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가족들에게 전하는 아버님 전상서
생일을 맞아 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았다는 환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 남매와 평소 가족과 다름없는 선우 선경이의 큰아빠 호근 형님, 큰 이모 정애 누님을 초대했습니다. 또한 언제나 가족과 다름없이 내게 특별한 정을 주는 이상길형, 김명선언니부부도 큰 힘입니다. 정말 가족이 삶의 최고의 자산임을 실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버님께 생애 처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아버님!
그곳에서 경주 김 씨 계림 군파 사돈인 저희 어머님과 즐겁게 만나셨죠?
두 분이 성격이 매우 비슷하고 한가닥 하는 스타일 이어서 친한 동무를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쁘게 재회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약혼식 때가 떠오릅니다. 양가 집안 소개가 있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작은 아버지께서 광산김 씨 퇴촌공파 5대손이라고 간단하게 소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처가 쪽 작은 아버지께서 경주김 씨 좌랑공파 몇 대 손에 광주 곤지암의 집성촌 이야기와 선산에 대해 아주 장황하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양가 소개에서 경주김 씨의 완승이었습니다.
이번에 선산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시조인 어르신이 1685년 생이라, 정말 많이 놀랬습니다. 이렇게 시조가 오래된 선산은 사실 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중에서 대표까지 하신 아버님이 얼마나 분주하고 리더인 삶을 사셨을지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아버님의 큰딸 창호, 딸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부터 우선 특이한 집안임이 분명합니다. 저 어릴 때 친구 이름이 창호였는데 ‘벽창호’라고 늘 놀림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 이름을 갖고 있는 창호라는 여자와 저는 동네 지근거리인 회사에서 만났습니다. 인연의 시초에는 경주김 씨가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민주당으로 제1회 지방선거 성동구청장에 도전하는 후보님이 경주김 씨였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님도 경주김 씨 종친회에서 알게 되어 저를 선거사무실로 인도했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창호도 아버님이 같은 경주김 씨인 후보님께 부탁을 해서 취업을 했더군요. 우리 부부의 인연의 시초는 경주김 씨 종친회 덕분인 셈입니다. 그 덕에 아무런 경험 없던 내가 선거 총괄기획과 자금까지 맡으면서 연애기획도 성공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엄마가 유명 점쟁이에게 점을 보고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 점쟁이가 한다는 소리가 "당신의 막내아들은 결혼하면 처가에 완전히 빠져서 살 성향이야"라고 말했다지요. 집에 와서 그 말을 가족들에게 한 후로 엄마가 나에게 신경을 쓰면 아버지는 늘 웃으면서 ‘영진이는 장가가면 남 될 아이인데 왜 그렇게 신경을 써’ 하곤 하셨습니다.
그 점쟁이 예언이 딴에는 맞기도 한 듯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떠난 이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의 부모님이 되셨습니다. 아버님 역시 나에게 늘 자네가 내 아들처럼 좋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장인과 사위가 서로 말귀를 알아들어서 대화를 나누고 술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움이요 행복이라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때때로 공무원이 동네 동정을 부탁하는 일이 생길 때는 난 언제나 아버님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귀찮은 내색 없이 늘 친절하게 대해주셨지요. 또한 마장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는 사위의 각종 행사에 아버님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또한 아버님과 저는 부동산을 같이 공유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부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마장 공유지에 함께 엮어있기 때문이었지요. 공유지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해를 함께 임원진으로 활동도 했습니다.
이렇듯 동네 모임이나 사업에 있어서 아버님과 저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님을 의식하며 동네에서 바르게 행동하며 살아야 했고, 아버님도 사위를 위해서 멋지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언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sbs 생활경제 뉴스에서 '마장 토박이'라는 컨셉으로 티브이출연 요청이 있었습니다. 계기는 우리 집의 자원으로 구십 일간 진행된 청계천 전시회 때문이었지요. 최초 작가 구성에는 오로지 나만 출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작가와 서로 이야기하면서 아버님과 아내를 살짝 추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님과 사위가 공중파 티브이 sbs 생활경제 프로그램에 함께 7분 30초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버님 장례식장 한편에 이 뉴스와 팔순 잔치 때 만들어 놓은 동영상이 계속 재생이 되어 문상객들에게 관심을 제법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은 마장동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유리, 거울공장을 꽤나 오래 하셨지요. 그 후 동네에서 흔히 말하는 집장사도 하셨고요. 전세 자금으로 신축을 해주는 방법이었는데 세가 나가지 않아서 이때 꽤나 큰 손실을 입기도 하셨습니다. 나도 몰랐는데 몇 년 전 동태찌개에 술을 나누면서 아버님이 이 당시 당진으로 내려가서 흔히 말하는 노가다 같은 막일을 하셨다는 말씀에 사실 많이 놀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이날 대화가 잘 되는 것 같아 아버님이 안고 있는 빚에 대해 사위가 외람되지만 말씀드렸습니다. 재산을 정리하시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은 빠른 결단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도모해서 부채를 전부 상환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버님의 간호와 관련된 비용도 자식들의 돈이 아닌 아버님 자신의 자산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한 삼십 년을 몇 글자로 요약하고 정리한다면 늘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신 데이, 명절 데이, 어버이 데이를 해마다 다른 기획으로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이벤트 중에서도 백두산이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백두산 가는 것보다 가기 전에 옷 등을 준비하는 것이 참으로 바쁘구나를 알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아버님 생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늘 생신에는 비가 오지만 중국 연변에서는 아주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여행 중에 셋째 날이 아버님 생신날이었는데 함께 간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급 고량주를 아버님 선물로 제가 돌렸습니다. 그때의 아버님 웃음과 표정은 지금도 제게 고스란히 기억될 정도로 즐겁고 기뻐하셨습니다. 다음날 아버님은 백두산 수건을 사셔서 일행 전부에게 돌리기도 하셨습니다.
약간 저도 삐지고 서운할 때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어버이날을 맞아 여의도 63 빌딩에서 하는 장윤정 디너쇼를 모시고 갔습니다. 제깐에는 한국 최고의 디너쇼를 예약했지만 아버님 반응이 평소와는 몹시 달랐습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기분파이신 아버님이 이날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내 생각과 달리 쇼를 보고 즐거워하기보다는 허리가 아프다는 말씀만 자주 하셨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와인을 부딪치고 분위기가 좋아지자 장윤정 디너쇼에 시선이 가셨습니다. 그때는 내 허리가 아니어서 아버님이 허리가 꽤나 심각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의 장례식은 어떠셨나요?
혹 이 사람은 꼭 문상을 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이제 아버님과 헤어진 지 4주가 지났습니다.
이별의 한 달 동안 지켜본 세상과 자식들의 모습은 어떠신가요?
아버님!
아버님이 병상에 계시는 동안 또한 친척들이나 몇몇 지인은 혼자 외로이 집에 계신 어머님을 걱정하셨고 건강을 챙기며 잘 드시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한정애 이모 같은 특별한 가족도 있었습니다. 호근 형님은 아버님의 건강에 대해 늘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친구의 아버님이 아프시다고 했을 때 난 얼마나 공감하고 힘을 보탰을까? 또는 그 친구 어머님을 생각하며 땅콩 하나라도 준비한 적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아버님이 병상에 계시는 동안 오 남매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정성껏 돌봐드렸습니다. 오 남매가 불협화음 전혀 없이 하나가 되어서 아버님 간병이나 어머님 돌봄을 함께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오 남매입니다.
아버님, 그곳에서 어머님 걱정하지 마시고 허리 쭉 펴시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마장에서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삼십 년 옆에서 지켜본 사위의 관점에서는 아버님의 생활력만큼은 최고였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학교 갈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병이 발병하기 직전인 작년 봄까지 늘 아버님은 현역에서 일하셨습니다. 이런 생활력, 이런 자세 오 남매가 유지로 이어가야겠습니다.
한 가족의 삶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큰 울림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손주들 선우, 선경, 화진, 의진, 다영, 주영, 수범, 수찬에게도 이런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아버님!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장 공유지분할, 어머님 건강, 오 남매의 복 모두 그곳에서 함께 해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24년 10월 26일 사위 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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