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by 플레이런너

“이렇게 편한 여행은 처음이었어요. 회사, 야근, 돈, 이런 거 다 잊고 즐긴다는 거 자체가 좋았어요. 스페인은 정말 어딜 가도 여유롭더라. 하나도 급한 게 없어.”

아들, 선우가 지난 주말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아들이 꺼낸 신혼여행에 대한 첫마디였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선우의 여행 이야기 속에서, 내 오래된 신혼여행 기억이 문득 깨어났다.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었다. 이전에는 허가받은 사람만 갈 수 있었던 해외여행의 특권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엄마도 이때 해외여행을 몇 군데 다녀오셨다.

엄마는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아들 얼굴을 보며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영진아, 꼭 신혼여행은 해외로 갔다 와라. 지금이 기회다”

엄마의 말속엔, 마치 바다를 처음 본 사람 같은 설렘이 있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방콕과 푸켓으로 정해졌다. 사실 나는 시드니를 선택했지만 여행사를 운영하는 친한 선배가 방콕과 푸켓을 강추했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어디든 어떤가?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처음 탔다. 단둘이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흥분되고 떨렸다.

좌석은 일부러 비행기 뒤쪽 흡연석을 골랐다.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울 생각에 황홀했다.

홍콩공항에서 환승하려고 내렸다.

두 시간을 기다렸다. 공항 내부를 돌아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어쩐지 헤맬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합실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방콕에서의 첫날

우리 둘의 신혼여행에는 가이드, 촬영 기사, 운전기사 세 명이 함께 했다. 여행 전, 나는 일반적인 관광지가 아닌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특별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첫날밤에 간 곳이 방콕 실롬(Silom) 지역에 위치한 팟퐁(Patpong)이었다.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의 한쪽 거리가 유흥업소로 이루어졌다.

가이드와 함께 갔다.

들어가자 왼쪽에 스탠드형 객석에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가운데로는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처럼 비키니 입은 여인이 오른쪽에 번호표를 달고 무대 가운데까지 쭉 걸어 나왔다. 족히 오십여 명은 되어 보였다.

너무 많은 여자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있으니, 잠시 멍해졌다가 숨을 고른 뒤에야 객석이 보였다.

눈앞의 풍경은 낯설고 현란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남은 것은, 아내가 조용히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탁자 밑에서 아내가 내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손님은 주로 외국인들로 남자 한두 명의 맞은편에 여인들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셨다.

이 업소는 입장권으로 들어가는 방식과, 술을 주문하는 방식 두 가지였다.

우린 입장권으로 들어가서 이곳의 분위기를 구경했다.

정말 특이한 곳을 데리고 왔다 싶었다.

긍정의 화신인 나는 이 낯설고 희한한 장면을, 다시없을 특별한 여행의 한 장면처럼 아내에게 설명했다.

아내는 그곳에 있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불쾌함보다도, 내 선택을 믿어주는 조용한 동의에 가까웠다.

그녀도 나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신혼여행 3일째

방콕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천연의 섬 푸켓으로 향했다.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설레었다.

방콕에서 국내선을 타고 푸켓으로 갔다. 푸켓 공항은 우리네 지방 도시 공항 정도의 아담하고 작은 규모였다. 출국장 앞에 수많은 푯말이 홍수를 이루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찾았다.

어디쯤 있을까? 내 이름을 들고 있을 여자 가이드를 찾았다.

그런데 내 이름이 쉽게 보이지를 않는다. 좌에서 우로 돌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돈다. 이걸 몇 번이나 반복했더니 푯말도 주인들을 찾아서 점차 사라진다. 이름표를 찾는 내 눈은 점점 초조해졌다.

삼십 분이 지났다.

공항에 관광객은 이제 아무도 없다.


서울 여행사에 전화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만 기계음처럼 되풀이하더니 침착하게 있으라고 한다. 아찔하다. 혹시나 해서 공항 바깥 도로 쪽으로 나가봤다. 마찬가지였다. 낙담하고 인도 끝에 맥없이 앉았다. 지나가는 현지 가이드가 묻는다.

“무슨 일이세요?”

드디어 대화가 되는 한국인을 만났다. 공항에서 나름 분주하게 뛰었지만 부족한 영어로는 설명이 안된 듯하다. 이런 상황에 한국인이 짠! 하고 나타났다.

우리 엄마 말대로 부처님 보우하사였다.

이제야 아내의 얼굴 표정이 풀어졌다.


“선배를 믿어”

초등학교 동문이라 평소 나를 '선배'라 부르던 아내가 조용히 던진 한 마디였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앞으로 두 시간만 기다리고 한다.

텅 빈 공항에서 땀을 닦으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길을 잃었고, 내 옆에는 묵묵히 버티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결국 아내라는 것을.

두 시간 후 신혼여행을 온 신부처럼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당황하셨죠? 값진 여행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신혼여행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해 보기 힘든 곳을 구경한 팟퐁, 푸켓 공항의 가이드 불발 사건은 지금도 가끔씩 이야기한다.

팟퐁의 유흥가는 무섭기도 하고 신혼여행 관광지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 상황을 배려하고 나의 의견에 불평 없이 따라 준 아내의 동의 때문에 가능했다. 푸켓 공항의 해프닝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여행은 한 번뿐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여행’은 여러 번 가능하다.

팟퐁의 어색함도, 푸켓 공항의 불안도 우리가 함께 겪었기에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얘기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여행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떠나야 할 곳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다.


#신혼여행

#방콕

#팟퐁

#푸켓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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