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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당신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신문 지상에서 읽은 칼럼에 공감이 깊다. 소설가 김훈이 쓴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글 내용 때문이다. 그는 산업 재해 원인과 노동자들을 대하는 기업의 부조리한 면을 정확하고 신랄하게 언급했다. 사실은 산업 재해는 전부터 벌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형인 사안이 아니던가. 칼럼 들머리에선 산업 재해로 말미암아 신축 공사장에서 아까운 인명들이 추락해 한 해에 수 백 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지적 했다. 이 재해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불가피하게 횡행하는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 아니던가.

 우선 오늘 뉴스만 해도 그렇다. 쿠팡에서 일하던 남성이 숨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총알처럼 집 앞까지 모셔오는(?) 쿠팡 배달원들이다. 이들 덕분에 가만히 집안에 앉아서 식자재는 물론, 온갖 원하는 물건들이 참으로 발 빠르게 집 앞에 놓인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필자 어린 날만 해도 어머니 치마꼬리를 부여잡고 읍내 장터를 따라갔던 기억이 새롭다. 이때 어머니는 생필품, 우리들 옷가지, 식재료 등을 구입 하느라고 발품을 팔기 예사였다. 알뜰한 어머니는 시장 장터를 수없이 오가며 다른 점포와 가격 비교를 하며 한 푼이라도 싼 곳에서 물건들을 구입하느라 분주했다. 이렇게 산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2 킬로 남짓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긴 이런 모습은 불과 수십 년 전 필자의 젊은 날에도 행해졌던 일이다. 젊은 날 살던 고장인 울산엔 5일 장이 서는 장터가 있었다. 연년생 어린 딸아이들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그 장을 보러 다녔다. 그때는 힘이 세었나보다. 배추, 무, 생선 등을 장에서 사서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엔 큰 딸아이 손을 잡았다. 등엔 둘째 딸아이까지 업고도 시내버스에 올라 타 집까지 귀가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즈막엔 책 한 권도 손에 들고 다니면 힘들 정도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삶이 윤택하고 풍족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무엇이든 핸드폰에 손 만 대면 집 앞 까지 배달되는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이렇듯 편리함을 누리기까진 타인의 희생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은 솔직히 간과 했다. 이번 쿠팡 배달원의 희생만 해도 그렇잖은가. 하긴 산업 재해로 귀중한 목숨을 잃는 이 들이 어찌 쿠팡 배달 원 뿐이랴. 건설 현장에서 혹은 지하철 및 빵 공장 등에서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다가 생명마저 졸지에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훈의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을 살펴보면 산업재해에 대한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떨어지는가. 고층건물 외벽에 타일을 붙이거나 칠을 하려면 건물 외벽을 따라서 비계를 가설해야 하는데, 이 비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비계발판이 무너져 내리거나 비계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비계를 외벽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허술했거나, 노동자의 몸을 외벽과 연결시키는 장치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는 김훈의 언술이 그것이다.

  이로보아 기업이 지닌 안전 불감증이 산업재해를 양산 시키고 있다면 지나칠까. 그렇다면 왜? 자꾸 이런 인명 사고가 멈추지 못하고 사흘이 멀다않고 빈번이 일어날까? 그 원인 역시 김훈은 그의 칼럼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경영과 생산구조의 문제, 즉 먹이 피라미드의 문제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사업을 발주하면 시공업체가 공사를 맡아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하도급 되고, 이 먹이 피라미드의 단계마다 적대적 관계가 발생한다. 이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고층으로 올라가고, 고층에서 떨어진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생략)라고 말이다.

 김훈의 이 주장이 맞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은 피땀 흘려 일한 자신의 직장에서 결국은 기업 경영과 생산 구조에 의하여 아까운 생명까지 잃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 뭐하나. 기업 이윤만 추구하는 경영구조와 노동자 안전을 방관하는 기업 태도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수 십 년 전 행태 그대로 아닌가. 이제는 웅장하고 번듯한 건물만 보면 그것을 완성 시킨 노동자들 피땀과 희생이 떠올라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또한 너무 편리와 신속한 것에만 길들여진 우리 이기심이 쿠팡 배달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지 절로 가슴에 손이 얹어진다.

 이런 때늦은 성찰로선 왠지 그들 희생에 슬픔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없는 듯하다. 해서 오늘 쿠팡 배달원에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며 국민 한 사람으로서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는 마음으로 급히 이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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