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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Oct 04. 2023

추석과 월광욕


                                     

 회색빛 촌에선 달빛조차도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서재에서 무심코 올려다 본 밤하늘의 달이다. 지금 달은 머잖아 다가올 추석을 맞아 한껏 제 살을 부풀리고 있는 중이다. 아파트 건물 사이에 걸쳐진 달이 오늘따라 정겹다. 그 모습에 반하여 핸드폰으로 달 사진을 찍다 말고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왠지 달빛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이는 아파트 정원에 대낮처럼 불을 밝힌 가로등 탓인 듯하다. 휘황한 문명의 불빛은 이제 달빛마저 본색(本色)을 가린다. 그러고 보니 어린 날 외가를 찾았을 때 돌담 위에 하얗다 못하여 푸르게 부서지던 아름다운 달빛을 잊을 수 없다. 유년 시절 유독 막내 이모를 따랐다. 막내 이모는 당시 여중생이었다.

  외가에 가서 이모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뒷동산에 올랐다. 그리곤 신작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모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이모는 날마다 시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풍선 및, 눈깔사탕을 손에 한 아름씩 사들고 돌아오곤 하였다.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던 초가을 어느 날 밤이었다. 외가에 갔던 필자는 친구네 집에 마실 간다는 이모를 졸라 따라나섰다. 동네 어귀쯤 이른 이모는 어느 집 돌담 옆에서 까까머리 남학생을 만났다. 남학생을 만난 이모는 잠시 필자를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후 두 사람은 홀연히 눈앞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꽤 오래 흐르도록 이모는 좀체 오지 않았다. 그때 홀로 돌담 곁에 기대서서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볼 때다. 온 누리에 흩뿌리는 푸른 달빛이 참으로 고왔다. 또한 길섶에서 들려오는 무성한 풀벌레 울음소리마저 흡사 감미로운 곡조의 음악처럼 들렸다. 자연의 음(音)과 달빛에 취하여 그것을 감상하느라 이모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모는 달이 점점 이울고 있었으나 필자가 있는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모는 한창 사춘기 시절이었다. 어디선가 달빛 아래서 둘이 은밀하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느라 필자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하다.


 이모를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터덜터덜 걸어서 혼자 외가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까까머리 그 남학생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마치 이모를 필자에게서 그가 빼앗아 간 듯하여 더욱 서러웠다. 요즘도 보름달만 대하면 어린 날 겪었던 상실의 아픔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추석 날 바라보는 보름달은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달에 대한 가슴 아린 기억을 희석시켜준다. 이날만큼은 보름달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서다. 이런 생각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추석날 보름달을 바라보며 마음의 충일감(充溢感)을 느끼는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인 정서 아닌가.

  그러나 외국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보름달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선 달이 차오를수록 사람의 지혜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만 살펴봐도 달이 찰 즈음에 주인공이 발광하는 것으로 작품 구성을 했잖은가. 이로 보아 유럽의 둥근 달은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읽은 문헌에 의하면 몽고는 추석이 우리나라처럼 명절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날엔 보름달을 피하느라 문을 닫고 외출을 삼가 하기도 한단다. 이는 중국의 중추(仲秋)날 밤 수박을 먹으며 씨앗을 한 톨만 남기고 모조리 까먹는 습속 때문이었다.

 이것을 두고 몽고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민족을 한 사람 만 남기고 깡그리 멸족(滅族)하도록 저주하는 행위로 간주(看做)하고 있다. 이 일로 추석 날 밤을 몹시 싫어한단다.

 이 문헌에 의하면 특히 케냐 사람들의 보름달에 대한 두려움은 입맛마저 씁쓸하게 한다. 그곳에선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아 눈두덩이 퉁퉁 부은 채 달로 쫓겨난 악처(惡妻)가 보름달 뜨는 밤에 주력(呪力)을 부려 남편에게 보복하는 날로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아내가 못마땅하기로서니 연약한 여인을 눈두덩이 붓도록 힘껏 두들겨 패다니…. 아내 앞에서 평소 힘깨나 자랑했을 그곳 남편들이니 자신들이 저지른 소행에 대하여 당연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이로 보아 한국이나 케냐나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다를 바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가위 보름달을 숭상조차 하잖은가. 추석은 민속 명절이기도 하다. 삼한 (三韓 )시대서부터 추수 감사의 제전이 추석의 뿌리 일 것이라는 설(說)이 유력할 정도다. 올 추석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보름달 아래서 월광욕(月光浴)을 즐길까 한다. 추석을 맞아 세 딸들과 함께 모처럼 송편도 예쁘게 빚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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