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요아킴 데 피오레

삼시대론과 성령의 시대 예언

by 이호창

3-7.4. 요아킴 데 피오레 (Joachim of Fiore)의 삼시대론과 성령의 시대 예언



12세기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깊은 산속에서 은둔하던 수도원장 요아킴 데 피오레 (Joachim de Fiore, 1135-1202)는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넘어 인류 역사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해독해낸 예언적 사상가였습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가 개인의 영혼이 신에게 나아가는 수직적인 상승의 사다리에 집중했다면 요아킴은 인류 전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의 섭리를 따라 전진하는 수평적인 역사의 지평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는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정적인 교리적 진술에서 동적인 역사의 원동력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요아킴에게 있어 역사는 무의미한 사건들의 반복이나 단순한 타락의 과정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이 순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완성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드라마였습니다. 그는 구약과 신약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각각 성부의 시대와 성자의 시대 그리고 성령의 시대로 구분하는 획기적인 삼시대론을 주창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사상이었으며 중세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체된 시간관을 깨뜨리고 미래를 희망과 변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 사상적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요아킴이 제시한 역사의 첫 번째 단계는 성부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구약 성서의 배경이 되는 시대로 인류가 율법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때입니다. 성부의 시대는 엄격한 아버지의 권위가 지배하는 시기이며 인간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복종하는 노예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요아킴은 이 시대를 기혼자들의 질서가 지배하는 시기로 규정했습니다. 육체적인 노동과 생육 그리고 번성이 중시되며 신과의 관계는 직접적이기보다는 율법과 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에 의존하여 길을 걷는 것과 같이 계시는 주어졌으나 아직 그 빛이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공포와 굴종 그리고 엄격한 정의의 실현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 신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히 준수해야만 했습니다. 성부의 시대는 역사의 유년기 혹은 겨울에 해당하며 단단한 껍질 속에 생명이 숨겨져 있는 씨앗의 상태와도 같았습니다. 이 비유는 성부의 시대가 지닌 이중적인 성격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단단한 껍질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필수불가결했던 율법의 강제성과 엄격함을 상징합니다. 겨울의 동토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품고 있듯이, 그리고 씨앗의 딱딱한 외피가 내부의 배아를 보호하듯이, 구약 시대의 공포와 징벌은 장차 도래할 은총을 보존하기 위한 보호막이었습니다. 아직 영적으로 미성숙한 유년기의 인류는 자율적인 사랑보다는 타율적인 규율을 필요로 했으며, 이러한 엄혹한 훈육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영적인 성년으로 자라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어둠과 추위는 불필요한 고통이 아니라 생명 탄생을 위한 필연적인 잠복기였습니다.

성부의 시대를 지나 인류는 성자의 시대로 진입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시기로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은총으로 대체되는 전환점입니다. 성자의 시대는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듯 지혜와 말씀이 지배하는 시기입니다. 요아킴은 이 시대를 성직자들의 시대로 정의했습니다. 사제와 주교 그리고 교황으로 이어지는 교계 제도가 확립되고 성사 (Sacrament)를 통해 신의 은총이 신자들에게 전달되는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떠는 노예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신을 따르는 자녀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성자의 시대는 여명과 같아서 어둠은 물러갔으나 아직 태양이 중천에 뜨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믿음과 순종 그리고 교회를 통한 구원의 질서입니다. 인간은 교회가 베푸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며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에 접근합니다. 요아킴은 자신이 살고 있는 12세기를 이 성자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시대가 잉태되는 과도기로 파악했습니다. 그는 성자의 시대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42세대에 걸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한시적인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기존 교회가 주장해온 현 체제의 영속성을 부정하는 위험하고도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통치 체제가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불변의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요아킴은 성자의 시대에 할당된 42세대라는 구체적인 시한을 제시함으로써,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는 교회 조직을 영원한 것이 아닌 지나가는 과도기의 산물로 격하시켰습니다. 만약 성자의 시대가 끝난다면, 그 시대를 지탱하던 교황의 권위와 성직자들의 특권 그리고 성사 중심의 예식들도 더 이상 절대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교회가 역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성령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건너야 할 다리에 불과하다는 선언이었으며, 신의 구원 경륜 안에서 교회의 제도적 권력을 상대화시키는 급진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요아킴 사상의 정점이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바로 다가올 세 번째 단계인 성령의 시대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성자의 시대가 끝나면 인류는 성령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며 이때야말로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성령의 시대는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는 시기입니다. 성부의 시대가 두려움에 성자의 시대가 믿음에 기초했다면 성령의 시대는 온전한 사랑 (Caritas)에 기초합니다. 요아킴은 이 시대를 수도사들의 시대 혹은 영적인 사람들의 시대로 명명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기존의 성직자 중심의 위계질서나 복잡한 예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마치 해가 뜨면 별빛이 사라지고 등불이 필요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이 각 사람의 마음에 직접 임재하여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인간은 제도적인 교회의 중재 없이도 신과 직접 소통하는 신비적 합일의 상태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의 문자적 구속에서 벗어나 영적인 자유를 만끽하는 해방의 시대입니다.

요아킴은 이 성령의 시대에 인류가 ‘영원한 복음 (Evangelium Aeternum)’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복음이란 성경 외에 다른 새로운 책이 주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구약과 신약 성서에 담긴 문자적 의미 껍질이 벗겨지고 그 안에 숨겨진 영적인 참뜻이 완전히 드러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자의 시대까지는 문자에 갇혀 예표와 상징으로만 이해되던 진리가 성령의 조명을 받아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아킴은 이를 두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에 비유했습니다. ‘문자’는 ‘물’과 같아서 갈증을 해소하지만 ‘영적인 의미’는 ‘포도주’와 같아서 영혼을 취하게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성령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글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말씀을 체험하는 관상가가 됩니다. 그들은 노동의 수고에서 벗어나 오직 신을 찬양하고 묵상하는 거룩한 안식 (Sabbat)을 누리게 되며 온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수도원처럼 변모하게 됩니다. 이는 지상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영적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아킴의 이러한 역사관은 당시의 정통 신학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전통적인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재림 때까지의 역사를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단일한 시대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남은 것은 종말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아킴은 역사가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성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역사를 유기체적인 성장 과정으로 파악했습니다. 줄기가 자라 잎을 내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인류 역사 또한 성부의 뿌리에서 성자의 줄기를 거쳐 성령의 열매로 성숙해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보적 역사관은 미래를 단순히 세상의 파멸이나 심판의 날로만 보지 않고 인류가 영적으로 완성되는 희망의 시기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아킴에게 종말은 파국이 아니라 변용이자 완성이었습니다.

요아킴은 자신의 삼시대론을 입증하기 위해 성서의 족보와 세대 수를 치밀하게 계산했습니다. 그는 구약의 역사를 야곱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세대 수로 분석하고 이를 신약의 역사에 대입하여 미래의 시간표를 산출하려 했습니다. 그는 한 시대를 약 1260년으로 계산했는데 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60일에서 도출한 수치였습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성자의 시대는 서기 1260년경에 막을 내리고 성령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연대 설정은 당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긴박감과 기대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역사의 대전환기이며 곧 도래할 성령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비록 1260년에 그가 예언한 급격한 변화가 문자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사상은 이후 프란치스코회 엄수파를 비롯한 수많은 개혁 운동가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요아킴이 예언한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믿으며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고 청빈과 순결을 실천하는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이러한 요아킴의 역사관은 고대의 순환적 시간관이나 퇴보적 역사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 고대 그리스의 헤시오도스나 플라톤은 인류 역사가 가장 이상적인 '금의 시대'에서 시작하여 은과 청동을 거쳐 가장 타락한 '철의 시대'로 하강한다고 보았으며, 힌두교의 유가 (Yuga) 사상 또한 진리의 시대인 '사트야 유가 (Satya Yuga)'에서 도덕성이 가장 쇠퇴한 암흑의 시대인 '칼리 유가 (Kali Yuga)'로 전락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에게 역사는 찬란했던 과거의 원형으로부터 멀어지는 상실과 쇠락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요아킴은 정반대의 화살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고대인들이 역사의 가장 비참한 말로로 여겼던 철의 시대나 칼리 유가와 유사한 억압의 상태인 성부의 시대를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이 거친 시작점에서 성자의 시대를 거쳐 상승하며, 마침내 고대인들이 과거의 이상향으로만 동경했던 금의 시대나 사트야 유가와 같은 완전한 해방의 상태, 즉 성령의 시대로 나아간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초기 시대의 불완전함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흔적이 아니라, 미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맹아의 상태입니다. 즉, 요아킴의 시간은 잃어버린 낙원을 회상하며 탄식하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의 낙원을 향해 개화하는 희망과 진보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요아킴의 사상은 위험한 불씨도 안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시대가 오면 성자의 시대에 속한 제도적 교회와 성사 그리고 성직 계급이 폐기될 수 있다는 주장은 교회의 권위를 뿌리째 흔드는 이단적 사상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했습니다. 실제로 요아킴 사후 그의 추종자들은 교황청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거나 교회의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교회 당국은 요아킴의 저서 일부를 정죄하고 그의 사상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지만 요아킴 본인은 생전에 교황의 인준을 받으며 저술 활동을 했고 교회에 대한 순종을 맹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제도를 파괴하려기보다는 제도가 완성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에게 성령의 시대는 교회의 소멸이 아니라 교회가 영적으로 승화되어 더 이상 껍데기가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아킴 데 피오레의 삼시대론은 근대 역사 철학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가 변증법적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는 그의 사상은 훗날 헤겔의 절대정신 구현이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도래와 같은 세속적 역사 발전 단계론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신학적 외피를 벗겨내면 요아킴의 사상 안에는 “역사는 목적을 향해 전진하며 그 과정은 필연적인 단계들을 거쳐 마침내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이상 사회에 도달한다”는 근대적 진보 사상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요아킴은 신비주의자였지만 산속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역사를 신학의 주제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가 그려낸 성령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선은 요아킴 이후로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역사가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영의 위대한 여정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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