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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기대와 착각

아내의 통곡

1) 침묵의 상처


여행할 때마다 아내와 투덕거렸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지난해 가을, 대구에서 큰아이의 친한 친구인 윤형이의 결혼식이 있었다. 윤형이네는 전에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서 가족끼리도 잘 알고 지냈다. 신랑이 호텔을 잡아 준다고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대구 여행을 계획했다. 출발 당일 늑장 부리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좀 더 일찍 출발하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우리 아이들을 동대구역에 픽업해서 같이 예식장으로 가볼 생각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어디를 가려면 제시간에 출발하기란 정말 힘들다. 살살 신경질이 난다. 난폭하게 운전하는 것을 보고 눈치챘을 거다. 내가 신경질이 난 것을 알면 아내도 입을 꾹 닫는다. 아예 먼 산만 바라본다.


호텔 예식장에 도착했다.

신랑은 어디서 저런 예쁜 신부를 만났을까?

신랑은, 어려서부터 봐 왔는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늘 친절하고 잘 웃는다. 신부도 마찬가지 일 거다.

신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목련처럼 피었다.

신랑에게도 착한 신부의 환한 미소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큰아이는 목소리도 가다듬고 손동작도 하면서 진지하게 사회를 보고, 작은아이는 하얀색 양복을 입고 감동적인 축가를 불렀다.


예식이 끝나고, 대구 시내에 있는 사진관으로 갔다. 나는 사진이 달갑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신경질을 아직 잊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니 웃는 모습이 하나도 없다. 눈치가 빠른 작은아이가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이런저런 말을 걸고 애를 쓰는 게 안쓰럽다. 아내는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애꿎게도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 착한 작은아이를 탓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으니 대답도 안 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생각하며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부터라도 감춰둔 속마음을 표현하고 살아야겠다.

침묵하고 참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가족이라도 알아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모르는 것은 한 세월이 지나가도 모른다.

아직도 고치지 못한 내 성질머리 때문에, 오늘도 가족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가족사진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작은아이의 기특한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2) 아내의 통곡


호텔방에는 와인과 근사한 과일바구니가 배달되어 있었다.

큰아이가 준비해온 양주도 마셨다. 앞으로 펼쳐질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도 하고 즐거웠다. 큰아이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파리에서 4년 동안 생활했으니 보고 듣고 느낀 게 많았을 거다. 그런데 자기의 고집과 주장이 너무 세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껏 혼자 생활을 해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생각의 차이가 있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학술논문을 쓰는 일과는 다르다.


큰아이는 도통 내 말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큰 소리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어쩔 줄 모르며 연신 술만 권한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싸움이 일어나겠다. 아이들을 자기 방으로 돌려보냈다.

'뭔 저런 녀석이 있지? 아빠의 말을 저렇게 무시하다니 내가 잘 못 키웠나 보다. 저래서 사회생활이나 잘할 수 있을까? 어쩌다 자식한테도 존중받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큰아이가 박박 대들던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자책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내 한숨소리에 잠을 들지 못하던 아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한참을 통곡했다.

“나도 맨날 애들 걱정이야.”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내는 실컷 울게 그냥 놔두라고 울며 얘기했다. 다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데, 큰아이는 정규 직장도 못 잡고 장가도 못 가고, 작은아이는 여자 친구에게 휘둘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고. 아내가 마음에 묻어두고 고민했던 일들을 30분 넘게 울면서 쏟아 냈다.

나는 나만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도 고민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잘 풀리겠지 하는 기대만을 안고, 고민은 각자 마음에 숨기고 묻어두고 있었다. 걱정을 하면 걱정이 더 커질 뿐 좋을 게 없다 생각하며 지내왔다.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애들 탓할 거 없어. 자기도 똑같아.”

아내의 통곡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60이 넘은 나의 인생을 반성했다. 아내의 말대로 아들이 나와 같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땠을까? 우리 어머니도 나 때문에 통곡을 하셨을까?


정신이 맑아진다.

아이들도 다들 고민이 많겠지.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겠지. 그것을 부모한테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겠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면 되지도 않은 말을 박박 우기며 대들었을까? 부모가 돼서 그런 것도 모르고, 못된 놈이라고 자식을 탓하고 있었다니.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우리 큰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몰라주어 미안하다. 탓해서 미안하다.

이제는 자식한테도 존중받지 못하는 인생이라고 자책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며 살자.

우리는 살면서 예기치 못한 여러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책 속의 장벽은 늘 허물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기도 한다. 넘어가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해야 한다. 그런 장벽을 부모님도 많이 겪어 봤을 거다. 내가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부모님은 안타까워했을 거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그 안타까운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3) 기대와 착각


기대가 있는 곳에 착각이 동반한다.

세상의 모습은 쉽게 변해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우리 집 큰아이의 이야기다. 얼마 전 지방에 있는 대학의 교수 초빙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서류전형에 합격해야 2차 평가 대상자로 선정한다. 무난히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예상대로 되어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연구계획과 강의능력에 대한 약 40분간의 2차 평가를 거쳤다. 우리 아이는 늘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고, 어디에서도 기죽는 법이 없었다. 별문제 없겠지. 그래 합격할 수 있을 거야!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2차 결과 발표 날이다. 예정된 시간이 두 시간도 더 지났는데도 아이한테서는 연락이 없다.

불안감이 밀려든다.

아마도 불합격인가 보다. 많이 실망했겠지. 그래서 연락이 없겠지. 그래도 궁금하여 조심스레 물어봤다.

“잘 안되었니?”

“아, 지금 오류가 났는지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럼 그렇지! 기대가 다시 살아났다.

퇴근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 9시가 넘었는데도 연락이 없다. 아파트 1층 구석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코로나로 다들 외출을 자제한다고 그런지, 택시만 가끔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고 매우 춥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발표를 안 했을 리 없다. 아마도 합격했을 텐데, 이 녀석이 그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거다. 지원 서류를 준비할 때도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고 못마땅해했다.

좀 있으면 합격했는데도, 불합격했다고 연락이 오겠지. 바보 같은 녀석!

대부분 사람들은 살다 보면 자신의 인생을 바꿀 몇 번의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에게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고, 모험하기가 싫어 포기하기도 했다. 그 학교에서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더 좋은 기회가 올 텐데. 자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그 녀석의 고집을 뭔 수로 이기겠나. 제 뜻대로 하게 놔두자.

기다리다 못해 문자를 보냈다.

“불합격했나 보지?”

잠시 후 연락이 왔다.

“접속 오류가 나서 확인을 못 했는데... 컴퓨터 다시 시작해 볼게요.”

뭐지? 진짜로 확인을 못 했던 거야? 그럼 그렇겠지!

기대가 다시 살아났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외국의 유명한 연구원에서 4년 동안 근무경력도 있는데 불합격할 리가 없지. 그 정도 대학의 교수쯤이야.

가족 카톡 방에 울림이 왔다.

“불합격했어요.”

또다시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 녀석 실망하여 술 퍼먹고 세상을 한탄하는 것은 아니겠지?

너무 실망하면 안 될 텐데. 내일 출근은 잘할 수 있을까?


기대 뒤에는 착각이 따른다.

착각 뒤에는 실망이 따른다.

세상의 모습이 쉽게 변하고, 우리들의 착각은 시시때때로 요동치며 변해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기대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을 버리면, 희망도 함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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