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었다. 마약과 섹스로 얼룩진 그 밤. 피로 젖은 시트 위, 이청백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이불 아래 붉게 번진 흔적은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다'는 신호처럼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여자의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고, 코로 들어가는 숨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눈을 감기려다 멈췄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손끝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이전 살인들과는 달랐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림자는 벽 너머에서 웃었다. 이번엔 예전처럼 속삭이지 않았다. 분명히 들렸다.
"즐겼잖아. 죽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너잖아."
그는 방을 나서며 전화기를 꺼냈다. 단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임지환.
---
임지환의 뒷방은 언제나처럼 어둡고, 마약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이청백은 무너질 듯한 걸음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나… 무서워."
그 말에 임지환은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네가 무서워할 게 남아있긴 해?"
이청백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피했다.
"그림자가 말해. 죽이라고. 난, 이제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잠을 못 자. 그게… 나 같아."
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한 금빛 가루를 꺼내 책상 위에 흩뿌렸다.
"그럼 더 깊이 가야지. 너 같은 놈은… 멈추면 죽는 거야."
---
그날 이후, 이청백은 멈추지 않았다. 무차별적이고 무의미한 살인을 반복했다. 사람의 얼굴, 눈,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 살인들이었다. 도시엔 피비린내가 가득했고, 그의 이름은 언론의 지면을 덮었다.
결국, 그는 붙잡혔다. 폐허가 된 병원 옥상에서. 그의 손엔 피 묻은 칼, 눈동자엔 공허만이 남아 있었다.
---
그는 AI가 통제하는 감옥에 수감됐다. 정서도, 감정도, 대화도 없는 곳. 온도와 공기, 조도마저 계산된 규율 안에 그는 존재만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서인.
그는 완벽한 얼굴과 균형 잡힌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이목구비,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유려한 근육의 곡선. 그러나 그의 눈엔 아무것도 없었다. 감정도, 의지도, 목적도.
서인은 말이 없었다. 다른 죄수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명령에 따라 걷고, 앉고, 먹고, 자는 존재. 마치 유기체가 아닌, 정교하게 조정된 인형 같았다.
이청백은 처음엔 그에게 관심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깨닫기 시작했다. 그 남자, 자신과 다르다. 완전히 무너진 게 아니라, 무언가를 완벽히 지워낸 인간이었다.
그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청백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며칠 뒤, 이청백은 자신의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딥페이크, 성착취, 마약, 그리고 살인. 그림자의 속삭임. 그는 마치 고해하듯 이야기했다. 감방의 천장을 향해, 혹은 자신에게.
그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목소리가… 점점 나처럼 느껴져. 아니, 이젠 나야. 난 그냥… 도구일 뿐이야.”
그날 밤, 서인은 혼자 감방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속삭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무너졌지.”
---
서인은 한때 소원을 이뤘던 자였다. 완벽한 얼굴, 완벽한 몸, 완벽한 삶. 모두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감정을 잃었다. 쾌락도, 고통도, 애착도 사라졌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의 어느 조용한 밤.
이청백이 자신의 죄를 말하는 그 순간.
그 말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죄에 대한 무감각을 느낀 순간.
서인은 공포를 느꼈다. 그건 그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들을, 너무도 침묵 속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와 달라야 해.”
서인은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다. 내가 부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
그의 말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벽을 보고, 혼자 말했다.
“시간아, 돌아가라. 기억은 남고, 죄는 사라지지 않게.”
---
그 순간, 감옥 전체가 흔들렸다. 드론들이 멈추고, 조명이 번쩍였으며, 공간은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청백은 몰랐다.
그는 잠들어 있었고, 서인은 조용히 고개를 들며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이청백은 눈을 떴다. 딥페이크 개발실. 모든 게 시작된 그 방.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창가엔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