행하니, 망령됨을 돌이켜 참됨으로 나아갑니다 (返妄卽眞). 그리하여 마침내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당신들은 이 가르침을 유일한 법도로 삼아 따라야 합니다.





『천부경』이 우주라는 거대한 집을 짓는 설계도라면, 『삼일신고, 三一神誥』는 그 집 안에서 살아갈 인간을 위한 구체적인 사용 설명서이자 실천적인 수행 지침서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설계도가 있어도 그 공간을 점유하는 거주자가 삶의 방식을 모른다면 집은 텅 빈 공간으로 남을 뿐입니다. 『천부경』이 보여준 ‘하나 (一)’의 원리가 인간의 몸과 마음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인간이 겪는 고통의 기원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본래의 신성한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를 『삼일신고』는 366자의 명료한 언어로 설명합니다.


『삼일신고』라는 제목 자체가 그 핵심을 드러냅니다. ‘삼일 (三一)’이란 ‘하나를 잡으면 셋을 함유하고 (執一含三, 집일함삼), 셋이 모여 다시 하나로 귀환한다 (會三歸一, 회삼귀일)’는 우주의 이치를 가리킵니다. ‘신고 (神誥)’란 신의 신명한 글로 하신 말씀을 뜻합니다. 즉, 삼신일체 (三神一體)의 도리로 홍익인간 (弘益人間)의 이념을 구현하고, 삼진귀일 (三眞歸一)의 수행으로 본성을 통하고 공덕을 완성하는 ‘성통공완 (性通功完)’의 경지에 이르러, 지상에 천궁을 세우는 길을 제시한 경전입니다. 이는 막연한 기복 신앙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메커니즘을 해부하고 최적화하는 영적 공학의 정수입니다.


『삼일신고』가 역사무대에 명확하게 등장한 시점은 흔히 생각하는 신화의 시대보다 훨씬 구체적입니다. 문헌상 이 책의 서문을 쓴 인물은 발해 (渤海)를 건국한 고왕 대조영 (高王 大祚榮, ?-719)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유민들이 흩어지던 혼란의 시기, 대조영은 흩어진 민족의 구심점을 세우기 위해 태백산 (백두산) 기슭에서 이 가르침을 선포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라를 잃은 유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영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떤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를 일깨워줄 강력한 영적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대조영은 단군조선 시절부터 구전되던 가르침을 모아 『삼일신고』라는 텍스트로 확립함으로써, 무력으로 세운 국가가 아닌 정신으로 세운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 경전의 전승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환웅천왕의 명으로 신지 (神誌)가 고문 (古文)으로 청석 (靑石)에 새겨 전한 것이 ‘고문석본 (古文石本)’이었으며, 이후 부여의 법학자 왕수긍 (王受兢)이 은나라 문자로 박달나무에 새긴 것이 ‘은문단본 (殷文檀本)’이었습니다. 고구려를 거쳐 발해국에 이르러서는 문왕 (文王)이 이 소중한 민족 경전이 전란으로 유실될 것을 두려워하여 보본단 (保本壇) 석실에 깊이 간직했습니다.


그러나 발해의 멸망과 함께 이 텍스트는 다시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에 『삼일신고』는 이단이나 비주류의 서적으로 취급받으며 소수의 도인들에 의해서만 은밀하게 전승되었습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조선 말, 백두산에서 수행하던 백봉신사 (白峯神師)가 십 년의 기도 끝에 석실에서 이 경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906년 겨울, 백봉의 제자 백전노인 (白佺老人)이 눈보라 치는 서대문역에서 나철 (羅喆, 1863-1916)에게 이 경전을 전했습니다.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하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결코 열등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고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삼일신고』는 다시금 부활하여 대종교 (大倧敎) 중광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발해 석실본 (渤海 石室本), 고경각 신사기본 (古經閣 神事記本), 그리고 천보산 태소암본 (天寶山 太素庵本)입니다. 고려 말 행촌 이암 (李巖)이 천보산 태소암에서 얻은 고서 중에 366자로 구성된 『삼일신고』가 있었고, 이것이 후손 이맥 (李陌)에게 전해져 『태백일사』에 실렸습니다. 이암은 원래 나뉘어 있지 않던 경문을 허공 (虛空), 일신 (一神), 천궁 (天宮), 세계 (世界), 인물 (人物)의 다섯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발해 석실본은 천훈 (天訓), 신훈 (神訓), 천궁훈 (天宮訓), 세계훈 (世界訓), 진리훈 (眞理訓)의 오훈 (五訓)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작 부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글자 수와 내용의 핵심은 동일합니다.


이 지점에서 역사학계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주류 사학계는 현재 전해지는 『삼일신고』가 고대의 원형 그대로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문체나 용어가 근대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특히 1900년대 초반 민족 종교 운동의 과정에서 재구성되거나 창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문헌 검증의 차원에서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물리적 나이가 아닙니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상의 깊이와 혁명성입니다. 만약 이것이 근대에 창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당시 절망에 빠진 민족에게 "너희 뇌 속에 신이 내려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주체성을 일깨운 그 통찰력은 놀라운 일입니다. 외세의 침략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고 내면의 신성을 확인하게 했던 힘, 그 사상적 가치는 위서 논란을 넘어선 곳에 존재합니다. 고고학적 진위 여부를 떠나, 이 텍스트가 제시하는 인간 구원의 논리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있는 가르침입니다.


제1장 천훈 (天訓) 또는 ‘허공 (虛空)’은 하늘에 대한 정의를 36자로 제시하며,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창창한 것이 하늘이 아니며, 현현한 것이 하늘이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푸른 하늘이나 까만 우주 공간은 진짜 하늘의 껍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형체가 없고, 끝도 없으며, 위아래도 없고, 동서남북의 방위도 없습니다. 하늘은 텅 비어 있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밝으며, 지극히 무궁합니다.


이 구절은 하늘의 무가명성 (無可名性), 무형질성 (無形質性), 무시종성 (無始終性), 무위치성 (無位置性)을 전제합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은 하늘의 표면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하늘은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절대적 실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선, 만물을 담아내고 에너지를 운용하는 근원적인 바탕입니다. 이는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공간의 배경, 혹은 양자장이 펼쳐지는 무한한 장 (Field)과 유사합니다. 천 (天)의 지대함은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천리 (天理)의 지명함은 우주를 관통하는 법칙의 명징함을, 천도 (天道)의 무궁함은 하늘의 운행이 끝없이 지속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절대성의 개념은 신도 (神道)가 모든 곳에 통하여 막힘이 없다는 달통무애 (達通無碍)의 근거가 됩니다.


제2장 신훈 (神訓) 또는 ‘일신 (一神)’은 51자로 신의 본성을 밝힙니다. 『삼일신고』의 신관 (神觀)은 매우 독특합니다. 여기서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한 인격신이 아닙니다. "신은 없는 곳이 없다 (무부재, 無不在)"는 구절은 신이 특정한 장소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이자 법칙임을 선언합니다. 서양의 유일신 사상이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격히 구분한다면, 『삼일신고』의 일신은 만물 안에 스며들어 작용하는 내재적 초월자입니다.


무상위 (無上位)에 계신 신은 대덕 (大德), 대혜 (大慧), 대력 (大力)의 삼대권능 (三大權能)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립니다. 대덕은 만물을 살리고 기르는 조화 (造化)의 힘입니다. 대혜는 만물을 가르치고 이끄는 교화 (敎化)의 지혜입니다. 대력은 만물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는 치화 (治化)의 능력입니다. 이 세 권능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신에게서 나옵니다. 신은 하나로 계시면서 세 가지 작용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삼신일체 (三神一體)의 뜻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형식상 유사해 보이지만, 이는 독립적 위격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신이 가진 기능적 분화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경전이 "자신의 본성에서 신의 씨앗을 찾으라 (自性求子, 자성구자)"고 가르친다는 점입니다. 진성 (眞性)으로 구하면 신이 머리에 내려와 자리합니다 (降在爾腦, 강재이뇌). 여기서 씨앗이란 삼신의 속마음을 담고 있는 종자 (種子)를 가리킵니다. 신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뇌 속에, 우리 본성 안에 내재한 생명력 그 자체입니다. 이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본래의 신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신인합일 (神人合一)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호모 판테이스트에게 신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감각하고 이해하며 합일해야 할 실재입니다.


제3장 천궁훈 (天宮訓) 또는 ‘천궁 (天宮)’은 40자로 성통공완한 자들이 가는 곳을 설명합니다. 천궁은 죽어서 가는 저승이나 서양 종교의 천당과는 다릅니다. 천궁은 인간이 현세에서 참된 본성을 회복하고 366가지 인간사의 공덕을 완성했을 때 이르는 의식의 경지이자, 그가 발 딛고 선 현실입니다. 이를 '지상천궁 (地上天宮)'이라 합니다.


천궁에는 대덕으로 살리고, 대혜로 가르치고, 대력으로 다스리는 신의 권능이 펼쳐집니다. 신고에 따라 수행한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이 권능을 구현합니다. 그는 단순히 윤리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력을 실현하는 존재가 됩니다. 하늘의 법에 위배되지 않고, 땅의 육성에 게으르지 않으며, 인간 본성의 행위에 어긋나지 않는 '재세이화 (在世理化)'의 삶이 곧 천궁에 사는 것입니다. 366이라는 숫자는 일 년의 날수를 상징하며, 인간의 모든 일상적 행위가 수행의 대상이 됨을 의미합니다. 성통공완한 사람은 현실을 초월하여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홍익인간의 이념과 광명이세 (光明理世)의 이상을 구현하여 세상을 밝은 이치로 다스립니다.


제4장 세계훈 (世界訓) 또는 ‘세계 (世界)’는 72자로 우주의 창조와 운행을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고대인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과학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는 둥근 덩어리이며 (地球形體, 지구형체), 쉬지 않고 회전한다 (回轉無休, 회전무휴)"는 구절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 텍스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허공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星辰, 성진) 중 하나임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더 나아가 "너희가 보는 땅이 큰 듯하지만, 우주 전체로 보면 작은 티끌과 같다"고 말하며 인간의 좁은 시야를 경계합니다. 우주의 중심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수많은 별들이 흩어졌고, 바다와 육지가 이루어졌으며, 신이 기 (氣)를 깊숙한 곳까지 불어넣고 햇빛과 열로 감싸니 만물이 변태하고 번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현대의 빅뱅 이론이나 진화론적 관점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700세계라는 표현은 우주에 우리 외에도 무수한 세계가 존재함을 시사하며, 인간 중심주의를 논리적으로 무력화시킵니다. 이 세계관에서 자연은 죽은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신의 기가 작용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우주적 생명의 일부로서 다른 존재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삼일신고』의 핵심은 마지막 장인 진리훈 (眞理訓) 또는 ‘인물 (人物)’에 있습니다. 167자로 이루어진 이 장은 인간을 분석하는 정교한 심리학이자 인류학 보고서입니다. 텍스트는 인간의 구성 요소를 '성 (性, 본성)', '명 (命, 생명)', '정 (精, 정기)'이라는 세 가지 참된 것 (三眞, 삼진)으로 정의합니다. 성은 본성이고, 명은 생명이며, 정은 육체적 에너지입니다. 인간은 이 삼진을 온전하게 받았지만, 다른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습니다.

판본에 따라 이 삼진에 대한 묘사가 조금 다릅니다. 발해 석실본은 선악, 청탁, 후박이 전혀 없는 절대적 순수의 상태 (무선악, 무청탁, 무후박)로 표현하고, 태백일사본은 악이 없고 오직 선하며, 탁함이 없고 오직 맑은 상태 (선무악, 청무탁, 후무박)로 표현합니다. 어느 쪽이든 삼진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땅에 살면서 미혹되어 삼망 (三妄)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본성은 '마음 (心)'이 되고, 생명은 '기운 (氣)'이 되며, 정기는 '몸 (身)'이 됩니다. 이것이 삼망입니다. 마음에는 선악이 있어 복과 화를 부르고, 기운에는 청탁이 있어 장수와 요절을 가르며, 몸에는 후박이 있어 귀함과 천함이 생깁니다.


인간의 본성을 흐리게 만드는 구체적인 원인은 감 (感), 식 (息), 촉 (觸)이라는 세 가지 통로입니다. 감은 기쁨, 두려움, 슬픔, 성냄, 탐욕, 싫어함의 여섯 가지 감정입니다. 식은 향기, 냄새, 추위, 더위, 떨림, 습함의 여섯 가지 기운입니다. 촉은 소리, 색깔, 냄새, 맛, 음욕, 부딪침의 여섯 가지 접촉입니다. 이 18가지 경계가 서로 뒤섞여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 (三途, 삼도)에 떨어집니다. 이 부분은 불교의 12연기설이나 유식사상과 유사하지만, 『삼일신고』는 세상을 고해 (苦海)로만 보지 않습니다. 인간은 삼진을 온전하게 받았기에, 수행을 통해 본래의 완전함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긍정이 깔려 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본성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삼일신고』는 세 가지 기술을 제시합니다. 지감 (止感), 조식 (調息), 금촉 (禁觸)입니다.


지감 (止感)은 느낌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쁨이 와도 기쁨에 취하지 않고 슬픔이 와도 슬픔에 익사하지 않는 부동심을 기르는 것으로, 불가의 명심견성 (明心見性)과 통합니다.


조식 (調息)은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은 마음과 몸을 연결하는 끈입니다. 거친 숨을 고르게 하여 탁한 기운을 뱉어내고 우주의 맑은 기운과 공명하게 합니다. 이는 도교의 양기연성 (養氣鍊性)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금촉 (禁觸)은 부딪힘을 금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감각적 자극 속에서도 내면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쾌락과 고통에 반응하지 않고 주체성을 지키는 태도로, 유가의 수신솔성 (修身率性)과 연결됩니다.


이 세 가지 수행을 통해 망령됨을 돌이켜 참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망즉진 (反妄卽眞)'이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성을 통하고 공덕을 완성하는 '성통공완 (性通功完)'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성통공완은 진아 (眞我)가 되는 일이며, 우주와 자아가 상통하여 하나가 되는 힌두교의 범아일여 (梵我一如)와 같은 경지입니다.


『삼일신고』의 사상적 핵심은 '집일함삼 (執一含三)'과 '회삼귀일 (會三歸一)'의 원리입니다. 하나를 잡으면 셋이 함유되고, 셋이 모여 하나로 돌아갑니다. 신이 일에서 삼으로 펼쳐져 만물을 창조했듯이 (하강), 인간은 삼에서 일로 모아져 신과 합일합니다 (상승). 이 창조와 귀환의 변증법은 우주와 인간을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꿰뚫습니다.


이 경전은 유교, 불교, 도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던 고유 사상의 정수입니다. 조선 성리학의 심성론, 불교의 진여 사상, 도교의 양생론이 모두 이 안에 녹아 있습니다. 대종교의 백포종사가 지은 『회삼경, 會三經』은 유불선이 소아 (小我)이고 이것이 모여 하나가 된 대아 (大我)가 바로 『삼일신고』임을 밝힙니다.


『삼일신고』는 21세기 현대 인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하나가 셋으로 펼쳐지는 원리는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다원주의 사회의 지혜가 됩니다.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할 통일의 철학이자 생태적 영성의 토대입니다. 성통공완의 수행론은 감각과 감정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심리적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입니다.


『삼일신고』에 따르면 인간은 죄인이 아니며,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도 아닙니다. 인간은 잠시 기억을 잃어버린 신으로 정의됩니다. 고통은 신의 형벌이 아니라 감각 기관의 오작동일 뿐이므로, 고통을 멈추는 열쇠 또한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감정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자극을 초월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호모 판테이스트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맹목적인 믿음 대신 명료한 수행을 선택하고, 외부의 권위 대신 내 뇌 속의 신성을 신뢰하는 것. 『삼일신고』는 혼란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설계도인 『천부경』과 삶의 매뉴얼인 『삼일신고』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분열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태초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잃어버린 기억의 역사서, 『부도지』를 통해 인류가 떠나온 낙원 '마고성'의 비밀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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