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데 피오레가 수도원의 밀실에서 그려낸 삼시대론은 단순히 신학적인 도표에 머무르지 않고 서구 지성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역사철학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역사의 3단계 발전 도식은 인간이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고대의 순환적 시간관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요아킴은 역사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직선적으로 상승하며 발전한다는 진보적 역사관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비주의적 사상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학적 외피를 벗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혁명 이론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시대를 갈망하던 종교적 열정은 점차 지상에서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세속적 유토피아주의로 전이되었습니다. 이러한 묵시록적 신비주의의 흐름은 중세의 이단 운동을 시작으로 독일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현대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사 전반에 깊고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요아킴 사상의 첫 번째 파급력은 중세 말기의 급진적인 수도원 운동과 사회 변혁 운동에서 나타났습니다. 요아킴은 성령의 시대를 이끌 주역으로 영적인 사람들을 지목했는데 이는 프란치스코회 엄수파 (Spiritual Franciscans)에게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요아킴이 예언한 새 시대의 사도라고 확신하며 교회의 부패와 타협하지 않는 극단적인 청빈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에게 기존의 교황 중심 체제는 낡은 성자의 시대 유물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타락한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과격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종교 개혁 시기의 토마스 뮌처 (Thomas Müntzer, 1489-1525)와 같은 급진적 재세례파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뮌처는 요아킴의 사상을 사회 혁명의 언어로 번역하여 농민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은 선택된 자들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악한 지배 계급을 몰아내고 지상에 평등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신비주의는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수동적 태도를 버리고 역사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려는 능동적이고 혁명적인 행동주의로 돌변합니다. 종말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신비주의적 역사관의 세속화 과정은 근대 계몽주의와 독일 관념론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습니다. 18세기의 사상가 고트홀트 레싱 (Gotthold Lessing, 1729-1781)은 요아킴의 세 시대를 인류 이성의 발전 단계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는 구약 시대를 인류가 보상과 처벌이라는 유치한 동기로 도덕을 배우던 유년기로 보았고 신약 시대를 영생에 대한 약속으로 선을 행하던 청년기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래할 세 번째 시대를 인류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이성 그 자체의 명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을 행하는 성년기로 설정했습니다. 레싱에게 있어 제3시대는 성령의 시대가 아니라 이성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계보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W.F. Hegel, 1770-1831)에게로 이어져 변증법적 역사철학으로 완성됩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정신 (Weltgeist)이 자유를 향해 스스로를 실현해가는 과정”으로 파악했습니다. 그의 정반합 (Thesis-Antithesis-Synthesis) 논리는 요아킴의 성부-성자-성령 도식과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헤겔은 역사가 “오직 군주 한 사람만이 자유를 독점하던 동양의 전제 군주제에서 시작하여, 소수의 시민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정을 거쳐, 마침내 모든 인간이 보편적인 자유를 향유하는 게르만 기독교 국가로 발전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요아킴이 예언한 성령의 시대는 자유가 완전히 실현된 이성적 국가의 형태로 대체되었습니다. 신학적인 구원 역사가 철학적인 정신의 역사로 치환된 것입니다.
이러한 도식은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에 이르러 철저히 유물론적인 형태로 뒤집힙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외피를 벗겨내고 그 안에 있는 변증법적 구조를 경제와 계급 투쟁의 역사에 적용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은 요아킴의 삼시대론을 완벽하게 세속화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시 공산 사회는, 죄가 없었으나 무지했던, 성부의 시대 혹은 잃어버린 낙원에 해당합니다.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이후의 역사는, 인간이 소외와 착취를 겪는 고난의 시기로, 요아킴이 말한 성자의 시대나 율법의 시대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갈등의 시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도래할 공산주의 사회는, 계급과 국가가 소멸하고 인간이 노동의 소외에서 해방되는, 성령의 시대 즉 지상 낙원입니다.
요아킴이 영적인 사람들에 의한 교회의 갱신을 꿈꾸었다면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전복을 꿈꾸었습니다. 두 사상 모두 역사의 필연적인 발전 법칙을 신뢰하고 특정한 시점이 되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묵시록적 믿음을 공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가 단순한 경제 이론을 넘어 종교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요아킴의 유산이 긍정적인 진보의 역사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닙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또한 이 묵시록적 도식을 악용했습니다. 특히 나치즘이 사용한 제3제국 (Drittes Reich)이라는 용어는 요아킴의 제3상태 (Tertius Status)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것입니다. 아르투어 묄러 반 덴 브루크 (Arthur Moeller van den Bruck, 1876-1925)는 그의 저서에서 신성 로마 제국을 제1제국으로 독일 제국을 제2제국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도래할 나치 독일을 완성된 제3제국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게르만 민족을 역사를 완성할 선택된 민족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이 건설할 제국을 천년왕국과 동일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완벽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요아킴이 꿈꾸었던 사랑과 자유의 시대가 왜곡된 정치 신학과 결합했을 때 배제와 폭력의 시대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현대의 정치 철학자 에릭 뵈겔린 (Eric Voegelin, 1901-1985)은 이러한 현상을 ‘종말의 내재화 (Immanentization of the Eschaton)’라고 비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종말과 구원은 역사의 끝에 혹은 역사를 넘어서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초월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근대의 세속적 이데올로기들은 이 초월적인 구원을 인간의 힘으로 역사 내부에서 실현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신을 제거한 자리에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 혹은 특정 계급이나 민족을 앉히고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뵈겔린은 이러한 시도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 강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고 할 때 그 완벽함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은 제거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아킴 데 피오레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가 열어젖힌 역사철학의 문을 통해 서구인들은 신의 도시를 지상에 건설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욕망을 분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요아킴적 사유의 파편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특이점 (Singularity)이 도래하면 죽음과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기술적 유토피아주의나 자유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이념 대결이 끝나고 역사가 완성될 것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 1952-)의 역사의 종말론 또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시대론적 구조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역사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이라고 믿고 싶어 하며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영광을 위한 과도기로 해석하려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현실을 개혁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맹목적인 낙관주의나 급진적인 혁명론으로 흐를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요아킴 데 피오레는 중세의 수도사였지만 그의 사상은 근대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인류에게 역사를 읽는 독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부의 엄격함에서 성자의 은총으로 그리고 성령의 자유로 나아가는 그의 삼박자 리듬은 서구 문명이 역사를 해석하는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신비주의가 역사와 만났을 때 그것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 구조와 정치 체제 그리고 문명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거대한 이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서구 지성사는 어떤 의미에서 요아킴이 던진 역사적 묵시록에 대한 긍정과 부정 그리고 재해석의 주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의 완성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요아킴의 유령은 계속해서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