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혼신을 다하여 자신을 불사른 고갱이다. 그는 서른다섯 살에 직업 화가로 입문, 훗날 후기 인상파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평소 자유로운 사상, 끊임없는 도전 의식, 그리고 진정한 예술혼이 그가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의 예술은 긴 여행과 가난이 안겨주는 불안한 삶에 대한 고통이 주류를 이뤘다. “예술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탄생 된다”라는 피카소의 언명처럼 평생 고갱을 따라다닌 가난이 오히려 삶에 대한 고뇌를 성찰케 이끌었다. 또한 그것이 작품에 편재(遍在)되는 절대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에 짓눌려 물감 살 돈조차 수중에 없는 고갱이었다. 그는 가난의 무거운 짐을 쉽사리 벗지 못했다. 그것의 버거운 무게를 덜어내고자 남다르게 많은 꿈을 꾼 듯하다. 고갱은 자신의 꿈이 커질수록 먼 이국땅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파리에서 페루의 리마로, 브르타뉴에서 프로방스로, 코펜하겐에서 파나마로, 타히티 등으로 그의 삶은 멀고 먼 여정의 연속이었다.
검푸른 색조가 바탕을 이루는 폭 4m에 달하는 벽화 양식인 거대한 고갱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잊지 못한다. 이 회화 좌측 상단 부분에 위치한 노란색 바탕에 세 가지 물음이 프랑스어로 적힌 게 인상 깊어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그것이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타히티 섬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총 12명의 인물을 그림 속에 등장시켰다. 그리곤 생명의 기원 및 삶에 대한 의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그는 이 그림 속에서 가슴으로 써 내려갔다. 이 작품을 통하여 고갱은 인간 존재성에 대한 원형적 의문을 품는다. 회화라는 공간을 통하여 이 질문을 표현하려 애쓴 듯하다.
고갱은 자신의 예술혼을 한껏 불사르기엔 적빈(赤貧)이 늘 발목을 잡았다. 외려 물감도 살 수 없을 만큼 궁핍한 삶이 간절한 꿈의 농도에 강한 덧칠을 오롯이 해준 셈이다. 이렇듯 꿈을 이루기 위한 절실함은 때론 인간에게 불가사의한 능력을 부여해 주기도 하나보다. 고갱은 자신의 꿈을 화폭에 담은 게 명화로 탄생했잖은가.
어린 날 절박한 꿈은 정치가였다. 그것도 어린 나이면서도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아닌 대통령을 감히 꿈꿨다. 성장하여 꿈은 꿈으로 끝이 나고 고작 글쟁이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꿈은 역시 어린이다웠다. ‘대통령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니 얼마나 좋을까. 지긋지긋한 학교 숙제도 없앨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얼른 자라서 여자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집안에 아버지의 부재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중량교 판자촌에 잠시 살 때 일이다. 그곳의 개발이란 미명 하에 사흘이 멀다 않고 팔뚝에 노란 완장을 두른 철거반들이 몰려와 큰 망치로 우리 집을 부수어대곤 하였다.
그 때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자 훗날 더욱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대통령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편안히 살 수 있는 집을 한 채씩 지어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꼭 이 꿈을 이루고 싶었다. 철이 들면서 대통령이라고 자기 멋대로 만사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정치인으로서 꿈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권력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항상 사람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보이지 않는 어느 권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말이다. 권력은 참으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때론 ‘그 권력의 후광이라도 입어볼까’하여 권력자에게 빌붙는 것이 인간이다. 권력의 힘은 사기(詐欺)판까지 깔 수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언젠가 국회의원 보좌관이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 차에 올랐다. 대리운전 기사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보좌관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누군지 알아?” 그것도 모자라 운전기사에게 주먹까지 휘둘렀다고 한다.
하긴 한때는, “내가 누군지 알어?” 이 말 한마디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권력과 금력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시대는 이제 멀리 보내야 한다. 사회적 신분을 악용하여 변칙과 불법을 행하는 일은 반드시 그 피해가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권력을 논하노라니 갑자기 이런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타타타’라는 제목의 노래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중략>-
권력자들이 민초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겠는가. 등 따시고 배부르니 서민들 삶의 애환을 어찌 알겠는가. 권력으로 군림하는 것도 모자라 검은 배 속 채우기에 급급해 온갖 비행을 모아서 저지르기 예사 아닌가. 뉴스를 장식하는 부정부패 소식만 해도 그렇잖은가. 그러고 보니 어찌 보면 어린 날 정치인의 꿈을 이루려고 고갱처럼 안간힘 안 쓴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비록 어린 시절 꿈을 이루진 못했다. 옛 선비들은 안빈자족(安貧自足)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은 것이니, 이제 나 역시 이걸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본분을 찾아 지키며 이웃의 아픔도 함께 나누는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 볼까 한다. 인생 성공은 그 다음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