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겨 두고 나만 걷고 싶은 길
나만 알고 싶은 북한산의 숲길 – 이끼가 살아 숨 쉬는 계곡 옆에서
글 / 박순장(봄날 순동이)
북한산은 많은 이들에게 험준한 화강암 바위 봉우리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처럼 우뚝 솟은 암봉들이 하늘을 찌르고, 그 곁으로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북한산은 조금 다르다. 높이보다 깊이를, 풍경보다 고요를 품은 길. 바위의 위엄보다는 숲의 속삭임이 어루만져 주는 길. 말하자면, 꽁꽁 숨겨 두고 나만 걷고 싶은 그 길이다.
그 길은 북한산 우이역 종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전철역을 나서면 오래된 찻집 하나가 사람을 반긴다. 시간의 결을 따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한옥 찻집, 그 앞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세상은 슬그머니 조용해진다. 그리고 이내, 숲이 시작된다.
처음 걷기 시작하면 새소리가 가장 먼저 다가온다. 그다음은 잎 사이로 비치는 햇볕의 조각들, 발밑으로는 부드러운 흙길이 말없이 안내자 노릇을 한다.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지고, 계곡물소리는 귓가에 맑게 스민다. 그렇게 길은 사람을 다독이듯 계곡 옆으로 이어진다.
이 길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계곡 바위에 자생하는 이끼 때문이다. 이끼가 있다는 것은 햇볕이 직접 내리쬐지 않을 만큼 숲이 울창하다는 뜻이다. 숲은 한여름에도 볕을 잘라내고, 계곡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아침이면 이슬이 내려 이끼에게 수분을 건넨다. 사람이 함부로 닿지 못하는 고요와 서늘함 속에서, 생명은 그렇게 고요하게 자란다.
왕복 2.3km, 짧고 완만한 길이다. 등산이라기보단 산책이고, 걷는다기보단 쉰다에 가까운 시간이다. 평일에는 거의 사람이 없기에, 온 길이 나를 위해 마련된 것만 같다.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끼우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콘서트홀이 된다. 가끔은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시원한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도시의 피로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다.
이 길에서는 정상을 오르는 정복의 마음보다, 멈추어 서는 호사의 마음을 배운다. 자연이 마련해 준 의자에 앉아 시간을 잊고, 물소리와 새소리와 함께 숨 쉬는 것. 그저 그렇게, 걷는 것도 좋고, 앉아 있어도 좋은 길. 이끼와 나무, 바람과 물이 함께 빚어낸 고요한 숲길에서, 나는 세상에 나만 알고 싶은 조용한 기쁨을 발견한다.
혹시라도 이 길을 따라 걷게 될 당신이 있다면, 부디 조용히 걸어주세요. 이끼가 살아 있고, 바람이 말 거는 그 소리를 잘 들어주세요. 누군가에게는 이 길이 그저 북한산 자락의 하나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의 안식처이니까요.
2025년 6월 28일, 북한산 자락의 이끼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