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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냐 Apr 29. 2021

떠나 보내는 글

2021년 4월 19일 08시

 




2021년 04월 19일, 오전 8시. 

12살을 맞은 너를 보내며. 




 말이 씨가 되었거나 예감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올 해 초부터 나는 네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같은 나이인 네 친구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 나를 책망한다. 


 너는 얼마 전부터 자꾸만 다쳤고, 딱딱한 부종이 잡혀 병원에 데리고 갈라 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져 나를 놀라게 했다. 까맣게 윤기가 흐르던 털 부분부분이 희끗해졌다. 마치 노인의 머리가 희어지듯이. 맞다. 사람으로 치면 너는 나이가 많았다. 그래도 너는 언제나 사랑스러웠다. 사람을 좋아해서 나를 많이 찾았다. 더 쓰다듬어주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 


 너는 똑똑했다. 사람 말을 다 알아 듣는 내 소중한 식구였다. 나는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고양이를 데려왔다가 항원 검사를 하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로 우리는 함께 잠들지 못했다. 내 옆에서 자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너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은 가냘프게 우는 네게 부탁을 했다. 너와 함께 있고 싶은데 호흡기와 눈이 너무 아프다고, 그러니 발치에 있어 줄 수 있겠냐고. 그러면 우리가 하룻밤 같이 자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그 날 너는 미동도 않고 내 발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뒤척일 때마다 발끝에 사람보다 조금 더 뜨거운 온기가 닿았다.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었고,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너를 항상 무릎 위에 올려주었고, 쓰다듬고, 온 우주를 다 품은 것 같은 녹황색 홍채를 들여다보곤 했다. '구멍 났다'고 표현하는 너의 발가락은 사랑스러웠다. 나는 네 발을 만지는 걸 좋아했고, 너는 조금쯤 귀찮아 했다. 그래도 너는 나를 자주 찾아왔다. 


아직도 너의 부재가 실감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침대 위에 네가 있을 것만 같다. 




 너는 오늘처럼 비가 오던 날 내게로 왔다. 그래서 이름을 우복雨福이라고 지었다. 생후 1개월차에 어미에게 버림받은 네가, 앞으로 평생을 잔병치레로 고생할 네가 조금쯤은 건강했으면 해서. 동생의 손아귀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너는 기운차 보였다. 기생충만 구충하면 된다고 했다. 다 나은 너는 아기답게 발랄해서 그 무렵 세상을 떠난 삼순이 대신 많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생후 1년이 다 될 때까지 이갈이를 하느라 손에 매달려 양손이 다 흉터 투성이었어도 나는 네가 귀엽고 좋았다. 그런 너를 데려왔다. 꼭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반려 동물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관련한 내용을 접할 때마다 여러 차례 읽어 보았다. 


 너는 고양이 별로 돌아가기 전, 거의 2주 동안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강제 급여를 시도했지만 먹는 족족 토해내고 괴로워했다. 혈뇨를 보았다. 어떤 직감이 들었다. 가족끼리 회의를 했다. 마지막이 괴롭지 않기를 바랐다. 호스피스 간호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손도 쓰지 못하고 보냈던 삼순이의 영향이 컸다. 


 그 때부터는 내가 돌보았다. 네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부터 나는 네 거처를 내 방 안으로 옮겼다. 너는 먹지 못하는데도 토하고 분변을 보았고, 나는 울면서 담요를 바꾸어 주었다. 그동안 못했던 팔베개도 실컷 해 주고, 고양이가 나오는 동요도 불러주고, 마음 편히 쉬어도 된다고 끊임없이 말해 주었다. 너를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내가 여기 옆에 끝까지 있을 거라고. 나는 바닥에서 잤고, 사실 자지 못하고 정신이 들 때마다 네 숨이 붙어 있는지를 확인했고, 어쩌면 기적처럼 내 사랑스런 네가 치유되기를 빌었다. 나는 네가 일어나서, 걷는 꿈을 꾸었다. 


 쿵 하는 소리에 깨었더랬다. 조금 더 편히 자라고, 나와 함께 있자고 침대 위로 자리를 옮긴 게 잘못이었을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너는 침대를 내려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젠 너무나도 가벼워진 너를 들어 올렸다. 오줌이 축축하게 묻어났다. 몸이 그렇게 아픈 상황에서도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일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새 담요를 깔고 너를 다시 침대에 옮겨주며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상황에서도 너는, 애교를 부렸다. 몸을 닦아주고 곁에 눕자마자 그랬다. 나오지도 않는 소리로 골골 소리를 내고, 짧게나마 꾹꾹이를 하고, 내게 머리를 문댔다. 나는 거리를 두고 너를 끌어안았다. 혹여나 내 무게가 너무 무겁게 다가갈까 두려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게 아침 7시 30분 즈음이었다. 이미  눈에는 총기가 없었다. 심장만 미약하게 뛰고 몸이 차가웠다. 안 보이는구나, 라고 말을 건네었지만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눈을 감겨주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게 8시였다. 심장 박동부터 확인했다. 슬픔이 날뛰니 지금 두근거리는 게 게 내 맥박인지 네 숨인지 분간이 안 갔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네 몸이 뻣뻣해지고 있단 걸. 사후강직이 오고 있다는 걸. 네가 덮고 있던 담요를 감아 아빠에게 너를 데려갔다. 내가 지금 판단이 안 되니 숨을 쉬고 있는지 좀 보아 달라고 했다. 아빠는 고개를 젓고 머리까지 담요를 덮어 주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울었다. 결국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슬픈 건 어쩔 수가 없다. 




 조카에게 이제 너를 볼 수 없다고, 하늘 나라로 갔다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카는 아직까지도 우복이가 보고싶다고 한다. 




나도 우복이가 보고싶다. 

아주 소중한 존재를 더 이상 곁에 둘 수 없다는 건 크나큰 고통이다.  


그래도 네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게 나라서 다행이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 언제고 너를 생각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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