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지성과 정동의 관계에 대한 스콜라적 분석

by 이호창

2-6.4. 지성과 정동 (Affectus)의 관계에 대한 스콜라적 분석



12세기 생 빅토르 학파가 기독교 사상사에 남긴 가장 탁월한 업적은 차가운 논리와 뜨거운 열정을 하나의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통합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별개의 영역이 아니며, 상호 침투하고 순환하는 단일한 영적 상승의 두 측면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 파리 대학을 중심으로 부상하던 초기 스콜라 철학의 흐름, 즉 신앙의 내용을 논리적 명제로 분석하고 체계화하려는 경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에르 아벨라르 (Pierre Abélard, 1079-1142)와 같은 변증론자들이 이성을 통한 논리적 정합성에 치중했다면, 생 빅토르의 신학자들은 이성이 도달한 그 끝에서 사랑이 어떻게 새로운 인식의 도구가 되는지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생 빅토르 학파의 신비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사용한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성 (Intellectus)’은 단순한 정보 습득 능력이나 계산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진리를 직관하며, 궁극적으로는 신적 실재를 인식하려는 정신의 최고 기능을 지칭합니다. 한편 ‘정동 (情動, Affectus)’은 현대적 의미의 일시적인 감정이나 기분과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와 결합된 내면의 깊은 지향성, 대상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의 동력, 그리고 영혼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힘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신비 신학의 맥락에서 이 정동은 지성적인 사유를 넘어 하나님을 향해 타오르는 영혼의 열망이자, 신성한 실재와 연합하게 만드는 강력한 정서적 추진력으로 작용합니다.

기성 종교의 교조주의가 신앙을 지적인 동의나 교리의 암기로 축소시키거나, 반대로 지성을 배제한 맹목적인 감정적 고양만을 강조하는 이분법적 오류를 범한다면, 생 빅토르 학파는 지성이 정동을 이끌고 정동이 지성을 완성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영적 상승의 첫 단계는 지성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원리주의적 태도에 대한 분명한 반박입니다. 지성은 진리를 탐구하고,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어내며, 선과 악을 분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위그 드 생 빅토르가 강조했듯이, 배움과 지식은 영혼을 정화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예비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지성이 결여된 열정은 방향을 잃은 에너지와 같아서, 자칫 미신이나 광신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스콜라적 신비주의에서 지성은 사랑의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모으고 정돈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지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지성은 대상을 분석하고 정의하며 구분하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대상을 있는 그대로 소유하거나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지성은 하나님에 '관하여' 알 수는 있지만, 하나님 '자체'를 체험하여 알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동의 역할이 대두됩니다. 생 빅토르의 신학자들은 사랑은 지성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진입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지성이 하나님의 문 앞까지 영혼을 인도하면, 문을 열고 들어가 그분과 포옹하는 것은 정동, 즉 사랑의 몫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분석하지 않고 대상을 향해 자신을 던지며, 그 대상과 일치를 이룹니다.

이러한 지성과 정동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순차적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순환 구조를 가집니다. 지성을 통해 획득한 진리는 영혼 안에 기쁨과 갈망이라는 정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어난 사랑은 다시 지성을 자극하여 더 깊은 진리를 탐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사랑하면 할수록 더 깊이 알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를 생 빅토르 학파는 "사랑 자체가 앎이다 (Amor ipse intellectus)"라는 명제로 요약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고차원적인 인식 능력으로 격상됩니다. 차가운 이성적 앎이 뜨거운 사랑의 앎으로 변형되는 이 과정이야말로 신비적 관조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특히 리샤르 드 생 빅토르는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의지 (Voluntas)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정동은 의지의 작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성이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면, 의지는 그 선한 것을 갈망하고 선택하며, 정동은 그 선택된 대상을 향해 움직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문제는 지성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병들어 있고 정동이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영성 훈련은 지성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의지를 교정하고 정동을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방향 재설정을 포함해야 합니다. 기성 종교가 외면적인 행위 규범이나 도덕적 준수에 치중할 때, 신비주의는 내면의 가장 깊은 동기인 정동의 정화를 요구합니다. 사랑의 방향이 자기 자신이나 세속적 쾌락에서 하나님에게로 전환될 때, 지성 또한 비로소 온전한 기능을 회복하게 됩니다.

생 빅토르 학파는 정동의 상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분석했습니다. 하나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감정적 정동 (Passio)‘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본질적인 성향으로 자리 잡은 ’덕성적 정동 (Virtus)‘입니다. 초보 단계의 신앙인은 기도의 감미로움이나 신비적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감정적 정동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관조가는 이러한 감정의 기복을 넘어, 의지가 하나님께 확고하게 고정된 덕성적 정동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과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스콜라적 분석은 감정적 흥분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하는 오류를 경계하며, 정동이 이성의 통제와 지도를 받아 덕으로 완성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또한 이들은 정동이 지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식을 ’지혜 (Sapientia)‘라고 불렀습니다. 라틴어에서 지혜를 뜻하는 '사피엔티아'는 '맛보다'라는 뜻의 동사 '사페레 (sapere)'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지혜는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입으로 맛보고 체험하는 지식입니다. 지성과 정동이 결합된 이 맛보는 지식은 교리적 명제를 넘어선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꿀에 대한 화학적 분석 결과를 아는 것(지성)과 꿀을 직접 먹어보고 그 달콤함을 아는 것(지혜)의 차이입니다. 생 빅토르 학파에게 신학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 맛보는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기독교가 직면한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양극단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교리를 절대시하며 타인을 정죄하는 교조주의자들은 정동 없는 지성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반면 신학적 성찰 없이 개인의 주관적 체험만을 절대시하는 신비주의 아류들은 지성 없는 정동의 맹목성을 보여줍니다. 생 빅토르 학파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나는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랑한다"는 통합적 영성을 완성했습니다.

지성은 신적 진리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조명하여 인식의 근거를 확립하며, 정동은 그 진리가 지시하는 절대적인 선에 참여하려는 의지적 열망을 동력화합니다. 인식 능력이 실재를 왜곡 없이 수용하여 논리적 토대를 구축하면, 감응력은 그 실재와 인격적인 합일을 이루기 위해 영혼의 지향성을 하나님께로 고정합니다. 결국 스콜라적 분석이 도달한 종착지는 파편화된 기능의 작동이 아니라, 지성적 식별과 정서적 투신이 단일한 목적지인 신성 안에서 통합되는 전인격적인 개방입니다.

지성은 진리를 보고, 정동은 그 진리를 사랑합니다. 둘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해 움직이며, 그 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온전히 합일됩니다. 하나님은 차가운 논리로만 파악되는 추상적 원리가 아니며, 맹목적인 감정으로만 느껴지는 불확실한 기운도 아닙니다. 그분은 지성으로 탐구해야 할 무한한 진리이면서 동시에 정동으로 갈망해야 할 지고의 선입니다. 생 빅토르 학파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신적 신비의 심연으로 비상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비적 인식‘의 정점은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되는 경지를 가리킵니다. 이는 머리로 이해한 진리가 가슴의 열정으로 타오르고, 그 열정이 다시 실재의 심연을 비추는 가장 명료한 빛이 되는 역동적인 지혜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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