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어머니에 대한 추억.
지난 일요일 시어머니에게 다녀왔다. 며칠 전 큰아이가 저녁 먹으면서 할머니 얘기를 오래간만에 꺼냈었다.
"밥을 지저분하게 먹어서 밥풀이 남아있거나 그러면 할머니에게 혼날까 봐 밥그릇을 슬쩍 주방에 갖다 놓고 했어요."
시어머니는 밥 먹을 때만큼은 다른 무엇보다도 엄격했다. 시집이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정과는 너무나도 틀린 그 점 때문에 꽤 힘들었다. 밥을 먹을 때 절대로 떠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가족들이 같이 만나서 대화하고 웃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식사 때인데 그 긴요한 시간이 법당처럼 흘러가야만 했다. 난 그 점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며느리 관점에서 딱히 어떻게 대항하는 방법도 없었다. 밥알을 한 알이라도 남기면 가차 없이 혼쭐이 난다.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적인 밥에 대한 가치를 설파하셨다. 밥알을 흘려서도 안 된다. 흘린 밥알도 웬만하면 다 집어먹었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네 손이 밥보다 더 더럽다.’ 이런 논지였다. 아이들도 흘리면 으레 손으로 다시 집어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밥상에 손을 얹거나 꾀어 서도 안 된다. 다리를 꼬아서도 안 된다. 그런 기준에는 애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기면 애들 아빠나 내가 교육을 잘 못했다고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난 그 점도 불만이었다. 시어머니도 가끔은 밥을 남기셨다. 그럴 때는 누구 하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아이들이 보고서 나에게 귓속말로 귀띔했다.
“엄마, 할머니도 밥 남기셨어!
평소에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는 할머니였지만 식사할 때만큼은 호랑이 할머니로 변신하셨다. 아이들은 그래서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랬던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고 하니 나에게는 의외의 얘기처럼 들렸다.
그래서 뜻밖의 얘기에 선우에게 물었다.
"할머니 보고 싶니?"
"가끔."
가끔이라는 단어가 참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가끔’ 난 시어머니를 추억하거나 그리워했을까?
‘가끔’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박은 채 선우에게 달리 물었다.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
"당뇨."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아빠, 엄마도 당뇨병 안 걸리게 몸 관리 잘하라고 제법 어른 같은 충고까지 했다. 선우에게도 당뇨병이 무슨 병인지 제대로야 모르겠지만 어떤 괴물 같은 존재라고 느끼는 듯했다.
"이번 일요일에 우리 할머니 보러 갈까?"
그래서 지난 일요일 시어머니에게 가게 되었다. 애들과 아빠 나 이렇게 말이다. 손위 동서와 시누이도 다른 때는 늘 같이 갔었다. 이렇게 우리 식구만 가기는 처음이었다. 성묘단 규모로 볼 때는 조촐했다. 시어머니에게 가면 조금 오래 머무르려고 해도 그곳에 다 올라가기만 하면 비가 와 금방 오곤 했다. 다시 내려오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시누이가 말했다.
“엄마가 너희들 시간 이젠 안 빼앗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 재미있게들 살아.”
그날은 병천에 다 이르자 비가 왔다. 그 징크스가 또다시 반복되는가 싶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갖고 온 우비를 챙겨 입었다.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는 데 다행히 조금 있다가 비가 그치었다. 시어머니가 이곳에 영원히 묻히는 날도 날씨가 그랬다. 그때 이모님이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한마디 던졌다.
"너네 시어머니가 오죽 변덕이니. 날씨도 똑 닮았네.”
변덕, 기분파 이런 단어와 잘 어울리는 분이라 본다. 11년 함께 생활하면서 본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남편에게는 말 못 하고 뒤에서 울기도 여러 번 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갈등보다는 이해에 대한 싸움이었다. 칼이 서로 섰을 때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라 하는 구절도 남의 말처럼 느낀 적도 더러 있었다. 이해가 가정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포 같다. 시어머니의 힘이 점점 줄었을 때쯤에서야 그것을 알았다.
시어머니가 계시는 곳은 거대한 빌딩 숲 같다. 하늘 끝까지 뻗을 듯한 숲들이 있다. 뻗은 숲들 딱 가운데에 시어머니가 계신다.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그 높다 더 높은 자리에서 자식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자식이 불안하시면 곧 내려오실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세고 날은 몹시 추웠다. 이젠 우비를 벗고 두툼한 겉옷으로 바꿔 입었다. 시어머니가 식사할 때 까다로운 이유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 욕심내셨던 음식 몇 가지를 준비했다. 점심 끼니로 좋아하셨던 끓여 먹는 우동, 시할머니에게서 배우셨다던 감자떡, 당뇨 때문에 먹고 싶었지만 굶주렸던 배, 때와 상관없이 평소 담그기를 즐기셨던 오이지, 시어머니가 담근 김치만큼의 품위는 아니어도 그 자태가 고운 빛깔의 김치를 장만했다. 많은 갈등 중에는 손이 너무나도 크신 시어머니의 음식량 때문에 비롯된 것들도 꽤 있었다. 난 시작부터 질려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몸을 움직이시면 일이 벌어졌다. 한 발 걸으시면 오이 서너 박스가 마당에 펼쳐졌다. 한 번 발 더 걸으시면 동치 무가 마당 가득히 쌓인다. 마당 이 없었으면 시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 그 마당과 함께했던 음식들이 고추장아찌, 오이지, 동치미, 고춧잎, 이런 유였다. 그야말로 시어머니의 국보적인 음식 만들기에 주인공들이었다. 난 그 주인공들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시어머니 밀어붙이기에 난 자석처럼 끌려가야만 했다.
뜨거운 물에 끓인 우동 국물을 선경이는 할머니 봉분에 붓고 있다. 재미있어하는 짓인지 아니면 할머니를 생각한다고 하는 것인지 멈추지 않고 붓고 있다. 심지어 자기가 먹어야 할 우동 국물마저 할머니 더 드리겠다고 앙증을 떤다. 선경이가 두 팔을 벌리며 할머니에게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할머니도 그 품속으로 한껏 안겨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남은 우동 국물을 깨끗이 비웠다. 매서운 바람은 뜨거운 우동 국물에 살며시 녹아들었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아내의 관점에서 작성한 글이다. 그 결과 며느리 관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
#오이지
#동치미
#고춧잎
#고추장아찌
#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