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잊혀진 기억의 역사서, 『부도지, 符都誌』
이 기록은 박제상 (朴堤上, 363-419)이 남긴 징심록 (澄心錄)의 첫 머리인 부도지 (符都誌)의 내용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것입니다.
제1장: 마고성과 천인들의 탄생
마고성 (麻姑城)은 이 땅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성 (城)입니다. 이곳은 하늘의 진리인 천부(天符)를 받들어 지키며, 우주가 열리기 이전의 세상인 선천(先天)의 뜻을 계승한 곳입니다.
성 안 네 곳의 방위에는 네 명의 천인 (天人, 하늘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피리 (관)를 쌓아 놓고 우주의 조화로운 소리(율려)를 조율하여 만들었는데, 그 이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는 황궁 (黃穹)씨, 둘째는 백소 (白巢)씨, 셋째는 청궁 (靑穹)씨, 넷째는 흑소 (黑巢)씨였습니다.
황궁씨와 청궁씨, 이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 (穹姬)씨였고, 백소씨와 흑소씨, 이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 (巢姬)씨였습니다. 그리고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 (麻姑)의 딸들이었습니다.
마고는 짐세 (朕世, 우주가 생겨나기 전의 아득한 시대)에 태어나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였습니다. 마고는 선천 (先天, 근원적인 하늘)을 남자로 삼고, 후천 (後天, 드러난 세상)을 여자로 삼아, 배우자 없이 스스로 궁희와 소희를 낳았습니다.
궁희와 소희 또한 그 선천의 맑은 정기를 받아, 남편 없이 스스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두 명의 천인 (남성)과 두 명의 천녀 (여성)를 낳았으니, 이를 모두 합하여 네 명의 천인과 네 명의 천녀가 있게 된 것입니다.
제2장: 율려의 시작과 지유 (地乳)의 탄생
우주가 열리기 전인 선천 (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 (麻姑大城)은 실달성 (實達城, 물질의 성)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허달성 (虛達城, 허공의 성)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오직 따뜻한 햇볕만이 비출 뿐,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물체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8개의 여 (呂, 음의 소리)만이 하늘에서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실달성과 허달성 모두 이 소리 속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또한 이 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짐세 (朕世, 우주의 태동기)입니다.
짐세 이전에는 율려 (律呂, 우주의 조화로운 리듬)가 몇 번이나 되살아나면서 별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짐세가 몇 번 끝날 무렵, 마고가 궁희와 소희 두 딸을 낳아 그들로 하여금 오음 (五音, 다섯 가지 소리)과 칠조 (七調, 일곱 가지 가락)의 음절을 맡아 다스리게 했습니다.
성 안에서 처음으로 지유 (地乳, 땅에서 솟아나는 젖/생명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궁희와 소희는 또 네 명의 천인 (남성)과 네 명의 천녀 (여성)를 낳아 지유를 먹여 길렀습니다. 그리고 네 천녀에게는 여 (呂, 음의 율려)를, 네 천인에게는 율 (律, 양의 율려)을 맡아 다스리게 했습니다.
제3장: 천지창조와 사원소 (물, 불, 흙, 공기)의 조화
후천 (後天, 세상이 열린 후)의 운수가 열렸습니다. 우주의 조화로운 리듬인 율려 (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소리의 메아리 (향상)를 이루니, 이는 소리 (성)와 곡조 (음)가 서로 섞인 것이었습니다.
마고가 실달대성 (實達大城, 물질의 성)을 끌어당겨 하늘의 물 (천수)이 있는 지역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실달대성의 기운이 위로 솟구쳐 올라 물과 구름을 덮었고, 실달성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리면서 엉킨 물 한가운데에 땅이 생겨났습니다. 이로써 육지와 바다가 나란히 생기고, 산과 강이 넓게 뻗어 나갔습니다.
이에 물이 있던 지역이 육지로 변하여 서로 겹쳐지고, 위아래가 바뀌며 빙글빙글 도니, 비로소 시간과 달력 (曆數, 역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 (氣, 공기), 화 (火, 불), 수 (水, 물), 토 (土, 흙)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빛은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을 나누었고, 윤택한 기운이 초목과 짐승들을 길러내니 온 땅에 생명 활동이 가득해졌습니다.
이때 네 명의 천인이 만물의 근원이 되는 소리를 나누어 맡아 관리했습니다.
흙 (土)을 맡은 자는 황 (黃, 황궁씨)이 되고, 물 (水)을 맡은 자는 청 (靑, 청궁씨)이 되어, 각각 '궁 (穹)'을 만들어 자신의 직책을 지켰습니다.
기 (氣)를 맡은 자는 백 (白, 백소씨)이 되고, 불 (火)을 맡은 자는 흑 (黑, 흑소씨)이 되어, 각각 '소 (巢)'를 만들어 자신의 직책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성씨 (황궁, 청궁, 백소, 흑소)가 된 유래입니다.
이로부터 공기 (기)와 불 (화)이 서로 밀어주어 하늘에는 차가운 기운이 없어졌고, 물 (수)과 흙 (토)이 서로 감응하여 땅에는 어긋나거나 흉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는 소리의 본체(음상)가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소리의 메아리(향상)가 아래에 있어 소리를 고르게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제4장: 인류의 번성과 지상낙원 마고성
이때, 우주의 근본 소리인 본음(本音)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자가 비록 여덟 명 (4천인과 4천녀)이 있었지만, 소리의 울림인 향상 (響象)을 닦고 증명하여 조절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순식간에 태어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등 (閃生閃滅, 섬생섬멸) 불안정하여 제대로 조절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마고가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으니, 이들이 바로 지상 세계에 처음 나타난 인류의 조상 (人祖, 인조)이 되었습니다.
그 남녀들이 다시 서로 결혼하여 몇 대가 지나는 사이에 자손들인 족속 (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무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12명의 시조 (인조)는 각각 성문을 지키고, 나머지 자손들은 소리의 울림인 향상 (響象)을 나누어 관리하고 닦고 증명하니 (修證, 수증), 비로소 시간과 달력의 운행인 역수 (曆數)가 조절되어 세상이 안정되었습니다.
마고성 안의 모든 사람은 타고난 품성 (稟性)이 순수하고 정기로워 능히 우주의 조화 (造化)를 알았습니다. 또한 땅에서 솟아나는 젖인 지유 (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습니다.
귀에는 오금 (烏金, 검은 금/청각 기관)이 있어 하늘의 소리 (天音, 천음)를 모두 들을 수 있었고, 길을 갈 때는 껑충껑충 뛰거나 걸을 수 있어서 오고 감이 자유로웠습니다 (自在, 자재).
자신의 임무를 마치면 육신은 금빛 먼지 (金塵, 금진)가 되어 사라지지만, 그 본성인 성체 (性體)는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의 의식 (魂識, 혼식)이 일어남에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할 수 있었고, 백의 몸체 (魄體, 백체)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체를 감추고도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기운 (地氣, 지기) 속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無量, 무량).
제5장: 지소씨의 포도 섭취와 오미의 변
백소씨 (白巢氏) 일족의 지소 (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 (地乳, 지유)을 마시려고 유천 (乳泉, 젖샘)에 갔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많고 샘물은 적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다 보니 자기는 마시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양보하기를 다섯 번이나 되었습니다.
결국 젖을 마시지 못하고 돌아와 자신의 집인 소 (巢, 둥지/거처)에 올라갔는데, 배가 고파 정신이 혼미해지고 어지러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귀에는 희미하고 어지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무심코 오미 (五味, 다섯 가지 맛)를 맛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소 (巢)의 난간 덩굴에 달려 있던 포도 열매 (萄實, 도실)였습니다.
포도를 먹고 나자 벌떡 일어나 펄쩍 뛰었는데, 이는 그 열매의 독력 (毒力, 강렬한 자극)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곧 소 (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걸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저 하늘을 능가하는구나. 이것은 무슨 도 (道)인가! 바로 포도 열매의 힘이로다."
사람들은 모두 지소씨의 말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지소씨가 "정말로 좋다"고 강력하게 권하므로, 여러 사람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따 먹어 보았습니다. 과연 지소씨의 말처럼 기운이 솟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수많은 종족 사람들이 앞다투어 포도를 따 먹게 되었습니다.
제6장: 육체의 변화와 마고성의 폐쇄
백소씨 (白巢氏) 사람들이 지소씨가 포도를 먹고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곧바로 수찰 (守察, 자연의 이치를 지키고 살피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금지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제하던 자재율 (自在律, 자율적 법규)을 파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열매를 먹는 습관 (食實之習, 식실지습)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 (禁察之法, 금찰지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마고는 성문을 닫고 (閉門, 폐문), 실달대성 (물질계)을 감싸고 있던 장막 (冪, 멱)을 거두어 버렸습니다.
아아, 이미 늦었습니다! 열매를 먹는 것이 습관이 된 자들은 모두 이빨 (齒, 치)이 생겼으며, 그들의 침 (唾, 타)은 뱀의 독 (蛇毒, 사독)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억지로 다른 생명을 먹어버렸기 (强呑他生, 강탄타생) 때문입니다.
수찰을 하지 못하게 막은 자들은 모두 눈이 번쩍 뜨여 보기를 올빼미 눈 (鴟目, 치목)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모두의 법 (公律, 공률)을 훔쳐보았기 (私竊, 사절)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피와 살 (血肉, 혈육)이 탁하게 변하고 (濁化, 탁화), 마음과 기운 (心氣, 심기)이 혹독하게 변하여 마침내 하늘이 준 본성 (天性, 천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귀에 있던 오금 (烏金, 검은 금)이 변하여 토사 (兎沙, 흙모래)가 되어버리니, 끝내는 하늘의 소리 (天聲, 천성)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해져서, 걷기는 하되 예전처럼 껑충껑충 뛸 수가 없게 되었으며, 태아를 잉태하는 정기 (胎精, 태정)가 순수하지 못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 (獸相, 수상)을 많이 낳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기운 (命期, 명기)이 일찍 익어버려 (早熟, 조숙), 죽어서도 하늘로 돌아가 변화 (遷化, 천화)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습니다. 이는 생명의 수 (數)가 얽히고 미혹되어 줄어들었기 (減縮, 감축) 때문입니다.
제7장: 마고성에서의 추방과 복본 (復本)의 약속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원망하고 탓하는 소리 (怨咎, 원구)가 높아지자, (원인을 제공한)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는 결국 가족들 (眷屬, 권속)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숨어버렸습니다.
또한 포도 열매를 먹었던 자들과 수찰 (守察, 자율적 법규)을 지키지 않았던 자들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습니다.
황궁씨 (黃穹氏)가 그들의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겨 작별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미혹된 정도 (惑量, 혹량)가 매우 심하여 본래의 성품과 모습 (性相, 성상)이 변해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성 안에서 함께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힘써 닦고 증명 (修證, 수증)하여, 그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내어 남김이 없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본래의 뿌리로 돌아가게 될 것 (復本, 복본)입니다. 그러니 부디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이때, 기(氣, 공기)와 흙 (土, 토)가 서로 부딪쳐 어긋나니, 계절을 만드는 햇빛 (光, 광)이 한쪽으로 치우쳐 차갑고 어두운 곳 (冷暗, 냉암)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물과 불이 조화를 잃으니 (水火失調, 수화실조), 핏기 있는 (血氣,혈기)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猜忌, 시기)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달성을 감싸고 있던 빛의 장막 (冪光, 멱광)을 거두어들여 더 이상 비추어 주지 않고 (不爲反照, 불위반조), 성문이 굳게 닫혀 하늘의 소리 (律呂, 율려)를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8장: 마고성에서의 분거 (分居)와 황궁씨의 맹세
아아, 이미 늦었습니다! 성을 나간 사람들 가운데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 자들이 다시 성 밖으로 돌아와, 곧바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復本, 복본)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복본에도 때와 장소가 있음을 알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젖샘 (乳泉, 유천)을 얻고자 성곽 밑을 파헤쳤습니다. 그러자 성터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 (泉源, 천원)이 사방으로 흘러내렸으나, 곧바로 단단한 흙으로 변해버려 (卽化固土, 즉화고토)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 안의 젖마저 마침내 말라버렸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서로 다투어 차지하려 드니, 세상의 혼탁함이 극에 달하여 (混濁至極, 혼탁지극) 맑고 깨끗함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難保淸淨, 난보청정).
황궁씨 (黃穹氏)는 모든 사람의 어른 (長, 장)이었으므로, 스스로 흰 띠풀 (白茅, 백모)로 몸을 묶고 마고 (麻姑) 앞에 나아가 사죄했습니다. 그는 오미의 변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반드시 복본을 이루겠다고 맹세했습니다 (立誓復本之約, 입서복본지약).
그리고 물러나와 모든 부족에게 고했습니다.
"오미의 재앙이 거꾸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치와 도를 알지 못하고 (不知理道, 부지이도), 단지 미혹된 마음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청정함은 이미 깨졌고 마고대성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때 모든 천인 (天人)들이 뜻을 모아 나누어 살기 (分居, 분거)로 결정하고, 마고대성을 온전히 보전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황궁씨는 하늘의 진리를 담은 천부 (天符, 천부)를 믿음의 증표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 (採葛, 채갈)을 가르쳐 사방으로 나누어 살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에 청궁씨 (靑穹氏)는 가족을 이끌고 동쪽 사이 문을 나가 운해주 (雲海洲)로 갔고, 백소씨 (白巢氏)는 가족을 이끌고 서쪽 사이 문을 나가 월식주 (月息洲)로 갔으며, 흑소씨 (黑巢氏)는 가족을 이끌고 남쪽 사이 문을 나가 성생주 (星生洲)로 갔습니다.
황궁씨 (黃穹氏)는 가족을 이끌고 북쪽 사이 문을 나가 천산주 (天山洲)로 갔는데, 천산주는 매우 춥고 험한 땅이었습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여 (自進忍苦, 자진인고), 복본의 대업을 이루겠다는 결연한 맹세 (盟誓, 맹서)였습니다.
제9장: 대홍수와 세상의 변화
마고성을 떠나 나누어 살게 된 여러 종족이 각 대륙 (洲, 주)에 도착하니, 어느덧 천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먼 옛날, 오미의 변 때 성을 먼저 나갔던 사람들의 후손 (裔, 예), 들이 이미 각지에 섞여 살고 있었는데, 그 세력이 매우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근본을 잊어버리고 (殆忘根本, 태망근본),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게 변하여 (猛獰, 맹영), 새로 이주해 온 분거족을 보면 떼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치곤 했습니다.
분거족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살게 되자 (定住, 정주), 바다가 가로막고 산이 가로막아 (海阻山隔, 해조산격) 서로 오고 감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고가 궁희, 소희 두 딸과 더불어 대성 (大城)을 보수하고, 하늘의 물 (天水, 천수)을 부어 성 안을 깨끗이 청소한 뒤, 마고대성을 허달성 (虛達城, 허공의 성) 위로 옮겨 버렸습니다.
이때 청소한 물이 동쪽과 서쪽으로 크게 넘쳐 흘러 (大漲, 대창), 운해주 (雲海洲)의 땅을 크게 파괴하고, 월식주 (月息洲)의 사람들을 많이 죽게 했습니다 (대홍수 심판).
이로부터 지구 (지계)의 무게 중심이 변하여 시간과 달력의 운행에 차이가 생기니 (曆數生差, 역수생차), 비로소 달이 차고 기우는 삭 (朔, 초하루)과 망 (望, 보름)의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제10장: 유인씨와 환인씨의 문명 개척
황궁씨 (黃穹氏)가 천산주 (天山洲)에 도착하여, 사람들의 미혹을 풀고 (解惑, 해혹)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復本, 복본)을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닦고 증명하는 일 (修證, 수증)에 힘쓰도록 권하며 알렸습니다.
곧 맏아들인 유인씨 (有因氏)에게 명하여 인간 세상을 밝히는 일을 맡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모든 대륙 (洲, 주)을 돌아다니며 (巡行, 순행) 살피게 했습니다.
황궁씨는 곧 천산 (天山) 깊은 곳으로 들어가 돌이 되어 (化石, 화석) 길게 소리를 내어 우주의 음을 울렸습니다 (長鳴調音, 장명조음). 이는 인간 세상의 미혹을 남김없이 없애버리고, 기필코 마고대성을 회복하겠다는 서약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유인씨 (有因氏)가 황궁씨로부터 천부삼인 (天符三印, 하늘의 진리를 상징하는 세 가지 도장/징표)을 이어받았습니다. 이것은 곧 하늘과 땅의 근본 소리 (天地本音, 천지본음)를 상징하는 것으로, 진실로 근본이 하나 (眞一, 진일)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인씨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히 여겨,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법 (鑽燧發火, 찬수발화)을 발명했습니다. 이로써 어둠을 밝히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으며, 또 음식을 익혀 먹는 법 (火食, 화식)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유인씨가 천 년을 다스린 후, 아들 한인 (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해주고 곧 산으로 들어가 오로지 마음을 닦고 씻는 것 (契祓, 계불)에만 전념하며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환인씨 (桓因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간 세상에 이치를 증명하는 일 (證理, 증리)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워져 핏기 있는 생물들 (血氣之類, 혈기지류)이 거의 편안함 (安堵, 안도)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괴상하게 변했던 모습 (人相之怪, 인상지괴)이 점차 본래의 모습 (本態, 본태)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는 3세 (황궁-유인-환인)에 걸쳐 3천 년 동안 수행하고 증명한 공덕 (功力, 공력)이, 부족함 없는 완전한 조화 (不咸, 불함)에 거의 이를 만큼 쌓였기 때문입니다.
제11장: 환웅씨의 율법 제정과 홍익인세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 (桓雄氏)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부삼인 (天符三印)을 계승하여 마음을 닦고 몸을 정갈히 하는 수계제불 (修禊除祓, 목욕재계하고 불결함을 제거함)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하늘의 용맹한 도리인 천웅지도 (天雄之道)를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근원 (所由, 소유)을 알게 했습니다.
어느덧 인간 세상 (人世, 인세)이 입고 먹는 일 (衣食之業, 의식지업)에만 치우쳐 타락하자, 환웅씨는 무여율법 (無餘律法, 남김없이 씻어내는 법) 4조를 제정하여 환부 (鰥夫, 홀아비/관리자)에게 맡겨 조절하게 했습니다.
제1조: 사람의 행적 (行蹟)은 때때로 깨끗이 씻어내어 (淸濟, 청제), 모르는 사이에 어둠이 맺혀 살아 있는 귀신 (生鬼, 생귀)이 되거나, 번뇌가 쌓여 마귀가 되지 (化魔, 화마) 않게 하라. 그리하여 인간 세상이 훤히 트여 (通明, 통명) 단 하나의 장애물도 남지 않게 (無餘一障, 무여일장) 하라.
제2조: 사람이 모은 재물 (聚積, 취적)은 죽은 뒤에 공익을 위해 내놓아 (堤功. 제공), 묵은 때 (陳垢, 진구)가 되어 생귀를 부르거나 함부로 낭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게 하라.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 널리 흡족하여 (普洽, 보흡) 단 하나의 유감도 남지 않게 (無餘一憾, 무여일감) 하라.
제3조: 고집이 세고 사악하며 미혹된 자 (頑固邪惑者, 완고사혹자)는 거친 들판으로 귀양 보내 (謫居, 적거), 때때로 그 행실을 깨우쳐 주어 사악한 기운 (邪氣, 사기)이 세상에 남지 않게 (無餘, 무여) 하라.
제4조: 큰 죄를 지은 자 (大犯罪過者, 대범죄과자)는 섬에 유배 보내 (暹島, 섬도) 살게 하고, 죽은 뒤에는 그 시체를 태워 (焚其尸, 분기시) 죄의 찌꺼기 (罪集, 죄집)가 땅 위에 남지 않게 (無餘, 무여) 하라.
또한 환웅씨는 집 (宮室, 궁실)을 짓고 배와 수레 (舟車, 주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머물러 사는 법 (居, 거)과 여행하는 법 (旅, 여)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환웅씨가 처음으로 배를 띄워 바다 (四海, 사해)를 순방했습니다. 천부의 이치를 비추어 증명하며 믿음을 닦게 하고 (修信, 수신), 흩어진 여러 부족의 소식을 소통하며, 근본을 잊지 말 것 (根本之不忘, 근본지불망)을 호소하고, 집과 배와 수레를 만들고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환웅씨가 돌아와서 8가지 소리와 2가지 글 (八音二文, 팔음이문)을 닦고, 달력 (曆修, 역수)을 정하며, 의술과 약 (醫藥, 의약)을 연구하고, 천문 (天文)과 지리 (地理)를 저술하니, 이것이 곧 ‘홍익인세 (弘益人世,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함)’였습니다.
이는 세월이 흘러 법이 느슨해지고 (世遠法弛, 세원법이),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억측하고 더듬어 찾는 일 (暗揣摸索, 암췌모색)이 늘어나 거짓된 속임수 (詐端, 사단)가 점차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사물들 사이에 근본의 도를 보존하여 환하게 밝히고자 (昭然, 소연) 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학문을 닦는 풍조 (修學之風, 수학지풍)가 일어났으니, 이는 사람의 본성이 어둡고 몽매해져서 (人性昏昧, 인성혼매),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12장: 임검씨의 등장과 부도 건설의 약속
환인씨가 아들 임검씨 (壬儉氏, 단군왕검)를 낳았습니다.
이때, 온 세상 (四海, 사해)의 여러 부족들이 하늘의 이치인 천부 (天符)의 원리를 더 이상 공부하거나 이야기 (講,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은 미혹 (迷惑) 속에 빠져들어, 인간 세상에는 고통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임검씨는 천하의 이런 상황을 보고 큰 근심 (大憂, 대우)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용맹한 도리인 천웅의 도 (天雄之道, 천웅지도)를 닦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 (禊祓之儀, 계불지의)을 행하여 천부삼인 (天符三印)을 이어받았습니다.
임검씨는 백성들에게 밭을 갈고 곡식을 심는 법 (耕稼, 경가), 누에를 치는 법 (蠶, 잠), 칡을 캐서 옷감을 짜는 법 (葛, 갈), 그릇을 굽는 가마 (陶窯, 도요) 만드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물건을 서로 바꾸는 교역 (交易),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는 법 (稼聚, 가취), 계보를 기록하는 제도 (譜錄, 보록)를 널리 펴서 세상을 안정시켰습니다.
임검씨는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여 나무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며 (啖根吸露, 담근흡로) 지냈으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났습니다 (毛毿, 모삼). 그는 온 세상의 길을 두루 다니며 여러 부족을 차례로 방문했는데, 백 년 동안이나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천부의 이치를 비추어 증명하며 믿음을 닦게 하고 (修信, 수신), 미혹을 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解惑復本, 해혹복본)는 맹세를 하게 했으며, 하늘의 뜻에 맞는 도시인 부도 (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지역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과 믿음이 끊어지면서 (信絶, 신절), 여러 부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相異, 상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서로 화합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론하고 풀이하여, 모두가 분명하게 알도록 (明知, 명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모든 부족이 모여 가르침을 나누는 회강 (會講)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번거롭고 바빠서, 자꾸 이야기하고 풀이하지 않으면 그 본질을 잊어버리기 (不講則忘失故, 불강즉망실) 때문이었습니다.
제13장: 부도 (符都)의 건설과 완성
임검씨 (단군왕검)가 돌아와 부도를 건설할 땅을 선택했는데, 그곳은 바로 동북쪽의 자방 (磁方, 자석/나침반의 방위)이었습니다.
이곳은 2와 6이 서로 느껴서 (二六交感, 이륙교감) 생명의 씨앗 (核, 핵)을 품고 있는 영역이며, 4와 8이 서로 돕고 살려 (相生, 상생) 결실을 맺는 땅이었습니다.
밝고 맑은 산 (明山, 명산)과 아름다운 물 (麗水, 여수)이 만 리(萬里)나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사방팔방으로 그 갈래가 뻗어 나가니, 곧 9와 1의 끝과 시작 (九一終始, 구일종시)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부족함 없는 터전이었습니다.
세 뿌리의 신령한 풀 (三根靈草, 삼근영초/산삼)과 다섯 잎의 상서로운 열매 (五葉瑞實, 오엽서실/오가피/인삼), 그리고 일곱 빛깔의 보석 (七色寶玉, 칠색보옥)이 금강산처럼 단단한 땅속 (金岡之臟, 금강지장)에 뿌리를 내려 온 지역에 가득했습니다. 이는 1, 3, 5, 7이라는 자삭 (一三五七磁朔, 자석과 달력)의 정기가 모여 바야흐로 만물을 이루기에 순조롭고 길한 곳이었습니다.
이에 크고 환하게 밝은 땅 (太白明地, 태백명지)의 머리에 천부단 (天符壇,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을 쌓고, 사방에는 보단 (堡壇, 작은 성곽 제단)을 설치했습니다.
보단 사이에는 각각 세 갈래의 물길 (道溝, 도구)을 뚫어 해자(성 주위를 둘러싼 못)를 건너게 했습니다. 보단 사이의 거리는 천 리였으며, 물길 좌우에는 각각 관문을 지키는 수관 (守關)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옛 마고 본성 (麻姑 本城)의 법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부도의 아래쪽 구역의 땅에 도시 구역 (都坊, 도방)을 나누어 긋고, 세 바다의 둘레 (三海之周, 삼해지주)에 물을 머금은 못 (涵澤, 함택)을 둘러쌌습니다.
네 개의 나루터 (四津, 사진)와 네 개의 포구 (四浦, 사포)가 천 리 간격으로 이어져 동서쪽으로 둥글게 벌려 섰습니다 (環列, 환열). 나루터와 포구 사이에 또 6부를 설치하니, 이곳은 여러 부족들을 거느리고 사는 (率居, 솔거) 곳이 되었습니다.
부도 (符都)가 이미 완성되니 (旣成, 기성) 그 모습이 웅장하고 화려하며 빛나서 (雄麗光明, 웅려광명), 족히 온 세상을 모두 화합 시킬 (四海之總和, 사해지총화) 만하며, 모든 부족의 생명의 빛 (生朎, 생령)이 되었습니다.
제14장: 신시 (神市)의 개막과 문명의 화합
이때, 황궁씨의 후손 (黃穹氏之裔, 황궁씨지예) 6만 명을 이주시켜 그곳 (부도)을 지키게 했습니다. 곧 나무를 베어 뗏목 (桴, 부) 8만 개를 만들고, 믿음의 징표인 신부 (信符)를 새겨 천지 (天池)의 물에 띄워 보내 온 세상의 여러 부족들을 초청했습니다.
여러 부족들이 그 신표가 새겨진 뗏목 (信桴, 신부)을 얻어 보고 차례차례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박달나무 숲 (朴達之林, 박달지림)에서 크게 신시 (神市, 신성한 시장/도시)를 열었습니다.
모두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고 (修禊淨心, 수계정심) 하늘의 모습 (天象, 천상)을 살폈으며, 마고의 족보 (麻姑之譜, 마고지보)를 정리하여 자신들의 뿌리 (族屬, 족속)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또한 천부의 소리 (天符之音, 천부지음)를 기준으로 하여 서로 달라진 말과 글을 올바르게 정리했습니다 (整其語文, 정기어문).
또 북극성 (北辰, 북진)과 북두칠성 (七耀, 칠요)의 위치를 높여 정하고, 넓은 바위 (盤石, 반석) 위에서 속죄의 제물 (燔贖, 번속)을 태워 바치며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모여 노래 부르며 하늘의 웅장한 음악 (天雄之樂, 천웅지악)을 연주했습니다.
여러 부족들은 방장산과 방호산의 굴에서 일곱 빛깔 보석 (七寶之玉, 칠보지옥)을 캐내어 그 위에 천부 (天符)를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방장해인 (方丈海印)’이라 부르며, 세상의 일곱 가지 어려움 (七難, 칠난)을 없애는 부적으로 삼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10년마다 반드시 신시(神市)를 여니, 이에 말과 글이 하나의 통일된 표준 (同軌, 동궤)을 이루게 되었고, 온 천하가 하나의 기준 (一準, 일준)으로 바로잡혀, 인간 세상이 크게 평화로워졌습니다 (太和, 태화).
이어서 바닷가 모퉁이 (海隅, 해우)에 성을 쌓고 천부를 받들어 모셨으며, 머무르는 여러 부족 (駐留諸族, 주류제족)들로 하여금 객사 (館, 관)에 머물며 살게 했습니다. 그 후 천 년 사이에 성황당 (城隍, 성황 : 성을 지키는 신을 모신 곳)이 온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15장: 조선제 (朝鮮祭)와 풍요로운 교역
또 예 (澧)와 양 (陽)이라는 땅이 교차하는 중심부 (腹, 복)에 아침 시장인 조시 (朝市)를 설치하고, 여덟 개의 연못인 팔택 (八澤)에는 바다 시장인 해시 (海市)를 열었습니다.
매년 10월이 되면 아침 제사인 조제 (朝祭)를 지냈는데, 온 세상의 여러 부족들이 모두 자기 지방의 특산물 (方物, 방물)을 바쳤습니다.
산악 지방의 부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쳤고, 바다 지방의 부족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하며 칭송했습니다.
“아침 제사에 물고기와 양을 희생 제물로 바치오니, 오미(다섯 가지 맛/욕망)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五味血鮮, 오미혈선) 뭇 생명의 재앙을 멈추게 (休咎蒼生, 휴구창생)하소서.”
이것을 일러 ‘조선제 (朝鮮祭, 아침의 선명한 제사)’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국호의 기원이 나옵니다.)
이때 산과 바다의 여러 부족들이 물고기와 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들도 대부분 절인 생선이나 조개, 가죽 제품 등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곧 희생제 (犧牲祭)를 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죽여 먹는 것을) 반성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게 했습니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살피고 (省察生命, 성찰생명), 땅에 피를 부어 (자신을 길러준) 공덕에 되돌려 보답 (環報育功, 환보육공)했습니다.
이는 다른 생명체를 대신 바쳐서 (代物而償, 대물이상) ‘오미를 즐긴 자신의 허물 (五味之過, 오미지과)’을 갚고, 재앙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니, 곧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자의 괴로운 속마음 (肉身苦衷, 육신고충)을 고백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매년 제사 때가 되면 물건과 재화가 수레바퀴살처럼 모여들어 넘쳐났으므로 (物貨輻湊, 물화폭주), 나루터와 포구에 넓게 바다 시장을 열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除禊祓身, 제계불신), 땅의 이치를 거울삼아 공정하게 교역하는 법을 시행했습니다. 물건의 값과 분량을 정하고, 물건의 본래 성질을 구별하여 그것을 이롭게 쓰는 법을 밝혔습니다.
또 부도의 여덟 연못 (八澤, 팔택) 모양을 본떠 땅을 파고 물길을 냈습니다. 그 굽이치는 물 사이에서 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를 지내고 (報賽, 보새), 잔치를 열어 (會燕, 회연), 만물을 구제하는 의식 (濟物之儀, 제물지의)을 행했습니다.
여러 부족들은 봉래산 원교봉에서 오서지실 (五瑞之實 : 다섯 가지 상서로움을 지닌 열매)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잣 (栢子, 백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봉래해송 (蓬萊海松)’이라 부르며, (이 열매 덕분에) 은혜롭게 다섯 가지 행복 (五幸, 오행)을 얻어 돌아갔습니다.
이로부터 온 세상에 생산하는 일이 흥하고 교역이 매우 번성하여 (殷盛, 은성), 천하가 넉넉하고 풍족해졌습니다 (天下裕足, 천하유족).
제16장: 불로장생의 영약과 부도의 특산물
(신시) 시장에 온 사람들은 또 영주 (瀛州) 대여산 (岱輿山) 계곡에서 삼령지근 (三靈之根 : 세 가지 신령스러움을 지닌 뿌리)을 얻었는데, 그것은 곧 인삼 (人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영주해삼 (瀛州海蔘)’이라 불렀으며, 이 인삼 덕분에 세 가지 덕 (三德, 삼덕 : 정기/기운/마음)을 잘 보전하여 돌아갔습니다.
대개 인삼은 그 고유한 수의 격식 (數格, 수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자석과 달력의 기운이 서린 방위 (磁朔之方, 자삭지방 : 부도 지역)에서 자란 것은 반드시 오래도록 살아갑니다 (長生, 장생).
인삼은 40년을 한 번의 잠자는 주기인 1기 (期)로 삼고, 이런 주기가 13번 (13기, 즉 520년) 쌓인 것을 1삭 (朔)이라는 시간 단위로 삼아 정기를 축적합니다.
그리고 4삭 (즉 2,08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씨를 맺고 신령스럽게 변화하게 됩니다. (즉, 엄청나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자라나는 영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인삼은 부도 지역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방삭초 (方朔草)’라 불렀으며, 세상에서 말하는 ‘불사약 (不死藥, 죽지 않는 약)’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중 혹시 작은 뿌리라도 부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모두 신령한 효험 (靈效, 영효)이 있었으므로, 예로부터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대저 세 뿌리의 신령한 풀인 인삼 (三根靈草, 삼근영초)과, 다섯 잎의 상서로운 열매인 잣 (五葉瑞實, 오엽서실), 그리고 일곱 빛깔 보석으로 만든 부적 (七色寶玉之符印, 칠색보옥지부인)은 진실로 부족함이 없는 세 지역 (不咸三域, 불함삼역 : ‘밝고 신성한 세 지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음)의 특산물이요, 온 세상 모든 부족들에게 내려진 하늘의 은혜였습니다.
제17장: 요(堯) 임금의 반란과 두 번째 대변란
이때 도요 (陶堯, 요 임금)가 천산 (天山)의 남쪽에서 세력을 일으켰는데, 그는 옛날 마고성에서 1차로 쫓겨나 성을 나갔던 사람들 (出城族, 출성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신시의 제사 모임 (祭市之會, 제시지회)에 왕래하며 서쪽 보단 (堡壇)의 우두머리 (干, 간)에게서 도 (道)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본래 수 (數)의 이치를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아, 스스로 9수5중 (九數五中, 1~9의 수가 5를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는 천부의 원리)의 이치를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5를 중심 (中五, 중오)으로 하고 나머지를 8 (外八, 외팔)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1 (자신/왕)이 8 (나머지 세상)을 부리고, 안 (중앙)이 밖 (지방)을 통제하는 것이 이치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오행 (五行)의 법을 만들고,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 (帝王)의 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부도의 철학을 지키던) 소부 (巢夫)와 허유 (許由) 등이 그를 심하게 꾸짖고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이에 요는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 (苗裔, 묘족의 후예)들을 쫓아냈습니다. 묘예는 황궁씨의 남은 후손들이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습니다.
때마침 후대 임검씨 (단군왕검)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요가 그 틈 (허, 虛)을 타서 기습했습니다. 이에 묘예들은 마침내 동쪽, 서쪽, 북쪽의 세 방향으로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요는 곧 땅을 아홉 개 지역 (九州, 구주)으로 나누어 나라라고 부르고, 스스로는 중앙 (中五, 중오)에 거하며 황제 (帝, 제)라 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읍 (唐都, 당도)을 세워 부도와 대립했습니다.
그때 거북이 등에 있는 무늬 (龜背之負文, 귀배지부문)와 명협 (蓂莢, 전설상의 풀)이라는 풀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이를 신의 계시 (神啓, 신계)라 여겼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달력 (曆, 역)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진리인 천부의 이치 (天符之理, 천부지리)를 폐지하고, 부도의 달력 (符都之曆, 부도지력)을 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에 닥친 두 번째의 큰 변란 (二次之大變, 이차지대변)이었습니다.
제18장: 유호씨의 파견과 요 임금의 계략
이때, 임검씨 (단군왕검)가 요 (堯)가 제멋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유인씨 (有因氏)의 손자인 유호씨 (有戶氏) 부자에게 명령하여, 부도의 관리인 환부(鰥夫)와 백성을 가르치는 권사(勸士) 등 100여 명을 이끌고 가서 그들을 타이르고 깨우치게 (曉地, 효지) 했습니다.
요 임금은 그들을 맞이하여 겉으로는 명령에 복종하고 공손히 따르는 척하며 (恭順, 공순), 강가 (河濱, 하빈)에 머물러 살게 했습니다.
유호씨는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 (默觀, 묵관)하면서,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거처를 옮겨 다녔습니다.
이보다 앞서 유호씨가 부도 (符都)에 있을 때, 그는 칡을 캐 먹으며 (採葛, 채갈) 세속의 자극적인 음식인 오미 (五味)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키가 10척 (약 3미터)이나 되는 거구였고, 눈에서는 불빛 같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는 임검씨보다 나이가 100여 살이나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과업을 이어받아 임검씨를 도와 도 (道)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신 (使)이 되어 고집스럽고 미혹된 세상 (頑迷之世, 완미지세)을 구제 (濟度, 제도)하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그 길이 매우 어렵고 험난했습니다.
그때, 요 임금이 유호씨의 아들인 유순 (有舜, 순 임금)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속에 딴생각 (異圖, 이도)을 품었습니다. 요는 겉으로는 맡은 일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두 딸을 이용해 순을 유혹 (誘, 유)하니, 순이 그만 미혹 (迷惑)되고 말았습니다.
유순은 일찍이 부도에서 법을 집행하는 환부 (鰥夫)였으나, 성격이 지나치거나 모자라 중용을 지키지 못하고 절도 (節, 절)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때에 이르러 요에게 홀려, 몰래 그의 두 딸과 결혼 (密娶, 밀취)하고, 어리석게도 요의 편에 붙어 은밀히 그와 협조하게 되었습니다.
제19장: 요·순의 몰락과 우(禹)의 반역
이때 유호씨 (有戶氏)가 (순 임금에게) 수시로 경고하고 경계하도록 타일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할 뿐 행동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순은 끝내 요 임금의 부탁을 받아들여 어진 사람들을 쫓아내 죽이고 (追戮賢者, 추륙현자), 나아가 묘족 (苗 : 황궁씨의 후예)을 정벌하기까지 했습니다.
유호씨가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 죄를 따져 묻고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향해 통곡하며 울었고, 요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讓位, 양위), 스스로 문을 닫고 들어앉았습니다.
유호씨가 말했습니다.
"오미의 재앙 (五味之災, 오미지재)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오행의 재앙 (五行之禍, 오행지화)을 만들었구나. 죄는 땅에 가득 차고, 북두칠성의 기운 (罡, 강)이 하늘을 가리어 세상의 이치 (數事, 수사 : 우주의 질서와 인간사의 경영)가 많이 어그러졌으니, 인간 세상이 몹시 고달프고 괴롭게 되었구나 (人世困苦, 인세곤고).
이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은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겠으나, 알면서도 죄를 지은 자는 비록 가장 가까운 친족(지친)이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유호씨는 곧 둘째 아들 유상 (有象)에게 명하여, 권사 (勸士, 가르치는 관리)들을 이끌고 무리를 모아 그들의 죄를 성토하며 공격하게 했습니다. 싸움은 수년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요의 도읍인 당도 (唐都)를 혁파했습니다.
결국 요 (堯)는 갇혀 지내던 중에 죽었고, 순 (舜)은 창오 (蒼梧)라는 들판으로 도망쳤으며, 그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때 요의 무리 중 하나인 우 (禹)는 순에게 아버지를 죽임 당한 원한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우가 순을 추격하여 죽여버리니, 순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도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는 곧 "올바른 명 (正命, 정명)으로 공을 세웠다 (立功, 입공)"고 말하며, 유호씨의 군대를 위로하고 그들을 돌아가게 했습니다.
유호씨가 물러나서 묵묵히 우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默觀, 묵관). 그런데 이때 우는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 (干伐, 간벌)을 보수하며 군사력을 키우더니, 유호씨에게 저항하며 스스로 하왕 (夏王, 하나라의 왕)이라 칭했습니다.
제20장: 우 (禹)의 배신과 유호씨의 꾸짖음
우 (禹)가 마침내 부도 (符都)를 배반하고 도산 (塗山)에 제단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서남쪽의 여러 부족들을 무력으로 정벌하고 그들을 제후 (諸侯, 임금 아래의 우두머리)라 부르며, 억지로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 (朝貢, 예물)을 바치게 했습니다.
이는 부도의 신성한 제사 모임 (祭市, 제시) 제도를 겉으로만 흉내 낸 것이며, 실제로는 난폭하게 돌진하는 (暴突, 폭돌) 행위였습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럽고 소란스러워지자 (騷然, 소연), 견디지 못하고 부도로 도망쳐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우는 물길과 육지의 길을 모두 차단하여 부도를 고립시키고 (孤隔, 고격) 사람들이 오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때 유호씨 (有戶氏)는 서쪽 지역에 살면서 흩어진 묘족의 후예 (묘예)들을 거두어 모으고,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소통하며 서남쪽의 여러 부족들과 연결하니, 그 세력이 매우 강성하여 스스로 하나의 읍(邑, 고을/나라)을 이루었습니다.
유호씨는 곧 권사를 보내 우를 꾸짖으며 타일렀습니다.
"요 (堯) 임금은 하늘의 수 (天數, 천수)와 이치를 잘못 이해하여, 땅을 멋대로 나누어 놓고 마치 천지를 자신이 독점 (自專天地, 자전천지)한 것처럼 행세했다. 시간을 제멋대로 제정하여 이익이 되는 기회를 독차지 (獨擅利機, 독천리기)하려 했고, 사람들을 핍박하여 마치 개나 양을 기르듯 사사로이 부렸다 (私牧犬羊, 사목견양).
스스로 제왕이라 칭하며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니,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흙이나 돌, 풀과 나무처럼 입을 다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고, 하늘의 이치는 거꾸로 뒤집혀 허망한 곳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하늘의 권세를 훔쳐서 (假竊天權, 가절천권)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횡포를 마음대로 부린 것이다.
제왕이라는 자가 만약 하늘의 권세를 대신 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해와 달을 뜨고 지게 하며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제왕이란 수의 이치를 명확히 깨달은 것 (數諦, 수체)을 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거짓으로 칭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단지 허망하고 악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이치를 증명하는 것이요, 인간 세상의 일이란 그 이치를 증명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외에 또 무엇이 있겠나?
그러므로 부도 (符都)의 법은 하늘의 수와 이치를 명확히 증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본래 임무 (本務, 본무)를 완수하게 하고 그에 따른 본래의 복 (本福, 본복)을 받게 할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비록 먼저 알고 나중에 아는 차이는 있으나 신분의 높고 낮음은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하고 낯선 차이는 있으나 억지로 끌고 가거나 몰아내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온 세상은 평등하며, 모든 부족은 각자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오직 오미의 죄와 책임 (五味之責, 오미지책)을 갚는 것 (報贖, 보속)과, 마고대성의 대업을 회복하는 일은 언제나 한 사람의 희생이 주관하는 데 있는 것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예로부터 세속의 일과 섞이지 않았으니, 황궁씨와 유인씨의 후손이 바로 그들이다.“
제21장: 오행설 (五行說)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
또한, 저 요 (堯)가 주장하는 소위 오행 (五行)이라는 것은 하늘의 수와 이치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법입니다.
방위에서 5가 가운데 (五中, 오중)에 있다는 것은 동서남북이 서로 만나는 교차 (交叉)점을 뜻하는 것이지, 그것이 만물을 낳고 변화시키는 변행의 원리 (變行之謂, 변행지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라는 것은 수 (數)가 1에서 9까지 순환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5는 언제나 가운데에 고정되어 있을 수 없으며, 9가 끊임없이 돌고 돌아, 향과 음의 조화 (律呂相調, 율려상조)가 이루어진 뒤에야 만물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이 되는 수, 즉 기수 (基數)의 원리입니다.
수가 5와 7이 크게 뻗어 나가는 고리 (大衍之環, 대연지환)에 이르게 되면, 그 자리는 5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4와 7도 있게 되는 법입니다.
또한 만물이 순하게 태어나고 거슬러 사라지는 (順逆生滅, 순역생멸) 순환의 덮개 (輪冪, 윤멱 :우주의 주기)는 4 (넷)이지 5 (다섯)가 아닙니다. (또한 만물이 태어나 자라고, 다시 기울어 사라지는 생명 순환의 주기는 4단계이지, 5단계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원래 수인 9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환의 고리가 한 번 끝나는 사이에는 7이 작용하는 것이지 5가 아닙니다.
또한 만물의 성질을 금 (金), 목 (木), 수 (水), 화 (火), 토 (土)의 다섯 가지로 짝지은 것을 봅시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금 (쇠)과 토 (흙)를 어찌 따로 구별하여 세울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 작은 차이 때문에 굳이 구별하려 든다면, 기 (氣, 공기), 풍 (風, 바람), 초 (草, 풀), 석 (石, 돌) 같은 것들은 어찌 함께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만물을 다 열거하자면 그 수는 끝이 없을 것이요,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네 가지가 될지언정, 결코 다섯 가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물질의 성질을 무슨 근거로 수의 성질에 억지로 짝지은단 말입니까? 수의 성질을 가진 사물의 근원은 9 (아홉)이지 5 (다섯)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가 만든 오행설 (五行說)은 참으로 터무니없고 근거가 없는 말 (荒唐無稽, 황당무계)입니다.
이러한 거짓으로 이치를 증명해야 할 인간 세상을 속이고 미혹 (誣惑, 무혹)하게 하여, 마침내 하늘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니, 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22장: 잘못된 달력 (曆制 역제)이 불러올 재앙에 대한 경고
또한 요(堯)가 만든 달력 제도 (曆制, 역제)를 보면, 하늘의 수에 담긴 근본 원리는 살피지 않고, 고작 거북이 등껍질이나 명협 (蓂莢, 전설 속의 풀) 같은 미물에서 그 근본을 취했으니, 도대체 요는 무슨 꿍꿍이 (何心, 하심)란 말입니까?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만물은 다 수 (數, 우주의 이치)에서 나왔으므로, 각자 고유한 수의 징표 (數徵, 수징)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북이와 명협 풀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물과 사건에는 각기 그에 맞는 역 (曆, 달력/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역이란 바로 지나온 자취, 즉 역사 (歷史)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가 만든 달력은 엄밀히 말해 거북이와 명협 풀을 위한 달력이지, 인간 세상을 위한 달력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 세상의 이치와 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까닭에 요는 기준이 되는 삼정 (三正, 세 가지 정월/달력의 기준)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억지로 끼워 맞추려 (苟合, 구합) 했으나, 끝내 맞지 않아 마침내 하늘의 재앙 (天禍, 천화)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대개 달력 (曆, 역)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진리를 증명하는 근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人生證理之根本, 인생증리지근본). 그러므로 그 수의 이치는 내 몸 (躬, 궁) 안에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 몸의 리듬과 우주의 리듬이 같아야 함).
그렇기 때문에 달력이 바르면 (曆正, 역정)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일이 딱 들어맞아 복이 되고, 달력이 바르지 않으면 하늘의 수와 어긋나고 동떨어져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은 이치가 존재하는 곳에 있고 (福在於理存, 복재어이존), 이치는 바르게 증명하는 곳에 존재하기 (理存於正證, 이존어정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달력이 바른가 그른가 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화와 복이 갈리는 시초 (端, 단)가 되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오미의 재앙 (五味之禍, 오미지화)은 한 사람 (지소씨)의 미혹됨에서 시작되어 만대의 생명들 (生靈, 생령)에게 고통을 미쳤는데,
지금 또다시 달력의 재앙 (曆禍, 역화)이 만들어져, 장차 천만 대에 걸쳐 내려갈 진리(眞理)마저 망치려 하니, 참으로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제23장: 천부의 역법 (曆法)과 수리 (數理)의 완성
하늘의 도는 돌고 돌아 스스로 시작과 끝 (自有終始, 자유종시)이 있습니다. 이 시작과 끝이 또 돌고 돌아 네 단계로 겹쳐 나아가면 (疊進四段, 첩진사단), 다시 더 큰 시작과 끝이 생깁니다.
(가장 작은) 하나의 시작과 끝 사이를 소력 (小曆)이라 하고, 소력들이 모여 이루어진 시작과 끝을 중력 (中曆)이라 하며, 네 번 겹쳐진 가장 큰 시작과 끝을 대력 (大曆)이라 합니다.
소력이 한 번 도는 것 (1년)을 사 (祀)라고 합니다. 1사 (1년)에는 13기 (期, 13달)가 있고, 1기 (1달)에는 28일이 있으며, 이는 다시 4요 (曜, 4주)로 나뉩니다.
1요 (1주)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 (服)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1사 (1년)에는 52번의 요복 (52주)이 있으니, 계산하면 곧 364일 (13달 × 28일)이 됩니다.
이것은 (천부경의 수리인) 1·4·7에 해당하는 성품의 수 (性數, 성수)입니다.
매 사 (년)의 시작에는 대사 (大祀)의 단 (旦, 첫 아침)이 있는데, 이 단 (旦)은 하루 (1일)와 같기 때문에 합치면 365일 (364일 + 1일)이 됩니다.
3사 (3년)와 반 (반)이 지날 때 (즉 4년마다) 대삭 (大朔)의 판 (昄)이 있습니다. 판 (昄)이라는 것은 사 (년)를 둘로 나눈 마디입니다. 이것은 (천부경의 수리인) 2·5·8에 해당하는 법의 수 (法數, 법수)입니다.
이 판(昄)의 길이가 하루 (1일)와 같기 때문에, 네 번째 사 (4년째, 윤년)는 366일 (365일 + 1일)이 되는 것입니다.
10사 (10년)와 반 (반)이 지날 때는 대회 (大晦, 큰 그믐)의 구 (晷, 그림자/시각)가 있습니다. 구 (晷)라는 것은 시간 (時, 시)의 뿌리입니다. 300구가 모여 1묘 (眇, 눈 깜짝할 사이)가 되는데, 묘라는 것은 구 (시간의 뿌리)가 눈에 느껴지는 찰나입니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나서 각 (刻), 분 (分), 시 (時)가 모여 1일이 되니, 이것은 (천부경의 수리인) 3·6·9에 해당하는 몸체의 수 (體數, 체수)입니다.
이와 같이 시작과 끝이 차례로 이어져 중력 (中曆)과 대력 (大曆)에까지 미치게 되므로, 이치의 수 (理數, 이수)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대저 요 (堯)가 저지른 이 세 가지 잘못 (오행, 오미, 역법)은 모두 거짓된 욕망 (虛僞之欲, 허위지욕)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감히 부도의 진실된 도(實爲之道, 실위지도)에 비교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으로 행하면 이치가 안에서 여물지 못해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진실로 행하면 이치가 항상 나에게 족하게 갖추어져 있어, 짝을 얻어 스스로 존재하게 (配得自存, 배득자존) 되는 것입니다.
제24장: 우(禹)의 죽음과 계(啓)의 패배
유호씨 (有戶氏)가 이와 같이 간곡하고 정중하게 타일러서 경고하며 (叮嚀告戒, 정녕고계), 잘못된 법을 폐지하고 부도(符都)로 돌아올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우 (禹)는 완강하게 듣지 않았고, 오히려 유호씨를 위협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는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했으나, 여러 번 싸워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 (茅山)의 진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하나라의 무리 (夏衆, 하중)들이 슬퍼하고 분노하여, 따라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대개 우와 함께 홍수를 다스리는 일 (治水, 치수)을 했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고을 (邑, 읍)로 쳐들어오니, 유호씨의 군사는 불과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라 군대는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패하여, 단 한 번도 공적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계 (啓)는 마침내 두려움을 느껴 진영을 물렸으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공격하려 하니, 그 무리들이 더욱 격앙되었습니다.
이에 유호씨는 하나라 무리들이 눈먼 맹세 (誓盲, 서맹 : 맹목적인 충성)에 사로잡힌 것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당장 고쳐놓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장차 서남쪽의 여러 부족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그곳을 떠나니, 유호씨가 살던 고을은 자연히 텅 비어 없어지게 (自廢, 자폐) 되었습니다.
제25장: 혼란한 세상과 유호씨의 전도
이로부터 천산 남쪽의 태원 (太原, 중국 중원 대륙) 지역은 뒤숭숭하고 시끄러우며, 마치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른바 왕이라는 자는 눈먼 자 (瞽, 고)가 되고, 백성이라는 자는 장님 (盲, 맹)이 되어,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이 겹겹이 쌓였습니다 (暗黑重疊, 암흑중첩). (세상의 이치를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를 뜻함)
그리하여 강한 자는 윗자리에 서고 약한 자는 아래에 깔리게 되었습니다. 왕과 제후들이 땅을 나눠 나라를 세우는 풍습 (王侯封國之風, 왕후봉국지풍)과 살아있는 백성을 힘으로 누르는 폐단 (制壓生民之弊, 제압생민지폐)이 널리 퍼져 고질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서로 침략하고 빼앗기에 이르러 (自相侵奪, 자상침탈), 아무런 이유 없이 생명을 도살하니 (徒殺生靈, 도살생령), 세상에 이로움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一無世益, 일무세익).
이런 까닭에 하 (夏)나라와 은 (殷)나라가 모두 그 잘못된 법 (폭력과 억압) 때문에 망하고서도, 끝내 그 망하는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부도 (符都)와의 인연을 끊고, 진리의 도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유호씨 (有戶氏)는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주 (月息洲, 서쪽 / 유럽·중동)와 성생주 (星生洲, 남쪽 / 인도·동남아)의 땅으로 들어갔으니, 곧 옛날 백소씨와 흑소씨가 살던 고향이었습니다.
두 소씨 (백소, 흑소)의 후예들은 오히려 옛날 집 (둥지)을 짓던 풍속 (作巢之風, 작소지풍)을 잃지 않아서, 높은 탑과 층층이 쌓은 대 (高塔層臺, 고탑층대)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부의 본래 소리 (天符之本音, 천부지본음)를 잊어버렸고, 탑을 만드는 본래의 유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 (道)가 잘못 전해져서 다르게 변질되었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며 (互相猜疑, 호상시의), 싸우고 정벌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습니다 (爭伐爲事, 쟁벌위사).
마고 (麻姑)에 대한 일은 거의 기괴한 이야기로 변하여, 허망한 가운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泯滅, 민멸).
유호씨가 여러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周行諸域, 주행제역) 마고의 도와 천부의 이치를 설명하였으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의아하게 (訝, 아) 여기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옛일을 기록하고 맡은 자 (典古者, 전고자)만이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어나 그를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근본 이치를 풀어서 전해주었습니다.
제26장: 천부 (天符)의 봉인과 7천 년 역사의 막
임검씨 (단군왕검)가 유호씨의 행적을 전해 듣고, 그가 걷는 길을 장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호씨의 부족들에게 가르침을 맡는 부서인 교부(敎部)나아가 그 일을 맡아보며 그곳에 머물러 살게 했습니다.
이때 임검씨는 하나라 땅 (夏土, 하토 : 중국 지역)의 형세가 어지러운 것을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산으로 들어가, 미혹을 풀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해혹복본 (解惑復本)의 도를 오로지 닦는 데 전념했습니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 (夫婁氏)가 천부삼인 (天符三印)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이 하나의 이치로 되어 있고 (天地之爲一理, 천지지위일리), 모든 인간의 삶이 한 핏줄임을 (人生之爲一族, 인생지위일족) 증명했습니다. 조상의 도를 크게 일으키고, 하늘의 웅대한 법을 널리 행하며, 인간 세상에 진리를 증명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운해주 (雲海洲)의 부족들과 긴밀하게 모여 하나라 땅을 다시 하나로 되돌리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도 (異道, 이도)가 점차 성행하여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루씨는 천부 (진리의 증표)를 아들 읍루씨 (浥婁氏)에게 전하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읍루씨는 태어날 때부터 큰 슬픔의 서원 (大悲之願, 대비지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부삼인을 계승한 뒤, 하나라 백성들이 진흙 구덩이와 숯불 같은 고통 속에 빠진 것을 불쌍히 여기고, 진리가 거짓된 실마리 (許端, 허단 : 거짓과 속임수)의 성에 떨어져 버린 것을 비통하게 여겼습니다.
마침내 그는 밝은 땅의 제단 (明地之壇, 명지지단)에 천부(天符)를 봉인하여 잠그고, 곧 산으로 들어가 복본 (復本)의 큰 소원을 비는 수행에 전념하며 백 년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남겨진 무리 (遺衆, 유중)들이 크게 통곡했습니다.
임검씨는 후천 말세가 시작되는 초기에 태어나, 온 세상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符都) 건설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니, 천 년 사이에 그가 쌓은 공업 (功業)은 참으로 위대하고 지극했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천부의 전승 (符傳, 부전)이 끊어졌습니다 (廢絶, 폐절). 마고성에서 나누어 살기 시작한 이래로, 황궁 (黃穹) - 유인 (有因) - 환인 (桓因) - 환웅 (桓雄) - 임검 (壬儉) - 부루 (夫婁) - 읍루 (浥婁) 이렇게 7세 (七世)에 걸쳐 천부가 전해진 기간이 7천 년이었습니다.
『천부경』이 우주의 구조를 그린 설계도이고 『삼일신고』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위한 매뉴얼이라면, 『부도지, 符都誌』는 우리가 살던 옛집의 기억과 그곳을 떠나오게 된 사연을 적은 비망록입니다. 설계도와 매뉴얼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면 인간은 영원한 미아일 뿐입니다. 『부도지』는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 ‘마고성 (麻姑城)’에 대한 기억이자, 인류가 왜 이토록 분열된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인류학적 보고서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음은 인류가 의식을 갖게 된 순간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온 질문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카오스로부터 가이아가 태어났다고 말했고, 유대인들은 신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반고가 혼돈의 알을 깨고 나와 하늘과 땅을 나누었다고 전합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단군신화 외에 문헌으로 전해지는 창세신화가 없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부도지』는 이러한 통념에 균열을 냅니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인류의 기원, 그리고 한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담고 있는 장대한 서사입니다.
『부도지』의 전승 과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입니다. 이 책은 본래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 (朴堤上, 363-419)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징심록, 澄心錄』의 15지(誌) 중 첫 번째 문헌입니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의 5세손으로,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잡혀 있던 왕자들을 구출하고 일본의 목도 (木島)에서 순절한 충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역사가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라의 보물창고에서 고대의 비서들을 열람하고, 도가와 유가의 사상을 넘나들며 한민족 고유의 사관을 정립하여 『징심록』을 남겼습니다. ‘마음을 맑게 하는 기록’이라는 뜻의 이 책은 상교 (上敎), 중교 (中敎), 하교 (下敎)의 3교 15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부도지』는 그중 상교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격랑 속에서 『징심록』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유교적 사대주의가 주류를 이룰 때,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배치되는 이 자주적인 역사서는 핍박받고 은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은 박제상의 후손인 영해 박씨 (寧海 朴氏) 가문에 의해 비밀리에, 목숨을 건 가보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나 강감찬 장군이 영해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거나, 세종대왕이 영해 박씨 후손들을 우대했다는 기록, 그리고 김시습 (金時習)이 『징심록추기』에서 훈민정음 28자를 이 책에서 취본했다고 증언한 사실 등은 원본의 실재성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다 조선 세조 때 ‘수서령 (收書令)’이 내려져 고유 사서들이 불태워질 위기에 처하자, 후손 박남 (朴楠)은 이 책을 들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렇게 1,500년의 세월을 어둠 속에서 견뎌온 책은 1953년, 박제상의 55세손인 박금 (朴錦, 본명 박재익)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그는 해방 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이 책을 번역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한국전쟁 중 원본을 북한에 두고 월남하게 됩니다. 울산의 피난소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내용을 복원했습니다. 이후 1986년 김은수 (金殷洙)가 이를 번역하고 주해를 달아 출판하면서 『부도지』는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복원 과정 때문에 강단 사학계는 『부도지』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원본이 실존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 복원되었다는 점, 그리고 서술된 내용이 근대적인 용어와 섞여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20세기의 창작물, 즉 위서 (僞書)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이는 문헌 실증주의 입장에서 타당한 비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오직 유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민족의 집단 무의식 속에 면면히 흐르던 이야기가 후대의 언어로 재구성되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진실마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도지』가 그려내는 우주관과 인간관,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안목은 서구의 ‘실낙원’ 서사나 중국의 ‘화이관 (華夷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동북아시아 고대 문명의 독창적인 세계 인식 틀을 제공합니다.
『부도지』의 첫 장은 우주의 시작을 ‘마고 (麻姑)’라는 존재를 통해 설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마고를 ‘마고 할미’라는 민속 설화 속의 거인이나 산신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도지』의 마고는 인격화된 신이나 특정 여신이 아닙니다. 마고는 ‘삼신 (三神)’이 낳은 존재이자,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력을 의인화한 ‘가이아 (Gaia)’적 존재입니다. 또한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인 ‘율려 (律呂)’의 파동을 근본으로 하여 태어나, 만물을 낳고 기르는 대지의 자궁을 상징합니다. 마고라는 이름은 ‘삼 (麻, 삼)’과 ‘고 (姑, 고)’의 결합으로, 우주적 생명력을 짜내는 거대한 모성을 의미합니다.
태초의 세상은 ‘율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율’은 법칙을, ‘려’는 기운을 뜻합니다. 천지의 정보가 기운으로 전달되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영원한 창조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서양 철학의 로고스 (Logos)가 이성과 논리의 원리라면, 율려는 우주의 근본 진동이자 생명의 리듬입니다. 별들이 궤도를 돌고, 계절이 바뀌고, 심장이 뛰는 모든 움직임 뒤에는 이 보이지 않는 리듬이 존재합니다. 마고는 이 율려의 진동 속에서 생겨났으며, 율려를 통해 해와 달의 균형을 맞추고, 땅의 기운을 다스려 생명이 살 수 있는 터전인 ‘마고성’을 완성합니다.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며, 천부 (天符)를 받들어 선천을 계승한 곳입니다. 성의 가운데는 천부단 (天符壇)이, 사방에는 보단 (堡壇)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위치는 파미르 고원으로 추정되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 중 하나로 힌두쿠시, 천산, 곤륜 산맥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마고성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가 완전하게 구현된 이상향을 상징합니다. 그곳은 신화 속 에덴동산처럼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준 정원이 아니라, 마고와 그녀의 자손들이 율려와 공명하며 스스로 일구어낸 조화의 공동체였습니다.
마고는 배우자 없이 선천 (先天)을 남자로, 후천 (后天)을 여자로 하여 두 딸 궁희 (穹姬)와 소희 (巢姬)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선천을 남자로, 후천을 여자로 했다’는 말은 물리적인 성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 철학에서 선천은 형상이 드러나기 전의 근원적 에너지와 원리 (理)를, 후천은 형상을 갖춘 물질과 현상 (氣)을 뜻합니다. 즉, 마고는 외부의 남성 파트너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녀 자신이 우주의 보이지 않는 하늘 기운 (선천/양)을 아버지로 삼고, 보이는 땅의 질료 (후천/음)를 어머니로 삼아 스스로 생명을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고가 음양의 이원성이 분리되기 이전의 통합된 존재이자, 우주적 원리가 인격화된 실체임을 보여줍니다.
궁희와 소희 역시 동정생식으로 각각 네 명의 천인 (황궁, 백소, 청궁, 흑소)을 낳았고, 이들로부터 12파의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인류는 지금의 우리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품성 (稟性)’이 순수하여 육체가 가볍고 투명했습니다.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 (地乳, 땅의 젖)’를 마시며 살았기에 다른 생명을 해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명은 한없이 길었고, 언어가 없어도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했으며 (自在律, 자재율),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만물의 이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호모 판테이스트’의 원형입니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이 모두가 거대한 파동 속에서 하나로 연결된 상태. 『부도지』는 이것을 낙원이라 부르지 않고 ‘본래의 모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 완전한 균형에 균열이 생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오미 (五味)의 변’입니다. 마고성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지유가 부족해지자, 백소씨의 일족인 ‘지소 (支巢)’라는 사람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포도를 따 먹습니다.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으로 이루어진 이 강렬한 다섯 가지 맛이 혀끝을 자극하는 순간, 인류의 운명은 뒤바뀝니다.
이 사건은 성경의 선악과 신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함의는 전혀 다릅니다. 선악과가 신의 명령을 어긴 ‘불복종’의 죄를 묻는다면, 포도 섭취는 ‘감각 중독’과 ‘생태적 단절’을 경고합니다. 포도를 먹은 사람들은 곧바로 신체적 변화를 겪습니다. 입에서 맑은 소리 대신 탁한 침이 고이고, 몸은 무거워졌으며, 피부는 거칠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수찰 (守察)’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수찰은 우주의 율려를 듣고 내면을 관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강렬한 미각적 쾌락이 들어오자 미세한 영적 감각이 마비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지유를 기다리는 대신, 숲을 헤치고 다른 생명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强食, 강식).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남을 밀어내고 경계했습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과 “네 입에 들어가는 것”이 구분되면서 소유욕이 생겨났고, ‘나’와 ‘남’을 나누는 분별심이 싹텄습니다. 원래 진성 (眞性)은 무선악 (無善惡)이었으나, 이제는 선악을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눈앞의 사물은 뚜렷하게 보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이치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도지』가 말하는 타락의 본질입니다. 신에게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감각적 욕망을 선택함으로써 우주와의 연결 코드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마고성의 조화가 깨지자, 마고는 성문을 닫고 사람들을 내보냅니다. 이것은 추방이 아니라 필연적인 이별이었습니다. 이미 탁해진 인간의 파동은 순수한 율려의 공간인 마고성과 공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자 (長子)인 황궁 (黃穹) 씨는 백소, 청궁, 흑소 등 네 파의 무리를 이끌고 성을 떠납니다. 이것이 ‘출성 (出城)’이며, 인류가 전 세계로 흩어져 4대 문명을 이루게 되는 기원입니다.
이 과정에서 황궁 씨는 마고 앞에서 피 끓는 맹세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욕망에 눈이 멀어 성을 떠나지만, 언젠가 반드시 본성을 회복하여 맑고 투명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도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복본 (復本)의 서약’입니다.
인류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은 도구를 만들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지유가 나오지 않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습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내면의 공허함은 커져만 갔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을 잃어버린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거대한 신상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풍습을 가진 민족들이 충돌하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고성을 떠난 이후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이자, 율려를 잊은 자들의 불협화음이었습니다.
마고성을 떠난 황궁씨의 자손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아사달에 도착했습니다. 아사달은 해가 뜨는 광명의 땅으로, 동북의 자방 (磁方)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1357 자삭 (磁朔)의 정기가 모여 만물을 만드는 길한 땅이었습니다. 황궁씨는 태백의 정상에 천부단 (天符壇)을 만들고 사방에 보단을 두어 ‘부도 (符都)’를 건설했습니다. 부도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밝은 터’를 의미합니다.
부도에서는 천부 (天符)가 대대로 전해졌습니다. 천부는 천리를 숫자로 표현하여 우주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황궁씨로부터 유인씨 (有因氏), 환인씨 (桓因氏), 환웅씨 (桓雄氏), 단군 (檀君)에 이르기까지 7세 동안 천부가 전승되었고, 이 기간을 7천 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인씨는 천문과 지리를 깨달아 농경을 가르쳤고, 환인씨는 천산 일대를 다스리며 인간이 하늘의 자식임을 깨닫게 하고 홍익인간 (弘益人間)의 이념을 실천했습니다. 환웅씨는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 (神市)를 열어 인간사를 주관했습니다.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국가 건설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고성의 율려와 천부의 이치를 지상에 재현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었습니다.
단군은 임검 (壬儉)씨라고도 불립니다. 단군 (임검씨)이 동북아시아의 대지 위에 부도 (符都)를 건설하고 ‘홍익인간’의 깃발을 높이 들었을 때, 천산 남쪽의 중원 대륙에서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영원히 갈라놓을 거대한 반란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는 요 (堯), 순 (舜), 우 (禹)를 태평성대를 이룩한 불세출의 성군 (聖君)으로 기록하지만, 우리 민족의 비사 (秘史) 『부도지』가 바라보는 그들의 실체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위적인 힘의 질서를 세운 ‘부도의 역적’이자, 인류의 영성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최초의 지능적 파괴자’들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숫자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 임금은 본래 마고성에서 쫓겨난 자들의 후손으로, 부도의 신성한 제사 (신시)에 왕래하며 우주의 이치인 수 (數)와 도 (道)를 곁눈질로 배웠습니다. 부도의 세계관은 ‘3 (三)’을 근본으로 합니다. 하나가 셋으로 나뉘고, 그 셋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홉 (9)으로 팽창하며 순환하는 것, 이것이 우주의 자연스러운 숨결입니다. 여기에는 중심도, 변방도 없으며 오직 평등한 어우러짐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요 임금은 이 역동적인 순환의 고리를 끊고 ‘5 (五)’를 절대적인 중심으로 고정시켰습니다. 그는 "나 (1)는 중앙 (5)에 앉아 나머지 8방위를 통제한다"는 지배의 논리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철학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오행 (五行) 사상의 정치적 기원입니다. 그는 1에서 9로 흐르는 자연의 강물을 댐으로 막아버리고, 인위적인 둑을 쌓아 ‘중심과 변방’, ‘지배와 피지배’라는 위계질서를 창조했습니다. 『부도지』는 이를 두고 "거짓으로 5를 중심이라 칭하고, 1로써 8을 제어하려는 억지"라고 맹렬히 비판합니다.
요 임금이 만든 오행 (목·화·토·금·수)의 법은 단순한 자연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만물을 서로 돕는 상생 (相生)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제어하는 ‘상극 (相剋)’의 관계로 규정하는 위험한 사상이었습니다. "물이 불을 끄고, 쇠가 나무를 자른다"는 투쟁의 논리는 곧 인간 사회에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행의 화 (五行之禍)’입니다. 사람들은 오행의 상하 관계처럼 계급으로 나뉘었고, 너와 나를 적군과 아군으로 구분하며 끝없는 경쟁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주의 생명력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힘을 숭상하는 타락이 제도화된 것입니다.
요 임금의 오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의 권능인 ‘시간’마저 훔쳐내려 했습니다. 부도의 역법 (달력)은 북두칠성과 천체의 정밀한 운행을 관측하여 만든 ‘우주의 절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 임금은 거북이 등껍질의 갈라짐이나 명협이라는 풀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주장하며 제멋대로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유호씨가 "사사로이 시간을 제정하여 이익이 되는 기회를 독점하려 한다"고 일갈했듯, 그는 객관적인 하늘의 시간을 자신의 통치 편의에 맞게 주관적으로 재단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이제 자연의 리듬이 아닌 ‘황제의 스케줄’에 종속되었고, 농사와 생존을 볼모로 한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요, 순, 우로 이어지는 소위 ‘성군’들의 치세는 『부도지』의 관점에서 볼 때 ‘제국주의의 서막’이자 ‘영적 암흑기’의 도래였습니다. 그들은 땅에 선을 그어 국경 (9주)을 만들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이에 따르지 않는 주변 부족을 오랑캐로 몰아 무자비하게 정벌했습니다.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치였을지는 모르나, 그것은 단절과 억압 위에 세워진 ‘닫힌 성벽’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만물일체와 홍익인간, 자연의 율려를 따르는 ‘부도의 열린 문명’과, 중앙집권과 패권주의, 인위적인 법과 제도를 숭상하는 ‘당요 (唐堯)의 닫힌 문명’ 사이의 긴 투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 임금의 세력이 커지면서 부도의 이상은 중국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세상은 ‘힘이 곧 정의’인 전쟁터로 변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사의 진실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물질문명의 병폐가 시작된 서글픈 기원입니다. 유호씨가 그토록 훈계하며 막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이 비극적 미래였던 것입니다.
유호씨의 준엄한 꾸짖음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인류가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였으며, 이 호소가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가 바로 ‘복본 (復本)’입니다. 『부도지』가 말하는 복본은 단순히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나, 포도를 토해내고 다시 지유를 마시던 시절로 퇴행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변증법적 나선형의 상승입니다. 인류는 순수했으나 무지했던 유년기 (마고성)를 거쳐, 분열과 고통을 겪으며 자아를 확립하는 사춘기 (출성 이후의 문명)를 지나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분열의 고통을 통해 얻은 성숙한 이성과 지혜를 가지고 다시금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성인기, 즉 호모 판테이스트의 마고성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수찰’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현대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감각적 욕망에 휘둘리는 소비주의적 삶을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명상적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다른 생명을 착취하는 ‘강식’을 멈추고, 만물과 공생하는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경쟁과 속도전에서 벗어나, 우주의 리듬인 율려에 나의 호흡을 맞추는 것입니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되찾는 것입니다.
박제상은 『부도지』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쌓아 올린 문명의 성벽 안에서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합니까? 아니면 그 성벽이 도리어 당신을 고립시키는 감옥이 되어버렸습니까? 이제 오미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핏속에는 아직도 태초의 율려가 생생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책은 1,500년 전의 기록이지만, 그 메시지는 21세기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합니다. 전쟁, 불평등, 정신적 빈곤, 기후 위기 등의 이 모든 현대의 재앙은 우리가 마고성을 떠나오며 잃어버린 ‘연결의 감각’ 부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부도지』는 우리에게 잊혀진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였으며, 언젠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입니다. 부도의 법은 잃어버렸지만 다시 세울 수 있고, 천부의 이치는 숨겨져 있지만 다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호모 판테이스트가 걸어야 할 길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풀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된,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내는 것입니다. 『부도지』라는 지도가 지금 우리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이제 잊었던 맹세를 기억해 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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