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복에 대한 ‘한’이 있다.
아마도 내가 10살 무렵, 설날 아침이었던 것 같다.
동네 친구가 반짝이는 금박이 박힌 중전마마 한복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눈이 부셨다.
“도시에 사시는 우리 할머니가 사주셨어.”
자랑하듯 한바퀴 휙 도는 친구. 웃는 얼굴에 햇살까지 반짝였다.
TV 한 대를 놓고 온 동네가 옹기종기 모여 연속극을 보던 그 작은 시골마을.
그곳에선 처음 보는 한복이었다. 너무 예뻤다.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나는 엄마에게 졸랐다. 나도 한복을 갖고 싶다고.
하지만 엄마는 화를 내셨다. “한복 얘긴 입 밖에도 내지 마라.”
그 뒤로도 나는 조심스럽게 몇 번 더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건 매번 무관심과 엄포뿐이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는 친구에 대한 질투와 한복에 대한 부러움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때로는 그림으로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던 다음 해, 작은 설날.
엄마는 곱디고운 중전마마 한복을 한 벌 사오셨다.
나는 너무 기뻤다. ‘드디어 내 한복이다. 자랑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그 한복은 너무 작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것이 아니라, 동생 것이란 걸.
동생은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덩치가 작았고 키도 자그만했다.
엄마는 동생에게 한복을 입혀 보며 요리조리 돌려보시고는 흐뭇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먹먹해 말도 못 하고 작은 방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너무 서러웠다.
목까지 차오르는 설움은 어린 내 마음을 짓눌렀고,
엄마에 대한 원망은 풍선처럼 커졌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말이 줄어드는 아이가 되었고,
엄마 말대로 ‘나는 못났으니까’‘나는 쓸데없는 기집애’라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준비해 단체 무용을 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 한복을 갖게 되었다.
금박도 장식도 없는, 그저 노란 저고리와 그저 빨간 치마.
지금 동생에게 그때 이야기를 하면,
“뭘 그런 걸 아직도 얘기하냐”고 핀잔을 주며 웃는다.
동생은 모른다.
그 설움이 얼마나 깊게패여 가슴에 남아있고,
지금도 흉터로 자리잡아 자주 아리다는 걸.
결혼 날짜를 잡고 시어머님과 함께 한복을 맞추러 갔을 때,
어릴 적 한복 때문에 생긴 나의 한이 떠올랐다.
가게 안엔 곱고 고운 천들로 가득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한복이 이렇게 많다니, 숨이 막힐 정도였다.
어머님은 나에게 한 벌이 아닌 두 벌의 한복을 맞춰주셨다.
하나는 새색시용, 다른 하나는 행사용.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새색시 한복을 받아들며
어린아이 마냥 기뻤했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 오면 형님들은 한복이 불편하다며 입기를 꺼렸지만
나는 매번 한복을 꺼내 입었다.
시댁 어른들이 한복을 입은 나를 보시며 참 예쁘다라며 칭찬을 자주해 주셨고,
어린 시절 꿈에 그리던 한복을 입으니 어린아이마냥 그저 좋았다.
한복은 내게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너무나 원했지만 가질 수 없어 가슴 아리던 상처였고,
결혼이라는 또다른 인생에서 따뜻한 사랑을 갈망하던 나에게 비춰진 한줄기 빛이였다.
어렸을 땐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사랑에 목이 말랐다. 나의 작은 가슴엔 아리는 흉터가 너무 많았다.
인생사 다 지나간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오래도록 가슴 깊숙히 남아,
불쑥불쑥 마음을 건드려 상처를 들쑤시는 날들이 있다.
중년이 된 지금,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글마당이 있어서 참 고맙다.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소소한 감정들을 다시 꺼내 보고,
내 마음속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받는 이 시간.
지금 이 순간이 나를 숨쉬게 한다.
따뜻하다 그리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